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가 내각(內閣)과 차관급 인사를 마무리하고 사실상 출발선에 섰다. 李 광복 80주년을 맞는 15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이 정부 출범을 공표하는 ‘국민 임명식’을 연다. 李 최근 8·15 특별 사면에 이어 123개 국정 과제를 발표하고 “통합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李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첫 인선을 놓고 우려가 제기된다. 인사 후반으로 갈수록 ‘진영 챙기기’가 강화되면서 李 내세웠던 ‘실용’도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는 “李가 강조한 통합과 실용이 반쪽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李의 초기 인사에서는 파격이 이어졌다. 배경훈·김정관·한성숙 등 기업인을 과기부·산자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임명했고,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유임시켰다. 5·16 이후 64년 만에 안규백같은 국방장관도 나왔다.
하지만 막판으로 가면서 전교조와 민변 출신 등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의 비율이 높아졌다. 이재명 사건을 변호한 법조인들이 금융감독원장, 용산 비서관, 국정원 기조실장 등 요직에 줄줄이 배치됐다. “李 개인 차원의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과거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 측근’ 발탁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했다.
최근 조국, 윤미향 등 개인 비리를 저지른 인사들을 특별 사면한 것도 이 정부가 내건 ‘공정’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중도층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李는 “자타 공인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국정 철학에 동의하는 인사를 선정한 것”이라며 “사면은 국민 통합 차원이고 실제로 긍정적 반응이 많다”고 했다.
◇초반 실용 인선 어디 가고, 이재명 변호인 7명 ‘청문회 없는 요직’ 앉혀
李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자리에 비교적 청문회 통과가 쉬운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을 대거 발탁했다. 대신 청문회 없이 임명만 하면 되는 요직에는 본인이 연루된 사건의 변호인을 앉히는 등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상당수 기용했다. 청문회 잡음과 낙마를 최소화하면서 국정 운용을 뒷받침할 측근을 발탁한 것이다.
이 정부 초대 내각은 “내각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역 의원이 무더기로 포함됐다. 김민석과 19개 중앙 부처 장관 중 8명이 민주당 의원이다. 보좌진 갑질 논란으로 낙마한 강선우까지 합치면 절반 가까이를 현역 국회의원으로 채우려 한 셈이다. 특히 김민석, 정성호, 김윤덕 등 대부분이 대선 때 캠프에서 활동한 친명 의원이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과 함께 4대 사정 기관으로 꼽히는 국세청장에도 임광현을 지명했다. 이 자리에 현역 의원이 지명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정부 첫 인선의 콘셉트는 기업인 출신을 내세워 ‘실용’에 방점을 찍고, 의원과 관료 등을 앉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李는 과거 정부에선 없었던 기업인 출신을 산업통상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지명했고 새로 만든 용산 AI미래기획수석에도 네이버 출신을 앉혔다.
하지만 李는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임명직에는 재판에서 변호를 맡았거나 연수원 동기 등 특수 관계에 있는 측근을 잇따라 배치했다. 금융감독원장에 낙점된 이찬진은 李의 사법연수원 동기(18기)다.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변호를 맡았다.
입법 심사와 법령 해석을 담당하는 법제처장에 임명된 조원철도 李의 연수원 동기, ‘대장동 사건’ 변호인이었다.
대북 송금 사건의 변호인이었던 김희수는 국정원 핵심 요직인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됐다. 민정수석실의 이태형, 전치영, 이장형도 모두 이재명의 변호인 출신이다.
국민의 힘에서는 “변호사 수임료를 공직 임명으로 대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李는 당선되자마자 요직으로 꼽히는 민정수석에도 연수원 동기인 오광수를 임명했지만 차명 재산 의혹이 불거져 자진 사퇴했다.
李는 초기에는 이념과 진영을 탈피한 인사를 하는 듯 보였다. 고용노동부 장관에만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을 지명했다. 그러나 범민주당권에서 사퇴 요구가 나온 이진숙, 강선우의 낙마 후에는 해당 장관 자리에 전교조 출신, 민변 출신을 각각 앉혔다.
최교진은 세 차례 해직됐던 전교조 교사 출신이고, 원민경은 민변 등에서 활동했다. ‘진영 챙기기’이자, 지난 대선 청구서를 받아주는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진숙, 강선우의 경우엔 민노총, 여성 단체 등 친여 성향 단체들이 앞장서 낙마를 요구했다”며 “李는 끝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낙마를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차관급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는 통진당 전북도당위원장을 지낸 방용승이 임명됐다. 방용승은 李의 친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 상임대표를 지냈다. 장관급인 국가교육위원장에는 차정인이 임명됐다. 차정인은 李의 연수원 동기이고, 과거 부산대 총장 시절 조국과 정경심의 입시 비리 문제를 두둔하고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李가 능력 위주의 참신한 인사, 통합형 인사를 하고 싶었겠지만 자기 진영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내 편 챙기기’ 인사로 흐른 건 그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