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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학은 '북한 출신 축구선수'에서 부산 아이파크의 '히든상품'으로 탈바꿈했다. 핏줄의 경계는 축구안에서 사라졌다.
사진 한상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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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성장해 북한축구대표선수로 활약하며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선수 생활을 한다.’ 영화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인 듯 하다. 그러나 올시즌 초 부산은 북한대표팀 미드필더 안영학을 영입하며 이러한 일을 현실화했다. 많은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또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안영학이 K리그 올스타 주전으로 당당히 선발된 것이다. 화제의 인물에서 축구 선수 안영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안영학의 가족은 스포츠를 사랑한다. 유술(유도)을 연마한 아버지와 소프트볼 선수였던 어머니, 그리고 그의 형 또한 유도 선수 출신이다. 진정한 스포츠 가족이다. 안영학 또한 순수한 스포츠인이자 축구인이다. 그에게 정치적인 색깔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북한대표라며 호기심 섞인 질문을 던지던 기자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한반도의 스티븐 제라드를 꿈꾸며 K리그 무대를 평정하고 싶어하는 축구 청년이자 부산 아이파크의 키 플레이어다. K리그 올스타 투표에서 김영광, 이천수, 최성국에 이어 남부팀 최다득표 4위에 뽑힌 것은 그가 단순히 북한대표출신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팬들은 그의 기량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섭씨 34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의 앞으로 몰려든 부산 아이파크 유소년 선수들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이들은 그가 북한대표선수라는 것엔 큰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가 즐겨하는 축구공 제기차기 묘기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한 유소년 선수는 “안영학과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북한대표선수에서 K리그 부산의 최고 스타로 바뀌고 있었다.
올스타에 뽑혔는데, 축하한다.매우 기쁘다.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조선(북한)대표선수라는 이유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는데 정작 공격 포인트는 많이 못 올렸다. 후기리그 땐 잘 하고 싶다.
국적이 정확히 어떻게 되나.조선이다. 1948년 한국이 정부를 세웠을 때 일본에 있던 조선 사람들도 한국국적을 가질 수 있게 돼 한국국적을 가진 분들도 있고, 조선땅이 분단됐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는 분들은 그냥 기존의 조선국적을 지니고 계셨다. 그리고 이후에 재일동포들의 권리를 위해 조총련 조직이 생겼고, 이북(북한)에서 많은 지원을 해줬다. 나는 조총련계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조선(북한) 대표팀에도 발탁될 수 있었다.
축구는 처음 어떻게 시작했나.도쿄 조선제3초급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 쉬는 시간 마다 밖에 나와 볼을 차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2학년 때 학교 축구부에 가입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꿈이 있었다면.초등학교 때 보다는 중학교 때 꿈을 품었다. 그때 일본에 J리그가 출범했는데 TV로만 보던 세계의 스타 선수들이 많이 영입됐다. 언젠간 J리그에서 저런 선수들처럼 화려하게 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일본 내에서는 브라질에서 귀화한 라모스와 가즈(미우라 가즈요시)를 좋아했고, 그 선수들을 동경했다. 특히 라모스는 실업 팀에 있을 때부터 사인을 받을 정도로 좋아하던 선수였다. 이 시기에 자라난 일본선수들 중에 좋은 미드필더가 많이 배출된 것도 이 선수들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재일동포로 생활하면서 축구선수로서 어려움은 없었나.고등학교 1학년 때 하계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학교는 무슨 이유였는지 참가 자격이 없었다. 이후 3학년 때는 다시 참가가 허용돼 도쿄 예선 8강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올해 총련계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가 전국대회 8강까지 나가지 않았나? 정말 대단한 성과이고 한민족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물론 보다 안정적인 프로 선수 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귀화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난 귀화할 생각은 없다.
한국대표팀으로 올 수는 없었나.한국대표팀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난 조선국적이기 때문에 조선(북한)대표팀으로 뽑혀서 월드컵 무대에 나가고 싶었다. 나에게 남과 북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같은 한민족일 뿐이다.
