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오일장에서
―김지윤(1980∼ )
매일 비워졌다 또 밀물 차오르는 모래톱처럼
닷새마다 꼬박꼬박 열리는 오일장
가을감자 파는 좌판 할머니 앞에서
한 푼, 두 푼 버릇처럼 감자 값을 깎다
하영 주쿠다(많이 줄게요), 하며 감자 자루 내미는
부르튼 손 검은 흙 낀 손톱 보며
할머니 텃밭 감자 위로 하영 쏟아졌을
뙤약볕처럼 사뭇 낯 뜨거워져
바람이 차요, 남은 것 제가 다 사드리면 집에 가 쉬실래요?
응, 응, 경허믄 고맙수다게(그러면 고맙지요)
할머니 말씀에 그만 감자를 한 무더기나 사서
한 바퀴 돌다 집에 가는 길
아까 그 자리 그대로
한 무더기 감자를 또 그만큼 앞에 내놓고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할머니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감자를 정녕
내가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믿다니!
늘 그만큼의 부피와 무게가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게, 삶이라고
좌판에 앉은 할머니 나를 조용히 꾸짖는 듯하다
그날 저녁 소반 가득 찐 감자를 내놓고
자꾸 먹어도 허기지다
한 입씩 베어 문 듯 자꾸 비워지는 초승달처럼,
어둠이 살라먹은 자리 다시금 채워지는 만월(滿月)처럼.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423』(2015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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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 곳곳에는 전통시장을 되살려 펼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도 신제주를 비롯해서 곳곳에 오일장이 섭니다
얼마전 제주오일장에서 고향 친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십여년 전부터 제주에 가끔 들러서 쉬다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많이 부러웠지요
도시에서 값이 싼 곳은 대형마트입니다만...
그래도 전통시장 혹은 오일장 물건 값이 더 싸다는 믿음도 존재하는 게 사실입니다
한때 유전자변형 콩이 화두가 되었을 때, 오일장 초입에서 좌판을 펴고 앉은 시골 아낙이
하루종일 그 자리에서 몇 됫박만큼만 내어놓고 토종콩이라고 팔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서귀포 오일장에서 감자를 파신 할머니도 그랬는지는 모릅니다만
세상은 내가 바라는 만큼 절대 달라지지 않으며 믿고싶은 만큼 믿으며 살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