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을 헐랴면
조용헌 디를 찾아가야하고 모든 것을 다,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사를 다 멀리하고 오직 이것만을 위해서 해야겄다’ 그런 생각을 흔히 갖게 되는데
사실 이 최상승법 이 활구참선은 그런 시비를 다 떠나고 시끄러운 것을 버리고 복잡한 것을 여의고 그리고서 찾는 공부가 아니여.
물론 초학자는
그러헌 복잡한 것을 좀 멀리하고 선방에 들어가서 방부를 들이고, 그리고서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전적으로 해야 할 필요는 있어요. 있지마는
모든 사람이 그러헌 여건하에서만 헐랴고 헌다면 종내
참선은 못허고 할... 못허고 말 것이다 그 말이여.
진짜 이 활구참선은 시끄럽고 복잡한 일체시비를 떠나서 찾는 것이 아니여.
번뇌와 망상을 다 버리고서 깨달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시비에 즉해서
일체 시끄럽고 복잡한 디에 즉(即)해서,
번뇌망상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떠억 화두를 관조하는 것이여.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망상을 여의고 찾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깨달을 기약이 없어.
번뇌와 망상이 어디에서 나왔어
바로 우리에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파도인대
그 파도를 여의고 물을 찾는 거와 같애.
파도를 여의고 물에 습성을 찾는 거와 같다 그 말이여.
파도 여의고 물도 여의고 그리고 어떻게 습성을 찾을 것이냐 그 말이여.
습성을 찾을랴며는 물에서 찾어야 하고,
물을, 물에서는 항상 파도가 일기 마련이여.
근디 파도를 여의고 물을 어떻게 찾으며
물을 여의고 물속에 있는 그 습성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 그 말이여.
그래서 바로 일어나는 그 파도에서, 물 있는 곳에는 바로 파도가 있으니까 그 파도에 즉해서 그 물을 찾아야 하고 물에 즉해서 습성을 찾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이 번뇌망상 그놈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
자성으로부터 번뇌망상이 일어난 것이니까
그 번뇌망상에 즉해서 참나를 찾는데,
그 참나 찾는 법은 사량분별과 이론과 무슨 의리로
따져서 찾는 것이 아니여.
번뇌가 일어나면 바로 그 번뇌에 즉해서 ‘이 뭣고?
망상이 일어나면 그 망상을 버릴랴고 허지 말고
바로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 뭣고?
썽이 날 때도 썽나는 놈을 버리고서 찾지 말고
썽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뭣고?’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야 한다 그거거든.
우리는 무량겁
이 우주도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우리는 생겨난 때가 없어. 생겨난 때가 없이 우리는, 우리의 자성은 있어왔습니다.
그놈이 무명의 한 파도가 읾으로 해서 무량겁을 둘고..
두고서 육도를 윤회허면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온
것입니다.
그 무명으로부터 번뇌망상이 일어나서 생사윤회를
거듭해서 오늘에까지 왔지만, 번뇌망상 그놈을 여의고는 우리의 자성을 찾을 길이 없어.
번뇌망상 때문에 공부를 헐 수가 없다.
성질이 고약해서 헐 수가 없다.
나이가 먹어서 헐 수가 없다.
머리가 나뻐서 헐 수가 없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서 정말 이 일대사를 위해서
몸 바쳐서 목숨 바쳐서 헐랴고 허는 신심을 내지를 않고 자꾸 핑계를 대면서 자꾸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_佛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