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참에 투닥투닥 빗 소리에 창문을 여니 비는 비고 바람이 어찌나 살벌한지
실감나게 춥습니다.
드디어 솜옷이 빛을 발할때가 온 것입니다.
의기양양 겨울 장갑을 꺼냈으나 목도리가 없네요.
하는수없이 세수수건 하려고 가져온 형광색 타올을 목에 두르고
양말위에 비니루로 단디 무장하고 등산화를 신습니다.
어제 무겁다고 버렸으면 좋겠다던 우산을 꺼내들고
재래시장 오일장 한 구탱이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 머리고기 국밥으로 따뜻이 속을 채우고
길상사로 나섰습니다.
지도를 보니 군청 바로 위에 그려져서 기본 요금 거리인가 해서 택시를 탔더니 4000원 나왔습니다.
길상사... 라니 당연히 절인줄 알았더니 김유신 장군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는 군요.
마침 얼마전에 끝난 드라마에서 보던 김유신 장군이니 매우 친근하고 익숙합니다,
53세에 물리친 비담 반란군,60세에 김춘추를 도와 왕위에 오르니 태종 무열왕이 되었고.66세에 백제를 74세에 고구려를 물리쳐 삼국통일을 이루었다니..
전쟁을 잘해서 장수요 ,
옛 사람으로 74세까지 현직에 있으면서 오래 살았으니 진정한 장수라고 불릴만 하네요.
길상사 현판입니다.
사찰뒤에는 항상 바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 있는 듯...
김유신장군이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사람이라 경주가 태어난 곳인줄 알았더니 진천 태령산 골짜기라는게
진천을 와보지 않았으면 평생 모를뻔한 사실입니다.
나중에는 "흥무대왕"이라 추봉되었다는데 이것도 낮설은 이야기 였습니다.
두루두루 설명도 읽어보고 영정도 쳐다보고 주변 산세도 감상한 후에 보탑사로 향해 길을 나섭니다.
여전히 바람은 불고 버스는 안 오고, 집 나오면 고생 맞습니다!
보탑사까지 오가는 버스는 하루 세번 밖에 없다고 합니다.
제일 빈번히 버스가 오가는 사석 삼거리 까지 가기로 합니다.
고개를 하나 넘는군요.
일단 내려서 마주 보이는 파출소로 들어가 길을 묻고 커피도 한잔 얻어마시면서 잠시 쉬어갑니다.
1.2~3 키로 정도 걸어서 삼거리에서 중간 길로 6~7키로 걸으면 보탑사라고 합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다보니 사충문이라 불리는 작은 사당이 있습니다,
반란군을 쳐들어오자 조카,아들 ,친척 을 데리고 쇠스랑과 괭이로 싸우다 네 명이 다 죽어서
영조가 사당을 내렸다는데...
그 아녀자들을 생각하니,
불끈하는 충성심에 집안의 온 남정네들이 다 죽었으니 얼마나 폭폭 했을지 잠시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걸어야만 보이는 역사입니다.
삼거리에서 보탑사와 백곡 저수지로 갈리는 길 까지 왔습니다.
보탑사길로 한 참을 걷다 어제 성공한 히치 생각이 나긴 했으나
옷도 신발도 젖었으니 누가 그리 쉬이 태워 줄리 없다고 생각하고
손 들었더니 ,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얼굴이 너무 션~ 하게 생겼거나.
하여간 차를 얻어타고 고불고불 가는데 같은 거리라도 산길이어서인지 더욱 고즈녁하고
먼 것 같았어요. 비가 안 오면 걷기엔 너무 아름 다운 길이건만...
마음씨 좋은 드라이버 아줌마는 중간쯤에 있는 참 숯방이 목적지였건만 끝까지 보탑사에 내려주고
여행 잘 하라는 인사까지 곱게 하고 사라졌어요.
삼백년된 느티나무 입니다. 다른 동네 나무들은 보통 오백년은 다들 넘었다고 하니
300살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지말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나이는 어리나 기골이 장대하고 좌우대칭 모난 곳없이 잘 생긴 나무 입니다.
보탑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양식으로 삼층 탑을 지어서 내부에 부처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들어가봐야했으나 질퍽거리는 신발을 벗기도 힘들고, 막상 들어가 절을 할것도 아니니 아쉽긴 했지만
내부는 보지 못했어요.
외관은 엄청 호화롭고 금빛이 번쩍 거리는것이 개인적으로 얘기하자면 새콤맞아보이긴 했지만
추녀끝에 매달린 풍경소리는 청아하고 맑아서 바람이 좀더 불어 울려주었으면 했었지요.
산세를 병풍삼아 지어진 아름다운 집 입니다.
보탑사에는 보물인 백비가 있습니다.
