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주남 들녘
십일월 중순 토요일이다. 봄부터 시내를 벗어난 근교의 읍면 지역으로 나가 치안 보조 역을 수행 중이다. 평일 오후 두세 시간 국도변 초등학교 주변을 순찰하는 임무를 띤다. 근무 시간이 오후여도 새벽같이 집을 나서 강둑이나 들녘을 걷고 마을도서관에서 보내다 오후에 도보 순찰을 마치고 귀가함이 일상이다. 주말 이틀은 근교 산자락을 누벼 야생화 탐방으로 자연을 벗 삼는다.
십일월에 들어서는 주말 이틀 가운데 토요일에도 시골로 나가 의미가 있는 강좌를 수강 중이다. 행정 관서에서 농어촌 활성화 사업으로 ‘작은 집 짓기’ 목공 강좌를 열어주어 기꺼이 참여한다. 주중 닷새를 대산면으로 나가는데 십일월부터 하루 더 늘여 토요일도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소답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타고 동읍을 지나 들녘을 거쳐 대산면 나눔문화센터를 찾았다.
이번이 세 번째 강좌로 ‘모형 집 만들기’를 실습하는 날이다. 항공기 제작 공장에서 은퇴 후 목공 장인으로 변신하여 이모작 인생을 출발한 강사는 기능의 전수에 앞서 훌륭한 인품이 돋보였다. 6주간에 걸쳐 토요일 아침나절에 강좌가 열리는데 매번 강의 도입부에 인성교육을 먼저 실시했다. 이번에는 향수병을 전면 그림으로 띄워 놓고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향기를 지닌다고 했다.
이어서 여러 가지 아크릴 재료로 실물을 축소한 모형 집을 짓는 실습에 들었는데 외부에서 모신 정원 조경 전문가 여성 셋이 수업 보조로 도우미 역을 맡아주었다. 목조 주택의 벽체와 구조의 명칭을 이해하고 축소 모형의 집을 완성하고 정원의 조경을 완성했다. 어디에 나무를 심고 텃밭을 꾸밀 것인지 각자 구상해 창의적으로 만들었는데 나는 정원 진입로에 꽃길을 꾸미기도 했다.
오전 3시간 목공 강좌를 수강한 뒤 가술에서 점심을 들고 거기서부터 걸어 주남저수지 인근 들녘으로 향했다. 신동마을을 지날 때는 동구 밖이 아닌 들판 가운데 우람하게 높이 자란 당산나무를 만났다. 당산나무는 대개 팽나무가 느티나무가 많은데 신동에는 상수리나무여서 눈길을 끌었다. 현장에 가니 소답동에 산다는 한 노인이 그곳을 찾아 나무 밑에서 서성여 인사를 나눴다.
신동에서 백양마을로 가니 추수를 끝낸 들녘에는 볏짚을 수거하는 농민이 트랙터에 장비를 부착해 논바닥으로 굴러다녔다. 들녘 한복판에 들어선 백양마을에서 주남저수지는 서향이라 짧아진 해가 기우는 역광 햇살이 비쳤다. 주남저수지에 못 미친 벼를 거둔 논은 농민들이 뒷그루 작물을 심지 않아 이듬해 봄까지 철새가 먹이 활동하고 떠나도록 당국에서 손실 보상을 해준 곳이다.
철새들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려는 이들이 모여들고 새들을 보호하는 지킴이는 녹색 조끼를 입고 순찰 임무를 수행했다. 재두루미와 쇠기러기가 먹이 활동하는 곳은 탐조객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통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주차해 둔 차량 곁에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워두고 탐조객과 얘기를 나누는 한 사내가 초면이지만 예감으로 느껴지기로 알려진 생태 사진작가인 듯했다.
그 사내는 도청에서 행사 의전 전속 사진사로 올 연말로 공직에서 은퇴를 앞두고 공로 연수 중인 최종수 씨였다. 최 씨는 본업인 행사 사진보다 조류 생태 사진 촬영 기법에 독보적인 경지에 이르러 사진 도록을 남기고 영상은 유튜브 초록tv를 운영하는 유명 인사였다. 초등 교직에 몸담은 탐조객과 나누는 얘기를 엿들으며 조류 생태 전문가의 해박한 지식은 나에게 보탬이 되었다.
최 작가와 헤어져 들녘을 더 걸어 용산마을에서 둑길을 따라 걸으니 주말을 맞아 탐조와 산책을 나온 이들이 다수였다. 머리 위 창공으로는 간간이 철새들이 선회 비행을 하고 저수지 수면에도 여러 새들이 먹이 활동에 열중했다. 꽃이 피어 곡식 이삭처럼 보인 물억새와 끝물 코스모스꽃의 열병을 받으며 낙조대와 배수문에 이르자 갯버들에는 가마우지들이 떼 지어 나래를 접었다. 24.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