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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첫 시작인 1회부터 차례대로 보아야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첫 시작인 1회부터 차례로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40. 싸움닭 x 배고픈 작가의 고민.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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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에 패기 넘치던 나는
책의 판매부수만을 따지는 심사위원들에게
“우리는 작가가 되고 싶지, 책팔이가 되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세상에 돈이 전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작가는 장사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하여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로 취급하는
당시의 심사위원들이 미웠고,
그들에게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현실을 부정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돈벌이가 되는 상위권만 기억한다.
가수는 앨범의 판매량과 음원순위로 인기가 정해지고, 그에 따른 cf와 콘서트, 행사 등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배우와 감독은 영화의 관람객으로 순위가 결정되고,
드라마는 시청률로 연기자와 감독의 순위가 결정된다.
인기가 많아야 큰 수익이 발생하기에
자동적으로 하위권은 업계에서 사라진다.
음악, 미술, 영화, 드라마 등이 그렇다.
문학계도 다르지 않다.
책이 많이 팔려야만 큰 수익을 벌 수 있는 소설가들은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글을 창작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오로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는 글을 찍어내는 기계로 절락해버렸다.
당시 24살이던 문학창작학과 대학생인 나는
이상만 간직하고, 현실은 외면했다.
박경준 작가는 내가 괘씸하다면서 담당 PD에게 편집하지 말고 내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방송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PD는 박경준 작가가 프로그램의 주주와 같은 존재이기에
그의 지시를 따르는 충직한 개였다.
내가 박경준 작가에게 덤비는 분량이 편집되지 않고 텔레비전에 방영됐다.
있는 그대로 방송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박경준 작가가 지원자들에게 독설을 넘어서 폭언과 폭행하는 장면은 편집이 됐고,
내가 박경준 작가에게 버릇없이 덤비는 모습만 방영됐다.
그것을 본 누리꾼들은
세상에서 가장 듣기 거북한 말들로 나를 공격했다.
그 날 이후로
난 인터넷활동을 비자발적으로 끊었다.
인터넷활동뿐만 아니라,
외출을 할 때 항상 마스크와 모자를 쓰는 버릇까지 생겼다.
학교는 당분간 나갈 수 없었다.
친구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나를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자의 횡포로 약자인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당하고만은 못살아!”
라고 혼잣말을 뱉으며
난 억울함을 표출할 방법을 찾았다.
나는 방송국을 찾아가서 항의했지만,
방송국에서는 경찰에 신고하여 나를 끌어내기 바빴다.
인터넷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남겼으나,
네티즌들은 ‘거짓된 핑계’라며 나의 진심에 똥물을 부었다.
모든 것이 막막해진 나는
한숨을 쉬면서
“에효. 사는 게 힘들다.”
라고 외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지원자들처럼 눈물이나 흘리고 쓸쓸하게 퇴장할 걸.
괜히 이길 수 없는 절대자에게 덤벼서 과혹한 처벌을 받았다.
눈물을 흘린 지원자들은 네티즌들의 동정심이 그들을 감싸주었지만,
부당한 횡포에 맞선 자는 핵폭탄보다 무서운 무기인 ‘댓글’로 맹공격을 당했다.
가족과 친척, 친구, 선배 등 모두가 나를 외면했다.
단, 한명만 빼고!
나의 휴대폰에 전화가 울렸다.
난 통화버튼을 누르며
“여보세요?”
“민후야. 괜찮아?”
“선배!”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고 따르던 선배다.
선배는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인성이 내가 보았던 모두를 포함하여 최고였다.
선배는 나를 위로해주면서
“거의 도착했는데?”
라고 말하며 나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외로움을 느끼던 나는 선배의 불음에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집밖으로 나갔다.
근처의 치킨집에서 술을 마시며 나는 진실을 선배에게 털어놓았다.
네티즌들은 믿어주지 않았으나, 선배는 나를 믿어주었다.
선배는 나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며
“이곳에서 너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분명히 도와줄 거야.”
라고 말했다.
