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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주조한(噇酒糟漢)
술 찌꺼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술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욕하는 불교 용어이다.
噇 : 먹을 당(口/12)
酒 : 술 주(酉/3)
糟 : 지게미 조(米/11)
漢 : 한수 한(氵/11)
출전 : 벽암록(碧巖錄)
벽암록(碧巖錄)이란 '벽암집'이라고도 하며 본래의 명칭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 또는 '원오노인벽암록'이다. 벽암은 원오선사 극근(克勤)에게 칙명(勅命)으로 수여된 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 선종의 5가 중 운문종(雲門宗)의 제4조인 설두(雪竇) 중현(重顯)이 정리하고 저술한 것에 임제종(臨濟宗)의 제11조인 원오선사가 부연하여 저술한 것을 원오선사의 제자들이 편집, 간행한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수많은 선적(禪籍) 가운데서도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일컬어져 왔으며, 선문(禪門)의 1,700가지 공안 가운데 대표적인 100가지를 뽑아 본칙(本則)으로 소개하고 앞뒤로 수시(垂示)와 평창(評唱)을 덧붙인 벽암록은 문자로 표현된 깨달음의 세계를 대표하는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가 일을 망친다. 진짜를 교묘하게 모방하여 행세를 할 때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간다.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는 속담은 실제 재주를 가진 사람보다 더 잘 포장하여 큰소리친다는 뜻이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니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평가하면 낭패 본다.
불교에서 깨우치는 말로 순수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혼내는 성어가 있다. 술을 마신 듯이 행세하지만(噇酒) 실제는 술지게미만 먹은 놈(糟漢)이란 어려운 글자를 썼다. 선(禪)의 진수이고 선 문학의 선구라고도 평가받는 '벽암록(碧巖錄)'에 일화가 실려 있다.
심오하고 진지한 선승들의 화두(話頭) 100개를 담아 선가에서 남달리 귀중한 문헌으로 애송되어 왔다는 벽암록은 중국 송(宋)나라의 선승 원오극근(圜悟克勤)이 편찬했다. 이 책 제11칙에 황벽당주조한(黃檗噇酒糟漢)이란 제목으로 황벽선사가 무명승을 꾸짖는 데서 이 말이 등장한다.
황벽(黃檗)은 희운(希運) 선사를 가리키는데 법을 이어받은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선걸(禪傑)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그의 문하서 위엄 있게 꾸짖는 할(喝)로 유명한 임제의현(臨濟義玄)이 배출되어 명성을 더한다.
황벽이 당(唐)나라에 많은 선승이 모두 젠체하지만 실제 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승은 없다고 비판한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지게미만 먹고 진짜 술을 마신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汝等諸人 盡是噇酒糟漢)." 진짜 술이 아닌 지게미만 먹는다고 끽주조한(喫酒糟漢)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당시 속어로 '척하는 머저리 같은 놈'이란 뜻이란다.
선수행을 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도 못하고 어록을 대충 이해한 주제에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을 매도했다. 이어서 건들건들 수행하며 언제 불법을 닦을 수 있겠느냐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혼을 냈다.
황벽선사는 전국의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는 선승들이 많다는 스님의 항의에 선은 있는데 선사가 없다고 답한다.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깨우쳤다.
뜻이 있어 자신이 깊이 닦으면 그것이 절로 드러나는 법인데 다 깨달은 듯이 중간에서 행세를 하면 들통이 난다. 성급하게 자신을 과시하기 보다는 내실을 더욱 다질 일이다. 진짜 금인 순금은 도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진금부도(眞金不鍍)라 했다.
벽암록(碧巖錄)
제11칙 黃檗噇酒糟漢
(황벽화상과 술찌꺼기 먹은놈)
벽암록(碧巖錄) 제11칙에는 황벽 화상이 당나라에는 많은 선승이 있지만, 모두 선사인 체 하면서 진정한 선을 지도할 선사가 없다고 비판한 법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擧. 黃檗示衆云, 汝等諸人, 盡是噇酒糟漢, 恁行脚, 何處有今日. 還知大唐國裏無禪師.
