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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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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6C5BWDwzaA8
뇌물의혹에 휩싸인 바이든 부자. 재선위해 외교에서 돌파구 찾나? 중국업체 뇌물. 백악관에서 발견된 코카인. 손녀 부인하게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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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천회 2시간 전 #125
[정치논평#125] 대문사진: 게티이미지
출처: https://youtu.be/LG5EG0vDJP0
멜 깁슨의 충격적 메시지 / The sound of freedom 개봉 / 그러나 수요는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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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30회 23분 전
미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악을 그린 영화입니다.
https://rumble.com/v2ys12k--the-sound-of-freedom-.html
멜 깁슨의 충격적 메시지 / The sound of freedom 개봉 / 그러나 수요는 늘고 있다
인신매매멜깁슨thesoundoffreedom소아성애헐리웃
제775회 JULY.08.2023, 럼블은 무광고라 자율 구독료는 소수의 목소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s://youtu.be/UjwzDDOGWEM
벨 통신 241, 프리고진 지우기 작업 // 미-러의 물밑 대화(한국식 휴전안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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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9천회 4시간 전
7/6, 러시아 현지 방송 편집 보도입니다, 오늘은 프리고진에 대한 러시아 공영 방송의 보도 행태를 집중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이 화면은 러시아 연방 안보 위원장 파뜨루쉐프가 현재 러시아국내 테러 활동 경계 강화를 발표하는 장면입니다 (운송, 에너지, 생화학, 화학, 수력발전소 분야 대량 파괴 예상)되므로 대 테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발표를 합니다, 그런데 이 방송에 연이어 갑자기 아나운서가 등장하면서 최근에 뜌멘지역 에서 발생한 테러 미수 사건 보도와 동시에 주제와 동떨어진 바그너 군의 군사반란 2주일이 지난 현재 상황을 정리한다고 하면서 테러와 바그너군 반 …
출처: https://youtu.be/ZzLKzHjcL30
민간인 피해보다 러시아의 승리가 두려운 미국!/러시아 손에 넘어간 스톰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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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3천회 1시간 전
조 바이든이 CNN에 출연해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한 준비가 아직 안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치매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이든은 말 실수를 많이 합니다. 얼마전에는 우크라이나와 이라크를 헛갈리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바이든이 약 먹는 것을 까먹은 것 아니냐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youtu.be/xnvCbzyfSUw
절정에 달한 젤렌스키의 패악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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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1천회 4시간 전
우크라이나군이 전장에서 참담하게 패하자 자포로제 원전을 목표로 흉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젤렌스키가 유럽최대 원전에 대한 False Flag attack으로 나토를 분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면서 서방이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https://youtu.be/bgLP00oyBqg
NBC, 러미 비밀협상 단독 특종! 알고보니 황당한 창작소설!
조회수 1.1만회 · 18시간 전...더보기
박상후의 문명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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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YMg-3i1k-SE
에어울프를 타고 북한을 여행하자! (플라이트시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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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28회 스트리밍 시간: 2시간 전 #MSFS #엘랑 #비행
토요일엘랑 집에서 가상 여행을 즐겨봅시다. #MSFS #엘랑 #비행
출처: https://youtu.be/E2cuDLL1mgs
꿈의 에너지 인공태양 실현 위한 인류의 도전! 레이저 핵융합 개발의 역사 [레이저 핵융합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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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에서 레이저 핵융합 방식으로, 세계 최초 핵융합으로 에너지 순생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레이저 핵융합 관련해서 어떤 연구 결과들이 있었는지, 이 레이저 핵융합 방식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KSTAR 토카막 방식과는 어떻게 다른지, 공진 연구원이 알아보았습니다!
출처: https://youtu.be/Hw1q_Rl2_P4
세계 최초 핵융합 점화 성공! 미국 레이저 핵융합 시설 원리 [레이저 핵융합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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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만회 8시간 전 #레이저 #에너지 #핵융합
2022년 12월, 미국 3대 핵무기 연구소 중 하나인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미국 국립점화시설(NIF)에서 세계 최초 핵융합 점화 성공소식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죠. 영화 스타트렉에서도 촬영 세트로 쓰인 그곳! 세계 최강 레이저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안될과학의 공진 연구원이 직접 방문하며, 어떤 원리로 레이저 핵융합을 구현해 내는지 알아보았습니다! …
출처: https://youtu.be/fCPITGp9ayk
작년 평화협상, 젤렌스키가 막판에 뒤집었다/아레스토비치 젤렌스키 전 고문,
7월 8일
2023년
지피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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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mvkYQHebcI0
우크라이나 전황(7/5)- 우, 자포리자 반격부대 50~80%씩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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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천회 10시간 전
출처: https://youtu.be/6T51DRWNVmk
터키가 국가 이름을 변경한 진짜 이유 - 터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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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0만회 9개월 전 #튀르키예 #에르도안 #터키
#간다효 #터키 #튀르키예 #투르크 #칠면조 #터키역사 #에르도안
출처: https://youtu.be/9W8kLRe-u7Y
터키의 국뽕 - 터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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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만회 9개월 전 #튀르키예 #에르도안 #간다효
#간다효 #터키역사 #튀르키예 #아타튀르크 #에르도안 #흉노
출처: https://youtu.be/WFFjRuE-PWA
터키를 공부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하는 사람 - 터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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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만회 9개월 전 #튀르키예 #에르도안 #간다효
#간다효 #무스타파케말 #아타튀르크 #터키역사 #튀르키예 #에르도안
출처: https://youtu.be/a4x3ZekjNLI
터키의 물가상승률 14000000% - 터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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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7만회 9개월 전 #에르도안 #이스탄불 #간다효
#간다효 #터키역사 #에르도안 #물가상승률 #이스탄불 #정의개발당
출처: https://youtu.be/KVNwsmcnAVs
터키의 실제 존재하는 그림자정부 - 터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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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_JDu2G3Qc_g
터키에서 정치하는 방법 - 터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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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6만회 9개월 전 #튀르키예 #에르도안 #간다효
#간다효 #에르도안 #정의개발당 #터키정치 #아야소피아 #튀르키예
출처: https://youtu.be/RR_JgYNpnqk
터키가 지정학적으로 개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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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효 #터키 #나토 #러시아-우크리아나 전쟁 #지역패권
출처: https://youtu.be/c4GVscOg_WY
또 또 또 당선된 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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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youtu.be/OdmHf9IUh4U?list=PLnkrr897R7r-nSJuIdLPyW2OfwmR7YnqD
고추와 마늘을 사랑하는 나라가 유럽에 있다고? 유럽 속의 한국, 헝가리에 대해 알아보자! [헝가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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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4만회 1년 전 #헝가리 #최준영박사 #Hungary
세상의 모든 일이 궁금한 호기심대마왕 최준영 박사와 함께 떠나보는 지구본 여행 #지구본연구소 #최준영박사 #헝가리 #고추 #부다페스트 #Hungary #훈족 …
출처: https://youtu.be/C-RiccjqzIo?list=PLB623ABD452050677
잊혀진 발해인, 말갈족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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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만회 13년 전
2006년 6월 22일 방송 broadcasted on June 22, 2006, EBS
출처: https://v.daum.net/v/20230708183946286
"낙타 복제요? 150마리 넘죠"…만수르와 손잡은 황우석 충격 근황
김인한 기자입력 2023. 7. 8. 18:39
UAE 최첨단 연구 인프라서 개·낙타·코요테 등 동물복제 연구
과거 연구윤리 문제 반성, 담담한 모습 "과욕 핑계댈 수 없어"
"神 질서 거역한다는 비판 동의 못해,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
넷플릭스는 최근 UAE(아랍에미리트)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에서 연구 중인 황우석 박사(70) 근황을 조명한 다큐멘터리(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를 공개했다. 황 박사가 자신이 복제한 경주용 낙타가 달리는 모습을 본 이후 잠시 고뇌에 빠진 모습. /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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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최근 UAE(아랍에미리트) 바이오테크 연구센터에서 연구 중인 황우석 박사(70) 근황을 조명한 다큐멘터리(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를 공개했다. 황 박사가 자신이 복제한 경주용 낙타가 달리는 모습을 본 이후 잠시 고뇌에 빠진 모습. / 사진=넷플릭스
"저런 낙타는 몇 마리나 복제했나요?"
