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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할 - 태극기의
탄생
[유래(由來)에서 알아보는 최초로 태극기(太極旗)를 만든 사람] 근대 민족국가가 발달하면서부터 였다. 우리 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언제 처음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고종 1년(1882년)에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건너 갈 때 처음으로사용한 것만은 확실하다. 따라서 우리 국기로서 태극 도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그이전에 이미 정해졌을 것이다. 조미수호통상 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淸)이 자기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 오던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하였다.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1882년 9월 박영효(朴泳孝)는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중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바로 그 달 25일부터 사용하였다.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고종은 다음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 (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 이 때는 오늘날과 같이 그 규격과 도식이 분명하지 않았고, 다만 태극을 가운데 두고 네 귀에 건(乾),곤(坤), 감(坎), 이(離)
의 4괘를 배치했을 것으로짐작된다.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42년 6월 29일 국기제작법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국기통일양식」(國旗統一樣式)을 제정·공포하였으나 일반 국민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1949년에 국기 제정 위원회가 구성되어, 여러번의 회의 끝에 그 해 3월 25일에 음양과 4괘의 배치안을 확정했다. 이어 국기봉도 우리 나라의 꽃인 무궁화 봉오리를 상징 한 것으로 하고, 색깔은 국기 깃면의 색깔과 조화를 이루도록 금색으로 하였 다. 문교부(현 교육부)는 국기 시정에 관한 고시안을 작성하여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告示) 제2호로 공포함으로써 우리
태극기는 완전한 통일 규격으로 국내외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첫째는 1882년 9월 박영효(朴泳孝) 수신사가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 중 선상에서 그렸으며, 둘째는 박영효(朴泳孝) 수신사에 의해 그려진 최초의 태극기와 현재의 태극기 모양이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유래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최초로 만들었다는 태극기의 실물이나 그림이 보존 않은 채 115년이 흘러왔다. 애써 이유를 변명하자면 조선 왕조 몰락, 일본 36년의 침략과 탄압 등이 태극기의
유래를그토록 어지럽게 했을 것이다.
1882년이었으며, 당시 수신사 박영효(1861~1939)가 국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고종황제로부터 허락을 받아 일본을 방문하러 가던 중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그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치다가 1949년 10월 정부에서 현재 모습의 태극기를 제정하였다. 이러한 유래에도 불구하고 무슨 영문인지 1882년에 그렸다는 최초의 태극기 실물이나 그림이 보존되지 않아 태극기의 역사가 단절되어 왔었다. 그 동안 역사학계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태극기를 찾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 소망은 성취되지 못했다. 마침내 1997년 8월 8일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최초의 태극기 그림과 관련 기사가 게재된 1882년 10월 2일자 시사신보를 발견하여 52주년 광복절날공개하므로써 115년만에 그 실체를 역사의 사실로 확인하게 되었다. 지난번에 탁지부를방문한 중국의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는 중국의 국기를 본받아 삼각형의 청색바탕에 용을 그려야 하며 , 본국인 중국은 황색을 사용하나 조선은 중국의 동방에 위치하는 나라이므로 동쪽은 청색을 귀히여긴다는 뜻에따라 청색바탕을 이용해야 한다 고 지시하였다. 이에 국왕은 분히여겨 절대로 중국의 국기를 흉내내지 않겠다 하여 사각형의 옥색바탕에 태극원(두개의 소용돌이 문양)을 청색과 적색으로 그리고, 국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역괘(易掛)를 그린 것을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고
한다. 기록되어 있다. 즉, 4각형태의 흰색 바탕에 폭부분 5분지 2를 중심삼아 태극을 그려 청색과홍색을 칠하고 네 귀퉁이에 4괘가 바라보도록 만든 새 국기를 임시 숙소(고베의 니시무라야) 옥상에 휘날리므로써 국왕(고종)의 명령을 다 받들었노라는 내용이 곧 최초의 태극기를 창안하고 도안하였음을 잘 증명하고 있다.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고종의 지시내용에 따라 태극기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增補文獻備考, 隆熙4年以後의 宮內府庶務雜文書, 皇城新聞, 大韓每日新聞, 獨逸東亞細亞會誌(1926. 12月號), 朝鮮常識問答續編(崔南善, 1947), 愛國歌作詞者調査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55), 韓國洋樂 80年史(李宥善, 中央大學校 出版局, 1968), 藜明의 東亞音樂(張師勛, 寶晉齋, 1974), 美國뉴욕市立圖書館所藏 아렌文書中 大韓帝國愛國歌(190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