황벽 화상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시고 취한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 언제 불법을 체득할 수가 있겠는가? 큰 당(唐)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時有僧, 出云, 只如諸方匡徒領衆, 又作生.
그때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전국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선승들은 무엇입니까?"
檗云, 不道無禪, 只是無師.
황벽 화상이 말했다.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황벽 선사의 법문은 '전등록' 제9권에 진정한 수행자가 되도록 간절하게 설하고 있다. '벽암록'에서 원오는 "황벽 선사는 7척의 큰 키에다 이마에는 둥근 구슬이 있었고, 천성적으로 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체구도 당당한 천성의 선승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특히 황벽의 문하에 임제의현이라는 걸출한 선승이 배출되어 당대 선불교의 사상을 극대화한 사실은 어록의 왕이라고 불리는 '임제어록'에 유감없이 잘 전하고 있다.
그런 황벽 선사가 수행자들에게 "그대들은 모두가 술찌꺼기나 먹고 진짜 술을 마시고 취한 듯이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사람이 언제 불법을 체득할 수가 있겠는가? 큰 당(唐)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라고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다.
당주조한(酒糟漢)이라는 말은 월주(越州) 지방의 사람들이 술 찌꺼기를 좋아해 잘 먹었기 때문에 월주 사람들을 욕하는 말로 사용했었는데, 뒤에 유행되어 사람을 욕하는 말이 되었다. 진짜 술을 마시지도 않고 술찌꺼기나 조금 먹은 주제에 술에 취한 행세를 하는 사람을 욕하는 말이다.
선에서는 특히 언어 문자에 집착하여 불법의 대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승을 매도하는 말로 사용하며, 어록에 "옛 사람의 술 찌꺼기나 빨아먹는 놈"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선수행을 하면서 제대로 불법의 대의를 철저하게 체득하지 못한 선승이 선승들의 어록을 몇 마디 이해한 분별심에 만족한 사람이 진짜 대단한 선승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들을 매도하는 말이다.
엉터리 선수행자들은 선수행자 행세를 하면서 천하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세월만 보내고 신발(짚신)만 소비시킨다. 시주들의 은혜를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빚 덩이로 짊어지고 다니는 한심한 놈들이다. 이러한 수행자가 어느 세월에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여 정법의 안목을 밝히고 중생을 구제할 수가 있겠는가?
황벽 선사는 또 "이렇게 큰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라고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다. 술 찌꺼기나 먹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선수행자가 진정한 수행을 하지 않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정신 차려 진정한 수행자가 되도록 경책하는 법문을 하고 있다. 원오는 수시에 이러한 황벽선사의 법문은 대중을 놀라게 하고 수행자의 마음을 움직인 법문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에 어떤 스님이 앞으로 나와서 황벽 선사에게 말했다. "전국 여러 총림에서 대중을 지도하고 거느린 선승들은 무엇입니까? 선사는 당나라에 전국에 선사가 한명도 없다고 말했는데, 황벽산을 비롯하여 천하의 선원에 훌륭한 선사들이 많은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 합니까?"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 스님은 제법 선승의 기개가 있는 말을 한 것이다.
황벽 선사는 이러한 선승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선(禪)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사(禪師)가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이 공안의 안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이 없다(無禪)는 것이 아니라, 선법을 체득하여 분명히 수행자들을 지도하며 선을 깨닫게 하는 진정한 선사가 없다고 주장한 말이다.
황벽의 말은 선의 궁극적인 정신을 확실하고 완전하게 제시하고 있다. 선은 근원적인 본래심(불심)으로 지금 여기서 자기 자신의 일을 지혜롭게 전개하는 불성의 지혜작용 그 자체인 것이다.
선의 수행으로 불법을 체득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선사의 가르침과 지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인이 자각하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선에서는 물이 차고 따뜻한지 본인이 물을 마시고 자각해야 한다는 의미로 냉난자지(冷暖自知)라는 말을 강조한다.
