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구
석봉(춘암) 채성소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온 사람을 친구라 부른다
한동네서 같이 자라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이 성장해왔다 그렇다면 친구라고 말할수 있을가
곰식이와는 같은초등학교 동창이고 우리동네로 이사오면서 오랜동안 이웃하고 살았다
어머니와는 같은 종씨이기도 하고 같은 항열이지만 촌수로는 계산할수 없는 그냥 같은 종씨일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친정 한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곧장 누님이라 부른다 맞는다
나로서는 왠지 그것이 은근히 기분이 좋지 않다 내앞에서도 어머니를 호칭할때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나여 곰식이여 나 서울에 가는데 만날수 있어? -
-그래 마중 나갈게-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나왔다
당시만 해도 나의 서울 생활은 궁핍이 극에 달해서 쪽방 사글세에 아내와 어린것들이 있었다
그래도 시골에서 친구가 낯선 서울에 온다니 마중나가기 위하여 아까운 반토막의 휴가를내었다
시간 맟추어 역전에 나가서 만났고 마침 때가 때인지라 저녁을 먹기위하여 음식점에 갔다
제육볶음과 소주 두병을 시키였다 녀석은 밖에나가는듯 하더니 공중전화부스로 들아간다
잠시후 동생과 같이 들어온다
집에서 아내는 모르고 있다
아마도 아내는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저녁을 위해서 콩나물 국을 끓이고 있을것이다
월급타면 네식구 살아 나가기도 부족한데 아내는 무조건 월급의 반을 잘라 은행에 적금을 든다
어린것들에게는 월급날 사다놓은 라면땅 몇개가 유일한 간식이다
매일같이 콩나물국만 얻어 먹다가 아따금 주는 라면땅을 먹으면서 방바닥에 부스러기 까지 핧는다
이것을 바라보느라면 은근히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마누라도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는 주제에 애들까지 고생시킨다는 죄책감이 양어깨를 누른다
때론 혼자서 남모르는 한숨도 쉬고 눈물도 흘리였다
저녁밥 맛이 소태씹는 느낌이고 술 몇잔이 뱃속에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도로 나올것 같다
집에서는 365일 콩나물 국으로 아이들을 먹이는데 나는 회사에서나 오늘 저녁같은날은 고깃국물이라도 먹는다
과연 제대로된 가장이냐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그래도 어차피 만난친구에게 태평한척 술잔을 주고 받는다
헤여지려니 동생은 먼저 어디론지 고개만 끼떡한채 사라지고 곰식이는 계속 우물쭈물 하고있다
동생은 어디로 간것인지 모르겠지만 갈곳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곰식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초라함을 보여주기도 싫었고 마음에도 내키지 않았는데 어쩌랴
아내는 아무런 표정없이 웃목에 이불을 펴고 있다 시집올때 가지고온 이불이 비로서 빛을 보는 순간이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곰식이는 떠나갔다 아내가 처음으로 곰식이를 알게된 날이기도 하다
-어쩜 어린것이 있는데 - 아내가 무슨말을 하려다 입을 닫는다
어찌 그의미를 모르랴
-사정이 꽤나 않좋은 모양이야 - 나는 억지로 아내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다른집에 손님으로 갈때 빈손으로 가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비록 없어도 인사를 차릴줄 알고 손님이 오면 있는것 없는것 빚을 내서라도 대접을 하는것을 예의로 알고 살아왔다
아내역시 시집오기 전에 친정에서 그리 살아왔다
시대가 거꾸로 간다해도 아내는 내노라 하는 왕실에서 행세를 부리던 권문세가의 뿌리다
아내보다도 새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어린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