"150마리가 넘죠."(황우석 박사)
동물 복제 연구로 20여년 전 세상을 뒤흔들었던 황우석 박사(70) 근황이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그의 모습이 포착된 곳은 UAE(아랍에미리트). 황 박사를 현지로 영입한 인물은 바로 세계 최고 갑부,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총리를 비롯한 현지 정부였다.
7일 과학계에 따르면 황 박사는 UAE 바이오테크 연구센터를 오가며 '동물 복제' 연구를 수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는 최근 '킹 오브 클론: 황우석 박사의 몰락'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다. 이 영상에는 황 박사가 최첨단 연구 인프라에서 개와 낙타 등을 복제하는 모습이 담겼다.
출처: https://geopo1.home.blog/2023/07/08/케네디-암살-기밀-문서/
케네디 암살 기밀 문서
바이든 행정부가 케네디 암살 기밀 문서의 공개를 미뤘다.
트럼프 정권에서도 정보부의 반발로 이를 공개하지 못했는데
바이든 정부에서도 공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미 의회가 케네디 암살 관련 기밀 문서의 공개를 2017년까지 하도록
결정했지만 미 정부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민주당 대선 후보에 나선 JFK의 조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강하게 비판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JFK의 암살 배후가 CIA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비판했었다.
실제 당시 조사를 결과도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결론이 났지만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식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추측들을 CIA는
음모론이라고 비하했다.
이것이 음모론이란 용어가 전세계 처음 사용된 배경이다.
정부와 정보부가 국민에게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만들어진 용어가
바로 음모론인 것이다.
즉 그래서 정부에게 음모론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것이 가짜 정보라기 보단
오히려 진실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머스크가 공개한 트위터 파일을 보면 트위터에서 떠돌던 음모론들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미 정부와 정보부는 그러한 주장을 음모론이며 가짜 정보라고 검열했지만
실제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
즉 과거엔 음모론이 진실과 같은 의미였다면 이젠 가짜 뉴스와 가짜 정보가
진실과 같은 의미가 된 것이다.
아무튼 바이든 정부에서도 이를 공개할 수 없는 이유는 이를 공개하는 순간
미국은 연방이 해체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국의 정보부가 국민이 뽑은 대표인 대통령을 총살하고,
이를 수십 년 간 은폐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지면 그 충격은
지금 상태에선 미 연방을 해체시킬 수도 있다.
당장 그 결과 CIA나 FBI, 국토안보부,DIA 등등의 16개의 미 정보부들이
그 존립이 위태워질 것이다.
CIA와 FBI 등은 당장 해체돼야 하는데 이것이 말이나 될까?
미 정부는 아마도 스스로는 영원히 공개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불법적으로 이들 기밀 문서를 파기해버릴 수도 있다.
미 CIA에 의한 케네디 암살은 사실상 미국이 독재 국가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출된 정부를 제거하고, 딥 스테이트의 그들이 그림자 정부로 정치를 좌우하는
이러한 국가를 우리는 독재 국가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geopo1.home.blog/2023/07/08/집속탄/
집속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집속탄 지원을 승인했다.
집속탄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전황이 바뀔 일은 없다.
그것이 엄청난 무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나 아프간, 이라크 전쟁 등에서도 이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들 전쟁에서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약 10년 간 이어졌던 베트남 전쟁에도 ,약 20년 간 이어졌던 아프간 전쟁에서도
모두 집속탄을 사용했지만 미국은 결국 빤스런을 하고 튀었다.
즉 이러한 무기가 전황에 반전을 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미국은 이러한 무기를 지원한다고 할까?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미국의 주특기인 민간인 살상 즉 인종청소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공급하기로 한 열화우라늄탄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포탄이 전황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순 없지만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민간인에 대한 인종청소엔 아주 효과적이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집속탄은 그러한 위험으로 인해서 2008년 123개국이 이의 사용을 금지하는
협정도 맺었다.
물론 군사 강대국들이 빠지면서 실질적 효과를 볼 순 없었지만
그만큼 비인도주의적 무기란 이야기다.
그런데 아가리만 털면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도주의적 개입을 외치는
미국이 국제적으로 지탄 받는 비인도주의적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도주의의 신으로 숭배하는 미국의 민낯이다.
결국 미국이 지원한 집속탄은 많은 민간인들을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게
만들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민간인들을 말이다.
심지어 미국은 전쟁 당사국이 아닌 제 3자의 국가가 아닌가?
그런 국가가 영국과 함께 국제적으로 비인도주의적 무기로 지탄을 받는
열화우라늄탄이나 집속탄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아는 국제 인권 단체나 환경 단체 등은
이러한 영미의 행위에 아가리를 굳게 다물고 있다.
수많은 국제적 인권 단체, 유엔 사무총장이나 유엔 인권위 또는 국제적 환경 단체 등이
모조리 영미의 행위엔 아가리를 묵념한다.
거의 과학에 가까운데 이러한 이유는 다들 알 것이다.
그들의 배후가 영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조리 어용단체란 이야기다.
만일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지구를 넘어서 전우주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앵글로색슨족 영미는 계속 레드라인을 오가고 있다.
영미는 앞으로 생물학 무기나 화학 무기 그리고 결국 핵무기도 지원해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그들이 매일 매일 잠들기 전에 꿈꾸는 가슴 뛰는 마지막 바람이기 때문에.
출처: http://m.jajusibo.com/62919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수 있을까?…미러 비밀 회담 진행
지난 3월 뉴욕서 비밀 회담
- 작게+ 크게sns공유 더보기
박명훈 기자
기사입력 2023-07-08
미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관리들이 뉴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와 관련한 비밀 회담을 가졌다는 미국 발 보도가 나왔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 NBC방송은 미국의 전·현직 관리 6명을 인용해 지난 4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연락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의 고위급 외교 정책 인사들이 뉴욕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측 인사들은 미국 측의 리처드 하스 당시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 CFR의 러시아 전문가 토머스 그레이엄,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학 교수 등과 만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회담을 진행했다고 NBC는 전했다.
