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에서 파주출판도시로 빠져나갈 때
우리가 벌써 삼십 대가 되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과거뿐이라는 걸 알았다
친구를 태우고
식당에서 만둣국을 먹는 동안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필로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그게 무엇이었든
영원하길 바라던 때는
지났다
대기 발령 중인 친구는
잠이 오지 않는다며 물류센터에 나가 일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서
물건들을 분류했다
나는 곧 잘릴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더 이상 슬픔은 없다
그동안 무얼 했는데?
사실 저는 일 말고 다른 것을 좋아했습니다.
무대에 선 친구가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유명해지거나
가난해지거나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네
너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겠지
하루 열여섯 시간
여섯 명의 몫을 하기에 우리는
벌써 늙어버렸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을
들것에 실려 나가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건 정규직이라는 사실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보상이 적다는 사실 한 번 일자리를 잃은 이는 계속해서 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사실
아스팔트에 쓰러진 운전자와 찌그러진 범퍼 앞에서 전화하는 운전자와 옆으로 누운 오토바이를 피해 서행하는 운전자
혼자 남은 나에게
혼자 남은 너에게
산 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나는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5.02.14. -
한때 노동문학은 우리 문학을 가로지르는 큰 흐름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문학의 주류가 바뀌고 혁명이나 개혁이라는 단어가 빛을 잃었지만, 노동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가지지 못한 자에게 노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 말고 다른 것”을 좋아한다고 한들 말입니다.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찰리 채플린처럼 “일하고/ 일하고” “끝끝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노동하는 자의 운명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