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아서 먹고, 구워서 먹고, 튀겨서 먹고, 날 것으로도 먹는 고구마.
고구마의 원산지는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 북부에 이르는 지역으로 추정되며 원종(原種)도 명백하지 않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약 2000년 전부터 중·남아메리카에서 재배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당시에는 원주민들이 널리 재배하였는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의해서 에스파냐에 전해졌습니다. 그 뒤 필리핀, 중국의 푸젠성(福建省)에 전해졌으며 차차 아시아 각국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날고구마를 많이 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먹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농촌에서는 고구마가 곡식 대신 한 끼 끼니를 대신해 주었지요. 잎과 줄기는 김치나 무침을 해먹기도 하고 시들은 것은 가축들의 먹이로도 사용된 소중한 작물이었습니다.
우리 고향에서 나는 고구마는 크게 둘로 나뉘었습니다.
밤고구마와 물고구마.
밤고구마는 대개 모양이 둥글거나 통통하고 물고구마는 길쭉하거나 납작한 편입니다.
밤 고구마는 삶아도 단단함이 유지되고 구수한 냄새와 함께 맛이 담백합니다.
마치 밤을 삶아 놓은 듯 속도 노르스름합니다.
물고구마는 찌면 흐물흐물 해집니다.
달짝지근한 맛은 물고구마가 밤고구마 보다 낫습니다.
밤고구마는 수확 후 초겨울까지 깍아 먹기에 좋고 물고구마는 한겨울에 깍아 먹기가 좋습니다.
밤고구마는 젊은 사람들이 날로 뚝뚝 베어먹기에 좋고 물고구마를 찌면 노인들이 먹기에 좋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고구마 삶는 것”을 “고구마 찐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꼬맹이 시절의 겨울,
저녁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이웃집에 마실을 갑니다.
할머니들의 잔잔한 웃음소리, 지나온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고 화롯불에는 밤이나 고구마가 익습니다.
식혜를 만들어 두어 대접 마시게 해주는 집도 있지만, 그것은 명절이나 제사 같은 특별한 경우이지요.
보통은 동치미나 무청 만으로 담은 물김치가 나옵니다.
때로는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기도 하지요.
바닥이 누른 아랫목을 덮은 이불에서는 누룩 내음이 나고, 헤집으면 탁탁 튀는 화롯불에서 잠이 피어납니다.
밖에는 겨울바람이 쌩쌩 불어도,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뻗으면 배는 부르고 눈까풀은 스르르...
그렇게 길고 긴 겨울밤은 깊어만 갔었지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갈 때면 있는 집 아이들은 김밥도시락, 팥빵, 갖가지 과자들, 게다가 사이다도 1병 그렇게 구색을 갖추어 룩색을 매고 왔었지요.
그러나 대다수 아이들은 도시락에 찐 계란 정도였던 그때 그 시절.
공부는 잘 했으나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쭈그러진 도시락도 없어서 밥 주발로 도시락에 대신했고 고구마를 간식거리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본 다른 아이들은 키득거리고...그래도 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당당히 펼쳐놓고 볼따구가 미어지게 맛있게 먹던 그 아이.
내가 가지고 간 삶은 계란을 하나 건네자 고맙다며 답례로 고구마를 내게 주었었지요.
그 친구, 지금은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에쿠스를 타고 다니는 재력가(財力家)가 되어 있습니다.
능히 그럴만한 친구입니다.
중학교 시절,
우리 학교 옆으로 영동선 기찻길이 지나갔습니다.
등하교시간에 기차가 지나가면 우린 떼거리로 기차를 향해「주먹총」을 날렸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주먹을 다른 손의 손바닥으로 벗기는 시늉을 하면서 앞으로 쑥 내미는 괴상한 그 동작.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재미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고메 먹인다.”는 그 짓을 틈만 나면 해댔습니다.
『고메』는 고구마의 경상도 사투리이지요.
어느 날,
나를 포함한 몇 넘이 죽 늘어서서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열심히 그 고구마를 날리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불이 번쩍.
이크, 선생님에게 무더기로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이너무 자슥들...느그들이 그 짓을 하면 누가 욕을 먹겠노...?”
“.....”
“기차 타고 가는 사람들이 느그들을 욕을 하겠나...학교와 선생님들을 욕을 하겠나...?”
“잘못 했느더......”
우린 그날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습니다.^^
악동(惡童)시절의 이야기이지요.
고등학교와 관련된 고구마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장학퀴즈란 모 방송사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우리 모교의 선배인지 후배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출제된 문제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답니다.
◈ 퀴즈사회자 :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쓰시마(對馬島)에서 가져와 동래와 제주도 지방에 재배하게 한 구황작물(救荒作物)로서, 가뭄이나 장마에 영향을 받지 않고 걸지 않은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도 있었던 것은?
○ 동문출연자 : 삑~
◈ 퀴즈사회자 : 네 말씀하세요.
○ 동문출연자 : 고메.
◈ 퀴즈사회자 : ....? 두 글자가 아니고, 세 글자...
○ 동문출연자 : 고오메.
◈ 퀴즈사회자 : 아닙니다.
○ 동문출연자 : 물고메 !
◈ 퀴즈사회자 : 아닙니다. 다른 학생?
◎ 다른출연자 : 삑. 고구마.
◈ 퀴즈사회자 : 네에, 정.답.입.니.다.
엉겁결에 고구마의 경상도 사투리인『고메』가 튀어나왔습니다.
세 글자라고 힌트를 주는 아나운서의 말에 고구마가 정답인 문제에 물고구마의 사투리인『물고메 !』로 대답을 해서 한 문제를 놓쳤다는 웃기는 이야기. ㅋㅋ
요즘 아이들에게는 햄버거나 피자가 입맛에 맞을지 몰라도, 무공해 자연 식품인 고구마의 장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우선은 감자에 비해서 당질과 비타민 C가 많고 수분이 적어서 칼로리가 높습니다. 또한 고구마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칼륨 성분이 특히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구마의 가장 좋은 장점은, 변비에 고구마만한 특효가 없다는 그것입니다. 제약회사에서 만들어서 파는 변비약과는 차원이 다른 천연 약재와 같아서 효과가 만점.
섬유질이 많은데다가 고구마의「아마이드」라는 성분이 세균의 번식을 도와 창자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서 가스가 쉽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날고구마를 잘라보면 하얀 진이 나오는데 이것은 수지(樹脂) 배당체인「야리핀」이라는 성분이라고 합니다. 고구마를 많이 먹으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알려져 있는 것도 바로 변통(便通)을 좋게 하는 성질에서 비롯된 것.
만병의 원인이라는 변비를 퇴치하고 장(腸)을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서, 고구마 많이 드시고 아이들에게도 많이 먹이세요.
첫댓글 갑자기 왠 고구마 해서 읽어보았습니다...어릴적 내고향 영양땅에서 먹던 달짝지근한 물고구마가 생각나네요...ㅎㅎㅎ..그리고 별명이 물고구마인 내친구 얼굴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고구마에 대한 기억들과 함께 옛생각이 나면서 미소가 지어지네요. 고맙습니다.
오랫만에 뵙솝니다. 고맙습니다.
하하하....즐거운 일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갑자기 고구미가 먹고 싶네요...
아니....그 유명한 고구미를 선비가 알다니...ㅎㅎㅎ.....고구미를 외치다가 총맞아 죽으며 신음하며 흘린 한마디...김진기.........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