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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피지법(相避之法)
관직에서 가까운 친척은 서로 피하는 법이다.
相 : 서로 상(目/4)
避 : 피할 피(辶/13)
之 : 의조사 지(丿/3)
法 : 법 법(氵/5)
1548년 음력 1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충청도 단양군수(丹陽郡守)로 나갔다. 임기를 채우기도 전인 10월에 갑자기 경상도 풍기군수(豊基郡守)로 옮겼다. 왜? 자기 형님인 온계(溫溪)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형이 관찰사로 있는 도에 그 아우가 고을원으로 재직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관원들 사이에 서로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관계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제도가 있었다. 바로 '상피법(相避法)'이다. 형제뿐만 아니라 친족 4촌까지 외가, 처가까지도 다 고려해, 같은 부서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서에 같이 근무할 수 없게 했다.
관직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시험의 응시자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조카 등 가까운 친척이 응시하면 시험관이 될 수 없었다. 만약 사전에 신고해 피하지 않으면 나중에 처벌 받는다.
인재 추천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할 수 없게 돼 있다. 재판도 피고와 관계있는 사람은 담당할 수 없었다. 이 모두가 이해관계와 권력의 편중을 막으려는 것으로 정치를 공정하게 합리적으로 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상피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왕조에서는 더욱 강화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상세하게 그 규정을 명시했다. "조선 말기에 가면, 안동김씨(安東金氏) 등등의 집안에서는 형제가 동시대에 정승을 맡고 한 집안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는데, 상피제도가 정말 시행됐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상피제도가 너무 엄격하자 꼭 쓰일 만한 인재인데도 쓰이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조(正祖) 임금 때부터 상피제도를 상당히 완화시켰다. 순조(純祖) 임금 때부터는 이 제도가 점점 허물어져 세도정치(勢道政治)가 등장하게 됐고 나라를 망치게 됐다. 가까운 친척끼리 뭉치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게 되고 공정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역대 대통령들이 동향 사람, 측근, 친인척 등을 요직에 앉힌 경우가 많았다. 인재 선발에는 그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해 가장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하면 공정하게 인사가 될 수 없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0년 지기라는 사람이 집권당이 될 당의 원내대표에 출마했고, 그 당의 국회의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 당선시켰다. 과연 대통령 당선자에게 도움이 될까? 그 외에도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이 많이 발탁됐다. 정말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한 능력이나 특별한 재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거운동만 열심히 도와주고는 임기 끝날 때까지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대학교수 역할에만 충실한 당선인의 가까운 친구처럼 하는 사람이 많아야 당선인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중종 32년 정유(1537) 7월 5일(임오)
헌부가 임억령, 정응두에 대한 개정과 황승헌의 파직을 아뢰다
헌부가 아뢰기를, "상피(相避)하는 법은 '대전(大典)'에 실려 있어 조금도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만일 대간, 시종에 결원이 있는데 아직 충원하지 않았을 때라면, 혹 상대를 따지지 말고 주의(注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억령(林億齡), 정응두(丁應斗)는 모두 상피된 관원인데 육조의 낭관에 주의할 것을 명하였으니, 새로운 예(例)를 열어서는 안 됩니다. 주의하지 말게 하고, 이미 수점(受點)한 자는 개정하도록 하소서. 삼등 현령(三登縣令) 황승헌(黃承憲)은 이웃 고을의 관기(官妓)에 빠져 고을의 사무를 황폐시켰으니 하루도 직에 있게 할 수 없습니다. 파직하소서." 하니,
전교하였다. "임억령, 정응두 등은 내가 육조에 주의하라고 명한 것이 아니다. 이조가 시종(侍從)을 주의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다른 직은 괜찮으나 시종은 논박받고 새로 체직되었으므로 주의할 수 없다'고 답하였는데, 이조가 필시 내가 '다른 직은 괜찮다'고 한 말만 듣고 주의했을 것이다. 개정하는 것이 옳다. 황승헌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註)
○ 상피(相避) : 사정(私情)을 둘 만한 관계가 있어서 그런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서로 자리를 같이하여 일보지 않는 것. 밀접한 관계가 있는 관직이나 거자(擧子)와 시관(試官) 사이 등에 가까운 친족이나 혼인 관계 등이 있는 경우에는 한 편이 피한다. 피해야 할 친족이나 관직의 범위와 누가 피해야 하며 어떤 경우는 예외로 하는 등의 법규가 있다.