그 명함을 바라본 나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상담소 법인명 ‘해결사’?”
라고 명함의 글을 읽었다.
선배께서는 그곳에서는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그런 곳이 어디 있어?’ 라고 외쳤으나,
겉으로는
“그래요?”
라면서 선배의 말에 맞장구를 쳐드렸다.
선배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눈을 바라보며
“꼭! 가봐!”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겉으론
“네. 가볼게요.”
라고 말했으나,
그곳에 갈 생각이 없다.
이틀 후.
나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상담소를 방문했다.
선배가 매일 전화하여 상담소를 가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상담소를 방문했다.
그러나
상담소에 도착하자마자 어마어마하게 놀랬다.
엄청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서 5~6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번호표를 뽑고, 신청서에 나의 고민을 적어서 기다렸다.
5시간 22분 후.
은행원처럼 보이는 여직원이 나의 번호를 불렀고,
나는 신청서와 함께 창구로 향한다.
창구직원은 나의 신청서와 번호표를 확인하고
나의 연락처와 신상정보와 고민내용을 컴퓨터로 찍더니.
나에게 2층의 어떤 방호수를 알려주면서 그곳으로 가라고 했다.
이층에서 나를 담당하게 된 상담사님께 신청서를 드리고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마치 의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상담사님께서는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타자를 열심히 치신다.
그리고 상담소 수수료를 안내받게 된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예? 얼마요?”
라고 재차 물었다.
약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상담원께서는 침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수수료가 가장 적은 방법이 오십만 원이에요.”
라고 말하며
해결방안을 일주일 뒤에 메일로 해결사님이 보낸다면서 수납증을 주었다.
너무나도 비싼 수수료에 멍하니 있는 나였다.
그러나
달리 선택권이 없다.
인터넷에서 마녀사냥은 시간이 흐르면 잠잠해질 것이라고 여겼으나,
갈수록 나에 대한 인심공격이 과격해졌다.
심지어
언론에서도 나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답답한 심정에 유명한 무당이 운영하는 점집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미신을 믿지 않는 난 ‘점집에 비싼 부적비용을 줄 바에는’ 이곳에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수납창구에 계산을 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10일 뒤.
나의 추리소설이 HOT하게 팔리고 있다.
나와 계약을 맺은 출판사의 관계자는
“작가님! 이대로라면 베스트셀러 부분에서 1위도 가능하겠어요!”
라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고작 24살의 대학생이 ‘작가님’으로 불리니깐 좋았다.
각종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3일 전.
기대를 하지 않고, 해결사의 메일을 클릭했다.
메일에는 이수외 선생님의 주소가 적혀있었고, 오늘 14시50분까지 이수외 선생님 댁으로 가라는 내용의 글이 전부였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게 뭐야?”
라고 말하면서도 시간을 보곤
“11시네.”
라고 말하며 얼른 외출준비를 했다.
그렇게 이수외 선생님 댁에 오후 2시 20분경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이수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오?”
“안녕하세요. 저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문이 열렸다.
이수외 선생님께서는 한적한 곳에 약 34평 되는 주택에 살고 계셨다.
방은 3개고 화장실은 2개 거실은 1개였던 주택이다.
마당에는 이수외 선생님께서 기르던 진돗개가 나를 바라보며
“왈! 왈! 왈!”
짖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얼굴을 알아보시더니.
“자네?”
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금방 외출하시려고 하셨는데,
나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외출을 포기하셨다.
이수외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거실로 나를 안내하시더니.
나의 어깨를 주무르며
“고생이 많겠구먼.”
라는 말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요.”
라고 호소했다.
이수외 선생님께서는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네에게 이것을 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네.”
라면서 usb를 나에게 건네셨다.
나는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게 뭐예요?”
“집에 가서 컴퓨터로 틀어보게나.”
라고 말씀하시고선 나의 어깨를 한번, 더 주무르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집으로 향했고, usb를 틀었다.
그것은 ‘희망의 작가’ 오디션에서 70번부터 80번까지
박경준 심사위원에게 독설을 들었던 장면이 그대로 남은 원본동영상이었다.
