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L7HbnDWmsvM?si=zsvQNiAiy6TTSu8z
(Mahler: Symphony No. 1 - Haitink)
이 교향곡은 1884년 그가 카셀에서 궁정 극장의 지휘자로 있을 무렵에 착수하여 1888년 라이프치히 시립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을 때 완성 되었습니다. 1889년 부다페스트 왕립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을 때 초연되었다. 이 교향곡은 '거인'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는 독일 낭만파의 작가 쟝 파울 리히터의 같은 이름의 '거인'이란 시에 의거해 제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 곡이 직접 그 줄거리를 묘사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초연할 때는 <2개의 부분으로 된 교향시>라고 했는데, 후에 이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재연할 때는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표제를 첨부하였다. 제1부 '젊은이. 아름다운 덕행 결실, 고뇌의 나날에서', 제2부에는 '인간적인 희극'이란 표제를 붙여 정서의 관념을 명확히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곡은 인생에 눈뜬 20대의 서정미가 넘치는 청녕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협소한 세상에서 싸우며 왕성한 혈기로 인생에 돌입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레이션의 편성은 대규모적이지만 그는 모든 악기를 가요풍의 선율로 교묘하게 노래한 점에서 성과를 올렸습니다. 여기서는 주도 동기적인 수법을 볼 수 있고 형식적인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보수적입니다. 대단히 아름답고 힘찬 곡입니다.
1악장 (봄은 끝나지 않고(Introduction and Allegro comodo))
(Langsam. Schleppend, Wie ein Naturlaut Im Anfang sehr gemachlich)
유연하고 장중하게 - 처음에는 아주 여유있게
2악장 (꽃의 章 Blumine (Andante))
(Kra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Trio. Recht gemachlich)
힘차게 움직이며,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3악장 (돛에 바람을 싣고 Full Sail (Scherzo))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완만하지 않고 장중한 위엄을 가지고
4악장 (좌초 (A funeral march in the style Callot))
(Sturmisch bewegt)
태풍 같은 움직임으로
Mahler, Gustav (1860-1911 Aust.)
근대 독일의 최대, 최후의 낭만파 교향곡의 작곡가이며 저명한 지휘자입니다. 6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15세 때 비인 음악 원에 입학하였으며 피아노 연주와 작곡상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 무렵, 비인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 음악사의 강의도 겸하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칸트, 쇼팬하우어, 헬름홀쯔, 니이체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에게서는 바그너의 영향도 볼 수 있으며 브루크너의 강의에 열중하여 사제 관계를 떠나 우정의 교우 관계를 맺었습니다. 1879년, 할레 가극장의 여름 시이즌의 지휘자를 계기로 1881년 라이바하 시립 가극장, 카셀 시립 가극장, 라이프찌히 시립 가극장, 프라하, 부다페스트, 함부르크 극장의 지휘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당시 저명한 지휘자 니키시 밑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중진 지휘자가 되었으며 1897년에는 비인 궁정 가극장의 정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1907년, 47세 때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초빈되어 다음 해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테>를 지휘하여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을 지휘하였습니다.
한편 창작면에서는 9개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오페라와 가곡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습니다. 그의 로맨티시즘은 신 독일 악파라고도 하는데, 그의 음악에는 브루크너의 신비적인 경향을 지닌 현세적인 것과 리스트에 의해 개척된 새로운 표제악의 세계가 합류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관현악법을 극도로 확대 시켰는데, 그것은 그의 교향곡을 대규모의 연주 형식을 요구하게 하였으며 거기에 부응하도록 구성을 거창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향곡 편성에 성악을 추가시켰습니다. 교향곡은 베토벤을 정점으로 하여 슈베릍트, 슈만에 의해 내림길을 걸었는데, 브루크너, 브라암스로 일단 종결을 본 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알러의 9개의 교향곡으로 인해 이 음악에 다시금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그는 교향곡이란 절대 음악을 수단으로 하면서도 그의 염세적인 인생관을 철저하게 표현한 것은 그의 독자적인 개성으로서 그런 경우 성악이 그것을 위해 보다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인간고의 심각한 번민과 인생에 대한 회의이며 염세관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점차 어려운 생활 환경에 부딪혀 심각한 절망감과 운명적인 슬픔에 현실성을 띤 표현을 하려 하였습니다.
그 표현은 최후의 제9교향곡에서 완전히 순화되어 모든 고뇌와 세속적인 환희를 초월하였습니다. 숭고하고도 초 자연적이며 종교적인 고독의 만족감에 대해 슬픔을 극복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세의 동경과 같은 그의 덧 없는 인생관은 만년에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아무튼 그는 인류를 위해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https://youtu.be/_blkIeJboWA?si=-RxuGOf48NMA4hrG
( Mahler: Symphony No. 1 "Titan" - Tennstedt 텐슈테트)
글출처: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