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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가몰혜명불몰(雲可沒兮名不沒)
구름은 몸을 덮을 수 있어도 이름은 묻을 수 없다는 뜻으로, 임란 때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 장군을 애도한 박재형의 시구로, 비록 몸은 구름에 묻혔지만, 이름은 묻히지 않아 비석에 남아 있다는 말이다.
雲 : 구름 운(雨/4)
可 : 가히 가(口/2)
沒 : 빠질 몰(氵/4)
兮 : 어조사 혜(八/2)
名 : 이름 명(口/3)
不 : 아닐 불(一/3)
沒 : 빠질 몰(氵/4)
몰운대(沒雲臺) / 박재형(朴齋珩)
沒雲臺下沒雲悲(몰운대하몰운비)
몰운대 아래 구름에 묻히다니 슬픈지고
水底魚龍恨亦知(수저어룡한역지)
물 밑의 고기와 용도 그 한을 알고 있으리라.
雲可沒兮名不沒(운가몰혜명불몰)
구름이 (몸)을 묻을 수 있어도 이름은 묻을 수 없으니
沒雲臺上鄭公碑(몰운대상정공비)
몰운대 위에 정공의 비석이 서 있구나.
위 시는 조선 순조 때 군수를 지낸 박재형(朴齋珩)의 '몰운대(沒雲臺)'로, '조야시선(朝野詩選)' 권2에 있다. '조야시선'은 근세 시인 이기(李琦)가 엮은 3권 1책의 시선집(1917년 간행)이다. 18세기 후반~20세기 초 활동한 조야의 시인 233인의 시 1130여 수가 들어있다.
녹도만호 정운(鄭運, 1543~1592)이 임진왜란 때 부산포해전(1592년 9월 1일)에서 이순신 장군의 우부장(右部將)으로 출전해 선봉에서 싸우다 몰운대 근해에서 전사했다. 몰운대(부산 사하구 다대동)에는 정운의 순의비(殉義碑)가 서 있다.
비문에는 정운 장군이 수군 선봉으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沒雲)의 운(雲)자가 자기 이름자 운(運)과 음이 같다 하여 이곳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우다가 순절했다고 적혀 있다. 1798년(정조 22) 정운 장군 8대손 정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세운 것이며, 비문은 이조판서 민종현이 짓고, 훈련대장 서유대가 썼다.
1834년 이시눌(李時訥)이 그린 '임진전란도(任辰戰亂圖)'는 임진란 초기 부산진과 다대포진의 처절한 항전을 묘사했다. 왼쪽 아래에 몰운대가 그려져 있고, 그곳에 '정만호운비(鄭萬戶運碑)'가 비각 안에 큼직하게 세워져 있으며, 정운이 부하 2명과 서 있다. 그 옆에 정운이 타고 온 녹도 전선(戰船)까지 그려 놓아 당시 사람들이 정운을 존모해 왔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위 시는 정운에 대한 그러한 애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비록 몸은 구름에 묻혔지만, 이름은 묻히지 않아 비석에 남아 있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다.
몰운대(沒雲臺) / 윤효관(尹傚觀)
長空如水淨無雲
馬島迷茫指未分
넓은 하늘 바다와 같아 구름 한 점 없는데, 대마도라 흐릿하여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네
往蹟龍蛇先入想
連邨鷄犬若相聞
임진란의 지난 자취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이웃한 촌락에선 닭과 개 소리 서로 들리네
山形熨斗坤之柄
人立舂鋤島一群
인두 같은 산 형세에 자루 모양 지형인데, 사람들 백로처럼 서서 여러 섬들 구경하네
歎息臺名終應讖
殘碑菭碧對斜曛
대 이름이 끝내 도참에 맞은 것 탄식하거니, 이끼 낀 채 퇴락한 비 석양 속에 서 있네
현대에도 시와 그림의 우아한 아취를 실용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전근대시기의 한시와 병풍은 미적 감상의 대상 말고도 그 실용적, 장식적 기능이 많았다. 병풍에 제사와 관련한 의례를 빡빡하게 적어 실무자들이 보고 익히게 한다든지 복잡한 성리학을 도형으로 그려 이해를 도우면서도 공간의 분할이나 시각의 정돈 등을 위한 장식적 효과를 꾀한 것 등이 그러하다.