○ 수점(受點) : 관원을 임명할 때에 문관은 이조에서 무관은 병조에서 3인의 후보자를 추천하여 올리면 임금이 적임자로 인정하는 사람의 성명 위에 점을 찍어 결정하는데 이 점을 받는 것을 수점이라 한다.
■ 상피제(相避制)
정의
고려·조선시대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간에 동일관사(同一官司)나 또는 통속관계(統屬關係)에 있는 관사(官司)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혹은 청송관(聽訟官), 시관(試官) 등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이다.
내용
어떤 지방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관리는 그 지방에 파견되지 못하게 하는 것 등도 이에 포함된다.
이 제도는 인정(人情)에 따른 권력의 집중을 막아 관료 체계가 정당하고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해서 시행되었다. 따라서 각 시대마다 독특한 관료 체계의 조직, 운영, 특성 또는 친족 관계의 법제와 밀접한 관련 아래 구성 운영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씨족 의식 혹은 문중 의식이 강하여 문벌을 형성하고, 또 사돈의 8촌까지도 찾는 전통적인 관습, 그리고 권력과 부를 동시에 얻는 첩경(捷徑)인 관리 등용문이 매우 좁았다는 사정을 참작한다면, 관료 조직의 운영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에 틀림없다.
골품제(骨品制) 하의 신라에서 재상급에 속하는 최고위 관직에서만 부자간의 상피가 행해졌던 단편적인 사례가 발견된다. 그러나 상피제(相避制)는 관료제의 발전과 표리 관계를 이루고 발전되었기 때문에, 성문화된 것은 고려와 조선시대였다.
고려의 상피제는 1092년(선종 9)에 제정되어 오복친제(五服親制)에 바탕을 두고 실시되었다. 적용되는 친족 범위는 본족(本族)과 모족(母族), 처족의 4촌 이내와 그 배우자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성(臺省)의 경우 사돈 간에도 상피가 적용되었다.
고려의 상피제는 외족과 처족은 모제(母制)인 송나라 제도와 비슷했지만, 본족에 있어서는 그 적용 범위가 크게 축소되었던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적용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조선시대는 신라나 고려에 비해 상피제의 적용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 관료제를 지향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진골귀족의 신라나 이성귀족(異姓貴族)으로 구성된 고려의 귀족제 사회보다는 왕권의 집권화와 관료 체계의 질서확립 과정에서 권력 분산이 더욱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상피제 규정은 세종 때에 성립되었다. 적용 범위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친족·외족·처족 등의 4촌 이내로 한정했으나, 법외(法外)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의정부를 비롯, 병권을 전장(專掌)하는 군사기관과 법을 다스리는 청송관(聽訟官)과 고시관(考試官) 등 거의 모든 관직에 적용되었고 고려시대에 비해 엄격히 적용되었던 점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상피제(相避制)
요약
관료체계의 원활한 운영과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기 위하여 일정범위 내의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거나, 연고가 있는 관직에 제수할 수 없게 한 제도이다.
본문
관료체계의 조직운영, 친족제도의 성격에 따라 각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며, 고려시대에 성문화되었다. 1092년(선종 9) 오복친제에 바탕을 두고, 송나라의 제도를 참작하여 실시하였다.
