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사 은행나무 단풍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된 십일월 중순 셋째 월요일이다. 자연학교 등교는 집에서부터 걷기로 작정하고 현관을 나섰다. 시베리아에서 팽창한 한랭 기단이 우리나라로 덮쳐 전날보다 아침 기온이 10도 이상 뚝 떨어졌다. 신발은 등산화를 신고 날씨를 감안 방한이 되는 잠바에다 장갑까지 껴 추위에 대한 대비를 마쳤다. 아파트단지 뜰의 벚나무는 나목이 되어 늦가을 기색이 완연했다.
외동반림로에 높이 자란 우뚝한 메타스퀘이아 가로수는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즈음이었다. 도심 가로수로는 벚나무에 이어 느티나무가 단풍이 먼저 물들고 이어 은행나무였고 맨 마지막이 메타스퀘이아였다. 도심에서 바라보이는 불모산이나 정병산 단풍은 입동 무렵이 절정인데 올해는 가을까지 늦더위가 이어져 농사 절기도 늦고 단풍도 열흘 정도 늦어 이제 최전성기를 맞는 듯하다.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상류 창원대학 앞으로 가자 느티나무는 갈색으로 물들어 떨어진 나뭇잎이 길거리에 뒹굴었다. 저만치 떨어진 캠퍼스의 수목들도 단풍빛이 완연하고 시야에 들어온 정병산과 날개봉의 활엽수들도 갈색빛이었다. 도청 뒷길을 따라 창원중앙역 역세권 상가를 거쳐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이른 시간 산책으로 계곡에 들었다가 나오는 이를 만났다.
평일 용추계곡은 앞서 빠져나간 사람 말고는 산책이나 산행을 나선 이는 아무도 없어 호젓했다. 산새들이 조잘대는 소리와 계곡 바윗돌을 비집고 흐르는 물소리로 자연이 들여주는 음향에서 귀가 즐거웠다. 용추정을 지나 계곡에 순번을 정해 붙인 다리를 지났다. 늦게까지 꽃잎을 달고 있었을 물봉선이나 꿩의다리꽃과 같은 야생화들은 모두 자취를 감춰 등산로는 낙엽만 뒹굴었다.
가을에 흡족한 비가 내려 계곡물은 소리를 내어 흘렀고 군데군데 물웅덩이는 낙엽이 떠 있거나 가라앉아 있기도 했다. 출렁다리와 용추5교를 지난 우곡사와 포곡정으로 나뉘는 갈림길에서 전자를 택해 비탈을 올랐다. 맞은편에 보이는 날개봉 활엽수림은 응달이라 단풍이 더 곱게 물들고 있었다. 정병산이 진례산성 석축을 따라 이어지는 산마루로 올라 산골짜기의 단풍을 조망했다.
용추고개에서 북향 비탈로 난 등산로를 따라 우곡사로 향했다. 산비탈 숲은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는데 단풍이 한꺼번에 물들지 않고 시나브로 진행 중이었다. 앞서 거쳐온 용추계곡에는 산새 소리와 물소리를 들었으나 우곡사 가는 숲길은 적막하기만 했다. 용추계곡은 바윗돌을 비집고 흐르는 물이 새들에게 좋은 서식 환경이었고 북향 비탈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아니었다.
숲이 끝난 약수터에는 샘물을 받는 이들이 물통에 물을 채워 담았다. 주차장에서 절집으로 오르는 비탈에는 수령이 가늠되지 않은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단풍이 절정이었다. 워낙 고목인 은행나무는 밑둥치가 삭아 동굴처럼 구멍을 드러냈다. 오래전 거기에 누군가 치성을 드린 촛불로 불이 나 밑둥치가 불탄 이후 새롭게 움이 터 가지는 왕성한 세력으로 자라 무성한 모습이다.
우곡사 은행나무 단풍은 입동 무렵이 절정인데 올해는 절기가 늦어져 십일월 중순에 이르러 곱게 물들었다. 은행나무 주변에서 방향과 높이가 다른 사진을 몇 장 남기고 계단을 디디고 올라 법당 뜰로 갔다. 금세 문밖에 보이던 비구는 법당으로 들어 경을 외우며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추녀에 매단 풍경이 스치는 바람에 쇳소리를 내어 목탁 소리에 화음이 되었다.
법당 뜰에서 서성이다 맞은편 노티재 산등선을 바라보니 활엽수들은 단풍빛이 곱게 물들어갔다. 절집을 나와 자여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우곡저수지에 이르니 맑은 물로 채워진 수면과 마주했다. 저수지 가장자리 둘레길을 걸으니 건너편 갯버들은 아직 청청한 잎을 단 채로 겨울을 맞는 채비가 늦은 듯했다. 둘레길은 서천마을로 이어졌는데 자여로 나가 7번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2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