백비는 두 종류가 있는데 영화를 누리던 높은 양반들의 비석이 나중에 역적이 되면 갈아버리는 경우와
너무 청백한 사람이라 많은 덕을 일일이 새길수가 없어 비만 세운 경우이나 보탑사의 백비는 후자는 아닌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박수량의 백비가 유일하답니다.
거북이 얼굴이었으나 반쪽이 없어져서 말머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등어리의 거북 모양이 정교해보입니다.
보탑사를 둘러보고 시간을 보니 버스 올 시간이 아직도 두시간이나 남았습니다.
단디 모양새를 다시 갖추고 걸어가기는 중입니다.
한 참을 내려오다보니 김유신 탄생지가 보입니다.
그당시 태수의 아들이었다는데 어찌 이런 산 골짜기에서 태어났는지 갸우뚱~
탄생한 집터인가 봅니다. 집은 그리 낡지 않아서 터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옛날에는 태는 짚에 넣어서 태웠는데 김유신집안은 그리 안 하고 태실을 묻고 봉토를 마련했다고 하니
큰 인물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대접했나 봅니다.
근처에 연무정이라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허벅지도 거의 젖어가고 웃도리 아랫단도 축축하게 빗물이 스며드는 중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바람이 스치고가는 얼굴과 머리 입니다.
궁여지책끝에 비니루를 머리에 쓰고 썬캡으로 누르니 안성마춤 에헤라 디요~ 입니다.
내 진즉 이 생각을 했으나 비니루가 없으리라는 틀린 짐작으로 삼십여분을 바람과 사투를 벌인걸 생각하면
눈물이 찔끔 나려 합니다.
누가 살아서 진천 .. 생거 진천이라 했는지요.
나는 오늘 생거진천이 아니라 생고 진천 입니다.
역곡 저수지 저 너머 실 같이 가는 길이 걸어온길입니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이어선지 가볍게 걸어온듯 합니다.
참 숯방을 지나 수제비 집도 지나갑니다.
점심도 거하게 잘 먹어야 할텐데..
조금 더 내려오니 곤드레나물 밥 집이 보이는군요.
밥 먹으러 들어가는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우선 주인이 놀래지 않도록 머리에 쓴 비닐을 벗고,
등산화 위에 있는 비니루도 재 활용해야하니 탈 탈 털어놓고.
양말위에 신은 비니루는 방 까지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히 가서 벗어 놉니다.
뜨거운 녹차가 나오고 곤드레 나물 밥이 나왔습니다.
어찌나 밥도 고슬고슬하고 된장에 무친 시래기는 보드랍고, 말린 가지는 연하기 그지 없습니다.
김치는 깊은 맛이 우러나와서 마당에 묻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급하게 먹느라 두어수저 먹다가 찍은 곤드레 나물 정식입니다.
이번 여행은 어찌 그리 들어가는 집 마다 맛집을 갔는지
먹는 기쁨이 실로 큰 여행이었습니다.
집에 온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여행이 꿈인지 생신지 마치 찰나같이 지나가버린 시간입니다.
걷지않았으면 만날수 없었던 계곡 길과 맑고도촉촉한 공기 , 주변의 풍경들이 그림처럼 기억에 스며 있습니다.
아마도 차를 타고 휙 갔다 왔으면 지금같은 아련한 기억은 언감생신 기대도 못할것이 뻔 합니다.
자고로 여행은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에 공감 백배 입니다.
첫댓글 3월1일은 점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는데 연락하시지~ㅎ 글구 진천은 예쁜아줌마 덕륜화님이 사는 곳이고요~ㅎㅎ
명자나무님, 저도 못한 진천소개를 너무 잘 해주셔서 감사 ^^ 아쉽네요, 진천토박이인 제가 아무도움을 못드려서.. 글구 농다리 가는 길목에 있는 작고 예쁜학교가 제가 근무하는곳인데, 알았더라면 따뜻한 차 드렸을걸 ^*^언제 다시 한번오시면 제가 잘 안내해 드릴께요 ^^
그러게나 말이야요. 덕륜화님이 계신걸 알았다면 틀림없이 들려서 얼굴 보고 오는 것인데요.ㅎㅎ
음식이 정갈하고 깔끔하네요 진천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런말도 있잖아요 " 살아 진천 죽어 용인 " 이라고요 앉아서 구경잘 했습니다
참말루 우리고장을 천안성님이 맛깔나는 글솜씨로 자세히도 소개를 하셨네요 ㅎㅎ 그란디 참말루 진천까지 오셨다가 쥔나으리도 리스도 덕륜화도 안보구 가시다니 참마루 아쉽
연곡저수지 이름도 무척 아름답습니다.자자라는 분도 진천사셔서 집에 간 기억이 새롭습니다.인터넷친구들과 잠시동안이라도 간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몇년이 지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