일반적으로 본족(本族), 처족(妻族), 모족(母族)의 4촌 이내와 그 배우자는 같은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고, 특별히 권력의 핵심인 정조(政曹)와 대성(臺省)에는 사돈간에도 적용되었다. 부계와 모계가 똑같이 중시된 고려의 양측적 친족제도를 반영하여 모족과 처족이 본족과 같이 취급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관료제의 미비와 문벌귀족의 존재로 말미암아 철저히 실시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관료제도 발달과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으려는 정치 운영의 성격이 반영되어 보다 정제되고, 아울러 유교사상에 토대를 둔 부계 친족사회의 성격상 그 적용범위가 4촌까지로 규정되지만, 고려시대와는 달리 모족과 처족에의 제한이 완화되었다.
적용 관청도 학관(學官) 및 군관(軍官)은 제외되고, 의정부, 의금부, 이조, 병조, 형조, 도총부, 한성부, 사헌부, 오위장, 겸사복장, 내금위장, 승정원, 장예원, 사간원, 종부시, 사관으로 구체화하였다. 특히, 인사권과 병권의 집중을 막기 위해서 이방승지와 이조관원, 병방승지와 병조관원의 상피를 규정하였고, 병조, 도총부당상관, 겸사복장, 내금위장, 오위장에는 같은 관청이 아니라도 적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규정이 더욱 강화되어 출계자(出系者)의 경우 본가와 생가에 똑같이 적용되고, 인척간에도 적용되었다. 적용 관청도 확대되어 선혜청제조와 낭청 사이, 옥당, 춘방, 강서원과 이조당상, 낭청 사이, 한림과 춘추관 사이, 한림과 승정원주서 사이에 상피가 적용되고, 그 밖에도 과거 응시자와 시관, 사신과 서장관 사이에도 적용되었다.
지방관의 경우에도 상하의 통속관계에 따라 구체적으로 상피관계가 규정되고,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에의 지방관 제수도 금지되었다. 규정 외에도 업무의 연관성이 있거나 권력의 집중이 우려되는 관청의 경우에도 상피가 적용되었다.
■ 상피제도와 청렴
상피(相避)라는 말은 서로 피한다는 의미이다. 사람 사이에 서로 피한다는 것은 여러 경우가 있을 것이다. 둘 사이의 관계가 나빠서, 아니면 둘 사이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피할 수도 있다. 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일을 직접 부딫히는 것 보다 일단 피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 사용하는 문구이다.
상피제도는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국사시간에 들어보고 요즘 오래간만에 다시 들어보게 된다. 국사시간에 배운 상피제도는 대강 이런 제도로 기억한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그의 고향에는 발령을 못 받는다. 아무래도 고향에는 친인척이 즐비하므로 소신껏 업무 수행이 힘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춘향전의 이몽룡은 장원급제해서 다시 남원땅으로 발령을 받으니까 이 제도에 반하는 이야기 구성이다.
중국 한나라 선제 때 유명한 학자인 소광과 소수가 태자의 교육을 맡아 가르쳤다. 태자의 스승들이니 때만 되면 승승장구할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그 즉시 직위를 내놓고 낙향하여 후대에 큰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천자문(千字文)'에도 등장하겠는가?
양소견기(兩疎見機)
해조수핍(解組誰逼)
즉, 소광(疏廣)과 소수(疏受)가 때에 맞추어 도장 끈을 풀었으니 누가 그들을 핍박하겠는가? 하는 의미다. 동양사회에서는 중국이나 한국이나 벼슬자리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슴없이 그 자리를 물러나는 모양새도 크게 칭찬하는 것을 보면 모양 사나운 일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법전(法典)인 대전회통에는 관리들이 벼슬에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기록한 내용이 나온다. 소광이나 소수처럼 세자를 가르치던 자들이 세자가 임금이 된 후에는 벼슬길에서 물러나도록 한 대목도 나온다. 이것이 상피(相避)이다.
원래는 임금의 친계, 모계, 처계와 아들, 사위 등 지친 , 외척들에게 권한있는 벼슬을 주는 것을 방지하여 권력의 오염을 막고자 한 제도였다. 법적으로는 모든 상하관원들은 사촌이내의 친인척이 벼슬하게 되면 어느 한 쪽이 벼슬을 하지 못하도록 이를 제도화했다.