처음 북한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안영학 선수를 맞이하는 분위기는 어땠나.내가 일본에서 온 선수였기 때문에 처음엔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 그 선수들과 경쟁해야 했고, 그런 것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과 친해졌고, 모두들 잘 왔다고 환영 해줬다. 조선(북한) 선수들은 참 순수하고 인간적이다. 그리고 정말 다들 착하다. 그런 것은 한국선수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라온 환경은 다르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부산 아이파크 선수들과 조선(북한) 선수들은 공통점이 참 많고, 일본선수들과 비교했을 때는 많이 다르다. 계산적이지 않고 정이 많다. 그리고 표현도 직접적이다. (웃음)
북한대표선수로 처음 한국프로팀에 입단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본다면.처음엔 축구팬들이 나를 선수라기 보다는 조선(북한)선수가 한국에서 뛰는 것 자체에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조선(북한)에서 온 선수로 아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엔 선수 안영학으로 많이 봐주시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를 조선(북한)대표 안영학이라기 보다는 부산 아이파크의 미드필더 안영학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북한대표팀에 소집돼 훈련을 받았을 텐데, 한국이나 일본과 좀 다른 부분이 있다면.훈련 스타일은 감독마다 다르기 때문에 뭐라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선수들의 훈련 자세는 조선(북한)과 한국이 확실히 닮았다. 감독의 이야기를 매우 예의 바르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반면 일본선수들은 감독 말은 잘 듣긴 하나 그냥 제멋대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감독에게 자신의 의견이 있을 때 서슴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조선(북한)이나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북한, 한국, 일본에 모두 여성팬들이 있을 것 같은데 세 나라 팬들의 특징이 있다면.처음에 조선(북한) 대표로 2골을 기록한 이후 평양에서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공항에서 세관여자직원 분이 나를 보고 대뜸 “저, 18번 선수죠? 반가워요”라고 하더라. 조선(북한) 여성팬들은 수줍음이 좀 있는 편이라 일정거리를 두고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일본 여성팬들도 열광적이긴 하지만 모두 거리를 둔 채 인사의 말들을 건넨다. 그런데 한국 여성팬들은 참 적극적이더라. 대뜸 손부터 잡고, 팔짱 끼고…. (웃음)
북한대표팀에 친한 선수가 있다면.김영준 선수와 친한 편이다. 정말 뛰어난 선수다. 지금 당장 J리그나 K리그에 와도 손색 없는 베스트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 아이파크는 어떻게 오게 됐나.물론 다른 구단의 이적 요청도 있었다. 그러나 부산이 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 같았고, 가족들도 부산으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부산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아직 부산에서 많은 구경을 하진 못했다. 동료선수와 형들이 매우 잘해 줘 편하게 지내고 있다. 처음 올 때 장관이형이 주장이었는데 어려운 것 있으면 얘기하라며 먼저 말을 걸고 긴장을 풀어 주셨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와선 아파트에서 매니저 형과 같이 살고 있다. 남자 둘이 지내는 것이 이젠 좀 지겹다. (웃음)
부산은 최근 축구보다 야구의 열기가 더 높은 것 같다. 첫째는 일단 우리 부산이 경기를 재미있게 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그리고 둘째는 아시아드 경기장이 너무 커서 1,2만 명이 들어와도 텅 빈 것처럼 보인다. 현재 부산 정도의 축구 열기라면 아담하면서도 꽉 찬 느낌의 전용구장에서 경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고, 그렇게 하면서 서서히 축구 열기를 높여 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K리그팀들 중에서 부산을 제외하고 인상적인 팀이 있다면.FC 서울이나 성남, 수원같은 팀은 기술과 힘에서 다른 팀보다 조금 앞서는 것 같다.
월드컵 때 한국과 일본대표팀 경기들을 봤을텐데.한국과 일본에 모두 아는 선수들이 많이 뛰기 때문에 관심이 많았다. 2002년 대회 때 한국을 응원한다고 일본 동료 선수들에게 얘기를 하고 다녔는데 처음엔 약간 비웃는 듯 하다가 16강에 진출하고 8강, 4강까지 올라가니까 정말 대단하다면서 모두들 축하해 줬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도 열심히 한국을 응원했다.