나는 그것을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공개했다.
그리고 각종 방송국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그 동영상이 올라오자.
‘희망의 작가’ 오디션에 참가한 많은 지원자들이
< 나도 박경준 새끼에게 욕먹었어! >, < 너무나도 잔혹하게 말하더라. 박경준 개새끼! >
등의 댓글들이 나를 지지하듯이 올라왔다.
급속도록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원본동영상은 언론을 통하여 대대적인 홍보가 됐다.
나에게 악성댓글을 퍼붓던 사람들이 옹호하는 쪽으로 변했고,
박경준 작가를 비난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박경준 작가에게
< 자기보다 대선배에게 모욕은 물론! 원고지를 배에 던지는 폭행까지! > ,
< 저런 새끼는 고소해서 감옥에 가야 돼! >,
< 부모도 없는 놈인가 봐! 하는 짓 좀 보소! >
등의 악성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전세가 역전되어 박경준 작가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나의 지지율은 급속도록 성장했다.
네티즌들은
< 당찬 모습이 멋지다! >, < 부당함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멋쟁이! >, <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기가 쉽지 않은데, 용기가 대단하시다! 응원합니다! >
라는 댓글들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출판사에서 나의 원고를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출판사는 나의 용기와 원고의 내용이 나쁘지 않다면서 출간날짜를 최대한 빨리 잡았다.
출판사 영업부 팀장님께서는
“작가님! 계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흐름을 타서 최대한 빨리 출간해야 됩니다.”
“뭐, 그러세요. 저야, 제 책이 빨리 나오면 좋죠.”
팀장님께서는 HOT한 이슈를 몰고 있을 때
나의 책이 출간되어야 높은 판매부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기에 편집부에서 빠른 교정을 거치고 번개보다 빠르게 서점에 출간됐다.
나의 필력보다는 인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출판사의 계산이 보였다.
내심 섭섭하기도 했지만, 내 주제에 찬밥과 따뜻한 밥을 가릴 순 없다.
출판사의 계산처럼 책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판매됐다.
온라인에서 나의 글이 재미있다는 평가가 급속도록 퍼졌다.
사실, 내가 보아도 나의 글은 재미가 없다.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작가지망생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박경준 작가는 힘 있는 문학계의 작가고,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나약한 지망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작가에게 덤비다가 긴 시간 악플에 시달린 나였다.
그런 나에게 동정표가 던져지는 것은 당연하다.
3주 뒤.
나의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심지어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판매 1위를 달성했다.
나의 통장에는 상상도 못할 인세비용이 입금되어 있었다.
“와! 꿈인가?”
통장에는 삼천이백삼십만 원이 출판사로부터 입금되어 있었다.
출판사도 나로 인하여 소형에서 중형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에
박경준 작가는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방송에서 심사를 하던 박경준 작가였다.
박경준 작가의 책은 서점에서 팔리지 않아서 구석으로 물러나는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수를 뽑는 오디션과 연기자를 뽑는 오디션,
그리고 댄서를 뽑는 오디션 등.
많은 오디션에서 ‘불공평 하다!’라는 지원자들의 원성이 올라왔다.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에 의하여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지원자가 있고,
아예 통편집을 당하는 지원자가 있다.
오디션에서는 최대한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어야 높은 득표수를 얻을 기회가 생긴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권력자가 자신의 취향으로 맞추어
누군가에게는 혜택을
누군가에게는 불이익을 선사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자랑했다.
외모가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모델을 뽑는 오디션에서 카메라가 촬영해주지 않으면 대중들이 그를 투표할 수가 없다.
반면에
외모가 모자라고, 특색이 없음에도 카메라가 많이 잡히고, 시청자들에게 많은 분량으로 노출되면 인기가 급상승한다.
이런 불공정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하여 국민들이 뿔이 났다.
또한,
악마의 편집도 대중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혹은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권력자의 횡포로!’
선량한 지원자가 악랄한 인간으로 연출되기도 했다.