이 상피제도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 조선말 외척인 안동 김씨들에 의해 유린되면서 였다. 친인척의 득세나 부패는 나라가 쇠망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한 징표 같은 것이다.
1314년 구두 수선공 출신으로서 72세의 나이에 로마교황에 오른 요한 22세, 정말 탁월한 비지니스 맨이었다. 비록 친인척을 성직에 앉히지는 않았지만 매관매직에서는 기존의 교황들을 월등하게 추월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취임할 당시 교황청은 빈털털이였는데 그가 사망할 때에는 당시 돈으로 1,800만 플로린(4억 5,000만달러 규모)의 현금과 별도로 약 700만점의 보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거의 전액이 성직록을 팔아치워 거둔 돈들이었다. 본인 자신은 평생 검소하게 지냈다고는 하나 아마도 그는 이러한 성직에 대한 매관매직이 관행이라 전혀 죄가 안된다고 생각했거나 아님 스스로 면죄부를 발부했던가 둘 중 하나일 듯하다. 분명한 것은 경영자로서는 정말 탁월하다.
당시 스페인의 고위 성직자였던 알바로 펠라요는 교황청에 충성된 사람이었지만 그런 그 조차도 다음과 같이 통탄하는 기록을 남겼다. "내가 교황청의 교회 기구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중개자와 서기들이 자기들 앞에 쌓아 놓은 돈의 무게를 달고 그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늑대들이 교회의 통제 아래서 그리스도 양떼들의 피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클레멘스 6세는 대략 400여명의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지냈는데 기사들, 종자들, 무장한 종자들, 신부들, 의전관, 시종, 악사, 시인, 학자, 화가, 의사, 양복쟁이, 요리사등 이었는데 모두가 깜짝 놀랠 정도의 보수를 받았다. 매관매직이 얼마나 성행을 했던지 교황청 봉납서기가 무려 52명이나 됐다.
이들이 하는 가장 힘든 일이란 교황이 내리는 교령에 납땜을 붙이는 일이었다. 서기 한 명당 2,500두카트씩 챙기고 채용한 결과다. 이들이 가능한 한 자신들의 직분을 이용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당시 서기 두 명이 교황의 특별사면 교서 50장을 위조하여 몰래 팔아먹다가 운이 없게도 걸렸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교황이 두 사람의 목을 매고 그래도 화가 안 풀렸는지 목을 맨 상태에서 화형에 처했다. 하긴 교황직도 돈으로 오갔는데, 서기들이 넋이 나가서 아마도 교황에게 뇌물주는 것을 잊은 모양이다.
심지어 당시 두 딸과 몹쓸 짓을 하다가 둘을 모두 살해한 한 미친 파렴치한 조차 800두카트를 내고 풀려났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교황이 보르지오 추기경에게 그 사면의 사유를 물었다가 이런 답변을 들었다. "하느님께서 죄인이 죽지 않고 돈으로 풀려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자 교황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러한 교황청에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준 사람이 77세에 교황에 오른 칼릭스투스 3세였다. 그는 그 이전에 다른 교황들이 하고 싶어도 감히 실천하지 못했던 쪽에서 큰 용기를 냈다. 친인척 챙기기다. 나이 많아 곧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며 그는 친인척 등용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역만리 타국 사람들 속에 섞여 사는 것이 재미없기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는 취임 두 달만에 자신의 조카 3명을 추기경으로 발령냈다. 25살의 루이스 후앙 데 밀라와 24세의 로도리고 보로지아와 23살의 동 하이메였다. 이들 중 로도리고 보로지아는 알렉산더 6세 교황이 되었다. 그의 아들이 그 유명한 체자르 보로지아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하여간 칼릭스투스 3세는 로도리고 보로지아에게 교황청의 2인자 격인 부총리를 맡겨 교황청 금고 관리를 맡긴데 이어 다시 교황청 군대의 지휘권까지 맡겼다. 젊고 금고도 쥐고 있고 거기다 군대까지 가지고 있던 로도리고 보르지아는 결국 교황까지 됐다. 이후 이러한 친인척들에 대한 무차별적 자리물림은 아예 관행이 되어버렸다. 갈 때까지 다 간 것이다.