NBC에 따르면 미국이 회담을 한 목적은 러시아와 꾸준한 소통 유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를 둘러싼 향후 협상, 러시아와 타협 및 교섭의 여지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회담은 관리와 민간(학자, 전문가)이 함께 참여하는 이른바 트랙 1.5(반관반민) 대화, 민간인만 참여하는 트랙 2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민간이 참여하는 회담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지만, 적대국의 관리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충돌을 누그러뜨리는 측면도 있다. 미러 양국은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문제에 깊숙이 관여해온 전 국방부 관리들과 메리 베스 롱 전 국방차관보 등도 배석했다고 NBC는 전했다.
나토와 관련한 미국 인사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나토의 전선 후퇴’와 관련한 논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이 나토를 러시아 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나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지금도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NBC는 이번 회담에서 오간 내용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보고됐다면서, 이번 회담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NSC가 미국의 대외·국방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이러한 NBC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를 볼 때 미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논의와 관련한 바이든 대통령의 관여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로서는 회담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법하다.
미 언론을 통해 비밀리에 진행되던 회담 내용이 알려진 건 미국이 러시아와 대화를 하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회담에 우크라이나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시할 만한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회담에서 미국과 러시아만 비밀리에 만났다는 건 결국 우크라이나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고 있음을 추정케 한다.
출처: http://www.ccmessage.kr/news/articleView.html?idxno=45018
[김용택 칼럼] 진짜 독립유공자가 누군지 가려내겠다고..?
김용택 이사장
승인 2023.07.05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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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정치인부터 가려내자
김용택 이사장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가짜 독립유공자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가짜 독립유공자”를 가려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박 장관은 “항일운동을 했다고 무조건 OK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설이 아니라, 북한 김일성 정권 만드는 데 또는 공산주의 혁명에 혈안이었거나 기여한 사람을 독립유공자로 받아들일 대한민국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공정과 법치를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내내 상식에 통하지 않는 정치를 밥먹듯이 반복하고 있다. 답을 먼저 정해놓고 짜맞추기식 과정을 만드는 꼴을 보면 이 사람이 이성을 가진 사람인지 국민을 멍청이로 아는지 이해가 안된다.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자기가 한말은 모두 정의요, 공정하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만 해도 그렇다. 온 국민이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면 해산물은 물론 미역이며 소금까지 먹을 수 없다며 난린데 윤 대통령은 “어느 집 개가 짓는가”식이다.
검찰의 수사기준이 어언제부터 이런 식이었는지 몰라도 그들은 원칙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으면 ‘정의’요, 맞지 않으면 ‘불의’라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자리 지키기에 이력이 난 ‘높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비위 맞추기에 전문가들이다. 윤 대통령이 일본 정계 인사들을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한 말 한마디에 주권자는 안중에도 없고 아직 방류도 안 했는데 식당에 몰려가 회식을 하는 꼴을 보면 참 가관이다.
심지어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수산시장에 몰려가 수조의 물을 손으로 떠 마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들 의원들은 총선에 대비한 작전인지는 몰라도 나름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들이 하는 짓치고는 유치하고 저열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본 국민들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몰라서일까? 맹자는 부끄러워하고 (남의 악행을) 미워하는 마음이 바로 의를 행하는 시초(羞惡之心 義之端也)라고 했는데 이들은 보통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나 유전인자가 다른 “수오지심”도 없는 모양이다.
<서훈 취소 예정자는 누구일까?>
독립유공자예우법에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일제에 항거한 적 있는 사람이 서훈의 대상이다. 이 법 제4조 제2호에는 “보훈의 대상인 국가유공자에는 독립유공자뿐만 아니라 전몰군경 등 다양한 유형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훈도 공헌도와 희생도에 따라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헌도의 측면에서 독립유공자를 보면, ‘국권의 회복’이라는 공헌은 어느 유형의 국가유공에 못지 않게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못박고 “국권의 수호와 회복을 위한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1년동안 일관성 있게 추진한 일은 오는 총선과 대선에 대비해 검찰을 앞세워 당선 가능성이 있는 인사에 대한 상처주기와 흠집내기다. ‘아니면 말고...’식의 이러한 전술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과 국민의 힘 지지율 상승에 상당한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재명 대표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이 조사의 핵심이다. 권력의 첨병이 된 사이비 언론이 귀가 아프게 반복 보도한 이재명대표의 혐의는 더불어민주당 내분으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국가 보훈처가 ‘서훈이 취소될 수 있는 인사’란 박헌영의 부인 주세죽, 김일성의 외삼촌 강진석,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 손용우, 고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부모인 김근수·전월선 등이다. 정적을 국가보안법이라는 카드로 간첩으로 몰아 정치생명을 말살하던 수법이 윤석열 정부가 순진한 국민의 정서를 이용해 정권에 비판적 인사 솎아내기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은 왜 미운살이 박혔을까? 김 회장은 “촛불혁명으로 친일에 뿌리를 둔 정권은 무너졌지만 이들을 집권하게 한 친일 반민족 기득권 구조는 아직도 카르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느니 “4·19혁명으로 이승만 친일 정권을 무너뜨렸고, 국민 저항의 정점에서 박정희 반민족 군사정권은 자체 붕괴됐다”고도 했다.
이 정도가 아니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은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에 무릎 꿇었고, 박근혜 정권은 촛불혁명으로 탄핵됐다”며 “친일파는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지금도 가난에 찌들어 살고 있는데, 이런 불공정을 비호하는 자들을 방관하면서 공정을 내세울 수 있느냐”는 말도 하고 다녔다. 광복회의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할 말을 했는데 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를 아부파들이 이를 가만두고 보겠는가?
김원웅 점 공복회장은 “21대 국회에서는 ‘친일찬양금지법’ 제정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악질 친일인사 단죄를 하게 하는 관련법 개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의 주장과 다른 점은 “악질친일인사”와 “가짜 독립유공자”다. 보훈처가 ‘허위 유공자’를 가려내는 것은 보훈부가 해야할 임무다. 기준에 미달하거나 공적 정보가 허위로 드러나면 서훈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유공자예우법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일제에 항거한 적 있는 사람’이다.
일제 식민지에 벗어나기 위한 활동에 좌우익이 따로 있는가? 윤 대통령의 공정은 원칙도 기준도 없는 가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능은 둘째치고 친자본, 반노동, 반민중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물가폭등 문제에 대해 대처할 정책도 없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를 적대시하고 있다. 국민에게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이겠다는 대통령을 주권자들이 구경만 할 수 있는가? 사대굴종 편향외교로 남북관계가 한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로 몰아가고 있는 대통령을 주권자인 국민들은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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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74
윤석열은 문재인 정통 계승자
윤석열과 문재인 세력이 같다는 것을 각성해야 나라가 산다. |
글: 이범주(시사평론가)
대북인식에는 윤석열과 문재인이 다르지 않아
북 평창올림픽 참가하자 문, 운전자론 내세워
문, 북과 협력하자면서 김정은 참수 작전 강화
▲ 대북 인식에서는 문재인과 윤석열이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편집인 주). 자료: 서울방송 보도 발췌.
아래는 6년 전 문재인이가 대통령 되고 난 직후의 발언 요지와 나의 평가다. 대북인식에 관한 한 지금의 윤석열과 뭣이 다른지 알 수 없다. 반노동, 반농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지금의 윤석열은 문재인의 정통 계승자다.
문재인 때 지금 윤석열에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가열차게 욕하고 비판했으면 지금 세상은 좀 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돌아다니며 대북제재 구걸행각 하다가 북이 평창 올림픽 참가 선언하고 미국과의 대화 제안하는 것에 편승해 운전자론 운운하며 무게 잡았지. 나중에 삶은 소대가리 욕이나 쳐들어 먹고 말이지.