선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과 함께 온 우주에 가득히 충만 되어 전개되고 있다. 일체의 모든 존재가 인연법에 따라서 여법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시절 인연에 맞추어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선은 각자의 불심으로 자각하여 체득되는 것이며, 불심의 지혜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본래심의 지혜작용(선)은 그대로 숨김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선은 다른 사람이나 스승으로부터 선의 깨달음을 직접 전해 받거나 남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불심(본래심)의 지혜작용 그 자체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고 듣게 하는 상대적인 어떤 물건이 아니다.
황벽 선사가 당나라에 선사가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 것은 지극히 올바른 안목으로 설한 법문이다. 온 우주에도 선사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디에 유명한 선사가 있다고 찾아가고, 운수 행각한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서로 왔다 갔다 세월만 보내고 있다. 이런 놈은 술 찌꺼기를 먹고 술에 취한 행세를 하는 놈이니 언제 불법을 깨닫고 선을 체득할 날이 있을까? 황벽의 법문은 수행자들에게 진정한 자비심을 베푼 위대한 선승의 모습이다.
설두는 이 공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지 말라. 단엄하게 세상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하네. 대중천자(大中天子)가 일찍이 가볍게 건드렸다가 발톱과 어금니에 세 차례나 할퀴었네."
먼저 "늠름한 기상을 자랑하지 말라. 단엄하게 세상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하네"라는 두 구절은 황벽 선사의 위풍당당한 풍모를 칭찬한 것이다. "당나라에 선사가 없다"고 말한 황벽의 선법은 천하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에 머물며 용과 뱀을 구분할 수 있는 진정한 불법의 안목을 구족한 선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술 찌꺼기나 먹는 수행자와 올바른 선승을 판단하는 지혜의 안목을 구족한 황벽선사를 지혜작용(大機大用)을 칭찬하는 말이다.
황벽이 용과 뱀을 확정한 지혜작용(大機大用)을 "대중천자가 일찍이 가볍게 건드렸다가 발톱과 어금니에 세 차례나 할퀴었네"라는 게송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대중천자는 당 선종(宣宗) 황제로서 13살 때에 왕실에서 추방되어 잠시 출가하여 제안(齊安)선사의 문하에 서기로 일할 때, 당시 황벽은 수좌로 함께 있었다. 어느 날 황벽이 부처님께 예불하는 모습을 보고, 대중천자는 "예배를 해서 무엇 하려는가?" 질문하자 황벽이 갑자기 뺨을 후려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두는 이것을 게송으로 읊고 있다.
뒤에 선종은 황벽 선사에게 거친 사문이라고 호를 내렸는데, 배휴가 건의하여 '단제선사'라는 법호를 내렸다고 전한다. 원오는 평창에 "설두의 이 게송은 참으로 황벽 화상의 본래면목(眞贊)과 똑같이 닮았는데, 사람들은 본래면목(眞贊)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벽암록(碧巖錄)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들이 전개한 대표적인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에 원오극근 선사가 내린 해석을 첨가한 것이다.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으뜸가는 선 수행서로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벽암록과 성격이 비슷한 '선문염송'이라는 책이 대중화 되었고, 벽암록이 난해해서 학력이 높은 지식인 외에는 읽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벽암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번역문과 해설서가 여러 종 나와 있다.
벽암록의 성립
벽암록(碧巖錄)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禪僧)들이 전개한 대표적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설두중현(雪竇重顯)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가 또다시 문제 제기와 해석을 첨가한 것이다.
'송고백칙'에서 백칙은 선문답 100가지를 말하는데, 칙(則)이란 원래 본보기 또는 모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따라서 '송고백칙'은 모범이 되는 선문답 100가지에 덧붙인 '송고'라는 의미가 된다. 송고(頌古)는 옛 선승들의 선문답이나 언행을 칭송한 시나 게송(偈頌)을 말한다. 말하자면, 불교의 선(禪)이 문학과 연계되어 '송고문학'이 탄생된 것인데, 그 시작은 중국 북송 시대 초기부터라고 한다.
