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 연안 둘레길로
가을이 이슥해져 계절의 시계추는 겨울로 기우는 십일월 셋째 일요일이다. 주말을 넘겨 월요일부터 시베리아에서 팽창한 한랭 기단이 우리나라로 뻗쳐와 기온이 급전 직하한다는 예보를 접했다. 자연학교 행선지를 산이냐 바다냐를 저울질하다 후자를 택했다. 마산합포구 도립의료원 앞으로 나가 농어촌버스를 기다리면서 대현으로 가는 72번을 타지 않고 당항포로 가는 77번을 탔다.
버스는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어 동전터널을 빠져 진동 환승장에 들렀다. 이후 진북과 진전 면 소재지를 지나 탑동으로 둘러 나와 창포에서 동진대교로 갔다. 동진대교는 물길이 호리병처럼 잘록한 길목에 놓인 다리로 거기부터 다시 잔잔한 호수와 같은 당항포가 펼쳤다. 다리 건너편은 고성 동해면이고 당항포 연안을 돌아가는 찻길은 소포와 시락을 거쳐 정곡 종점에 닿았다.
정곡까지 창원 진전면이고 찻길에 걸쳐 놓은 생태터널을 지나자 고성 회화면 어신마을이 나왔다. 찻길 절개지에 자란 쑥부쟁이가 연보라 꽃을 피워 늦가을 정취가 물씬했다. 바닷가 어디쯤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는 표지판을 따라가다 한 할머니를 만나 길을 여쭈니 그곳까지 조금 더 가야 하는데, 지금은 밀물이 밀려온 사리 때라 공룡 발자국 화석은 물에 잠겨 볼 수 없다고 했다.
고성 연안에는 수 억 년 전 지구 지질시대 백악기 이전 출현한 거대한 파충류 공룡 발자국 화석이 산재한다. 삼천포와 가까운 하이면 상족암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당항포 연안에도 화석을 볼 수 있다. 내가 가려고 했던 어신마을에 딸린 원촌과 당항포 국민관광단지에도 발자국이 있다. 발길을 돌려 어신에서 당항포 연안을 돌아가니 노벨 골프장으로 드는 진입로가 나왔다.
당항포 연안으로 가는 포장된 도로는 차량 통행이 한산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 좋은 코스라 페달을 밟아 시원스레 질주하는 동호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항포 국민관광단지 인근 동촌은 한산마리나 리조트와 전원택지가 나왔는데 길섶 바윗돌 붙어 자란 해국이 화사하게 피어 계절감을 드러냈다. 요트 계류장으로도 쓰인 방파제에는 차를 세워두고 낚시를 즐기는 이도 있었다.
국민관광단지 정문은 회진로를 빙글 돌아 너무 멀어 고성 해양레포츠아카데미와 요트학교 구내에서 울타리를 넘으니 공룡전시관이 나왔다. 일요일은 휴장하지 않았을 텐데 입장객은 아주 적어 몇몇 사람만 보여 의아했다. 차를 구내까지 몰아온 중년 부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난 몇 젊은이만 보였다. 여름에는 그늘을 드리웠을 단풍이 곱게 물든 조경수 아래 쉼터에서 간식을 먹었다.
쉼터에서 연안의 공룡화석 동굴로 가니 조명이 꺼져 있어 발자국은 볼 수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 야외무대를 지난 자연사 박물관과 수석 전시관으로 가도 문이 닫혀 직원도 만나지 못했다. 거북선 모형이 전시된 연안에서 언덕을 오르니 당항포를 굽어보는 자리에 충무공의 당항포대첩 승전을 기린 탑이 나왔다. 계단을 밟고 올라 숭충사에서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제3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가자 올여름 공룡 엑스포 행사 후 십일월은 한 달간 휴장해 십이월 초순에 재개장한다는 안내 펼침막이 보였다. 연안으로는 포장된 찻길과 별개로 바다 위로 생태 보도를 겸한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마동호 둑이 아득했고 바다 풍광을 바라보며 걷기에 좋은 당항포 둘레길을 걸으니 건너편 고성 동해면 구절산 활엽수들은 단풍이 물들어 울긋불긋했다.
둘레길이 끝난 곳에서 들판을 지나 배둔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마산으로 가는 버스로 진동에 닿았다. 아침에 타고 온 70번대 버스 가운데 의림사에서 나온 74번이 다가와 타니 텃밭에서 푸성귀를 거둔 무거운 짐을 실으려는 할머니를 도와 차에 올렸다. 할머니 댁은 마산의료원에서 가까운 듯했다. 같이 내리면서 짐을 들어주었더니 무화과 열매를 몇 알 꺼내 주어 황송하게 받았다. 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