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11 목요일
(2251 회)
-종로에 사는 한국일보 여기자의 이야기-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의 남편은. 총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넘고 걷고 걸어서 두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여고를 졸업한 두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여사는 한국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중ㆍ경기고ㆍ서울법대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항공우주국에 취직후 계속 공부 하바드대 교수등 공부벌레로 성공했다
장여사와 만남 후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고
지금부터 35년전 이야기다.
서울대학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재미로 살고 아들자랑 하는 재미,
근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전화 얼굴은 도통 볼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게 아니었다.
휴가때 미국에 아들 보고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주지를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 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 이면 어김없이 20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집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노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이 동거를 하기 뮈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식 했노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머리 파란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하며 슬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 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장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국집 주방에 취직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국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년후 순대국집 주인이 죽고, 그동안 모은 돈과 사채와 일수돈 빌려 순대국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시장 순대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개 집들중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가보았지만
아침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종업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 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을 벌어서 20년전 부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리, 오금동, 천호동 등 땅을 사두었다.
적절한 시기에 그땅을 모두 처분해서
테헤란로에 34층 건물을 구입하고 삼성동에도 건물을 샀습니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경기고, 서울대학교, 하바드대 교수가 삶의 무엇가요?
순대국집 주인과 아들... 누구의 삶이 더 잘살아온 삶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