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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우 장로님 증언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이 귀한 시간에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 나오면 순수한 이 선생님에 대한 뭐라 할까? 우리의 옛날에 믿었던 그 신앙을 말씀 드려야 하는데 제가 나오면 설교식이 되겠다. 해서 제가 안 나오려고 했는데 김 선생님이 나가라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먼저 희옥 씨 어머니와 모든 언니들이 다 이렇게 이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셔서 잘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 쉬었던 우리 수양회 총회 이 수양회가 쉬었다가 개최되었다고 해서 오늘 오셨다가 가신 엄 목사님과 원 선생님에게 그런 인사를 드렸습니다. 같이 그때 협력하시던 우리 선생님들은 다 가시고 어른들은 보니까 든든하고 또 어딘가 모르게 한쪽이 빈 것 같았는데 또 뵈려는지 못 뵈려는지 몰라도 이렇게 오셔서 수고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갈렸습니다. 그런 마당에 저도 이 시간에 그때 이 선생님을 만났을 때 어느 편인가 한편을 이야기 하라고 해서 제가 하려면 많은 것이 있는데요. 전편도 후편도 떼어놓고 중간 편을 말해야 될까? 그런 생각을 해보고 시간이 너무 짧으니까 이렇게 제가 생각으로는 걸인 편을 해볼까 생각합니다.
여기 머리도 시작도 또 머리도 떼어놓고 끝도 떼어놓고 중간 편 중간에 걸인 생활을 했으니까 걸인 편 밖에 계셔서 오신 분들은 심심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 실제로 그렇게 몸으로 부닥쳤고 사실에 그렇게 생활했기 때문에 이것이 또 한 번 들어봄으로 옛날 생활이 그리워진 것이지요. 선생님과 관계 우리들의 생활이 있어서 이야기 해봅니다. 이해하시고 밖에 사시는 분들은 가셔도 되고 계셔도 되고 자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셨지요? 제일 적은 것을 둘 말씀하고 제일 큰 것을 말씀하셨는데 무엇 무엇이 크다고 말씀 하셨지요? 두 가지 반대입니다. 사도 중에 제일 적은 사람 사도 중에 제일작고 죄인 중에서는 제일 크다고 그랬어요. 저는 그렇게는 못되었어도 이 동광원 사람으로는 제일 적은 사람이에요. 무엇으로 학문적으로나 머리가 둔한 적으로나 내가 좀 머리가 영리했다면 그때 말씀 좀 듣고 했을 텐데 전혀 막혔어요. 지금 같으면 조금 어떻게 바늘귀라도 뚫어지려는가? 한 가지라도 물어보고 했을 텐데 한마디도 못해봤어요. 내 생각으로 머리로는 그렇게 캄캄한 사람이야. 얼마나 캄캄했던지 참말로 그런 사람에 하나에요. 그러나 하나 말로, 조금 했어요. 말이, 선생님을 상당히 업고 다녔어요. 말 노릇을 한 겁니다. 말이 말하는 거예요. 말이 방언하는 거예요. 그래서 걸인 편을 조금 이 시간에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집회에서 이야기 했습니다만 모든 문제를 이렇게 여러모로 협력해서 수고해 주신 언니들에게 감사드리고 원장님으로부터 어떻게 이렇게 다들 좋게 생각하시고 여기 오셨다가 가신 선생님들도 목사님들도 다 이렇게 좋게 생각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걸인 편 다 떼어내 버리고 걸인편만 조금 하려는데 내가 함평에서 살다가 옛날에 불타진 동광원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우리가 부른 말이지요. 육이오 전에 거기에서 동광원을 시작해서 하다가 고아들 데리고 사업하다가 육이오를 만나서 불타버렸어요. 그래서 거기다가 막을 치고 그렇게 살고 있는데 함평에 있다가 거기에 왔어요. 다 떼어내 버리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너무나 시간이 없어요. 왔더니 이 선생님께서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으시고 계시면서 저한테 평화시대가 오면 갚을 예산하고 지금은 얻어먹고 저기를 하라고 당신의 윗도리를 벗어서 던져줘요. 이놈 입고 가라고도 안 해요. 탁 벗어 주시면서 이놈 입고 가서 밥 얻어오라는 거지요. 그러니 이놈의 것 몸둥어리는 성성해가지고 밥 한 끼 얻어 본 역사가 없어요. 내가 그러니 이놈의 것 어떻게 입고 밥을 얻으러 가냐 이것이야. 내가 밥 달라는 말 입에서 나올 것 같지도 않아, 그래서 입고 밥을 얻으러 갑니다. 앞도 못 봐요. 양쪽도 못 봅니다. 