설두중현의 작업 이전에도 당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기록한 책은 이미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인도와 중국의 선승 이야기를 북송 시기에 기록한 전등록(傳燈錄), 중국 선종의 하나인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문언(雲門文偃) 선사의 어록인 운문광록(雲門廣錄), 당나라의 선승인 조주선사의 어록인 조주록(趙州錄) 등인데, 설두중현이 이 책들에서 백칙을 뽑아낸 것이다.
선문답은 형식 논리를 뛰어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수행자들도 그 의미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선사들은 여기에 다시 시나 노래를 덧붙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있다. '송고백칙'이 바로 그 작업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이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아 당시 유명한 선사이자 송나라 황제의 자문 역까지 맡았던 원오극근 선사에게 자세한 해설을 요청했다. 이에 원오극근 선사가 세세한 해설을 해 주었고, 제자들이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것이 바로 '벽암록'이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맨 앞에 100개의 선문답 각 칙(則)에 대한 원오극근의 문제 제기가 나온다. 수시(垂示)라고 하는데, 때로는 생략되기도 한다. 그 다음, 설두중현이 가려 뽑은 각 선문답이 제시된다. 본칙(本則)이라 한다. 그리고 설두중현이 내놓은 게송 곧 '송고(頌古)'가 나온다. 그러고 나서 '본칙'과 '송고'에 대한 원오극근의 논평과 해설이 이어진다. 착어(着語)와 평창(評唱)이라고 한다.
벽암록의 엮은이 설두중현과 원오극근
벽암록을 엮은 설두중현(雪竇重顯)과 원오극근(圓悟克勤)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자.
설두중현(雪竇重顯)은 중국 송대에 활동했던 운문종(雲門宗) 승려인데, 사천성 봉계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대대로 전해 온 가학인 유학을 공부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20세 전후에 출가해 처음에는 경전 공부를 하다가 선 수행을 시작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취봉의 영은사에 머물다가 1022년에 명주의 설두산 자성사로 옮겨 여기서 31년간 제자들을 가르쳤다. 남달리 시적인 감성이 풍부했고 문장력이 뛰어났던 그는 운문종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그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가 무려 70여 명이나 되었다. 1052년 6월 10일 입적하자 조정에서는 명각대사(明覺大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원오극근(圓悟克勤)은 사천성 숭녕현에서 1063년에 태어났으니, 설두중현이 입적하고 11년 후가 된다. 유학자의 가문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우연히 묘적사에서 불경 읽기를 반복하더니 감복해 이 절의 주지 자성스님에게 계를 받았고 이후에도 널리 선지식을 찾아 두루 공부했다. 그가 살았던 11~12세기는 정강(靖康)의 난이 일어나 송조가 한때 멸망해 남송의 고종이 송나라를 다시 정비하는 등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1102년 그는 성도의 소각사, 호남의 협산의 영천원, 상서의 도림사 등에 머물면서 앞서 말한 '송고백칙'을 강의했다. 송나라의 황제들도 원오극근 신사를 극진히 예우해, 북송의 휘종은 불과선사(佛果禪師)라는 호를, 남송의 고종은 진각선사(眞覺禪師)라는 호를 내렸다. 73세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로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고 한다.
원오극근(圓悟克勤)의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1125년에는 이미 '벽암록' 필사본이 나왔다고 한다. 이 필사본은 강의 장소에 따라 내용이 상이한데, 성도본, 협산본, 도림본의 3종이 존재했다고 하니, 그 뜨거운 호응을 짐작할 수 있다.
수강생들에게 채록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벽암록'의 간행은 1128년(남송 건염 2년)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선사(普照禪師)에 의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 선불교에서 으뜸으로 꼽는 책인 '벽암록'인데, 책의 제호는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이다.