반면에
독설로 인심공격을 하던 심사위원이 악인에서 착한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편집에 힘은 과히 놀라웠다.
한동안 나의 추리소설은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덕인지?
학교에서 내가 좋아하던 여대생이 나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선배, 사겨줄까?”
라고 나에게 말했고,
나는 순둥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응.”
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유명해지기 전에 나보다 1살 어린 아랑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10번도 넘는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이
“선배, 미안하지만, 난 공부해야 되는 여대생이야.”
라고 매번 거절했다.
그런데 내가 유명해지자. 그녀가 먼저 나에게 고백했다.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유명세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출판사에서는
“기세가 좋을 때 밀어붙여야 합니다!”
라면서 차기작을 빨리 완성하기를 재촉했다.
글이라는 것이 재촉한다고 빨리 쓸 수 없다.
물론,
가나다라마바사 아차카타파하처럼 대충 막 쓴다면,
빠르게 타자를 쳐서 원고지를 꽉 채울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독자들의 귀한 돈을 우롱하고 싶지 않았다.
출판사에서는 계속 재촉했고,
나는 계속하여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잠자는 시간과 식사시간들을 줄여서 최대한 차기작을 완성했다.
두 번째 소설은 로맨스소설을 출간했다.
첫 번째 추리소설보다는 아니지만, 나름 베스트셀러 3위까지 올랐다.
이연타를 날리면서 출판사들에게 전화가 빗발치듯이 왔다.
나에게 러브콜이 쇄도했다.
기존의 출판사보다 인세비용을 더 줄 테니
세 번째 작품은 자신들과 계약하자는 타출판사들이 많아졌다.
난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복했다.
통장을 정리할 때마다 엄청난 인세비용이 들어와서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랑이는
어느 날.
밤에 데이트를 하자고 전화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밤에?”
라고 말하며 나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지금 12시 30분인데? 곧 새벽이야!”
“싫어?”
“아니.”
“그러면 나와!”
“응!”
나는 빛의 속도로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하였고,
옷장을 펼쳐서 한번 밖에 입지 않은 아끼던 옷으로 변신했다.
총알보다 빠르게 아랑이의 집으로 향했다.
아랑이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전화를 걸었고,
아랑이는
“왔어?”
“응.”
“나갈게.”
라고 전화를 끊고선 로비문을 열고 아파트 입구로 나왔다.
지금 시간에는 야간 영화도 끝났고,
놀이동산도 문을 닫았다.
지금 데이트를 하자는 것은 야한 행위를 하자는 것밖에 없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아랑이를 바라봤다.
아랑이는 나를 유혹하는 천사의 표정을 지었다.
나는 침을 삼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술이라도 한잔 할까?”
“뭐 하러?”
“응?”
“쉬고 싶어.”
“뭐?”
밤에 잠자던 사람을 깨워서 데이트하자던 여자가
막상 만나니깐, 쉬고 싶다니?
나는 어찌할 줄 몰라서 난감한 표정으로
“어.......”
라고만 했다.
그러자. 아랑이는
“선배 바보지?”
“뭐?”
“쉬고 싶다고!”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랑이를 바라봤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나는 아랑이에게
“어떻게 하라고? 다시 집에 갈까?”
라고 말하자.
아랑이는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의 팔을 당기며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나는 아랑이보고
“어디가?”
라고 말했지만,
아랑이는 여군이라도 된 것처럼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아랑아! 어디로가?”
아무리 내가 물어도 아랑이는 답이 없다.
앞으로만 향하던 아랑이가
갑자기 멈췄다.
아랑이가 멈춘 곳은 파란색과 붉은 색이 혼합된 모텔이다.
그 제서야 아랑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사실, 떨리기도 했지만,
나도 아랑이의 몸을 원했고, 아랑이도 나의 몸과 융합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모텔에 들어가 어색하게 침대에 앉았다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몸을 손으로 사랑해주기 시작하더니,
끝내 겉옷과 속옷을 벗고 하나로 융합하여 짜릿한 밤을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아랑이와 나는 결혼했다.