옛날에는 선비가 벼슬을 제수받으면 양이나 기러기로 폐백을 드렸으며 더 오래 전, 고대 중국에서는 모든 공무원들의 관복은 새끼 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었다. 쉬운 말로 토스카나다.
왜 그렇게 비싼 양가죽 옷을 입혔을까?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그것은 양의 상징성 때문이다. 양들은 순백하다. 오염들지 말고 결백하고 공평무사하게 왕을 받들고 백성을 다스리라는 의미다. 또 양들은 기러기처럼 무리지어 산다. 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튀지 말라는 의미도 들어있을 것이다. 죽어도 살아도 같이 간다.
이런 것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공무원 조직이 과거에 비해 갈 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공무원 월급을 대기업 수준으로 줄 수있는 나라 살림도 안되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에 허덕이는게 사실이다. 실제 부정에 휩쓸리는 공무원의 수는 전체의 소수에 지나지 않다.
유독 공무원 사회가 부정직하게 보이는 것은 과거에는 묵인되어 언론에는 실리지도 않던 사실들이 민주화와 더불어 폭발적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이 남김없이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옳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나는 본다.
배고픈 나라에 기업들을 독려해 가며 나라의 경제를 키운 것도 그들이었고 군부 독재하에서도 독재권력 밑에서 때를 기다리며 민주화의 기틀을 유지했던 것도 그들이다. 항상 권력의 편에 있었던 것은 힘있는 소수였다. 다수의 공무원들은 묵묵히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요즘 다시 상피제도 애기가 나오고 있다. 교육,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서로 피하자고 난리다. 먼저 교육쪽 상피제도를 살펴보자.
얼마전에 ◯◯고등학교에서 시험지를 유출한 사건이 발생한다. 신문이나 언론에 나온 내용을 대강 옮겨 본다. 고등학교 교무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는 쌍둥이 두 딸을 두고 있다. 평소 쌍둥이의 성적은 중위권 정도이다. 자녀들의 입시 문제로 고민을 하던 교무부장은 중간 기말고사 시험지를 유출한다.
쌍둥이의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급 상승한다. 그 정도 성적이면 최고 명문대학에 수시로 합격할 수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쌍둥이의 성적 급상승과 교무부장 아버지 사이의 관계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이다. 언론과 방송에서 이슈화를 시키고 급기야 교육청 감사반에서 조사가 이루어진다. 뒤이어 교무부장과 두 딸은 경찰에 고소를 당한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로 교육계에도 상피제도가 도입된다. 직계존속끼리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재학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공정성이 가장 중요한 입시의 투명성을 위해서 도입이 된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근무할 당시 우리 아이를 같은 학교에 데리고 다닌 적이 있다. 초등 입학하고 4학년까지 함께 다녔다. 출퇴근을 함께 하니까 아이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나도 아이가 가까이에서 생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다행히 상피제도는 초등학교에는 도입이 되지 않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만 도입이 된다. 그것도 공립학교에만 적용이 되므로 사실 사립 중.고등학교는 이 제도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을 유발시킨 학교가 사립고란 점을 생각하면 공립학교에만 적용한다는 것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다. 무언가 보완책이 필요한 제도인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굳이 시험지를 직계존속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유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또 다른 시험지 유출사건을 애기해 보고자 한다.
K 지역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그 지역 모 고교 중간고사 문제가 유출되어 일부 학생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청 감사 결과 행정실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이 장본인으로 밝혀진다. 학교운영위원장은 의사이자 그 학교 학부모이다. 자녀는 현재 고3에 재학중이다.