보조선사(普照禪師)는 '벽암록'의 가치와 편찬 과정 등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불과원오(佛果圓悟) 스님께서 '벽암'에 계실 때 수행하는 이들이 잘 몰라 미혹을 깨우쳐 주실 것을 청하니, 깊은 이치를 드러내어 명백하게 가르쳐 주셨다. 백칙의 공안을 첫머리부터 하나로 꿰어 수많은 조사들을 차례차례 점검했다. 지극한 도는 실로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종사께서 자비를 베풀어 말로써 잘못을 고쳐 주셨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벽암'은 원오극근이 거주했던 협산 영천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벽암록'이 선불교의 교과서로서 널리 읽힌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송대의 시대적인 분위기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선 수행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과 관료에게까지도 퍼져 나갔다. 이른바 거사들에게 선불교의 교과서 형식의 자료를 제시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벽암록'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벽암록을 불태우다
불교는 수많은 신을 신봉하는 힌두교의 전통이 강한 인도에서 출발했지만, 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종교다. 구원의 방식도 신의 은총에 의한 타력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한 자력 구원이다. '벽암록'은 바로 그 깨달음의 스승들이 남겨 놓은 어록과 일화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선 수행자들은 소중한 교재로 활용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이 널리 퍼지다 보니 실제 선 수행보다 그 책을 외워 마치 득도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수행자들도 다수 생겨났다. 또한 불교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깨달음을 추구하기 때문에 "조사(袓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하는 극도의 과격한 언설까지 나오게 된다.
'벽암록'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운문문언 선사의 독설 또한 유명하다. "만약에 석가모니가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오만을 부린다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 그리고 어떤 것이 부처의 경지를 초월하느냐고 물으면 '호떡'하는 식의 엉뚱한 대답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수행자들이 '벽암록'에 기대어 제각각 깨달았다고 자처하니, 현실은 없고 요설만 난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바로 잡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원오극근의 수제자였던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였다. 그는 당시 수행자들이 '벽암록'의 선문답만 익히고, 실제 수행을 게을리하는 자가 많아지는 폐단이 생기는 것을 보고 근본 뜻을 다시 세우고자 대중 앞에서 이 책의 판목을 불태워 버렸다.
또한 수행승들이 혼자 공부해 꼭 깨달은 것과 같은 언사를 농하고 있어서 대혜선사가 정말로 깨달았는가 하고 시험해 보면 '벽암록'을 반복 암기한 데에 연유함을 알게 되자 참선 수행이 말장난에 그치고 말 것을 우려해 태워 버렸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D. T. Suzuki, 1955)
성스런 책은 우리의 영적 노력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킬 경우에만 유용하다. 그래서 선은 죽은 문자나 이론들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선이란 언어 놀이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언어 없이는 진리의 길에 도달할 수 없는 법, 결국 '벽암록'을 다시 복간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벽암록'이 1128년에 처음 간행된 후 대혜 선사가 죽은 해인 1163년 무렵 불태워졌다가 1300년에 중간되었으므로 처음 탄생 후 172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대혜 선사가 '벽암록'을 불태우고 장명원(張明遠)이 복간한 의미는 1305년 주치(周馳) 거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혜가 원오의 '벽암록'을 불사른 것은 집착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부처가 출세간법을 말씀하셨으나 언어나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그 언어 문자를 아주 없앨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혜로운 이는 적고 우매한 이가 많고, 깨달은 이는 적고 앞으로 깨달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벽암록의 내용
벽암록의 제1장은 달마대사의 일화로 시작한다. 중국 선불교 역시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로부터 시작한다.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황제인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지만 양 무제의 세속적인 관심만을 확인하게 된다. '성스러운 진리가 무엇이냐?'는 양 무제의 질문에 달마대사가 '없다!'고 하니, 양 무제가 그럼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나는 모르오(不識)!'라는 대답을 남긴 채 소림사로 들어간다.