20년 후.
나의 아내 ‘강아랑’과
나의 12살짜리 큰아들 ‘하성혁’, 10살짜리 둘째딸 ‘하민지’와
함께 살던 우리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다.
이유는 융자를 갚지 못했고,
매번 빚만 늘었으며, 은행에서 강제로 압류하였기 때문이다.
이자만이라도 갚았으면,
보금자리를 지켰을 텐데..
최근에 내가 자비로 출판한 책들이 팔리지 않으며 적자를 보았고,
작가가 글로 돈을 벌기는커녕 있던 재산을 깎아먹었다.
와이프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앞으로! 자비출판(저자가 출판비용을 감당하여 책을 출간.)하면 이혼이야!”
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응... 미안해..”
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40평짜리 큰 아파트를 은행에게 선물하고
답례로 17평짜리 작은 원룸을 받았다.
이때부터였다.
예쁜 짓만 하던 아랑이가 싸움닭 아내로 변했다.
44살이 되기까지 오로지 글만 쓰던 나는
글을 쓰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내의 소개로 억지로 배달일도 했지만,
다른 젊은 배달부보다 느려서 자장면이 불어터지거나,
주소를 잘못 찾아가는 실수들을 하면서 사장님에게 욕만 듣고 잘렸고,
작은 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직했으나,
워드를 작성하는 타자실력을 제외하고는 엑셀과 PPT작업 등을 못하여
업무가 미숙하다고 경영부서에서 해고시켰다.
이곳도 저곳도 나를 찬밥처럼 취급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괴로웠던 것은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다.
20년 전에 잘나가던 신인작가 시절에는 돈도 많이 벌었고,
각종 TV프로그램과 신문과 뉴스에도 나의 얼굴과 책이 함께 공개됐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봤다.
특히,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글을 잘 써서 똑똑한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라는 말과
“TV에서 야무지게 나와서 똑똑한 줄 알았는데, 일반인보다 맹하네.”
라는 말들이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작가는 만능인줄 착각한다.
작가는 만능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나를 채용한 고용주들의 기대치는 너무나도 높았고,
나는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여,
고용주들에게는 실망을 주었고,
나 스스로에게는 상처를 줬다.
외국의 유명한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유명한 연예인으로 살 순 있어도,
유명했던 연예인이 평범한 일반인으로는 살 수 없다.‘
외국인 배우가 했던 말을 절실하게 느낀 나였다.
꼴찌를 하던 학생이 어느 날, 전교일등으로 살 순 있어도,
일등만 하던 학생이 어느 날, 꼴찌를 하게 되면 자살을 한다.
인간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순 있어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추락하면 죽는다.
글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는
집에서 청소나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학교숙제나 등하교를 도와주면서 취미로 글을 쓰면서 초라하게 살기 시작했다.
반면에,
가장이 가장 노릇을 못하니, 아내가 무거운 짐을 도맡았다.
아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판사에서 일하였고,
퇴근하고선 식당에서 새벽까지 서빙을 했다.
아내는 나 때문에 잡동사니가 되어서 이것저것 돈만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사람이 힘들게 살면 온순했던 사람도 성질 더러운 개로 변한다.
아내가 그랬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어떤 아줌마가 위에 있던 휴지를 꺼내다가 실수로 아내에게 떨어트렸다.
그 아줌마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아내에게
“어머!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으나, 아내는 휴지를 아줌마에게 던지며
“죄송할 짓은 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독하게 말했다.
아줌마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그랬는데, 너무하시네!”
라고 말하자.
아내는 시식코너에 있던 뜨거운 만두를 요지로 찍어서 아줌마에게 던지며
“어머! 나도 실수네요!”
라고 시비를 걸었다.
아줌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았고,
아내는 양 손을 허리에 쥐고선
“실수로 사람을 죽여도 괜찮겠네?”
라고 말하며, 고기를 썰던 식육점 직원의 칼을 강제로 빼앗아서
아줌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와 자식들은 아내를 말렸다.
