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아마 많은 이들이 이 황금 같은 금언(金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봤을 터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니? 나무를 보지 않고 어찌 숲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가까운 숲속을 거니노라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그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눈길을 주다 보면, 어느새 숲속 깊이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울창한 숲 안에 갇혀 나무들이 어우러져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잘 모른다.
땅에서 좌우로 보는 세상과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은 다르다. 하지만 땅 위에서만 바라보니 나무들은 늘 하늘로 높이 치솟거나 땅밑으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은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보는 숲이나 거침없이 흐르는강물의 모습을 빠짐없이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 ’드론‘이라는 ’요술 거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등장했던 열기구나 항공기 등에서 구름 밑 세상의 진풍경을 엿보았을 뿐이었다.
서론이 길어졌다.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가 하면, ’사이버 카페‘에서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느낀 까닭이다. 정확한 통계는 잘 모르겠으나, 카페를 찾는 이들 중 대다수는 스마트 폰으로 접속할 것이다. 또 일부는 아직도 노트북이나 데스크 탑 컴퓨터로 카페를 방문하리라 본다. '컴'보다 '폰'을 애용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은 ’언제 어디에서나‘ 바로 바로 접속이 가능한 '접근성'과 손가락 터치만 하면 해결되는 '편의성'이 높기 때문이니, 폰 애용자들의 '짝사랑'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이 핸드폰과 늘 함께 하기에, 현대인들에게 '폰 러버'들의 스마트 한 '폰 놀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정착했다. 이 스마트 폰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 탓도 있지만, 그 편의성'이라는 장점 뒤에는 ‘짝눈‘이라 할 수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눈'으로 변할 수도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정중지와(井中之蛙)‘의 안목으로만 카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스마트 폰으로 카페를 찾는 이웃들이 ’우물안 개구리‘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의 그 편의성이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거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컴(또는 PC 모드)'으로 카페를 방문한 이웃들은 폰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종종 발견했을 터이다. 손바닥만한 '폰'에서는 보이지 않던 운동장의 펼쳐진 광경들이, '폰'의 시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큰 강물의 폭넓은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저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만 훑어볼 수 있었는데, 미처 보지 못했던 광활한 숲이 한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다시 말해 '컴'으로 들여다보면 보다 큰 '카페 세상'이 널찍하고 새롭게 펼쳐진다. 관심 있는 이웃들의 글 읽기와 댓글 달기가 좁디 좁은 ‘근시안’에서 보다 와이드한 ’거시적인 눈‘으로 카페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폰'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재미있고 유익한 글들과 관심을 끄는 새로운 이웃들이 쉽게 눈에 포착되기도 한다. 바로 앞의 나무만 보던 '편리한 눈'이 숲을 보는 '지혜의 눈'으로 바뀌는 셈이다. 만약 '폰'과 '컴'을 두루 두루 번갈아 사용한다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스마트 폰에서도 컴퓨터 화면처럼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바로 'PC모드'를 활용하면 된다. 한마디로 '폰'으로는 나무 한 그루만 보였는데 '컴'으로는 하늘 위에서 숲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눈에 숲 전체를 볼 수 있으니, 글과 댓글이 움직이는 흐름을 읽기가 쉽다. '폰'만으로는 그 흐름이 잘 보이지 않으니, 때로는 엉뚱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숲을 봐야하는데 나무만 보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는 까닭이다. (*)
첫댓글 40대가 되면 불청객인 노안(老眼)이 찾아온다.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보이질 않는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잘 보려면 돋보기를 끼지 않으면 안 된다. 왜 노안이 찾아오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노안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40대 부터는 가까이 있는 것을 너무 세밀하게 보지 말고 멀리 보라는 뜻일 게다. 보여도 못 본 체하라는 의미다. 젊어서는 나무를 보는 삶이었다면 노안이 온 후부터는 숲을 보는 삶을 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