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 16절 – 22절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가 애굽에서 가졌던 애굽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는 명예와 영광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곳으로 하나님은 이끌어 가십니다. 모세는 자신이 애굽의 노예된 히브리민족을 이끌 지도자라고 하는 사명을 어머니와 누이를 통해서 알았습니다. 비록 모세가 애굽왕실에서 자랐다고 하여도 모세의 유모역할을 한 어머니와 어머니를 도와 모세를 교육하였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장래 모세가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자원이나 능력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원이나 능력으로 그 비전을 이루어 가면 우리는 그 영광을 자기자신에게 돌리고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 스스로 하려고 하는 그 자세를 내려 놓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베데스다 양문곁에서 삼십팔년된 중풍병자를 치유하실 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자기를 위하여, 자기생각을 따라 그리고 자기자원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그 일에 자신을 드려 동참하길 바라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광야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자원으로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먼저 미디안 광야로 이끄셔서 광야에서의 목자의 삶을 훈련하십니다. 우리가 받는 광야의 훈련은 장래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과 너무나 관계가 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우리를 광야에 두시는지 이해 할 수 없을지라도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실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실 때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갈릴리바다에서의 어부의 생활이 베드로에게는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베드로를 훈련시키시고 장래에 사람낚는 어부의 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제사장인 르우엘의 가정으로 모세를 이끄십니다. 르우엘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의 제사장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고 모세가 광야의 목자로 자라는데 있어 좋은 멘토가 될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이른 모세를 우물에 이르게 하십니다. 양떼를 치는 자들은 정기적으로 양떼에게 물을 먹여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러한 목자들의 삶은 후에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갈 때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우물가에 르우엘의 일곱딸이 아버지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을 구유에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보고 있던 목자들이 힘으로 르우엘의 일곱 딸들을 모두 쫓아 버립니다. 그 딸들이 항변도 하고 욕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힘이 약한 여자들을 괴롭히는 목자들의 행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모세가 그 목자들을 쫓아 버립니다. 애굽궁궐에서 전문무사로서 자란 모세에게 야생의 목자들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르우엘의 일곱딸들은 물을 기르고 아버지께로 갑니다. 항상 순서에서 밀려 늦게 오던 딸들이 빨리 오자 놀라워 합니다. 르우엘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왔느냐고 묻습니다. 딸들은 애굽사람의 복장을 한 모세를 이야기 합니다. 모세는 여자들의 가는 방향을 따라 갔습니다. 여자들은 모세의 한일을 아버지르우엘에게 말합니다. 말을 들은 르우엘은 모세를 접대합니다. 르우엘은 모세가 떠돌이란 말을 듣고서 그곳에 머물게 합니다. 르우엘은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고 모세는 십보라의 사이에서 게르솜을 낳습니다. 미디안은 당시 애굽의 변경지역이요 가나안과 지척인 지역이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나그네의 삶을 삽니다. 이 말은 모세가 비록 미디안에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비전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로 모세 자신을 부르실 것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볼 때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자로 세워져 가야 합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자기의 무능력을 보게 되고 자기가 자랑했던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신 것같고 먼데의 하나님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세밀하게 바라 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