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빨갱이 동지께서 조선 초중기의 편제에 대해서 설명하셨는데, 조선후기의 그것이 없어서요...ㅋ
조선후기의 군대편제는 <기효신서>의 편제를 따릅니다. 보통 10여명의 대(隊)가 있고, 3~5개의 대를 묶어서 기(旗)를 편성하고, 3~5기로 초(哨)를 편성하며, 3~5초로 1사(司)를, 3~5사로 영(營)을 편성합니다. 중앙군이든 지방 속오군이든 대체로 이 편제를 따르죠.
5영군문의 경우, 그 수장인 [대장]이나 [사(使, 예컨대 총융청의 총융사)]가 대개 비국당상을 겸직한 문관인 경우가 많았기에, 그 밑에 실무를 담당하는 무장으로 [중군(中軍)]을 둡니다.
그 아래에 [천총(千總)]이 있는데, 천총은 영을 통솔하는 무장입니다. 훈련도감 등 5영군문에서는 영을 따로 '부(部)'로 칭하기도 하고, 편성인원은 3000명 정도 됩니다. 천총 아래에는 [파총(把總)]이 있는데, 파총은 사를 지휘합니다. 파총 아래에 있는 것이 [초관(哨官)]인데, 1초를 지휘하며, 1초의 병력은 100~200명 정도 됩니다. 그 아래에는 [기총(旗總)]이 있고, 기총 밑에는 [대장(隊長)]이 있죠...^^;
최근 <제주도 속오군적>이 새로 발견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속오군 체제]의 말단인 '대(隊)'의 편성에서 제주의 경우는 타지와 차이가 있다는군요...^^; 기본에 연구되던 <충청도 속오군적>의 경우, 같은 대에 속해있는 군졸들은 같은 병종의 무기로 무장을 했습니다. 창이면 창, 조총이면 조총 이런 식으로... 근데 제주의 경우는 대장(隊長)은 창으로, 1-2번은 조총, 7~10번은 창, 화병(취사병)은 환도로 무장하는 '혼성편제'입니다.
남아있는 <충청도 속오군적>에는 살수가 없습니다...-_-; 거진 80%가 포수(조총병)고, 나머지가 사수(궁병)에요...ㅎㅎ;;
아마도 고립된 제주도의 [지형적 요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뭐 <충청도 속오군적>의 경우도 완전한 형태는 아닌 것 같지만... 아마 살수 부분이 빠졌을 겁니다. 대신 충청도 같은 내륙의 군현에 편성한 속오군은 애시당초 '군액' 자체가 상당히 많지만, 제주의 경우는 제주목 휘하의 3읍, 즉 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이 따로 섬에 고립되어 있어서 군액 자체가 많지 않았고, 조세의 경우도 서울로 올려보내지 않고 '잉류'했던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제주도의 특수성이 반영된 편성같아요...^^;
한 개의 도의 감사(관찰사)가 병마절도사를 겸하는 곳도 있고, 병마절도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감사 휘하의 지휘관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감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거나 통제사를 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ㅁ-; 나름 조선이 체계화된 편제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리적,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기도 합니다.
뭐 위에 말씀드린 건 임진왜란을 전후로한 설명이긴한데 -ㅁ-;; 차라리 넓은 의미에서 조선군의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조선시대 벼슬에 대해 아는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도원수, 감사, 병마(수군)절도사, 통제사, 대도호부사, 도호부사, 방어사, 현령, 현감, 조방장, 첨사, 만호 등등-_-;
첫댓글 기본만 얘기하자면 일단 오위진법 기준의 5배수 체계로 나가고, 여기에 비장, 참장과 같은 임시직이 추가 됩니다. 군관은 하급장교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호칭에 가깝고요.
5배수 체계란게 뭔가요 ?그럼 조선 후반기의 5군영체계때도 5배수 체계란 걸로 나가나요?
조선 초중기의 오위진법을 설명 드리지면
한명의 병사는 졸(卒)이라고 칭하고
5졸이 1오(伍)로 오장(伍長)이 이끌고 (5명)
5오가 1대(隊)로 대정(隊正)이 지휘합니다 (25명)
5대가 1여(旅)로 여수(旅首)가 가 지휘하는데 (125명)
이것이 가장 기본단위고.
여기에 다시 위-부-통의 체계가 있는데... 여긴 좀 복잡해서 그때그때 조금씩 규모가 다릅니다.
전 후 좌 우 중군의 FM대로 돌아가는 5위가 있고 (40인레이드용)
이를 간략화한 전 중 후군의 3읍분군(三邑分軍) 체계도 있습니다. (10인레이드용)
여진족 : 안돼! 난 여길 빠져나가야 겠어~ 으아아아~~~
5명 단위로 오, 대, 초, 려 등으로 올라가는거 아닌가요?