어느 지역의 풍물과 인문 정보를 한시로 기록한다든지 놀이의 흥을 도우기 위해 한시 구절을 이용하는 것 등 그 예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한시를 실용에 이용하는 것은 옛 시대 사람들이 수학 과정이나 과시를 준비하면서 한시를 많이 익혔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한시를 사교나 행세, 혹은 의례의 일환으로 활용하여 평소 친숙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지금 규장각에 소장된 '경상도명승도' 8폭 병풍 중 부산의 몰운대를 그린 그림에 화제로 쓰여 있는 것이다.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명승 8곳을 가려 뽑고 그 명소의 자연 풍광과 함께 인문 고적을 소개한 것인데, 첫 작품 '만하정(挽河亭)'에 나오는 "통제영을 옮겨 세 바다를 관장하니 지금까지 태평 속에 300년이 지났네(仍徒營府管三陲, 至今昇平三百載)" 등의 시구를 통해 볼 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어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병풍에는 통영의 만하정(挽河亭), 안동의 영호루(映湖樓), 합천의 해인사(海印寺),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거창의 수승대(搜勝臺), 부산의 몰운대(沒雲臺),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포항의 내연산(內延山)을 산수화 풍으로 그려 놓고, 그림의 상면에는 행초서로 시를 적어 놓았는데 서유봉(徐有鳳), 이선조(李善祚), 윤필관(尹必觀), 윤효관(尹傚觀), 김두갑(金斗甲), 최영식(崔映湜) 등이 쓴 시가 붙어 있다.
필체를 볼 때 시를 지은 사람이 직접 글씨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봉은 만하정과 해인사, 윤필관은 촉석루와 수승대 2편에 각각 시를 남겼는데 이들이 지방의 인사라 그런지 행적을 알기 어렵다.
이 그림 병풍을 펼치면 먼저 아하! 조선 말기에 경상도 명승으로 이 8곳을 꼽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보게 되는데 그림의 제목에 보이듯이 누대가 승경의 꽃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또 상단에 적힌 시를 읽어 보면 그 승경에 대해 어떤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병풍 전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논하기로 하고 우선 여기서는 몰운대 그림 한 폭과 시를 감상하며 이런 병풍과 한시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그림을 보면 두 명의 유객이 바다로 쑥 들어간 벼랑 끝에 서서 장관을 앞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관람 소감을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소나무의 상단이 꺾인 것이나 벼랑의 구도와 필법은 명나라 심주의 '청려장 짚고 멀리 바라보다(杖藜遠眺)'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문인화풍을 띠고 있다.
앞에 보이는 군도(群島)에는 '구름에 잠긴다'는 몰운대(沒雲臺)라는 명칭답게 섬의 허리 부분에 구름이 날고 그 사이로 나룻배 한 척이 다가온다. 섬 너머로는 안개에 반쯤 가린 나룻배 두 척의 돛을 그려 멀리 대양이 펼쳐져 있음을 보였다.
그림과 시 중 어느 것이 먼저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각각 따로 주문한 것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림에서 구름과 섬이 어우러진 풍광을 감상하는데 주안을 두었다면 시에서는 그 풍경도 풍경이지만 몰운대에서 전사한 이순신의 부장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을 추억하며, 아름다운 강산과 태평을 누리는 현재의 모습을 오래전 임진란의 상흔과 대비시키고 있다. 몰운대에서 봐야 할 것이 풍경 외에도 아픈 역사가 있음을 말하여 보는 이에게 풍부한 교양 정보를 정리하여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4구에서 사용된 '노자'에 나오는 닭과 개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을이 인접해 있다는 말은 임진년의 참상을 겪고 나서 이제 다시 평화를 회복하였다는 뜻이다.