사람들이 싹 다 나만 보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앞만 보고 갑니다. 옆에 누가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그런 정도로 앞만 보고 갑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밥을 얻어가지고 와서 먹고 한번 두 번 연습을 해보니까요. 상당히 연습이 되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강변에 나가서 살게 되었어요. 움막 쳐놓고 살게 되니까 막을 쳐놓고 고슬빈 씨라고 계신데 거기 옆에다가 막을 치고 사는데 그렇게 사니까 원장님이 신입반이라고 해가지고 얻어먹는 소년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나한테 붙여줘 가지고 그 사람들을 데리고 밥을 얻어먹고 살아요.
그때 당시는 가난하니까 어디를 가야 밥을 많이 주냐? 깡통을 가지고 가면 여관집에 가면요. 식은 밥 남은 것 하나줘요. 여러 집에 안가고 밥을 얻어오니까 애기들이 나보다 잘 얻어오는 애기들이 있어요. 나보다 선수야. 따라 오라고 나를 데리고 그런 데로 가는 거야. 그때는 다리 밑에 천사라고 우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았어요. 일본에 갔다가 한국에 나와 가지고 어쩔 수가 없으니까 다리 밑에 와가지고 거지 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그런 판국에 우리들도 끼었어. 그렇게 살지요. 상당히 살면서 되어가지고 김 선생님 계시지만 거기서 살면서 어더더 할아버지 앉아서 얻어 잡수시는 그런 양반 한분을 모셨어요. 그래가지고 모시는데 때에 따라서는 노인네가 인제 참 청결하기는 한데 담배를 피워요. 담배도 때로는 사다 드리는데 요것만 피우고 그만 피우시라도 그러면 어더더더더 그러세요. 고맙다고 사다주면 그런 식으로 하는데 때로는 이 양반이 참 정신은 맑은데 어쩌다가 실수를 해가지고 빨리 잘되지 않아가지고 똥을 싸버려요. 그러면 그놈 씻으려면 지금 같으면 아닌데 그때는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요? 어른 똥이라, 그런 것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좀 살다가 얼마동안 사는데 그렇게 살면서도 항상 마음이 안 놓이는 거예요. 항상 부끄러워요. 건강한 사람이 밥을 얻어먹어야, 그런 마음이 있고 편하지 않고 그런데 고슬빈 씨라고 팔이 소아마비로 한 팔이 말라서 우리들은 생전 보여주지도 않아요. 옷 속에 넣고 사시는 분이라 그런 분이 있어서 제가 한번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가 건강한 사람이 얻어먹고 사니까 이거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얼마나 용기 있는 말인지 몰라. 당신네들은 건강하니까 오늘이라도 이것 벗으면 건강한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라고? 그 말에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내 마음은 딱 땅에다가 묻어버렸지. 그 말이 사실이지요? 내 생각만하고 그런 말을 해버린 거예요. 그렇게 한참 사니까 마음이 보따리가 커져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 보다 서울로 가봐야 되겠다. 마음이 상당히 그렇게 단련이 되어버렸지요. 무엇까지 배웠냐하면 그 양반한테 무엇을 주워다 먹고 밥을 얻어먹지 않고 사는 기술을 그 양반한테 배웠어요. 그래서 나도 서울 가서 얻어먹다가 그렇게 사니까 그렇게도 살겠어요. 그렇게, 그렇게 서울 가서 한참 사는 거예요. 한참 사는데 어디 여기서 애기들하고 같이 능곡에 가는 애기들이 있어서 같이 한꺼번에 몰려갔는데 나하고 같이 사는 얻어먹는 손님들 싹 데리고 갔어요. 이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농사지을 목적으로 갔는데 이 사람들은 농사지을 목적도 아니야. 나한테 가만히 빠져 나갈라는데 이 사람들이 기미를 알아가지고 어디 담요를 가지고와서 담요를 덮고 앉아서 밤을 새우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혼자 도망을 했던가? 도로 능곡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떼어놓고 밤에 도망을 갔어요. 그래가지고 서울 가서 혼자서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광주로 갈 사람은 가고 인제 붙을 사람은 붙고 그렇게 되어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살다가 저는 서울 굴에 인제 어디 살 데가 없으니까 굴 전향을 하는데 어디가냐하면 지금 서울 신촌으로 가는 그 굴이 하나는 육이오 때 폭격을 해가지고 무너져 버렸어요. 