이런 얘기 하다가 친구들한테 왕따나 당하였다. 문재인은 소xx, 나쁜 소xx다.
6년 전 2017년 7월 2일 문 대통령의 미국 기자회견요지
- 현 상황의 핵심적인 사안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다.
- 우리도 남북평화를 원한다. 8000만의 시장과 대륙진출의 전망이 있다.
-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불법이다. 한미간의 공동군사훈련은 방어를 위한 합법적인 것이다. 불법과 합법을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설령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한다 해도 한미간의 훈련을 축소하거나 폐지할 수는 없다.
- 북한과의 협상의 입구는 미사일과 핵의 동결이고 출구는 완전한 폐기이다. 동결에서 폐기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며 각 단계는 완전히 검증 가능한 양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우려
1. 북한은 핵을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어수단으로 보고 악전고투의 노력 끝에 핵무기를 가까스로 갖추었다. 그걸 문 통은 '도발'과 '불법'으로 단정했다. 이런 입장을 대화의 당사자인 북한이 용납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2. 한미간의 대규모 훈련은 참수 작전이라 명명하듯 북한지도부 제거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걸 순전히 방어용이라 두둔하며 앞으로도 죽 해나갈 것이라는 문 통의 말을 북이 어찌 받아들일까. 당신이 그 상황이라면 이해하겠는가.
3. 북한이 정작 중요하게 요구하는 12명의 처녀와 김연희 씨의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4. 북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미국과의 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고 더불어서 요구조건에 응하지 않을 시 제재를 이어가겠다고 언명하니 이를 두고 북은 미국에 붙는 반민족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5. 이런 상태에서 남북한 평화정착으로 8000만 시장 운운하는데 북한 처지에서 보면 ''이자들이 고저고저 통일을 원하기는커녕 우리를 이용해 돈 벌 궁리만 하고 있는구먼 기래'' 이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이러려고 사드 온갖 욕 얻어먹으며 사고, 40조 그 많은 돈 풀고 왔나, 하는 생각 아니들 수 없다. 많은 분이 여소야대의 불리한 조건과 한미간의 오랜, 쉽지 않은 현실적 관계를 이야기하며, 혹은 문 대통령의 심모원려를 기대하며 왜 그리 성급하냐며 좀 두고 보자고 한다.
난 걱정된다. 아무리 외교적 수사라 하더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그렇게 보기엔 일찍부터 균형을 너무 잃어버렸다.
출처: http://www.ccmessage.kr/news/articleView.html?idxno=44921
[유영안 칼럼] 시민단체 도둑으로 몰아간 윤석열 특활비 기록 무더기 증발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승인 2023.07.03 02:38
시민단체의 소송에 의해 윤석열이 중앙지검장 및 검찰총장 재직 시 쓴 특활비 자료가 공개되자 분석이 시작되었는데, 29일 1차 분석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대로 충격적이었다. 자료 대부분이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자료를 분석한 ‘세금 잡아라’ 하승수 대표는 한 마디로 기가 막힌다고 한탄했다. 그 이유는 검찰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제출한 자료 60%가 증빙을 알 수 없는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수법은 다음과 같다.
(1) 카드 영수증 일부러 흐릿하게 복사하기 (2) 시간, 장소, 업체가 없는 영수증 (3) 아예 영수증조차 없는 게 태반 (4) 어디에 쓴지도 모르는 백지 영수증 |
이에 대해 시민단체가 항의하자 검찰 측은 영수증이 오래 되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둘러댔다. 아니, 어떤 영수증이 불과 4~5년 만에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흐릿해진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인쇄술은 세계 최고인데 말이다. 혹시 복사기 토너가 떨어진 것 아닌가?
이건 뭔가 구린 데가 있으니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사들과 룸살롱에 간 게 드러나면 난리가 날 테니 그쪽 영수증은 아예 첨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주소가 엉터리인 다른 영수증으로 대신했을 수도 있다.
파일이 아닌 복사지로 준 꼼수
자료가 16,735장이나 되어 분석하는 데도 한 달 넘게 걸리게 생겼다. 원래 이런 경우 파일을 줘야 하는데, 검찰은 부러 복사해서 주었다. 분석에 시간이 많이 걸리게 한 것이다.
현재 ‘세금잡아라’ 와 ‘뉴스타파’의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료가 워낙 부실한데다 일일이 확인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경기도 법카 가지고 난리 펴더니 부메랑
시민단체의 소송에 검찰의 특활비가 공개된 것은 사상 초유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상 기밀 어쩌고 하며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법원이 자료를 공개하라고 하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랴부랴 ‘뗌질’을 하여 자료를 보낸 것 같다.
이게 왜 파장이 크냐 하면 윤석열이 걸핏하면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최근엔 시민단체의 보조금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은 시민단체가 검찰 특활비 가지고 시비를 걸면 그동안 시민단체가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 가지고 맞불을 놓으려 한 것 같다. 그쪽으론 전문가가 아닌가.
대선 때 윤석열 캠프는 김혜경 여사의 경기도 법인 카드 가지고 난리를 폈는데, 이제 자기들이 그 부메랑을 맞고 있다. 당시 경찰은 초밥 몇 개, 김밥 몇 개까지 언론에 흘리며 망신을 주었다. 하지만 윤석열이 쓴 특활비는 무려 147억이나 되어 경기도 법인 카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74억 원 지출 증빙자료 ‘무단 폐기’
검찰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지출 증빙자료는 2019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모두 2년 9개월치다. 그런데 이 가운데 4개월치, 전체 자료의 무려 10%가 통째로 사라진 사실이 확인됐다. 증빙자료가 없어진 기간 동안 검찰이 지출한 특수활동비는 74억원이다.
74억원에 달하는 자료가 없다는 것은 거기에 핵심이 숨어 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 윤석열이 권력을 잡고 있으니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이게 해명이 안 되면 내년 총선 때 국힘당 후보들은 애 좀 먹을 것이다. ‘윤로남불’이란 말이 다시 회자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특활비 자료도 무더기 ‘증발’
2017년 6월과 7월,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사용한 특수활동비의 지출 증빙자료도 통째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 보도에 의하면 이 두 달 동안 윤석열이 특수활동비를 지출한 기록은 있는데, 지출 증빙자료는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과 규정에 따라 반드시 있어야 할 증빙 자료가 왜 사라졌을까? 뭔가 구린 데가 있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혹시 룸살롱에 간 기록들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특활비 290억 원 ‘전액 현금화’
검찰이 내놓은 나머지 특수활동비 증빙자료에도 문제가 많다. 거의 모든 정보가 지워져 있었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서 제목과 금액, 날짜 정도뿐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검증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지만, 숫자만 가득한 특수활동비 자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돌파구가 쉽게 열리지 않고 있다.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검찰청을 압수수색하면 된다. 그런데 검찰이 그걸 할까? 그래서 특검이 필요한 것이다.
식당 정보 가린 백지 영수증
업무추진비 증빙자료의 실태도 충격적이다. 검찰은 업무추진비 증빙자료를 내놓으면서 정면으로 법원의 판결을 무시했다. 검찰은 신용카드 영수증에 있는 식당 이름은 물론, 심지어 결제 시간대까지 모두 지워버린 자료를 내놨다. 왜 그랬을까?