5구의 '자루 모양의 지형(坤之柄)'은 '주역' 설괘전(說卦傳)에서 인용한 말로 몰운대의 지형을 말하고 있다. 몰운대가 전체적으로 산으로 되어 있는데 인두의 모양인데다가 앞에 보이는 섬 쪽으로 자루처럼 지형이 쑥 튀어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6구의 '용서(舂鋤)'는 백로가 물을 건널 때 머리를 까닥거리는 모습이 마치 절구질이나 호미질을 연상시켜 붙여진 말인데, 몰운대에서 선계와 같은 풍경을 감상하느라 유람객이 목을 빼어 이리저리 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나는 표현이다.
임란 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한 안방준(安邦俊)은 '부산기사(釜山記事)'를 엮어, 임진왜란 때 국토를 회복한 것은 호남을 보전하였기 때문이고 호남을 보전한 것은 이순신의 해전 덕택이며 이순신의 해전은 녹도 만호 정운이 앞장서서 힘써 싸웠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임진년 9월 부산진의 왜군을 공격할 때, 정운이 선봉으로 몰운대를 지나다가 마음이 떨리고 자신의 이름 '운(運)'과 몰운대의 '운(雲)'이 음이 같으므로 여기서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자신이 죽더라도 적에게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한다. 정운이 전사하자 이순신은 자신의 팔이 잘렸다고 말하였고 원균의 참소가 마침내 행해졌다고 하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낙봉파(落鳳波)에서 죽은 봉추(鳳雛) 방통(龐統)의 일화와 같은 이 이야기는 원경하(元景夏)의 '창하집(蒼霞集)' 녹도만호정공묘지명(鹿島萬戶鄭公墓誌銘)과 윤휴(尹鑴)의 '백호전서' 제장전(諸將傳) 등에 나온다.
1834년에 이시눌(李時訥)이 그린 '임진전란도'를 보면 임진란 초기의 부산진과 다대포진에서의 처절한 항전을 중심으로 그리면서도 왼쪽 아래 몰운대가 그려져 있고 그 곳에 '정만호운비(鄭萬戶運碑)'가 비각 안에 큼직하게 서 있으며, 정운이 수행한 부하 2명과 함께 서 있고 그 옆에는 정운이 타고 온 녹도 전선까지 그려 놓아 당시 사람들의 정운에 대한 존모와 인지도를 헤아릴 수 있다.
순조 때 군수를 지낸 박제형(朴齊珩)의 시 '몰운대'는 그런 애정을 잘 보여준다.
沒雲臺下沒雲悲
몰운대 아래서 구름에 묻혀 슬프구나
水底魚龍恨亦知
물속의 물고기와 용도 그 한을 아는 듯
雲可沒兮名不沒
구름에 묻힌다 해도 이름은 묻히지 않아
沒雲臺上鄭公碑
몰운대 위에 정공의 비 서 있구나
- 조야시선(朝野詩選) 권2
앞에서 말한 운(雲)과 운(運)의 참을 전제로 시상을 전개하였는데 간결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언어를 구사한 재치가 넘친다. 몸은 구름에 묻혔지만 이름은 묻히지 않아 비석에 남아 있다는 진술이 앞에서 소개한 병풍의 시와 잘 연결된다. 몰운대에는 지금도 정운의 순의비가 서 있다.
병풍의 시는 이러한 한시 전통을 잘 알고, 보이는 풍경과 보이지 않는 역사를 직조하여 그림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병풍에 그려 넣은 명승지를 두루 다녀본 사람에게는 와유(臥遊)의 자료가 되고 아직 가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명승지 가이드의 역할도 하는 셈이다. 아울러 위세품이나 장식적 기능도 겸하였을 것이다.
이렇듯이 한시에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실용적 목적으로 쓴 시들이 많은데, 그런 경우에도 우아한 언어를 사용하여 보는 이의 감정에 공명하고 기억에 각인하는 힘을 높이려고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몰운대(沒雲臺)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 있다는 몰운대(沒雲臺), 낙동강 하구(河口)의 최첨단에 위치한 이곳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고 하였다.
몰운대(沒雲臺)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녹도만호 정운(鄭運)은 이순신의 우부장으로 싸우다 전사한 곳이다. 순조 때 군수 박제형(朴齊珩)의 몰운대(沒雲臺)는 정운(鄭運)이 대 아래서 죽었으니 대의 이름이 참(讖)이라 하였다.