자세히는 잘 모르겠네요 -_-ㅋ;;; 대오를 갖춰라는 말도 저기서 나온걸로 아는데.. 킁.. 저도 궁금하네요
북괴 빨갱이 동지께서 조선 초중기의 편제에 대해서 설명하셨는데, 조선후기의 그것이 없어서요...ㅋ
조선후기의 군대편제는 <기효신서>의 편제를 따릅니다. 보통 10여명의 대(隊)가 있고, 3~5개의 대를 묶어서 기(旗)를 편성하고, 3~5기로 초(哨)를 편성하며, 3~5초로 1사(司)를, 3~5사로 영(營)을 편성합니다. 중앙군이든 지방 속오군이든 대체로 이 편제를 따르죠.
5영군문의 경우, 그 수장인 [대장]이나 [사(使, 예컨대 총융청의 총융사)]가 대개 비국당상을 겸직한 문관인 경우가 많았기에, 그 밑에 실무를 담당하는 무장으로 [중군(中軍)]을 둡니다.
그 아래에 [천총(千總)]이 있는데, 천총은 영을 통솔하는 무장입니다. 훈련도감 등 5영군문에서는 영을 따로 '부(部)'로 칭하기도 하고, 편성인원은 3000명 정도 됩니다. 천총 아래에는 [파총(把總)]이 있는데, 파총은 사를 지휘합니다. 파총 아래에 있는 것이 [초관(哨官)]인데, 1초를 지휘하며, 1초의 병력은 100~200명 정도 됩니다. 그 아래에는 [기총(旗總)]이 있고, 기총 밑에는 [대장(隊長)]이 있죠...^^;
따라서 위에 나오는 초관은 100~200명을 통솔하는 '중대장' 정도 되는 겁니다...ㅋ
최근 <제주도 속오군적>이 새로 발견되어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속오군 체제]의 말단인 '대(隊)'의 편성에서 제주의 경우는 타지와 차이가 있다는군요...^^; 기본에 연구되던 <충청도 속오군적>의 경우, 같은 대에 속해있는 군졸들은 같은 병종의 무기로 무장을 했습니다. 창이면 창, 조총이면 조총 이런 식으로... 근데 제주의 경우는 대장(隊長)은 창으로, 1-2번은 조총, 7~10번은 창, 화병(취사병)은 환도로 무장하는 '혼성편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 분대 구성 같네요 ㅋㅋㅋ
남아있는 <충청도 속오군적>에는 살수가 없습니다...-_-; 거진 80%가 포수(조총병)고, 나머지가 사수(궁병)에요...ㅎㅎ;;
아마도 고립된 제주도의 [지형적 요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뭐 <충청도 속오군적>의 경우도 완전한 형태는 아닌 것 같지만... 아마 살수 부분이 빠졌을 겁니다. 대신 충청도 같은 내륙의 군현에 편성한 속오군은 애시당초 '군액' 자체가 상당히 많지만, 제주의 경우는 제주목 휘하의 3읍, 즉 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이 따로 섬에 고립되어 있어서 군액 자체가 많지 않았고, 조세의 경우도 서울로 올려보내지 않고 '잉류'했던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제주도의 특수성이 반영된 편성같아요...^^;
오 오 역시 해동천자님이시군요 명쾌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흥. 나도 리플달아드렸는데. 무시당했어.
북괴 빨갱이에게 댓글은 없다?!...ㅋ
아이고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무장공비님께도 많은 도움 감사드립니다 ^^b
Z.W.P.A상 이제 강등임 ㄲㄲ
위에서 다른 분들이 잘 설명해 주셔서 곁가지로 다른 걸 말씀드리면...조선 사회의 특성상 문관이 전문적인 무관 보다 실질적인 병력을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상황에 따라 혹은 기계획된 방어사, 조방장 등이 임명되기도 합니다.
한 개의 도의 감사(관찰사)가 병마절도사를 겸하는 곳도 있고, 병마절도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감사 휘하의 지휘관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감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거나 통제사를 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ㅁ-; 나름 조선이 체계화된 편제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리적, 지역적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기도 합니다.
뭐 위에 말씀드린 건 임진왜란을 전후로한 설명이긴한데 -ㅁ-;; 차라리 넓은 의미에서 조선군의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조선시대 벼슬에 대해 아는게 빠를 수도 있습니다. 도원수, 감사, 병마(수군)절도사, 통제사, 대도호부사, 도호부사, 방어사, 현령, 현감, 조방장, 첨사, 만호 등등-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