그는 그곳에서 9년 동안 면벽수도한 후 제자들을 키우고 후계자를 길러 선종의 계보를 이어 가게 한다. 달마의 첫 후계자가 2대 혜가고 이후 3대 승찬, 4대 도신, 5대 홍인, 6대 혜능으로 이어지고 이후 수많은 지도자들이 등장하며 선종이 중국 불교의 큰 흐름을 형성한다.
벽암록은 바로 그러한 큰 흐름 속에서 중요한 선승들의 일화나 문답을 소개하고 있다. 벽암록에 달마대사 외에 140여 명이나 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분포는 다음과 같다.
130여 명이 당대의 선승과 거사인데,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無名)의 선승도 40여 명 포함되어 있다. 불교의 인격으로는 부처, 세존, 문수보살, 관음보살, 아라한, 염마대왕, 외도, 유마거사를 포함해서 9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선승으로 운문문언 선사가 16회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다음에 조주종심 선사가 12회, 설두 스님도 13회나 등장하며, 부대사와 방거사, 유철마와 같은 비구니도 등장하고 있다.
벽암록에 있는 선문답 몇 가지만 다음에 소개한다.
운문선사가 묻는다. "그대들의 15일 이후를 말해 보라."
운문선사가 스스로 답변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벽암록 제16칙)
어떤 스님이 동산 선사에게 묻는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대답: 삼(麻) 세 근이다.
(벽암록 제12칙)
양 무제가 부대사(傅大士)를 초청해 '금강경'을 강의하도록 했다. 부대사는 단상에 올라서 책상을 한번 후려치고는 곧바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양 무제는 깜짝 놀랐다. 지공화상이 양 무제에게 질문했다. "폐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무제는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공화상이 말했다. "부대사의 강의는 끝났습니다."
(벽암록 제67칙)
이 책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으뜸가는 선 수행서로 쓰였지만, 한국 불교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벽암록과 성격이 비슷한 공안집인 '선문염송'이 대중화,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벽암록을 불태웠던 대혜종고 선사의 뜻을 받들어 불자들이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셋째, 책이 난해해서 학력이 높은 지식인 외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최근 벽암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번역본과 해설서가 여럿 나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 噇(탐욕스럽게 먹을 당)은 䭚(당)과 동자(同字)이다. 입 구(口)와 아이 동(童)의 합자이다. 입 구(口)자는 탐욕스럽게 먹는다는 뜻이며, 아이 동(童)자는 갑골문과 금문, 소전에서 매울 신(辛)과 눈 목(目)과 동녘 동(東)의 합자를 그렸고, 해서에서 설 립(立)과 마을 리(里)의 합자를 그렸다. 포로로 잡은 사내 아이들까지 반항하지 못하도록 한쪽 눈(目)을 작은 칼(辛)로 실명시킨 후 짐(東)을 나르게 한다는 것이 후에 아이의 뜻이 된 것이다. '동'의 소리를 나타내는 성부(聲部)이다. 그래서 噇(당)은 ①탐욕(貪慾)스럽게 먹다 ②탐욕(貪慾)스럽게 먹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술 찌꺼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술 지게미를 먹고 술 마신 듯 행세한다는 말로 순수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을 욕하는 불교용어의 당주조한(噇酒糟漢) 등이다.