그 사이에 아줌마는 기겁을 하면서
“미친년이다!!”
라고 말하면서 번개보다 빠르게 도망갔다.
아줌마가 장을 보던 카트기는 주인을 잃은 강아지처럼 구석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아내를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 9시쯤 됐다.
원룸이다 보니 술집을 다니는 아가씨들이 많이 살았다.
술집을 다니는 아가씨들은 밤에 잘 없고,
아침에 항상
“우웩! 꽥! 우웩!”
라는 소리와 함께 토하면서 원룸에 들어온다.
그러나
우리 옆에 살던 아가씨는 오늘 휴무였던 모양이다.
친구들이랑 술을 많이 마셨는지. 계속하여
“우웩! 쾍! 쾍! 퀙! 우웩! 꽥~!”
이라는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푸르르륵!’ 거리며 오바이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식들과 나도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싸움닭인 아내는 밀대를 들고선 옆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시발 나와!”
다짜고짜 욕을 하던 아내가 무서웠다.
그런데
술집을 다니던 아가씨들은 아내 못지않게 독했다.
문을 열고 나온 아가씨는
“왜! 시발 년아!”
라고 말하더니 아내의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런데
아가씨는 토하면서 자신의 손에 오바이트가 묻었고,
역겨운 이물질이 그대로 아내의 머리카락에 붙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성질 더러운 아내에게
머리카락에 오바이트를 묻힌 것도 모자라서 아프도록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었다.
아내는 온몸이 휘청거리며
“아! 시발! 놔! 아! 아파! 압!”
거리며 결국 술집 아가씨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서운 술집 아가씨였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본 최고의 싸움닭이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지는 법이 없다.
아내는 무릎으로 술집 아가씨의 탱탱한 가슴을 찍었다.
술집 아가씨는
“으악!”
거리며 자신의 가슴을 잡으며 움츠렸고,
아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밀대로 술집 아가씨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술집 아가씨는 피를 흘리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큰일이다 싶어서 아내의 몸을 잡았고,
자식들도 울면서
“엄마! 그러지 마!”
라면서 아내의 몸에 안겼다.
그 제서야 아내는 진정했으나,
이미 경찰이 왔고, 사태는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술집 아가씨의 대가리에 구멍이 났고, 병원에서 꿰매기까지 했다.
술집 아가씨는 상해죄와 폭행죄로 아내를 고소하겠다면서 처벌해달라고 경찰에게 호소했다.
나는 술집 아가씨와 경찰에게 사정하면서 좋게 합의하기를 청했다.
그런데 술집 아가씨는
“잘 됐다! 술집 나가기도 싫었는데, 횡재했네!”
라고 말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마치 어마어마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미친 여자처럼 방정맞게 웃었다.
“깔깔깔깔깔깔~~~”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경찰들과 술집 아가씨를 바라보며
“우리 집에는 빚만 가득하지, 네년 따위에게 줄 돈은 10원짜리 하나도 없다.”
“그러면 콩밥이나 먹어!”
“어이쿠! 감사합니다! 너도 같이 묵자!”
아내는 자신의 두피가 찢어진 것과 허리에 긁혀서 상처가 난 부위를 휴대폰으로 찍어서
경찰에게 보여주고
“저도 진단서 땔게요. 이년이 가위 같은 걸로 저의 허리를 할퀴었어요!”
사실 술집 아가씨는 아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것은 사실이나, 가위는 들지도 않았고, 할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술집 아가씨가 자신의 허리를 할퀴었다면서 가위를 꺼냈다.
술집 아가씨는 기겁을 하면서
“아니에요!!”
라고 말했으나, 술집 아가씨가 기절하였을 때
아내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예상하여 가위에 술집 아가씨의 지문을 찍었다.
아내는
“거짓말! 네 가위고! 지문이 묻어 있어!”
술집 아가씨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으나,
자칫 자폭할 위기를 느꼈는지 손쉽게 합의를 해줬다.
이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났다.
매일 이 같은 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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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41회에 이어집니다. **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