업무추진비 증빙자료 가운데 복사가 너무 흐릿하게 돼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한 ‘백지 영수증’이 전체의 60%가 넘었다고 하니, 묘하게 이 %는 윤석열 정권의 국정 지지율 부정율과 비슷하다. 우연일까?
검찰이 검증 조직적으로 방해
검찰이 이처럼 엉터리 자료를 준 것은 자신들의 주군을 비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모르긴 모르되 자료를 꿰맞추느라 욕 좀 보았을 것이다. 의혹을 수사해야 할 검찰이 이런 짓이나 하니 국민 신뢰도가 최하위 아니겠는가?
공무원이 국민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 공개하는 것은 상식이다. 오직 윤석열 검찰만이 그걸 거부하고 ‘똥배짱’을 부리다 겨우 공개한 것도 대부분 엉터리다. 윤석열이 강조한 공정과 상식, 법치주의가 모두 가짜란 게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윤로남불’이다.
증빙서류 삭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함께 내년 총선 때 최대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표창장 하나로 조국 가족을 도륙한 윤석열 검찰이 이제 국민들에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이제 너희들이 당해보라. 국민들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조작과 협박만으로 성공한 정권은 없다. 탄핵만 앞당겨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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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악마의 맷돌’ 자본주의 실체를 밝힌다
김용택 이사장
승인 2023.07.07 07:59
인간의 삶을 왜곡하는 자본주의
김용택 이사장
짓밟히고 배고픈 설움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지를... 그것도 남의 나라 종살이를 36년간이나 한 민적은 그 통한의 고통이 어떤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1910년 8월 22일 나라를 빼앗긴지 9년만인 1919년 3월 1일.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는 31독립선언을 선포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모두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우리 후손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할 것”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 1,678만 8천400명 중 106만여 명이 참여한 3·1운동은 7509명의 사망자와 4만 7천여 명이 구속되는 등 거국적인 독립운동으로도 일제의 간악한 탄압을 달라진게 없었다. 견디다 못한 우리 선각자들은 1919년 4우러 11일, 남의 땅 상해에서 정치의 균등(균정권), 경제의 균등(균리권), 교육의 균등(균학권)인 개인간, 국가간, 만민평등 사상인 삼균주의 정신을 담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임시헌장을 세계만방에 선포하였다.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있었던 ‘대한제국’은 임금이 주인이 나라다, 3·1운동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1919년 4월 11일 우리의 애국지사들은 ‘대한민국’을 운영할 헌법을 선포하고 나라를 세웠다. 1948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나라를 되찾았지만 맥아더 사령관은 “38이남의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오늘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지역을 점령( Occupy)’한다는 포고문을 발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때까지 또 다른 노예 생활을 겪어야 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있는가? 우여곡절 끝에 해방과 함께 이땅에 들어 온 들어 온 자본주의는 임시정부가 추구한 ‘3균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19년 임시정부의 건국 강령은 보통선거제, 토지국유제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였다. 하지만 1946년 3월 5일 북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과는 달리 이승만정부는 1946년 2월에 발표한 농지개혁에서 '유상매입 유상분배' 방식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본이란 만지기만 하면 황금으로 변하는 마이더스(미다스)의 손처럼 자본주의를 만나면 자본에 잠식당하고 만다. 인간의 욕망 앞에 자본주의란 정치도 경제도 문화며 종교까지 황금(돈)으로 변하고 만다. 자본주의에는 가난하다는 것, 돈이 없으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죄가 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국민들의 삶 자체의 왜곡시키는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는 그가 쓴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순식간에 인간(노동)과 자연(토지)과 구매력(화폐)을 황폐화하는 시장경제의 속성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노동력을 소유자 마음대로 처리하면 그것을 담고 있는 인간의 육체적ㆍ심리적 실체마저 하나의 소유물로 사회변화에 노출돼 희생되고, 자연은 오염되고 파괴된다. 구매력 수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맡길 경우 기업은 원시사회가 홍수나 가뭄에 시달렸듯 주기적 파산을 겪는다. 경제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에 좌우됐다고 보는 그는 시장경제의 재앙 또한 경제를 다시 사회적 통제 안에 가두어 둠으로써만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란 자본 즉 돈의 가치를 긍정하고 내세우는 사상이다. 오펜하이머는 자본주의란 ‘자본 및 그 이익에 의하여 주로 지배되고 있는 사회 조직’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했다. ‘토대’는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의 나머지 모든 부분(문화, 제도, 정치권력, 종교, 국가정치 등)은 ‘상부구조’로서 토대에 의해 규정된다“고 정의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경제적인 것과 경제외적 제도가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가? 사회적 권력이며 이데올로기가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 헌법 제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고 했지만 ‘자본주의 경제 구조는 법적·정치적 상부구조 형성에 필요한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헝가리 출신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공동체를 맷돌처럼 갈아버리는...”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했다. 자본주의는 1936년 찰리 채플린의 <모든 타임즈>처럼 <악마의 맷돌>이기도 하지만, ‘절대적 기준을 정해 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만드는 세상은 정말 헌법이 보장하는 ”모든 국민이 행복추구권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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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금고 특별검사 연기
행안부가 연체율이 높은 새마을 금고 30곳에 대한 특별검사를 연기했다고 한다.
뱅크런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검사를 통해서 빨리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하게 되면 오히려 예금자들이 불안해 할 것이란 변명을 대면서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검사를 연기한다고 한다.
난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시장이 안정화되면 굳이 특별검사를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예금자들이 불안해 하고 그래서 뱅크런 조짐도 보이며 시장이 불안해지니까
빨리 검사를 하고, 후속 조치들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가
시장이 안정되면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일까?
그러다가 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져서 뱅크런 사태가 터지고 이것이 제 2금융권 전체로
그러다가 시중은행들까지 위기에 빠지면 그때에도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계속 기다릴 것인가?
시장의 안정은 둘째고 일단 어떤 상황인지 검사를 통해서 정확하게 피악하고,
그에 따른 선제적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석이 아닌가?
그래서 자신들도 스스로 특별 검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말도 안되는 변명을 대면서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오히려 그런 행동이 더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출처: https://youtu.be/VIiO83xWBh8
헝가리 부가크 쿠릴타이 축제 2년마다 유라시아 유목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훈족의 후예 헝가리는 아틸라와 영웅들을 기린다, 한국도 참가, 훈족의 코미타투스 로가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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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9만회 5년 전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27326.html
서양 역사 속 훈족은 왜 악인이 되었을까
등록 2020-02-07 05:00
수정 2020-02-07 11:01
[책&생각]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19)흉노는 유럽을 정복했을까? ‘게르만족의 대이동’ 불러온 훈족의 유럽 진출 이후 동양인에게 악마 이미지 덧씌워 흉노와 훈은 유목문화 공유한 민족일 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핑계 동양인 차별 우려 |
알란을 침략하는 훈족. 1870년 그림으로 이때부터 훈족에는 청나라 시기 중국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황화(黃禍, Yellow peril)의 본격적인 등장이다.