▶️ 酒(술 주)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닭 유(酉; 술, 닭)部와 水(수; 액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酒자는 '술'이나 '술자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酒자는 水(물 수)자와 酉(닭 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酉자는 술을 담는 술병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술병을 그린 酉자에 水자가 더해져 있으니 酒자는 '술'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고대에는 酒자와 酉자의 구별이 없었다. 酉자도 '술'이라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酉자가 십이지(十二支)의 열째 글자인 '닭'을 뜻하게 되면서 지금은 酒자가 '술'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酒(주)는 어떤 명 아래에 쓰이어 술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①술(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 ②잔치, 주연(酒宴) ③술자리, 주연(酒筵) ④무술(제사 때 술 대신에 쓰는 맑은 찬물) ⑤술을 마시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는 간단한 잔치를 주연(酒宴), 시골의 길거리에서 술이나 밥 따위를 팔고 또 나그네도 치는 집을 주막(酒幕), 술을 따라 마시는 그릇을 주배(酒杯), 술 친구를 주붕(酒朋), 술을 마시며 노는 자리를 주석(酒席), 술을 파는 집을 주가(酒家), 술집을 주점(酒店), 주포(酒舖), 주옥(酒屋), 주청(酒廳), 술의 종류를 주류(酒類), 술에 취하여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막되게 하는 것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주정(酒酊), 술을 마시는 분량을 주량(酒量), 술을 잘 마시는 사람으로 주량이 아주 큰 사람을 주호(酒豪), 술을 마심을 음주(飮酒), 아침에 마시는 술을 묘주(卯酒), 약주를 뜨고 남은 찌꺼기를 모주(母酒), 끼니 때 밥에 곁들여서 한두 잔 마시는 술을 반주(飯酒), 술을 먹던 사람이 술을 끊음을 단주(斷酒), 술을 못 먹게 금함 또는 먹던 술을 끊고 먹지 않음을 금주(禁酒), 빛과 맛이 좋은 술을 미주(美酒), 별다른 방법으로 빚은 술 또는 이별할 때 마시는 술을 별주(別酒), 약재를 넣어서 빚은 술을 약주(藥酒), 아무렇게나 빚어서 맛이 좋지 않은 술을 박주(薄酒), 아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술을 우려 마심 또는 그 술을 엽주(獵酒), 곡식으로 만든 술을 곡주(穀酒), 술을 마실 때 곁들여 먹는 고기나 나물 따위를 안주(按酒), 술을 썩 좋아함을 애주(愛酒), 술이 못을 이루고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는 뜻으로 매우 호화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주지육림(酒池肉林),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장이 따로 있다는 뜻으로 주량은 체구의 대소에 관계 없음을 이르는 말을 주유별장(酒有別腸), 술과 밥주머니라는 뜻으로 술과 음식을 축내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주대반낭(酒袋飯囊), 술 마시는 용과 시 짓는 범이라는 뜻으로 시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을 주룡시호(酒龍詩虎),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온다는 뜻으로 술을 마시면 수다스러워진다를 이르는 말을 주입설출(酒入舌出), 돼지 발굽과 술 한 잔이라는 뜻으로 작은 물건으로 많은 물건을 구하려 한다를 이르는 말을 돈제일주(豚蹄一酒) 등에 쓰인다.
▶️ 糟(지게미 조)는 형성문자로 醩(조)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쌀 미(米; 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曹(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糟(조)는 ①지게미(술을 짜낸 찌꺼기) ②찌꺼기 ③재강(술을 거르고 남은 찌끼) ④막걸리(우리나라 고유한 술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지게미 박(粕)이다. 용례로는 술을 걸러 내고 남은 찌끼를 조박(糟粕), 가지를 삶아서 소금에 절이어 만든 반찬을 조가(糟茄), 깨끗하게 쓿지 않은 거친 쌀을 조강미(糟糠米), 지게미에 탄 물을 조수(糟水), 이익이 적은 고객을 조객(糟客), 술찌기의 독을 조옹(糟甕), 지게미와 쌀겨 또는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하지 못한 음식을 조강(糟糠),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를 일컫는 말을 조강지처(糟糠之妻), 가난하여 술찌끼와 쌀겨조차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조강불포(糟糠不飽) 등에 쓰인다.