沒雲臺下沒雲悲
몰운대 아래서 구름에 묻히다니 슬프구나
水底魚龍恨亦知
물 밑의 물고기와 용도 그 한을 알리리
雲可沒兮名不沒
구름이야 덮을 수 있어도 이름은 묻을 수 없기에
沒雲臺上鄭公碑
몰운대 위에 정공의 비석이 섰도다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어우러지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끝자리가 되는 이 몰운대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 시인 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詩)가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전하는데 이 시를 돌에 음각한 "몰운대 시비(沒雲臺詩碑)"를 1999년 6월 12일 사하지역발전협의회에서 건립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 리로 이어졌는데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 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이춘원(李春元)은 일찍이 남양의 홍지성(洪至誠)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박순(朴淳)이 영의정을 그만두고 영평(永平)에 은거할 때 그를 찾아가 다시 배우니 단연 학문에 두각를 나타내었다.
桐花(오동 꽃) / 이춘원(李春元)
桐花一朶殿群芳(동화일타전군방)
오동 꽃 한 송이 뒤늦게 피었기에
折揷金壺別有香(절삽김호별유향)
꺾어 꽃병에 꽂으니 향기 새롭네.
幾度春風開落後(기도춘풍개락후)
몇 해를 봄바람에 피고 진 뒤엔
化身琴瑟夜鳴堂(화신금슬야명당)
거문고 되어 대청에서 울어댈 거야.
몰운대(沒雲臺) 기행 - 송철호
낙동강 칠백리 굽이 돌아
바다와 맞닿은 곳
몰운대
매양 구름에 잠겨
몰운대라 했으니
옛시인의 문재(文才)가 섬 가득 찼구나
해그름에 한적이 찾으니
올올올찬 나무 사이로
늦여름 낙조가 흐르고
찰나에
절벽에 매달린 건
인생지사 허무라
▶️ 雲(구름 운)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비 우(雨; 비, 비가 오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云(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雨(우)는 천체(天體)에 관계가 있다. 云(운)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 자욱이 퍼지는 모양에서 구름을, 雲(운)이 생긴 후로는 云(운)을 말하다란 뜻으로 썼다. ❷회의문자로 雲자는 '구름'이나 '습기', '덩어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雲자는 雨(비 우)자와 云(이를 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云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소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름'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雨자가 더해지게 되었다. 구름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으므로 雲자는 높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금세 사라지기도 하기에 속되고 덧없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간체자가 보급된 이후 다시 옛 글자인 云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雲(운)은 성(姓)의 하나로 ①구름 ②습기(濕氣) ③높음의 비유 ④많음의 비유 ⑤멂의 비유 ⑥덩이짐의 비유 ⑦성(盛)함의 비유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구름이 오고가는 길이라는 운로(雲路),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집(雲集),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둔(雲屯), 구름과 안개를 운무(雲霧), 구름과 진흙이란 뜻으로 차이가 썩 심함을 운니(雲泥), 구름이 덮인 바다를 운해(雲海), 기상이 달라짐에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을 운기(雲氣), 구름 낀 먼 산을 운산(雲山), 구림이 걸친 숲을 운림(雲林), 구름 밖이나 구름 위를 운표(雲表), 외로이 홀로 떠 있는 구름을 고운(孤雲), 이상한 모양의 구름을 기운(奇雲),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을 부운(浮雲), 저물녘의 구름을 모운(暮雲), 엷은 구름을 경운(輕雲), 머리털이나 새털 모양으로 보이는 구름을 권운(卷雲), 여름철의 구름을 하운(夏雲), 빛이 몹시 검은 구름을 흑운(黑雲), 구름과 진흙 차이란 뜻으로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경우에 쓰는 말을 운니지차(雲泥之差), 구름 같은 마음과 달 같은 성품이라는 뜻으로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운심월성(雲心月性), 남녀가 육체적으로 어울리는 즐거움을 일컫는 말을 운우지락(雲雨之樂),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어느 때든지 많이 모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합무집(雲合霧集), 구름이나 안개가 걷힐 때처럼 산산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됨을 이르는 말로 의심이나 근심 걱정 등이 깨끗이 사라짐을 비유하는 말을 운소무산(雲消霧散), 구름처럼 어느덧 흩어지고 새처럼 자취 없이 사라짐을 일컫는 말을 운산조몰(雲散鳥沒), 구름이 열려 해를 본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구름처럼 꽉 막혔던 것이 