서양사에서 중세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게르만족의 대이동’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서기 4~6세기에 강력한 기마문화를 가진 훈족이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연쇄적으로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 계통 민족들의 활동에서 유래했다. 유라시아 고고학에서는 이 시기를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부른다. 게르만족이 아니라 유라시아 동쪽 흉노에서 시작한, 전체 유라시아를 뒤흔든 변혁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동남쪽 신라에서는 북방계의 화려한 황금과 고분이 등장했으며, 유라시아 각 지역에서는 흉노의 후예를 자처하던 다양한 나라가 등장했다. 최근 고고학과 유전자(DNA) 분석으로 흉노에서 훈으로 이어지는 800여년의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이들은 발달한 철제무기와 기마술로 동쪽으로는 만주, 서쪽으로는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의 역사를 바꾸었다. 서양인들이 막연하게 동양에서 밀려온 공포의 아시아인이라고 비난했던,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 서쪽으로는 유럽에 이르는 진정한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그들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아틸라와 로마 교황 레오가 만나는 장면. 1514년에 라파엘로가 그린 벽화로, 천사들이 훈족을 저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이들은 만난 적이 없다. 출처 위키피디아
흉노에서 비롯한 세계사의 변동
중국의 한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북방의 이웃인 흉노에게 일방적으로 수세에 밀렸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엄청난 양의 조공품과 공녀를 매년 바치면서 뒤에서는 흉노의 분열을 기도했다. 그 결과 흉노는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했고, 한무제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흉노의 힘을 누를 수 있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중국에 귀의를 거부한 북흉노 세력은 서쪽으로 도망가다가 서기 98년 알타이산맥에서 벌어진 최후의 결전에서 패하여 중앙아시아로 도망쳤다. 이후 북흉노는 현재의 키르기스스탄 근처에서 머물다가 다시 서쪽으로 도망쳤고, 서기 158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200여년이 지난 서기 350년께 동유럽에 정체불명의 훈족이 등장했다. 이들은 게르만족의 변경에서 살고 있었던 알란족을 침략했고, 파죽지세로 밀려왔다. 훈족의 강력한 화살과 날렵한 기마 부대를 당할 유럽의 나라는 없었다. 유럽 사람들은 훈족을 ‘신의 저주’라 부르고 하느님의 도움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결국 서기 453년에 훈족의 왕 아틸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정벌하던 중 급사해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그 대신 훈족의 날랜 기마술과 강력한 무기에 자극받은 동유럽의 여러 민족이 발흥하여 로마를 압도했으니, 이것이 서양의 고대 세계를 끝낸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었다.
아틸라가 이끌던 ‘훈’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흉노다. 비록 흉노 제국은 중국에 멸망했지만, 그들이 만들어놓은 발달한 군사조직과 철제무기는 세계 최강이었다. 이에 자극받아 유라시아 각지에서 발흥한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흉노의 후예를 자처했다. 동쪽의 신라도 그중 하나였다. 실크로드를 대표하며 발해와 신라를 넘나들었던 소그드국은 자신을 훈의 나라(溫那沙)라고 했다. 심지어 유럽인 계통이었던 에프탈(Hephthalites,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인도 스스로 ‘백인 흉노’(White Huns)라고 칭할 정도였다.
7~8세기 유럽으로 건너온 동아시아의 등자와 마구.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품. 강인욱 제공
이렇듯 흉노의 후예들은 특정한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유목민들은 토지를 기반으로 성립했던 농경사회와 달리 유목이 가능한 초원지대를 찾아서 이동했기 때문에 여러 집단이 섞여 있었고, 유목민이 이동할 때마다 그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일종의 계약사회였다. 그러니 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들을 묶어낸 것은 혈연이 아니라 발달한 무기와 황금 예술이었다. 유라시아 초원에서 흉노의 후예를 자처한 집단들은 700여년간 수천㎞에 이르는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비슷한 기술로 만든 유물을 곳곳에 남겼다. 신라의 황금보검, 누금세공 장식, 유리제품, 구리솥, 편두 머리 등 북방계라 칭하는 모든 유물과 풍습은 마치 하나의 세트처럼 전체 유라시아는 물론 동유럽, 나아가서 서유럽까지도 널리 퍼져 있다. 이들 유물은 섞어놓으면 서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니, 바로 훈족이 유라시아에 남긴 유산이다. 또한 훈족이 사용했던 강력한 마구, 갑옷, 화살 또한 동양과 서양의 무기 체계를 모두 바꾼 세계사적 변화였다. 훈족은 흉노에서 비롯한, 유라시아의 거대한 문화 네트워크였음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이들이 정복하는 초원 지역은 새로운 문명으로 거듭났고, 그 일파인 아틸라의 서진에 따라 유럽에 새로운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2~4세기 로마와 동유럽 일대에서 널리 사용된 유리병. 신라 유물 중에도 비슷한 것이 발견된다. 루브르박물관 소장품. 강인욱 제공
유럽 역사 속의 동양인
훈족이 몽골인 계통이라는 생각은 아틸라를 직접 만났던 로마 교황청의 사신이며 역사가였던 프리스쿠스의 기록에 근거한다. 그는 아틸라가 무척 검소하며 전형적인 몽골인의 모습이었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당시 유목사회에는 다양한 집단이 섞여 있으니 훈족에도 중국 북방에서 살던 몽골인종의 흔적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틸라 1명에 대한 기록만으로 전체 훈족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당시 인골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것이다. 아직 훈족에 대한 자료는 없지만, 아틸라가 죽고 난 100년 뒤에 다시 동양에서 밀려온 아바르족에 관한 연구가 힌트를 준다. 아바르족은 5세기에 몽골을 중심으로 거대한 유목제국을 이루어 고구려와 연합했던 ‘유연’이라는 나라의 일파이다. 유연은 돌궐(튀르크)에 쫓겨서 서쪽으로 흘러갔고, 등자(발걸이)와 같은 고구려의 무기와 마구를 서양에 전파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바르족은 오늘날의 헝가리에 정착해 빠르게 서양인에 동화했다. 동아시아에 관심 없었던 서양 학자들은 동쪽과의 관련성에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약 20세기 중반에 시베리아 알타이 일대에서 고구려, 선비와 유사한 마구를 사용하던 유목 민족의 흔적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이들이 아바르의 기원일 것으로 추정했다. 막연하기만 했던 아바르의 기원은 최근(2020년 1월) 헝가리 학자들에 의해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된 유전자 분석 결과로 실마리가 잡혔다. 이들은 아바르가 카르파티아 분지(현재의 헝가리 일대)에 정착하고 약 100년이 지난 뒤인 서기 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남자들의 무덤에서 나온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중국 북서부 및 신장 지역, 러시아 알타이 일대에서 발견된 유전자와 가장 유사하다고 밝혀졌다. 고고학자들이 유물로 분석한 결과와 일치한 것이다. 이때는 아바르가 완전히 유럽에 정착한 지 한참 뒤로, 전체 아바르의 문화에서 동양의 흔적은 거의 찾기 어려운 상태였다.