유럽이나 남미 등에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가 있나.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최근에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체격이 매우 커지고 있다. 발락이나 램파드, 제라드 같은 미드필더들 모두가 체격이 크고 파워를 갖추고, 또 강력한 중거리 슈팅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무언가 존재감 있는 플레이를 펼친다고나 할까.
부산 이야기로 넘어가자. 전기리그 땐 팀이 득점도 가장 많이 하고 실점도 가장 많이 했다.공격력은 괜찮았다. 그런데 포백의 공격적인 축구를 하다 보니 공격가담 숫자가 많았고, 반면에 수비전환이 다소 늦게 이루어진 게 득실점이 모두 많아진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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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공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던 꿈 많은 청년에겐 어디에서 축구를 하는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진 한상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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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후기리그를 전망해 본다면.새로 오신 감독님이 매우 열성적이다. 현재까지 훈련하는 것으로 봐선 공격패턴이 전반기보다는 다양해 질 것 같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볼 점유가 늘어나면서 팀 전체가 무언가 활기차게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6위권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직접 이야기해 본다면.패스나 드리블, 슈팅, 포지셔닝 등이 아직 많이 부족하고 불안하다. 그것이 내 단점이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내 자신에 겸손하고 반성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또 내 장점인 것 같다. (웃음)
K리그를 접하면서 느낀 점이나 인상적인 선수가 있다면.배울 점이 참 많다. 그렇게 심한 압박 속에서도 슈팅을 잘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K리그에 적응한 공격수들이 J리그로 오면 한결 쉽게 공격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인상적인 선수라면 FC 서울의 히칼도를 뽑고 싶다. 정말 패스가 좋은 선수다. 그리고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도전적인 패스도 가장 정확한 선수로 보인다.
인생관, 좌우명이 있다면.2002년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경기장에 펼쳐졌던 카드섹션이 내 인생관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내 꿈을 향해서 전진하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프리미어리그나 다른 유럽리그에 나가 도전해 보고 싶다.
한국과 일본, 북한을 오가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동포 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린 어딜 가도 외국인이다.” 조선 대표로 평양에 가도 조국에 온 것이지만 일본에서 자란 나로서는 왠지 생소하고 낯선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당연히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또한 그렇다. 그러나 축구를 통해서 그런 것들을 많이 덜어 낸 것 같다. 나 안영학이라는 선수를 좋아하는 팬들은 내가 어딜 가도 국적과 상관없이 나를 응원해 주셨다. 조선(북한) 대표팀으로 출전할 때 그분들은 조선 유니폼을 입고 나를 응원해 주셨고, 한국과 친선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축구라는 스포츠 때문에 나는 이러한 국가적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축구를 하는 후배들에게도 이런 얘기들을 해주고 싶다.
북한대표로 월드컵 예선을 치를 당시 이란전에서 종료 직전 주심과 매우 격한 장면이 있었는데.북한선수들은 매우 성실하고 착하다. 물론 퇴장 당한 남성철은 약간 성격도 있는 선수지만.(웃음) 선수들의 성향이 다혈질적이어서가 아니라 조선대표선수들이 국제 경험이 부족해서 벌어진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K리그를 지켜보면서 “아,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K리그는 선수협의회가 없는 것 같다. J리그엔 선수협의회가 있어서 은퇴한 선수들 취직 자리도 알아 봐 주고, 또 경기 중에 선수생명을 단축 시킬 수 있는 위험한 태클 같은 것도 이런 모임을 통해서 서로 자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K리그에도 이런 모임이 생겼으면 좋겠다.
후기리그에 나서는 각오가 있다면.일단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선 공격 포인트가 많은 선수를 치켜 세워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왕이면 나도 후기리그 땐 어시스트나 골을 많이 넣어 보도록 노력하겠다.
북한에 있는 친한 동료 대표선수에게 인사 한마디 한다면.영준아! 잘 있냐? 난 잘 있다.(웃음) 또 대표팀에 같이 뽑혀서 4년 뒤 남아공월드컵에 꼭 출전했으면 좋겠다. 파이팅!
첫댓글 후기시작전에 나온 기사인듯.. 아무튼 부산에 온거 환영하고 멋진축구인생 만드시기를~~ 자주 응원하러 갈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