비로소 열림을 이르는 말을 운개견일(雲開見日), 속됨을 벗어난 인간의 고상한 기질과 성품을 일컫는 말을 운상기품(雲上氣稟),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다는 뜻으로 병이나 근심이 씻은 듯이 없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운권천청(雲捲天晴),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는 뜻으로 의기와 기질이 서로 맞음을 이르는 말을 운룡풍호(雲龍風虎), 탐스러운 귀 밑머리와 꽃 같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빈화용(雲鬢花容), 구름이나 연기가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가고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때의 쾌락을 오래 마음에 두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운연과안(雲煙過眼), 구름이 아무 생각 없이 일고 흐르듯이 인생을 유유히 삶을 이르는 말을 운출무심(雲出無心),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란다는 뜻으로 희망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운예지망(雲霓之望), 구름 속을 나는 두루미라는 뜻으로 고상한 기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운중백학(雲中白鶴), 구름이냐 산이냐는 뜻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산인지 구름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운야산야(雲耶山耶) 등에 쓰인다.
▶️ 可(옳을 가, 오랑캐 임금 이름 극)는 ❶회의문자로 막혔던 말이(口) 튀어 나온다는 데서 옳다, 허락하다를 뜻한다. 나중에 呵(訶; 꾸짖다), 哥(歌; 노래) 따위의 글자가 되는 근본(根本)이 되었다. 또 나아가 힘드는 것이 나갈 수 있다, 되다, 그래도 좋다, 옳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可자는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可자는 곡괭이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可자는 본래 농사일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전적으로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농사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겨내고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바로 농요(農謠)이다. 그래서 可자는 곡괭이질을 하며 흥얼거린다는 의미에서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可자가 '옳다'나 '허락하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입을 벌린 모습의 欠(하품 흠)자를 결합한 歌(노래 가)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可(가, 극)는 (1)옳음 (2)좋음 (3)성적이나 등급 따위를 평점하는 기준의 한 가지. 수, 우, 미, 양, 가의 다섯 계단으로 평점하는 경우에, 그 가장 낮은 성적이나 등급을 나타내는 말 (4)회의(會議)에서 무엇을 결정하거나 어떤 의안을 표결할 경우에 결의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意思) 표시로서의 찬성(동의) (5)…이(가)됨, 가능(可能)함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서 동작을 나타내는 한자어 앞에 붙음 등의 뜻으로 ①옳다 ②허락하다 ③듣다, 들어주다 ④쯤, 정도 ⑤가히 ⑥군주(君主)의 칭호(稱號) ⑦신의 칭호(稱號) 그리고 ⓐ오랑캐 임금의 이름(극)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시(是), 옳을 의(義),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不), 아닐 부(否)이다. 용례로는 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여러 사람의 의사를 따라 의안을 좋다고 인정하여 결정함을 가결(可決), 변화하거나 변경할 수 있음을 가변(可變),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있음을 가동(可動), 대체로 합당함을 가당(可當), 가능성 있는 희망을 가망(可望), 두려워할 만함을 가공(可恐), 하고자 생각하는 일의 옳은가 그른가의 여부를 가부(可否), 얄미움이나 밉살스러움을 가증(可憎), 불쌍함이나 가엾음을 가련(可憐), 눈으로 볼 수 있음을 가시(可視), 나눌 수 있음이나 분할할 수 있음을 가분(可分), 어처구니 없음이나 같잖아서 우스움을 가소(可笑), 참고할 만함이나 생각해 볼 만함을 가고(可考), 꽤 볼 만함이나 꼴이 볼 만하다는 뜻으로 어떤 행동이나 상태를 비웃을 때에 이르는 말을 가관(可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는 뜻으로 흔히 편지에 쓰이는 말을 가가(可呵), 법령으로 제한 금지하는 일을 특정한 경우에 허락해 주는 행정 행위를 허가(許可), 옳지 않은 것을 불가(不可), 인정하여 허락함을 인가(認可), 아주 옳음이나 매우 좋음을 극가(極可), 안건을 결재하여 허가함을 재가(裁可), 피할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불가피(不可避),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될 수 있는 대로나 되도록을 이르는 말을 가급적(可及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시적(可視的), 현상이나 상태 등이 실제로 드러나게 됨 또는 드러나게 함을 이르는 말을 가시화(可視化), 