곰식이는 나보다도 10년이나 먼저 장가를 들어 5남매를 거느린 가장이자 집안의 장남이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안양으로 이사를 왔다며 모친상을 당했다는 부고장이 날라왔다
당연히 문상을 갔다
어느날 출근길에 버스정거장에서 곰식이를 만났다
생각 같애서는 집으로 찾아 오고 싶었는데 미안했던 것일가 시간이 없어 헤어지려하자 한발짝 다가온다
내일 큰딸 결혼식인데 시골에서 식을 올린다며 무슨 말을 끄내려고 우물쭈물 하고있다
-어쩌지 지금 출근길이 바쁜데 너무 미안하다 - 호주머니에 축의금을 줄수있는 돈이 있을리가 없다
- 그냥 - 알고나 있어 - 이상한 누앙스를 남긴다
그후로 곰식이가 보낸 두아이들의 청첩장을 받았고 참석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들 결혼식 때에는 왔는데 딸 결혼식때는 때는 소식이 없다
우리 아이들 결혼식에는 초등학교 동창들은 거의 다 참석 하였는데 곰식이만 빠진것이다
누구에게나 변명이라도 좋으니 사정은 있을수 있다
나는 누구라도 어떤 연락이 오면 빠지는 예가 거의 없이 동참한다
특히나 수십년 동안 초등학교 동창회의 일을 하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모든것은 품앗이 이다
나의 신조도 그러하다
서로가 축복과 위로를 위해서 오고가는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예절이기도 하다
한참을 잊고 살았다 물론 곰식이는 동창모임에도 얼굴을 비치지 아니했다
어느날 또다시 전화를 받았다 막내놈의 결혼이라는 것이다
- 야 너 영구 전화번호 알아 - 그쪽도 연락하고 싶은것이다
- 너 깜깜이로구나 영구가 고인이 된지가 언젠데 -
- 야 그런일이 있으면 연락좀 해주지 너 참 무심하구나 -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야 네 얼굴을 잊어버리게 생겼다 -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내가 속이 좁은건지 아님 성의가 없는건지 막내놈의 결혼식에는 참석도 하지 않고 동창회도 알리지 않았다
친구란 어떤것이 친구인지 지금도 헷갈린다
오래동안 친하게 사귀어온 사람을 친구라 부른다고 한다 내 수첩에는 친구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있다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지워버릴 친구의 친소를 구분해본다
과연 몇이나 남을가 친한친구 두명만 있어도 삶이 성공했다고 한다
세상 참으로 헛살았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단 두사람속에 기억되고 있을가 자신이 없다
우선 탐욕을 빼고 고집도 빼고 허물도 빼고 자존심도 빼고 성냄도 빼고 이기적인 생각도 빼고 살려니 나는
허수아비로 살아야 될것같다 필요하다고 해서 욕심을 갖게되는 순간 인간은 속물이된다
밥 세끼 잠자리있으면 또 무엇을 바랄가
잘난놈도 똑똑한 놈도 욕심장이도 돈많은 놈도 돈에 노예가되여 쓸줄 모르는 놈도 가는길은 외길이 아닌가
어두운 밤이지나고 아침이슬은 해가뜨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그래서 인간은 초로草露라고 하지 않았나
첫댓글 곰식이 같은 동기가 제게도 있지요.
고등학교 졸업후 제법 사는 넘인데 고 늠 탁주 한잔 얻어 먹은 친구 하나 없고
지가 한 잔 하자 하여 초대하고는 먼저 취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도망가고
안 나오든 동기회도 제 집에 무슨 일이 있기전 한 두어 달전에 나와 고지서 내밀고...
우린 그 때마다 부조를 했지만 우리 일 땐 그 님은 우리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답하고
동기들 더러 일손이 부족타고 불러 일 도와 주었는데 입 싹 닦아 버리는 놈이 있지요.
나이든 지금은 그 놈을 동기회에 부르지도 않는답니다.
돈보다 자식보다 좋다는 보약같은 친구가 과연 있을까요 ?
읽어주심 감사합니다
제가쓴글은 단지 부분에 불과할뿐입니다
알면서 당하고 체면상 당하고 어쩌다 만나면 변명을 수없이 하고 남타령이나 하고
그래도 그 곰식이는 지금 잘살고 있으니 야므지다고 해야 할가요?
세상사는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고맙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