▶️ 漢(한수 한/한나라 한, 신년 탄)은 ❶형성문자로 汉(한)은 통자(通字), 汉(한)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難(난)의 생략형인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난, 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양자강(陽子江) 상류 하천(水) 지역이라는 뜻을 합(合)하여 '한나라'를 뜻한다. 본뜻은 양자강의 지류(支流)인 한수(漢水), 은하수(銀河水)도 남북으로 흐르는 듯이 놓여 있으므로 그 뜻으로도 쓴다. ❷형성문자로 漢자는 '한나라'를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漢자는 본래 '물 이름 한'이라는 뜻으로 먼저 쓰였었다. 漢자에 쓰인 難(난)의 생략형인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난, 한)자는 진흙을 뜻하는 堇(진흙 근)자가 변형된 것으로 여기에 水자가 더해진 漢자는 진흙이 섞여 평야를 이루던 지역의 강을 뜻했었다. 이곳이 바로 양쯔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한수(漢水)라는 곳이다. 중국 한나라는 이 지역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국호를 漢으로 하였다. 이후 漢자는 이 지역에서 번성했던 한족(漢族)을 대표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漢(한, 탄)은 (1)장기의 궁(宮)의 하나 (2)성(姓)의 하나 (3)중국의 왕조(王朝) 이름. 또는 중국의 별칭 (4)전한(前漢) (5)후한(後漢) (6)촉한(蜀漢) (7)성한(成漢) (8)전조(前趙) (9)중국(中國) 5대(五代) 십국(十國)의 하나. 처음에는 월(越)이라고 했음. 유(劉)씨가 화남(和南)에 세운 나라. 송(宋)에게 멸망(滅亡)당(當)함. 남한(南漢) 등의 뜻으로 ①한수(漢水), 물의 이름 ②한(漢)나라 ③종족(種族)의 이름 ④은하수(銀河水) ⑤사나이, 놈, 그리고 ⓐ신년(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중국어를 표기하는 문자를 한자(漢字), 한문으로 된 책을 한서(漢書), 한자를 통속적으로 일컫는 말을 한문(漢文), 서울의 옛 이름을 한양(漢陽), 한문으로 쓴 책을 한적(漢籍), 남자를 낮잡아 일컫는 말을 한자(漢子), 큰 강으로 한강을 달리 이르는 말을 한수(漢水), 한문으로 지은 시를 한시(漢詩), 중국 본토에서 예로부터 살아오는 중국의 중심되는 겨레를 한족(漢族), 중국 한나라 때의 조정 또는 한나라 시대 중국을 달리 일컫는 말을 한조(漢朝), 한문 또는 중국말로 번역함을 한역(漢譯), 한문에 관한 학문을 한학(漢學), 한강 남쪽 유역의 땅을 한남(漢南), 한문으로 된 이름을 한명(漢名), 은하수와 밝은 달을 한월(漢月), 몸이 큰 사나이를 거한(巨漢), 행동이 수상한 사나이를 괴한(怪漢), 소금을 굽는 사람을 염한(鹽漢), 보기 흉한 사나이를 나한(癩漢), 함부로 사나운 짓을 하는 사람을 폭한(暴漢), 둔한 사람을 둔한(鈍漢), 신분이 낮은 남자를 낮잡는 뜻으로 이르던 말을 상한(常漢), 인격과 성품이 저속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속한(俗漢), 나쁜 짓을 하는 남자를 악한(惡漢), 은하의 다른 이름을 성한(星漢),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문외한(門外漢), 아주 무식하고 우악스러운 사람을 무지한(無知漢),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이 없이 펀등펀등 놀면서 떠돌아다니며 난봉짓이나 하고 방탄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무뢰한(無賴漢), 따뜻한 인정이나 감정이 없는 냉혹한 사람을 냉혈한(冷血漢), 남에게 잘 굽히지 아니하는 사람을 강골한(强骨漢), 여색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내를 욕하는 말을 호색한(好色漢), 한강에 아무리 돌을 많이 집어 넣어도 메울 수 없다는 뜻으로 아무리 투자를 하거나 애를 써도 보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한강투석(漢江投石), 염치가 없고 뻔뻔스러운 남자를 이르는 말을 철면피한(鐵面皮漢), 은하수가 멀고 먼 하늘에 있다는 데서 연유한 말로 막연한 말을 이르는 말을 하한지언(河漢之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