자녀도 자신과 같은 의사로 만들고 싶지만 현재 자녀의 성적이 아슬아슬하다. 시험지 유출의 정확한 경위는 아직 오리무중이므로 중간 내용은 생략한다. 행정실장은 시험 며칠전 시험지를 복사하는 인쇄실에 밤 늦게 몰래 들어간다. 각 과목별로 1장씩 시험지를 빼돌린다. 두 사람의 정확한 범행 동기, 과정이 아직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어 언론에서도 반쪽짜리 수사라고 비판을 가한다.
이 사례는 상피제가 아니더라도 시험지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빼돌릴 수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교육청과 관계기관에서 후속 대책을 쏟아내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짓는 격이다. 그래도 외양간이라도 지어서 다행이다.
부동산 정책에도 상피제를 도입한다.
최근 주택 관련 입법을 보다 공정하게 추진하기 위해 부동산 정책 상피법이 국회에 개정안이 발의된다. 부동산 이해관계에 놓인 국회의원이 관련 입법을 다룰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업무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2014년 집값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부동산 3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보면, 부동산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가진 의원들, 즉 강남 3구 아파트 소유 의원, 재건축대상 30년이상 아파트 보유 의원들이 다수 찬성표를 던졌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동산 관련 입법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관련 의원들의 관련 상임위를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부동산 이슈에 민감한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늦은감은 있지만 그래도 시의적절한 입법 조치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최근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에 8명 정도가 다주택 의원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배제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소득세법 및 주택법상 지정된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였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곳에 2주택을 소유했거나,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는 의원의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원회 및 관련된 특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관련 상임위원회는 주택임대차, 주택 건설 및 공급, 주택 관련 세제 등에 관한 사항을 소관하는 법제사법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및 국토교통위원회 등이다.
이 법을 발의한 의원은 "국회의원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상임위에 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여야를 떠나 국회가 중소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과 입법에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부동산 이해관계에서 투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❶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相자는 '서로'나 '모양',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相자는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相자는 마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相자의 본래 의미도 '자세히 보다'나 '관찰하다'였다. 相자는 나에게 필요한 목재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자세히 보다'를 뜻했었지만, 후에 나무와 눈의 대치 관계에서 착안해 '서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相(상, 양)은 (1)얼굴의 생김새 (2)각 종류(種類)의 모양과 태도(態度) (3)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4)옛적 중국(中國)의 악기(樂器)의 한 가지. 흙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은 작은 북과 같음. 손에 들고 장단(長短)을 맞추어 두드림 (5)물리적(物理的), 화학적(化學的)으로 균질(均質)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6)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그 직위(職位)가 각료(閣僚)임을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서로 ②바탕 ③도움, 보조자(補助者) ④시중드는 사람, 접대원(接待員) ⑤담당자(擔當者) ⑥정승(政丞) ⑦모양, 형상 ⑧방아타령 ⑨악기(樂器)의 이름 ⑩자세히 보다 ⑪돕다 ⑫다스리다 ⑬가리다, 고르다 ⑭따르다 ⑮이끌다 ⑯점치다 ⑰생각하다 그리고 ⓐ빌다,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생김새나 모습을 양상(樣相),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양상을 위상(位相),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겉에 드러나는 추한 몰골을 흉상(凶相), 서로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부상조(相扶相助), 서로 돕는 일을 일컫는 말을 상호부조(相互扶助),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망(相思不忘), 뛰어난 선비도 지나치게 가난하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활동할 길이 열리기 어렵다는 말을 상사실지빈(相事失之貧),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오직 생각하고 그리워함을 일컫는 말을 상사일념(相思一念),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일컫는 말을 상애지도(相愛之道),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오행이 상생하는 이치를 일컫는 말을 상생지리(相生之理),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서 행실이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즉불리(相卽不離), 서로 욕하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상욕상투(相辱相鬪),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상호존중(相互尊重),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을 괄목상대(刮目相對),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일컫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동병상련(同病相憐),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유유상종(類類相從), 수레 덮개를 서로 바라본다는 뜻으로 앞뒤의 차가 서로 잇달아 왕래가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관개상망(冠蓋相望), 생각이나 성질이나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등에 쓰인다.