훈족의 대이동 시대 동고트족이 남긴 황금 유물. 대영박물관 소장품. 강인욱 제공
동아시아 유전자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유목민들의 특성 때문이다. 유목민들은 철저한 부계사회를 유지했으며, 최상위 계급은 부계로 이어지는 혈연에 근거해서 유지되었다. 즉, 시간과 공간이 바뀌어도 유목민은 최상위 무사 계급의 남성 혈통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아마 훈족도 비슷했을 것이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며 전체 유목민의 구성은 현지인들로 다양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가장 첨단의 군사와 문화를 선도하던 선우와 그들을 보좌하던 세력은 부계를 중심으로 계속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훈족 계통의 황금팔찌. 강인욱 제공
훈족, 그리고 동양에 대한 편견
동유럽에 등장한 훈이 중국에서 출발한 흉노와 같은 혈연의 민족인가라는 질문은 유목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처음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흉노족에서 훈족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진정한 의의는 바로 ‘유라시아를 관통한 문화교류’에 있다. 그럼에도 서양 세력은 중세 이후 최근까지 아틸라에게 악마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바그너의 오페라로도 유명한 북구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에도 악인으로 등장한다. 최근까지도 ‘아틸라’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까지 대중 매체에서 폭군 또는 악마 같은 독재자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 아틸라에는 청나라 시절의 중국인 이미지가 덧대어진다. 시기별로 바뀌는 아틸라에 대한 그림을 보아도 처음엔 서양사람같이 묘사하다가 나중에 중국인처럼 바뀐다. 근대 이후 서양이 강조하던 ‘황화’(黃禍, Yellow peril)라는 동아시아에 대한 편견의 시작으로 아틸라가 사용된 것이다. 한편, 소련의 경우 ‘훈=흉노’ 설을 다른 정치적인 관점에서 활용했다. 1917년 혁명 이후 소련은 흉노와 훈족의 활동 무대인 유라시아 초원을 대부분 자신의 세력으로 통합했다. 이에 대한 역사적인 합리화를 위하여 1930년대부터 ‘훈=흉노’라는 설을 이용한 것이다.
러시아 쿠르스크주에서 발견된 4세기 무렵 훈족의 황금 칼집과 장식.
현대의 관념이 투영된 ‘훈=흉노’ 설은 동양을 악으로 규정하는 황화로 이어지면서 지금도 동양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잠잠하던 서양 우월주의는 최근 동아시아의 발흥과 유럽의 경제침체에 따른 포퓰리즘에 기반을 둔 극우세력으로 부활하고 있다. 때마침 최근 중국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동양에 대한 해묵은 편견과 차별이 폭발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금은 인종 간의 갈등을 촉발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버리고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 동양에 대한 편견을 빚어낸 흉노와 훈족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경희대 사학과 교수
출처: https://weseelist.tistory.com/115
초원의 지배자 (유연족과 아바르족, 훈족)
몽골계 유연柔然의 후예後裔 집단을 이끈 위대한 영웅英雄 [아바르Avar] 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유연柔然]의 세력이 서쪽으로 이동한 시기는 대략 AD 552년 무렵으로 잡는 게 통설通說이다. 이들의 지도자로서 우뚝 선 [아바르Avar]라는 이름은 [아비를 뜻하는 존칭어尊稱語인 아바 혹은 발發] 계열系列로서 전형적인 [단군조선 제국 어군語群]이다. 그가 유럽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AD 565년경인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시대 말엽末葉이다. 비잔티움Byzantium 사람들이 묘사描寫한 이들의 외모外貌나 무당巫堂을 신성시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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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namu.wiki/w/%EC%95%84%EB%B0%94%EB%A5%B4%20%EC%B9%B8%EA%B5%AD
아바르 칸국 - 나무위키
1. 개요 6세기 중반에 건국되고 9세기 초에 멸망 한 유목민족 의 유목제국 . 2. 계통 돌궐 에게 밀려난 몽골 초원 의 유연 의 후예라는 설이 고전적인 통설이었고 해당 설에 논란이 있었으나, 유전자 조사에 의해 유연족의 후예라는 설이 다시 지지를 받고 있다. 링크 6세기 아바르족 엘리트의 유전자는 놀랍도록 균일하고 선비족 이나 유연 과 일치한다. 현대에 살아남은 민족 중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집단은 몽골계 와 퉁구스 계 제민족, 니브흐족 이라고 한다. 이들은 명백히 몽골로이드 인종 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서쪽으로 이동해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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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정체성 형성기
2.2. 대헝가리와 국가 형성기
2.3. 민족 대이동
3. 참고 문헌
헝가리인의 원류가 되는 우랄어계 부족. 기존에 우랄 산맥 남쪽에 모여살다가 기후 변화와 여타 유목민족들의 압박으로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그 과정에서 인근의 불가르, 하자르, 슬라브족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러한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현대 헝가리어로는 '머저르(magyar, [ˈmɒɟɒr])'라고 하며 이에 따라서 헝가리의 토착지명 역시 머저로르사그(Magyarország, [ˈmɒɟɒrorsaːɡ])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머저르(또는 머겨르)'보다도 '마자르'라는 표기가 정착되어 있다.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등의 게르만어계 언어들이나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등의 로망스어계 언어들에서는 경구개 파열음이 실현되지 않으므로 주로 'magyar'의 'gya'를 '갸'에 가깝게 읽지만, 포르투갈어, 중국어, 일본어에서는 '자'에 가까운 발음으로 읽는다. 한국어 표기 '마자르'는 후자 계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슬라브어계 언어들 중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등에서는 '댜'에 가깝게 읽고, 폴란드어, 세르보크로아트어, 불가리아어 등에서는 '자'에 가깝게 읽는다.
독일인은 헝가리어로 '네메트(német)'인데, 이는 슬라브조어로 '벙어리'를 뜻하는 '네미치(*němьcь)'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슬라브족이 게르만족을 가리켜 '(슬라브어를 하지 못하는) 벙어리'라고 부른 것이 의미가 확장되어 (자기네 말을 하지못하는) 외국인, 슬라브족 옆에 이웃한 외국인인 게르만족, 나아가 게르만족의 대표격인 독일인을 가리키게 된 것. 슬라브족이 다수를 차지하던 판노니아 평원에 정착한 마자르인들이 마자르어에 슬라브어 어휘들을 대거 받아들이면서 이렇게 된 것이다.
