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1950년 2월호 제44권 제2호 통권 1019호(24〜26쪽)
최도마 신부 전기(十一)
양반이 입교하였다면 특히 그 동류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나이다. 양반이 성교를 받든다는 소문이나면, 그 가문의 명예가 손상되고 신분이 타락되여, 영화와 온갖 소득이 즉시 없어지는고로 입교하기가 극난하고, 그들이 오주예수의 십자가와 그 받으신 만반능욕을 사모하기보다, 더욱 세속의 헛된 영화를 즐기는고로 입교인에게 지장이 많고 크도소이다.
며칠전에 새로입교한 교우하나이 자신의 출세를위하여 아무런 노력한바도없이 친구의 덕으로 현감(縣監)이라는 벼슬을 하게되었나이다. 한국사람중에 드러난 이름도없고 활동한 일도없이, 혹 친척이나 친구의 덕으로 관직을 얻게되는 일이 가끔 있는데, 어떻게 되어서든지간에 자기에게 도라오는 관직을 받지않을수없는것이니, 만일 사양하면 명예를 잃거나, 혹은 사형을받는일까지 있나이다.
이 신문교우는 지금 신덕을 잃어버릴 위험이 많사오니, 미구에 이는 어느 고을에, 혹은 어느 중요한 읍내에 출두할것이요, 이 책임을 진다면, 따라서 미신행동을 아니할수없는것이오며, 만일 거절하면 그는 반역자의 선언을 받음과동시에 사형언도가 나릴것이며, 그 온 가족까지도 큰 환를 당하겓되겠나이다.
또 양반의집 부인들의 처지가 더욱 가련하오니, 한국부인은 문밖출입을 못하고 가까운 친척에게나 언어상통을 할뿐이오며, 타인과의 상종이 금물이오 모르는 남자에게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이면 큰 실수로 여기나이다. 그러하오매, 부모와 장부가 있는 여교우드이 거개 성사받을 방도가 없삽고 오직 원의만 간절할뿐이오며, 결혼한 그이튿날 그 장부가 죽어도 그 여인은 수절하며 일평생 과부로 늙어죽게마련이니, 만일 개개하면 제일신과 친척까지 망신이라하여 남과같이 행세하고 자유로 출입을 못할지경에 이르니, 밤에만 성사를 받으려다니매, 이같이 밤거리를 다님에따라 얼마나 딱한 사정이 많은지알수없나이다.
오- 어느때나 이렇게 의덕에 주리고 목말러하는 영혼들을 자유로 배부르게 하오이까!
교우들이 우리도 만나보고 미사도 참례코저하여 다수히 내왕하는 것을 나는 엄금하고 가끔 보속까지 많이 주나, 이것을 그들은 과히 두리지아니하고, 이점에관하여는 순명을 잘 하지안나이다. 신부가 공소에 들어가면, 남녀노소 물론하고 새옷을 갈어입고 신부 면회하기를 바삐여겨, 조금만 지체한다면 답답함을 이기지못하여, 회장을 자조 드러보내여 면회와 강복을 청하며, 신부가 떠날 행장을 차리면 방성통곡하여 공소집이 진동하고, 어떤이는 옷소매를 잡고 만류도하며, 어떤이는 애정의 표로 신부의 옷자락을 눈물로 적시고 뒤로 따라와 아니보일때까지 돌아서지아니하며, 어떤이는 오래도록 바라보기위하여 높은데로 올러가나이다.
한번은 앞공소로 가는길에, 내가 지나갈 길옆에 사는 신문교우들이 마조나와 저의 동내로 들어가 잠간 쉬고 가기를 누누이 간청하므로, 허락하고 들어갔더니 그 동리와 근처교우들이 많이 왔을뿐아니라, 거기서 十五리 격하여 사는교우도 신부 지난다는 소문을 듣고 왔으며 한사람은 집을 비여두고 안해와 십세가령된 아들까지 인솔하고, 기막힌 산중험노를 밟고 왔으니, 이렇게 열열히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신부를 뵈옵고 그 말슴을 듣고저하는자들에게, 「사베리오」나「벨라도」같은 성인들이 찾어오신다면, 얼마나 그들의 영혼상 유조한 결과를 내리이까?
여기 또 한가지 대단 가석한 사정이 있나이다. 이는 소위 열심히 비상한자들중에, 보담더 큰 기쁨과 열성으로써 천주를 섬기기위하여 동정을 지키려고 결심한자중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사정이로소이다. 무릇 동정은 천신의 덕이로되, 한국법과 풍속은 동정의 고귀함을 모르는고로, 동정을 지키려는자에게 아무런 보호와 의지가 없나이다. 오히려 동정을 불효라 하고 수절을 가면이라 비방하옵나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한 여자로 결혼을 하지않고있다면 외교인의 겁탈을 당할 염여가 있고 따러서 구령대사를 그릇칠수있는것이므로 우리는 정결을 선전하는 입장에 있으나, 도로혀 결혼을 권하고 엄히 분부까지 하나이다……」
최신부께서는 이 서간문에 상당이 긴 말슴으로써 발바라라하는 처녀의 동정지킨사정과, 그에게 압도하는 위험이 백파센트이였으나, 불행중다행으로 그의 일생이 짤렀으므로 파게를 모면한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기록하섰다. 그러나 여기에 그 사정을 성약하고 다음에 계속되는 최신부님의 편지를 읽기로하자.
「…내가 입국이래로 도모지 쉬지못하고 항상 순회하였사오며, 우리집에서는 七월한달동안만 지내었나이다. 지난 一월이후 중국서 서울까지 들어온 것은 별문제하고, 약 五천리를 다녔나이다. 이렇게 회순하며 사무번다하였으나, 주 은으로 나는 항상 무병하였나이다.
나는 교우 三천 八백 十五명을 방문하였사옵는데, 고해자가 二천 四백 一명, 영성체자 一천 七백 六十四명, 대인영세자 一백 八十一명, 소아영세자 五十四명, 보례자 九백 十六명이였삽고, 영세예비자 二百七十八명, 외인영해임종위험대세자 四백 五十五명이였나이다.
어떤교우들은 외교인 부모를 모시고, 생장한 들역 외교인촌에 살고있는데, 그들은 대개 교리를 모르고 열성이 식어있으며, 그 외에 허다한 교우들이 사욕과 세속에 얽힌 사슬을 끊어버리고 모든 것을 떠나 산협에로 이사하여 살며, 담배와 서속농사로 연명하나, 교리를 밝혀 알고 수계에 착실하옵나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그 적막한 생활을 오래 계속하지못하게되여, 차차 외교인들앞에 교인인 정체가 탄로됨과동시에 박해에 쫏기나이다.
남자들중에 입교하고저하는자 많사오나, 지장이 이렇게 심하므로 불가능하옵고 여자축에는 더욱 간절한자 더욱 많사오나 더욱 불가능하옵나이다. 그들이 본가에 있고보면 교인의 본분을 채울길이 없고, 집을 떠난다면 의지할곳이 없거나 외교인들의 겁탈을 당할위험이 십의팔구이옵나이다. 박해와 흉년이 겸하였던 一八三九년에 이렇게 많이 되었사오니, 즉 그때에 여교우들이 많이 어찌할 수 없어 피신하려고 집을떠나 유리객걸하다가 무리로 외교인의 첩이되고, 혹은 종이 되어버렸나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듣고 생각하면 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