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갯가로 나가
십일월 둘째 일요일이다. 근교 산자락 임도를 누벼 이슥해진 가을 뒤끝을 장식할 야생화 탐방을 나서볼까. 창녕함안보 강기슭 자전거길을 따라 트레킹 나서 가을이 저무는 운치를 느껴볼까도 싶었다. 둘 다 아닌 제3 선택지로 마음에 둔 갯가로 산책을 나서려고 마산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향했다. 진동 진북 진전을 묶어 삼진이라 불리는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탈 참이다.
집 앞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산역 앞에서 내렸다. 광장으로 오르는 노상에는 계절감이 물씬 나는 푸성귀와 과일들이 펼쳐졌다. 토요일만큼 성하지는 아니라도 일요일 아침에도 저자가 열렸다. 무와 배추는 물론 단감이 수북했다. 누군가 손길에 주웠을 도토리도 보였다. 호박은 덩이째 놓였기도 긁어서도 팔았다. 달군 번철에 호박전으로도 구워 팔아 구미가 당겼다.
진전 정곡으로 가는 77번 버스를 타고 어시장을 지나 댓거리에 이르렀다. 댓거리 장터 푸성귀를 내다 팔고 귀가하는 부녀들이 있었다. 내 곁에 한 자리만 남았는데 연로한 부녀 둘이 시장바구니를 끌고 올랐다. 한 분만 앉히고 남은 분은 서서 가게 할 수 없어 내가 자리를 비켜주니 둘 다 앉아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 이용에서 행복을 느낌은 짐을 들어주거나 자리를 양보했을 때다.
버스가 진동환승장에 들렀다가 해병 전적비를 지난 신기에서 내렸다. 창포로 가는 길목에서 율티로 가니 마을회관 앞에서 ‘우해이어보’ 산실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진해로 유배된 김려가 바닷물고기 생태를 기록으로 남겨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앞선 어류 도감이다. 어민복지회관 곁에 창원 탄소중립 홍보관이 보였는데 이른 시각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율티에서 창포만을 바라보니 초열흘 조금 썰물 물때로 갯벌이 드러났다. 창원 인근에서 봉암과 마찬가지로 갯벌을 볼 수 창포만이었다. 선두로 돌아가는 연안에는 선박 구조물을 제작하는 공장이 조업 중이었는데 대형 조선소 납품일을 맞추려는 듯 일요일도 직원들이 출근해 일했다. 철골 구조물을 만드는 공장을 지난 연안에 외국인 청년 둘이 낚시를 하다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율티에서 연안을 돌아간 첫마을은 선두로 양식업과 고깃배를 타고 나간 어로로 생계를 잇는 어촌이었다. 건너편 창포마을이 바라보인 어느 집 마당에는 중년 부부가 그물을 깁는 작업을 했는데 무슨 용도에 쓰려는지 여쭈니 내년 봄에 도다리 잡을 때 쓸 그물이라 했다. 물고기는 어종에 따라 잡히는 계절이 달랐는데 내년 봄 도다리 어로에 쓰일 그물을 지금부터 준비해 두는 듯했다.
선두 방파제에는 당산 기능을 하는 소나무와 느릅나무 둥치가 연리지처럼 붙어 자랐다. 그 곁에 풍어를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는 제단에 화강암을 남근처럼 쪼아 만든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오래전 마을을 지나다 현지 노인에게 들은 바는 매미보다 더 강력한 태풍 사라 때 집채 같은 파도가 덮쳐도 마을이 안전했는데 그 까닭은 방파제 당산에 세워진 남근 석상의 효험으로 믿었다.
선두에서 모롱이를 돌아가니 뒷개가 나왔는데 횟집과 선착장이 있었다. 장기마을에서 뒤쪽이라 뒷개로 불렸는데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는 이제 제철을 맞는 굴을 까 포장하는 인부들이 휴일도 없이 일손이 바빴다. 뒷개에서 장기로 나가니 조업을 나가지 않은 어선들이 포구에 묶여 있었다. 마을에서 지척에 보이는 작은 섬 두 개는 유인도 우도와 양도는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까웠다.
장기에서 이어진 고현 포구는 더 큰 어항이었다. 굴은 요즘부터 나와도 미더덕은 아직 철이 일렀다. 진동 연안은 미더덕 양식업이 성해 매년 봄 군항제에 이어 천주산 진달래 축제가 열릴 때 미더덕 축제를 열었다. 마을 도로명도 ‘미더덕길’을 붙였다. 고현에서 진동으로 가는 연안에서 내 뒤를 따라오는 남파랑길 트레킹을 나선 이들을 만났는데 여남은 명이 울산에서 왔다고 했다. 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