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산리 들녘에서
지난주 입동이 지나간 십일월 셋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우리 지역은 대개 입동 무렵에 단풍이 절정인데 열흘 정도 뒤진 이번 주말이 그에 해당할 듯하다. 올해는 지난여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폭염이 지속되어 절기가 늦게 드는 편이다. 단풍도 늦게 물들지만 들녘의 가을걷이도 늦은 편이다. 북면과 동읍 일대 산자락과 농지를 넓게 차지한 단감 수확도 늦은 편이다.
새벽에 이슬과 같은 가랑비가 살짝 내리다가 그친 금요일 아침이다. 이번 주말까지 가을다운 기온이고 다음 주는 초반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 같은 날씨를 보여준다는 예보를 접했다. 시베리아에서 팽창하는 차가운 기단이 가을 이후 처음 한반도로 뻗쳐올 모양이다. 지난여름은 무던히도 더워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설 때 얼음 생수와 죽염은 반드시 챙겼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느긋하게 자연 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불모산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소답동에서 내렸다. 창원역을 출발해 대산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용강고개를 넘었다. 며칠 전까지 연일 짙게 끼던 아침 안개는 이제 시들해져 시야를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 주남저수지를 비켜 갔다.
주남 들녘은 일모작 지대라 벼를 거둔 논은 비워둔 채 축산 사료로 쓰일 볏짚 뭉치만 간간이 보였다.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나면서 승객은 모두 내렸고 나는 제1 수산교를 앞둔 요양원에서 내렸다. 강둑 너머 수산 일대와 덕대산으로 옅은 안개가 끼었다 걷히는 즈음이었다.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정원수로 자라는 노인요양원 근처에서 들녘 농로를 따라 걸었다.
수성마을에서 가까운 곳은 사계절 특용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단지였다. 한 농막에는 농부가 수확한 가지를 상자에 채워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을 했다. 노지에 가꾼 가지가 끝물을 보이자 철을 늦추어 가을부터 한겨울에 생산되도록 출하 시기를 조절한 농장이었다. 가지뿐만 아니라 청양고추는 연중 생산되고 토마토 농장도 있었는데 보온을 위해 비닐하우스는 문을 닫아두었다.
사계절 비닐하우스단지를 지나자 벼를 거둔 모산리는 일 년 중 농부들에게는 가장 바쁜 철이 다가왔다. 예전에는 벼농사 이후 겨울에서 봄은 비닐하우스에 수박을 가꾸었는데 이듬해 늦은 봄 홍수 출하로 가격이 출렁거려 작목이 바뀌었다. 수박보다는 손길이 덜 가는 당근을 키우는데 경작 면적이 아주 넓었다. 외부에서 영농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아 계약으로 재배하는 당근 농사였다.
논은 트랙터로 깊이갈이를 하고 흙을 잘게 부순 상태에서 철골을 세워 비닐을 덮는 작업이 힘든 과정이었다. 요즘 농사는 기계화되어 땅을 갈고 벼를 심거나 거두는 일은 트랙터와 콤바인이 해결했다. 그러나 논바닥에 철골을 세우고 비닐을 덮어씌우는 과정은 사람 손으로 해야 해 부족한 일손은 베트남 청년들이 거들었다. 그들이 쉬면서 새참으로 깎은 단감을 먹음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시월 어느 날 우리 지역은 가을비치고는 엄청 많은 강수량을 기록한 비가 내렸다. 그 여파로 물 빠짐이 더딘 벼 논은 추수가 더뎠고 논갈이도 미루어져 농부들을 애태웠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비닐하우스를 세워 당근 씨앗을 파종해야 하는데 트랙터가 진입 못해 논바닥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구역도 보였다. 저만치 가술 아파트가 보이는 죽동천 천변에 이르러 국도를 건넜다.
공유수면 제방은 부지런한 인근 주민들이 콩이나 팥을 심기도 하는 곳이기도 했다. 낚시꾼이 앉았다가 떠난 자리 주변은 가을에 새롭게 움이 터 자란 머위가 싱그러웠다. 며칠 전 머위 잎을 채집하고 남겨둔 순을 마저 잘라 모았다. 잎줄기를 따 모은 머위는 양이 제법 되었는데 우리 집에는 더 필요하지 않아 귀로에 이웃으로 보낼 참이다. 점심 이후 오후는 부여된 과제를 수행했다. 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