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는 것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내게는 그 바닥을 받쳐줄 사랑이 부족했다. 봄비가 내리는데, 당신과 닭백숙을 만들어 먹던 겨울이 생각난다. 나를 위해 닭의 내장 안에 쌀을 넣고 꿰매던 모습, 나의 빈자리 한 땀 한 땀 깁는 당신의 서툰 바느질. 그 겨울 저녁 후후 불어먹던 실 달린 닭백숙.
-『중앙일보/시(詩)와 사색』2025.02.15. -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과 약속을 하고 싶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만나고 싶다. 내리는 비를 반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으면서 ‘사실 그때 있었던 일은 말이야’ 하고 입을 열고 싶다.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반쯤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가끔씩 돌려 그 사람의 옆얼굴을 보고 싶다. ‘그렇다니까 내가 진작 말했던 거잖아’라고 되짚어내면서 생색을 내고 싶다.
큰길을 건널 때에는 가까이 소매를 끌어당겼다가 이내 다시 놓아주고 싶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허기가 진다고 말하면서 밥때도 아닌 시간에 어느 식당으로 향하고 싶다. 김이 오르는 뚝배기가 나오면 그 사람 앞에 먼저 놓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