▶️ 避(피할 피)는 ❶형성문자로 辟(피)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辟(벽; 한쪽으로 기울다, 피)으로 이루어졌다. 부딪치지 않게 피하여 지나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避자는 '피하다'나 '벗어나다', '회피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避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辟(피할 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辟자는 사람과 辛(매울 신)자를 함께 그린 것으로 '피하다'라는 뜻이 있다. 한자에서 辛자는 주로 노예와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避자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죄수가 잡힐까 두려워 길을 피해 다닌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천민들이 상전들을 피해 골목으로 다닌다는 해석이다. 조선 시대 때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던 양반들을 피하고자 서민들이 다니던 길을 '피마골(避馬골)'이라 했으니 避자의 대략적인 의미가 이해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避(피)는 ①피(避)하다 ②벗어나다, 면(免)하다 ③회피(回避)하다 ④떠나다, 가다 ⑤물러나다 ⑥숨다, 감추다 ⑦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망할 도(逃), 숨을 둔(遁)이다. 용례로는 선선한 곳으로 옮기어 더위를 피하는 일을 피서(避暑), 재난을 피해 멀리 옮아감을 피난(避難),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곳으로 옮김을 피한(避寒), 몸을 숨기어 피함을 피신(避身), 난리를 피하여 있는 곳을 옮김을 피란(避亂), 더위를 피함을 피서(避署), 세상을 피해 숨음을 피세(避世),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는 말을 피사(避辭), 병을 앓는 사람이 있던 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요양함을 피접(避接), 병을 피하여 거처를 옮기는 일을 피병(避病), 꺼리어 피함을 기피(忌避), 몸을 피하여 만나지 아니함을 회피(回避), 도망하여 몸을 피함을 도피(逃避),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면하여 피함을 면피(免避), 어떤 일 따위로부터 꾀를 써서 벗어남을 모피(謀避), 세상에 나가 활동하기 싫어 숨어서 피함을 둔피(遁避), 사양하고 거절하여 피함을 사피(辭避), 등지거나 피함을 배피(偝避), 당연히 피하여야 함을 응피(應避), 책임이나 맡은 일을 약삭빠르게 꾀를 써서 피함을 규피(窺避), 혐의를 논변하여 피함을 논피(論避), 서로 함께 같이 피함을 통피(通避), 노루를 피하려다가 범을 만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작은 해를 피하려다가 도리어 큰 화를 당함을 이르는 말을 피장봉호(避獐逢虎), 흉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에 나아감을 이르는 말을 피흉취길(避凶就吉),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를 이르는 말을 사차불피(死且不避), 귀신도 피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단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여 해롭게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귀신피지(鬼神避之), 피하고자 하여도 피할 수 없다를 이르는 말을 회피부득(回避不得),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한다를 이르는 말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法(법 법)은 ❶회의문자로 佱(법), 灋(법)은 (고자)이다. 물(水)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규칙이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법(法), 규정(規定)을 뜻한다. 水(수; 공평한 수준)와 사람의 정사(正邪)를 분간한다는 신수와 去(거; 악을 제거함)의 합자(合字)이다. 즉 공평하고 바르게 죄를 조사해 옳지 못한 자를 제거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法자는 '법'이나 '도리'를 뜻하는 글자이다. 法자는 水(물 수)와 去(갈 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법이란 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이자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이치이다. 물(水)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는 (去)것이 당연한 이치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法자는 바로 그러한 의미를 잘 표현한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치(廌)자가 들어간 灋(법 법)자가 '법'을 뜻했었다. 