1283년 헝가리 왕실에서 편찬된 역사책 《게스타 훙가로룸(Gesta Hungarorum)》에 의하면 훈족과 마자르족은 같은 뿌리라고 한다. 흑해 주변에 살던 한 부족장에게 후노르와 머고르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냥 중 신비한 사슴을 발견하곤 추적하였다. 추격 끝에 사슴은 사라지고 방어에 용이하고 목축에 적합한 옥토에 다다른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였다. 6년 후, 형제는 벨라르 족을 약탈한데에 이어 알란족의 왕 둘란의 두 딸을 납치한 후 각각 결혼하였다. 이후 후노르의 후손은 훈족, 머고르의 후손은 마자르족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해당 이야기는 사실상 설화로 훈족은 흉노족과 스키타이족의 혼혈민족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당시 마자르족이 위치한 지역이 훈족의 지배를 받던 곳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훈족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극소수나마 피도 섞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역만리 만주에서도 고대 한국인이 주축이 되어서 세워졌던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에, 이들과 생판 관계없던 몽골계 민족인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본인들이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한 적도 있는데, 역시 거란족도 한때는 고구려의 지배를 받은 바 있었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런 민족 기원 설화나 야사야 실증적인 면보다 이런 이야기를 채용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보는 집단적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이런 의미에서 헝가리인들이나 주변 민족들이나 하필이면 훈족을 조상으로 설정한건 의미심장하다. 중세 후기 쯤 들어가선 엄연히 봉건제와 카톨릭을 받아들인 서방 라틴 문화권 나라 중 하나로 발전했지만, 그 기원은 프랑크 제국 중심의 중세 서방기독교 유럽 세계와 겉도는 동방에서 온 유목민족으로 이질성도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르네상스 시기 들어 베르킨게토릭스, 부디카, 아르미니우스 등 전 유럽에서 자국, 민족의 정체성을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시기부터 찾는게 유행하자 헝가리인들은 '그럼 우리 조상은 바로 그 로마인들을 공포에 떨게한 훈족이겠네!'라고 자연스러운 역사문화적 계승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그 외에 아르파드 왕가의 시조인 알모시의 모친이 817년경 투룰이란 신비한 새로부터 잉태하였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기원전 4천 년 무렵, 우랄 산맥 일대에는 우랄조어 화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사모예드족이 동쪽 시베리아로 떠나고, 핀-우구르어파가 남았는데, 그들은 기원전 2천 년 즈음 핀-페름어파과 우그르어파로 나뉘었다. 마자르족은 후자인 우그르어파에 속했으며, 서북쪽 발트해 쪽으로 이동한 핀-페름어파와 달리 우랄 산맥 동쪽에 남았다. 이때 그들은 이란계 부족인 알란과 접촉하며 기마 문화와 청동기 문화를 수용하였다. 그러던 기원전 1500-기원전 1000년, 지구 기온이 상승하자 우그르족 중 한티-만시인들은 침엽수림을 쫓아 북상하였고, 말 대신 순록을 기르는 유목민이 되었다. 이후 남은 자들이 바로 후에 마자르족이 되는 이들이었다.
기원전 800년 무렵 소빙하기가 도래하자 그들은 유목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우랄 산맥 동남쪽으로 남하하였다. Magyar Oshaza(마자르 원거주지)라 불리는 그곳에서 이들은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아 철기를 수용하였고, 물오리 대신 독수리(투룰)를 숭배하게 되었다. 다만 이후의 역사는 알기 힘든데 기원전 400년 즈음에 서쪽으로 이주했다는 설, 4세기 말엽 훈족 혹은 6세기 중반 아바르 칸국의 압박으로 이주했다는 설 등이 있다. 확실한 것은 7세기 서볼가 강과 카마 강 사이에 위치한 바시키리아 지역에 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1] 이 시기를 Magna Hungaria(대 헝가리)라 부르며, 이웃의 불가르(오노구르)족과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마자르'로 칭하였다.
6~8세기의 대헝가리 시대에 마자르족은 알란족으로부터 농경 문화를 수용하였고, 하절기에는 천막, 동절기에는 통나무집에 거주하는 반농반목 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한 잠깐이나마 고대 불가리아 연합에 속하며, 정치 체제를 습득한 마자르인들은 족장과 무사 계층을 바탕으로 한 부족 국가를 이루었다. 7세기 중반 하자르 칸국이 고대 불가리아를 멸망시키자 마자르는 그에 복속되었고 그들로부터 이중 군주제를 받아들였다. 제정분리 형태인 이중 군주제는 제사장인 켄데와 군사 지도자인 줄러로 권력이 양분되었으며, 행정을 맡은 허르커가 그들을 보좌하였다.
그러던 750년경, 대헝가리의 마자르인들 중 대부분은 레베디어라고 불린 돈 강 중류 일대로 이주하였다. 다만 일부는 대헝가리에 남았으며, 13세기까지 문화를 지키며 살다가 몽골 제국에 의해 소멸되었다. 1235년 헝가리의 수도사 율리언이 그곳으로 찾아가 그들과 헝가리어로 대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레베디어에서 마자르 부족은 볼가 불가르, 알란 등 다른 부족 출신의 이주민들을 수용하였다. 한편, 9세기 초엽 다른 튀르크계 민족인 페체네그족이 도래하며 하자르 칸국과 수십년간 이어질 전쟁을 벌이자 마자르인들은 재차 서쪽으로 향하였다. 드니프로 강과 드네스테르 강 사이의 땅(에텔쾨즈, 현 우크라이나 서남부)에 정착한 그들은 튀르크계인 카바르족을 8번째 부족으로 수용한다. 카바르족은 후에 세케이족이라 불리며 헝가리 왕국의 동부 전선을 위임받아 트란실바니아 동부에 정착, 19세기 말엽까지 튀르크계 로바시 문자를 사용하며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헝가리 민족을 완성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서기 830년경, 마침내 마자르인들은 하자르로부터 독립한 새로운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마자르족이 독립한 830년경 당시 켄데(제사장)는 레베드, 줄러(군사령관)는 알모시였다. 그리고 839년에 마자르 군대가 다뉴브 강 하류에 출몰한 것은 한 세기에 걸쳐 중부 유럽을 뒤흔들 민족 대이동의 서막이었다. 다만 1차 불가리아 제국의 중심부였던 다뉴브 강 하류에서 밀려난 마자르 인들은 몰다비아를 넘어 서쪽의 카르파티아 분지에 주목하였다. 그곳은 아바르 칸국의 해체 이후 불가리아와 모라비아의 접경으로 주인이 없었다. 따라서 862년부터 이 지역으로 마자르인들이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동은 소규모였고 조직적이지 못했다. 대규모 이주가 벌어진 것은 894년, 오랜 대립 끝에 결국 하자르 칸국에게 패배한 페체네그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에텔쾨즈의 마자르인을 공격하면서부터였다.
페체네그족에게 위협을 받은 마자르인들은 줄러로 알모시의 아들 아르파드를 선출하곤 본격적으로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판노니아 분지 지역으로 집단 이주하였다. 895~896년에 걸쳐 일어난 이 마자르인의 대이동을 '혼포글러라시(Honfoglalás)'라 부른다. 헝가리어로 조국 정복이라는 뜻. 이때 쿠르산을 마지막으로 켄데 직위가 없어지고 줄러, 즉 군사령관 직이 사실상 단독 군주로 행세하게 되어 중앙집권화로 나아가게 되었다. 카르피티아 분지에 정착한 10만 가구의 마자르인들은 카르파티아 산맥을 동쪽 유목민들에 대한 방어선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중부 유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900년경 다뉴브 강 동쪽의 영토를 접수한 마자르인들은 북으로는 발트해, 서로는 도버 해협, 남으론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북부까지 군사 원정을 감행하였다. 프랑크 제국의 분열 이후로 약화되어 있던 서유럽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마자르인들은 족장(bo) 휘하에 군대(jobbagy)를 편성했고 그러한 족장 5~6명이 하나의 부대를 모았다. 948년 마자르의 하르카 불추는 직접 동로마 제국령을 방문하여 세례를 받고 오기도 하였다.
933년, 마침내 독일 왕 하인리히 1세가 마자르 군대를 패배시켰고, 955년 오토 1세가 아우크스부르크 인근의 레히펠트 전투에서 불추를 전사시키면서 마자르인들은 헝가리 평원에서 더이상 진격하지 못했다. 이후 마자르인들은 이전의 훈족, 아바르족, 노르만족 등의 선례들처럼 돌아가거나, 동화되거나, 영지를 얻거나, 혹은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정착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헝가리 대공국 문서 참조
헝가리사 (이상협,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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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의혹,뇌물 의혹....의혹이 왜 제기 되엇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