침범해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불가침(不可侵), 의안을 옳다고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가결안(可決案), 옳거나 그르거나를 일컫는 말을 가부간(可否間),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을 일컫는 말을 가연성(可燃性), 높아도 가하고 낮아도 가하다는 뜻으로 인자는 벼슬이 높아도 거만하지 않고 낮아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직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가고가하(可高可下),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말을 가동가서(可東可西), 머물러 살 만한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을 일컫는 말을 가거지지(可居之地), 어떤 일을 감당할 만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감지인(可堪之人), 그럴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을 일컫는 말을 가기이방(可欺以方), 참고하거나 생각해 볼 책이나 글을 일컫는 말을 가고문헌(可考文獻), 두렵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가공가소(可恐可笑), 믿을 만한 사람이나 믿음직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가신지인(可信之人), 투표 등의 개표 결과가 찬성과 반대가 동수임을 일컫는 말을 가부동수(可否同數) 등에 쓰인다.
▶️ 沒(빠질 몰)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몰(없어지다의 뜻)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물속에 가라앉아 없어지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沒자는 '(물에)빠지다', '죽다', '없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沒자는 水(물 수)자와 殳(몽둥이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沒자의 소전을 보면 소용돌이와 손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물살 위로 손이 올라와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沒자는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며 손을 내밀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본래의 의미는 '(물에) 빠지다'였다. 하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죽다', '없어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沒자는 우리말보다는 중국어에서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그래서 沒(몰)은 일부 명사(名詞) 앞에 붙어서 그 명사가 뜻하는 내용이 전혀 없음을 힘 있게 나타내는 뜻으로 그래서 沒(몰)은 ①물에 빠지다, 가라앉다 ②잠수하다, 무자맥질하다(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다) ③다하다, 끝나다, 바닥나다(돈이나 물건을 다 써서 없어지다) ④마치다 ⑤죽다(=歿) ⑥패망하다, 멸망시키다 ⑦함락되다 ⑧없다 ⑨빼앗다, 몰수하다 ⑩탐하다, 욕심부리다 ⑪지나치다, 정도(程度)를 넘어서다 ⑫숨다, 숨기다 ⑬들어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빠질 면(沔), 잠길 침(沈), 빠질 륜(淪), 묻힐 인(湮), 빠질 닉(溺),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일 흥(興)이다. 용례로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이 어떤 일에 오로지 파묻힘을 몰두(沒頭), 성하던 것이 쇠하여 아주 형편없이 됨을 몰락(沒落), 죄다 죽임을 몰살(沒殺), 어떤 일에 온 정신이 빠짐을 몰입(沒入), 아주 없애 버림을 몰각(沒却), 물건 따위를 모조리 거둬 들임을 몰수(沒收),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조금도 남기지 않고 다 먹음을 몰끽(沒喫), 염치가 없음을 몰렴(沒廉), 깨달아 알지 못함을 몰각(沒覺), 모조리 다 타버리거나 태워 버림을 몰소(沒燒), 글이나 책의 전편을 죄다 욈을 몰송(沒誦), 송두리째 모두 잡음을 몰착(沒捉), 다른 생각을 일절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만 온 정신을 쏟음을 골몰(汨沒), 파묻음이나 파묻힘을 매몰(埋沒), 해가 짐을 일몰(日沒), 물에 빠져서 가라앉음을 침몰(沈沒), 물이나 땅속에 모조리 빠짐을 함몰(陷沒), 물속에 잠김을 수몰(水沒), 멸하여 없앰을 멸몰(滅沒), 어떤 현상이나 대상이 나타났다 없어졌다 함을 출몰(出沒), 태어남과 죽음을 생몰(生沒), 귀신처럼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는 뜻으로 날쌔게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신출귀몰(神出鬼沒), 돌에 박힌 화살촉이라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한 큰 힘이 나올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중석몰촉(中石沒鏃), 아침에 나타났다가 저녁에 사라짐을 이르는 말을 조생모몰(朝生暮沒), 염치 없는 줄 알면서도 이를 무릅쓰고 일을 행함을 이르는 말을 모몰염치(冒沒廉恥),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도 없고 인륜도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도몰륜(無道沒倫) 등에 쓰인다.