그래서 그것이 한쪽은 못 다니니까 그냥 차가 안다니고 한쪽만 다니데요. 그런데 굴지키는 양반이 있어요. 그런데 그 양반한테 애기들이 초등학교 다녔든가 안 다녔든가 그런 딸들이 둘이 있는데 그 양반이 마음이 좋아요. 딸만 있어서 그런지 딸을 낳은 아버지들이 마음이 좋은가? 어떤가? 그 양반이 마음이 좋아가지고 모르지 자리를 잡았는지 안 추워? 그러면서 인사를 와요. 아침이면 그러면서 우리 친구가 있는데 잘 있으라고 그래서 한참 거기서 살았어요. 구정이 돌아왔는데 그 집 딸들이 옷을 곱게 입고 한복을 입고 나한테 거기 굴 있는 데로 와요. 무엇 하러 오냐? 그러니까 세배하러 와요. 에끼, 거지한테 세배 하냐? 그러니까 거지한테도 세배하지요, 하고 땅에다 대고 절하는 것 있지요? 애기들이 그만큼 순진하구나.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무엇을 하고 한참 살다가 거기서 거기도 많이 떼어 내버리고 한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까 그렇게 살다가 거기서 깡패들을 만나버렸어요. 거기서 희옥 씨 어머니도 만나고 최씨 어머니도 나 있는데 와서 만나버리고 갈보리 어머니도 이런 것 싹 떼어버리고 다하려면 이거 두 시간을 해도 못 다해요. 그래서 이 깡패 이 사람들이 학생 깡패들이 싹 차려입고 와서 돈 내놓으라는 거야. 말하자면 네가 왕초 아니냐? 거지들 데리고 있으니까 안한다고 그랬더니 그래도 말 안 듣고는 막 때리면서 그때 승명 씨 동생 그 사람하고 맞았어요. 그 사람은 가버리고 나는 이사를 해야겠냐? 어쩌겠냐? 했더니 그때 희옥 씨 어머니하고 최 씨 어머니가 듣고는 동대문 어디를 가보라고 그래서 거기를 가보니까 못쓰겠어. 누가 살고 있고 그래서 다시 그쪽으로 왔어요. 오니까 그 양반이 하는 이야기가 여기서 살지 어째 어디로 가냐고 거기서 한참 맞고 어쩌고 하니까 살 마음이 안 생겨, 또 성경책도 빼앗겨 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이사를 가려고 생각을 하는데 그 양반이 하는 말이 그러면 내가 알려줄게 신촌 저기가면 기차 대가리를 숨겨 놓으려고 왜정 때 파놓은 굴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라. 그 양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어요. 그곳에 가서 한참 사는 거야. 거기에 가서 재미 붙여가지고 얻어먹지도 않고 그렇게 주어다가 채소하고 이렇게 먹고 사는데 살다가 그때도 광주서 서울 올라갈 때처럼 그런 마음이 상당히 커졌어요. 커지니까 내가 부산이고 어디고 돌아다녀봐야겠다. 자신이 생긴 거야. 그래가지고 능곡으로 어디로 간다고 인사하러 딱 가니까 아이고 이 선생님이 와계시네요. 후두결핵으로 말씀을 못하시는데 나를 얼마나 기다린 것처럼 말씀은 못해도 그래가지고 은현 씨 원장님이 필기를 하고 따라다녔어요. 필기를 하시면서 빨리 나있는데 가자는 것이야. 빨리 나있는데 그러니까 가야지. 한쪽에서 들것을 만드는데 그냥 제가 업고가 버렸어요. 업고 가버리는데 가다가 쉬었든가 안 쉬었든가 역전까지 업고가, 가지고는 거기서 그곳으로 모셨어요. 제가 있던 곳에다 저는 보따리 싸가지고 어디로 이사 가려고 그랬는데 다른 생각해요? 새 살림 이에요. 그러니까 한나 씨 어머니도 오시고 희옥 씨 어머니도 오시고 식구들이 다 오 장로님 김 선생님 막 싹 다 식구가 우리 굴에 식구가 겁나게 많아져 버렸어. 그래가지고 거기에 와서 그때 사시면서 하도 열이 나고 후두결핵으로 말씀을 못하시고 그러니까 얼음을 사다가 항상 입에다 머금게 해드리고 그런 무엇을 하고 있는데 우리 동광원 약하고 고기하고 금하던 것을 깬 장본인이야. 심부름한 장본인 이 선생님 내가 없었으면 안 잡수셨을 런지 모르는데 그때 제가 심부름한 장본인이야. 제가 그 무엇을 사서 물을 해서 드리니까 기도를 하셨다고 그래 그때 하나님의 뜻이면 넘어가게 해주시고 뜻이 아니면 이 물이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 나를 데려가 주시라고 그런 기도를 했는데 넘어갔다 그래요. 그래서 거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같이 저기도 드리시고 그때 사실은 개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가 그때 그런 사람의 하나이고 제가 지금은 직설적으로 고기를 먹지말자. 그렇게 해봅니다. 지금은 오늘까지 먹고 살아봤던들 건강한줄 알고 먹었는데 저는 또 꼭 그것을 먹어서 좋다 안 좋다. 