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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의 철갑기병을 전멸시킨 위나라의 부대는 장창병인가?
대한국민 추천 0 조회 630 07.08.15 14:58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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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8.15 18:05

    첫댓글 팔랑크스는 기병들의 돌진 공격을 막기위해 탄생된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팔랑크스의 보병들(페제타이로이)이 사리사라고 불리는 긴 장창을 소지한 것은 기병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 마케도니아의 주적들인 그리스의 중장보병들에 대한 아웃레인지 공격을 퍼붓기 위해서입니다(그리스 중장보병들은 마케도니아의 중장보병들이 소지한 창보다 그 길이가 짧았습니다). 그리고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가 기병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는 다목적 혼합 병종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 안에 다양한 병종이 있었습니다. 다만 충격이나 타격을 담당할 부대가 없었기는 했습니다.)

  • 07.08.15 18:11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도 페르시아의 기병을 상대한 것은 알렉산더가 이끄는 기병대들이었지 팔랑크스들이 그들을 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군의 우측으로 기병을 몰았고 다리우스도 알렉산더를 노리기위해 기병전력을 알렉산더쪽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또한 알렉산더 이끄는 기병들 뒤로는 보병들이 뒤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보병전열에 균열이 생기고 페르시아 기병대를 이 빈틈에 뛰어들어 군 자체가 2조각나는 사태가 발생되기도 했습니다.

  • 07.08.15 18:39

    결론은 팔랑크스가 태생자체가 기병들을 막기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팔랑크스들은 보병들을 상대하기 위해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로 그들의 싸움을 보면 기병들을 저지한 것보다는 보병들과 싸운 적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장창병이 항상 기병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병을 이기는 보병이라고 해서 꼭 장창을 소지한 것만은 아니구요. 전장에서의 승리는 누가 그 상황에 맞는 전술을 잘 쓰는 것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니깐요

  • 07.08.15 20:20

    애당초 당시 그리스 군대가 기병저지전술을 연구할 이유가 없었죠. 그리스든 페르시아든 기병에 의한 충격전술이 없었기에...

  • 07.08.19 15:42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초로 중기병을 운용한 국가는 파르티아였습니다~

  • 07.08.20 12:39

    파르티아의 뒤를 이은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중기병을 운용(크리바나리우스)했지만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서는 중기병을 운용하지 하지 않았습니다.

  • 07.08.15 20:26

    3세기 중엽이면... 등자있는 기병이 아니기에 장창병이 아니라도 밀집대형만으로 기병의 돌격에 충분히 대응했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로마도 파르티아나 사산조 페르시아의 등자없는 카탁플라타이류 중장기병의 돌격을 방진으로 막은 사례들이 많으니까요. 물론 등자보급 이후엔 카탁플라타이의 수도 늘고 돌격력도 강해져 방진만으로 막기 힘들어 지게 되지만...

  • 07.08.18 12:30

    3세기엔 이미 등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양하고는 좀 다르죠.

  • 07.08.15 21:24

    결과적으로 당시에 중장보병의 주무기는 창이었으니까요.. 중장보병의 훈련된 밀집대형을 중장기병도 돌파하기 어렵습니다.

  • 07.08.16 00:04

    노(쇠뇌)로 무찔렀다고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후한 말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노(쇠뇌)의 보급이 활발했고 좀 이후 시대긴 해도 당나라군 전력의 20%는 노(쇠뇌)로 무장한 군대였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님 위진시대(삼국시대)까지는 중국의 보병들은 창보다는 극(戟)이 보병의 표준무기였습니다^^.

  • 07.08.16 03:20

    네.. 그렇군요..

  • 07.08.16 12:04

    장창병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무제기였나 어디 보면, 관중의 병사들이 아주 용맹하다면서 이곳 병사들은 긴창을 들고 다루는데, 능했다 비스므리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 07.08.18 12:29

    고구려에게 일찌감치 정복당한 옥저의 경우도 장창보병 전술에 능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를 거치며 전략전술이 크게 발달한 위나라의 관구검이 장창 전술을 썼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을 것 같네요. 동천왕의 철기가 맥없이 당한건 관구검의 보병전술이 대단한 신개념이어서라기 보다는 기록에 나온 것 그대로 방심과 그 외의 다른 무언가의 요소가 결합된 결과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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