▶️ 兮(어조사 혜)는 ❶상형문자로 八(팔)은 小(소; 작다)의 뜻이고, 丁(정)는 수초(水草)의 모양이다. 음(音)을 빌어 가사(歌詞)의 어조(語調)를 고르게 하기 위한 조자(助字)로 쓰인다. ❷지사문자로 兮자는 어조사나 감탄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兮자의 갑골문을 보면 T자 위로 두 개의 획이 뻗어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兮자는 본래 도끼를 찍으면서 나는 소리를 뜻했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어조사나 감탄사로만 쓰인다. 그래서 兮(혜)는 ①어조사(語助辭) ②감탄사(感歎詞)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조사로 윗말을 완화하고 아래의 말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을 혜야(兮也), 형체도 소리도 다 없다는 뜻으로 무위자연을 주장한 노자의 중심 사상을 이르는 말을 적혜요혜(寂兮寥兮) 등에 쓰인다.
▶️ 名(이름 명)은 ❶회의문자로 夕(석; 초승달, 어두움)과 口(구; 입, 소리를 내다)의 합자(合字)이다. 저녁이 되어 어두우면 자기 이름을 말해서 알려야 했다. ❷회의문자로 名자는 '이름'이나 '평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名자는 夕(저녁 석)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夕자는 초승달을 그린 것으로 '저녁'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요즘이야 한밤중에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어두운 저녁 저 멀리 오는 누군가를 식별하기 위해 이름을 불러본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名자이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래서 名(명)은 (1)이름 (2)숫자 다음에 쓰이어 사람의 수효를 나타내는 말 (3)사람을 이르는 명사의 앞에 붙어서 뛰어난, 이름난, 훌륭한, 우수한 또는 무엇을 썩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이름 ②평판(評判), 소문(所聞) ③외관(外觀), 외형(外形) ④명분(名分) ⑤공적(功績) ⑥글자, 문자(文字) ⑦이름나다, 훌륭하다 ⑦이름하다, 지칭(指稱)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일컬을 칭(稱), 이름 호(號)이다. 용례로는 세상에서 인정 받는 좋은 이름이나 자랑을 명예(名譽), 명목이 구별된 대로 그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분수를 명분(名分), 사물이나 현상을 서로 다른 것 끼리 구별하여 부르는 이름을 명칭(名稱), 세상에 떨친 이름을 명성(名聲), 이름이나 주소나 직업 따위를 죽 적어 놓은 장부를 명부(名簿), 형식 상 표면에 내세우는 이름이나 구실을 명목(名目), 성명과 해당 사항을 간단히 적은 문건을 명단(名單),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승(名勝), 명분과 의리 또는 문서 상의 이름을 명의(名義), 이름난 의원이나 의사를 명의(名醫), 일년 동안의 명절날과 국경일의 통칭을 명일(名日), 뛰어나거나 이름이 난 물건 또는 작품을 명품(名品), 이름이나 직위 등을 적어 책상 따위의 위에 올려놓는 길고 세모진 나무의 패나 문패 또는 명찰을 명패(名牌), 잘 다스려서 이름이 난 관리를 명관(名官), 훌륭하고 이름난 경치를 명소(名所),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맞음을 일컫는 말을 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난 큰 산과 큰 내로 경개 좋고 이름난 산천을 일컫는 말을 명산대천(名山大川), 남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깎는 일을 일컫는 말을 명예훼손(名譽毁損),이름은 헛되이 전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이나 명예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명불허전(名不虛傳), 명성이나 명예란 헛되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명불허득(名不虛得)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