그것 보다도 예수님도 자비를 원했으니 나도 자비를 원해서 생각을 해보니까 고기 잡다가 죽는 목숨들이 형제들이 다 내 남편이고 내 동생이고 내 형제라고 생각하면 내 집안에서 오징어 잡다가 죽었는데 그 오징어가 맛이 있겠냐? 그것 이지요. 이것 살다가 보면 언젠가 자기 보는 대로 들어가 버려요. 자기 생각대로 되어 버려요. 고기 먹는데도 잘 믿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가고 저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무엇을 그때 그랬는데 이렇게 된다.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그런 편에 있어서 제가 그 걸인 생활을 왜 이야기 하냐하면 그때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배고프면 얻어먹고 그런 생각이 죄가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또 그 얻어먹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 하냐? 산에 가도 그렇게 자유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워버린 거예요. 저는 걸인생활을 가르쳐줬기 때문에 자유스럽고 또 그뿐 아니라 이분들이 그런 생활을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얼마나 무엇한테 매여서 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해봐요. 애기들 교육문제 여자들 문제에 얽매여 살 것인데 다 떼어내 버리고 말하려니까 이렇게 체계가 없어요. 장사하다가 실패해가지고 고물장사를 한바탕 하면서 이 선생님이 그랬어요. 의인 이라는 것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 돌배기 속에서 의인은 다 묻혀있다. 그랬어요. 고물장사 하면서도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아주 기구만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얼굴이라. 그렇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 속에 다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도 귀엽게 볼 수 있어요. 인간으로는 얼굴로 볼 수없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생각도 해보고 또 그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보냐? 고물 세계라는 것은 무엇이 한탕 되면 신나게 다닙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한 사람은 고개를 쑥 빠치고 다녀요. 가위만 치고 다니고 그래서 나는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무엇을 보면 성경이 보이려고 그래요. 그래서 이 장사 돈 버는 목적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막걸리 먹자고 하는 사람에게는 막걸린 둘이서 한잔 딱 먹고 죄송합니다. 또 그걸 막걸리 먹을 줄 아냐고 못 먹는다고 하면 음료수 사서 같이 한잔 나눠먹고 아 돈 벌려고 하지 않으면 무엇 하러 다녀? 그러고 아이고 잘했다고 그것 무엇이냐? 믿음에 길을 조금 찾아보려고 하니까 그런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힘이 찾아지고 생겼다고 그래서 이 선생님이 누구보다 앞서야 되냐? 공산주의보다 앞서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늘도 공산주의에 대해서 오늘 아침에 원 선생님이 말씀 하셨지만 이 공산주의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함평에서 살면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봤어요. 그래서 그분을 통해서 내가 이 오늘까지 나는 고난으로 뭉쳐졌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 세 살 때 부모를 잃고 그 이후로 내가 커 나오면서는 내 생애가 어떠한 인생에 있어서 즐겁거나 기쁘거나 그런 것이 통 없었어요. 왜냐 남들은 내 나이에 부모의 사랑을 받고 크고 하는데 나는 어디다 어머니라는 자리를 한자리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이 그렇게 부르면 나는 쳐다만 보고 있어요. 쳐다만 봐요. 나는 그럴 언덕이 없거든. 그런 생활을 하며 이만큼 컸어요.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