치(廌)자는 해치수(解廌獸)라고 하는 짐승을 그린 것이다.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으로 그려진 해치수는 죄인을 물에 빠트려 죄를 심판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水자가 더해진 灋자가 '법'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글자의 구성을 간략히 하기 위해 지금의 法자가 '법'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法(법)은 (1)사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 기관에서 제정 채택된 지배적, 특히 국가적인 규범(規範). 국민의 의무적 행동 준칙의 총체임. 체계적이며 물리적인 강제가 가능함 (2)도리(道理)와 이치(理致) (3)방법(方法) (4)~는 형으로 된 동사(動詞) 다음에 쓰여 그 동사가 뜻하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됨을 나타냄 (5)~으라는 형으로 된 동사 다음에 있다 없다와 함께 쓰여 당연하다 함을 뜻하는 말, ~는 형으로 된 동사 다음에 있다 없다와 함께 쓰여 아주 버릇처럼 된 사실임을 뜻하는 말 (6)인도(印度) 유럽계 언어에서, 문장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하는 사람의 심적 태도를 나타내는 동사의 어형(語形) 변화를 말함. 대체로 직설법, 가정법, 원망법, 명령법 등 네 가지 법이 있음. 그러나 원망법은 형태 상으로는 인도, 이란 말, 토카리 말, 그리스 말에만 남아 있고, 라틴 말에서는 가정법(假定法)과 합체되어 있으며 게르만 말에서는 가정법의 구실을 빼앗아 그 뜻도 겸하여 나타내게 되었으나 명칭만은 가정법이라고 불리게 되었음 (7)나눗수 (8)성질(性質). 속성(續成). 속성이 있는 것, 상태. 특징. 존재하는 것 (9)프랑 등의 뜻으로 ①법(法) ②방법(方法) ③불교(佛敎)의 진리(眞理) ④모형(模型) ⑤꼴(사물의 모양새나 됨됨이) ⑥본받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법식 례(例), 법 전(典), 법칙 칙(則), 법 식(式), 법칙 률(律), 법 헌(憲), 격식 격(格), 법 규(規)이다. 용례로는 국민이 지켜야 할 나라의 규율로 나라에서 정한 법인 헌법과 법률과 명령과 규정 따위의 모든 법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법률(法律), 소송 사건을 심판하는 국가 기관을 법원(法院), 법률의 안건이나 초안을 법안(法案), 법에 따른 것을 법적(法的), 법식과 규칙으로 모든 현상들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를 법칙(法則), 법원에 소속되어 소송 사건을 심리하여 법률 상의 해석을 내릴 권한을 가진 사람을 법관(法官), 일반적으로 법률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법조(法曹), 재판하는 곳을 법정(法廷), 법률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법치(法治), 법령을 좇음 또는 지킴을 준법(遵法), 기교와 방법을 기법(技法), 법령 또는 법식에 맞음을 합법(合法), 한 나라의 통치 체제의 기본 원칙을 정하는 법을 헌법(憲法), 일이나 연구 등을 해나가는 길이나 수단을 방법(方法),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수학에서 문제를 푸는 방법을 해법(解法), 원칙이나 정도를 벗어나서 쉽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나 수단을 편법(便法), 법률 또는 명령을 어김을 위법(違法), 법률 또는 법규를 제정함을 입법(立法), 범죄와 형벌에 괸한 내용을 규정한 법률을 형법(刑法), 법규나 법률에 맞음 또는 알맞은 법을 적법(適法),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함을 범법(犯法),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말을 법고창신(法古創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법원권근(法遠拳近), 자기에게 직접 관계없는 일로 남을 질투하는 일 특히 남의 사랑을 시샘하여 질투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을 법계인기(法界悋氣), 올바른 말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법어지언(法語之言), 좋은 법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폐단이 생김을 일컫는 말을 법구폐생(法久弊生), 모든 현상이나 사물은 결국 하나로 된다는 말을 만법일여(萬法一如), 모든 것이 필경에는 한군데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만법귀일(萬法歸一), 법이 없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질서가 무시되는 판국을 이르는 말을 무법천지(無法天地), 자기가 정한 법을 자기가 범하여 벌을 당함을 일컫는 말을 위법자폐(爲法自弊),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연으로 생겼으며 변하지 않는 참다운 자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제법무아(諸法無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