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가 그 꿈이 너무 감미로워 계속 꾸고 싶은 꿈이 있고 그 꿈이 너무 무섭고 잔혹해서 어서 깨고 싶은 꿈이 있다.
어젯밤 꿈은 후자였다. 너무 무서워 깨자마자 일어나 방안을 몇 바퀴를 서성거렸다. 다시 그 꿈이 지속되지 않기 위하여.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는가? 4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너 간첩이지? 너 여기서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몰라, 너 김일성이 한테 돈 받아왔지?”
그 지옥같은 안기부 지하실에서 살아 돌아온 지가 오랜 세월 저편이다.
그런데 나는 학생운동권도 아니었고 민주화 유공자도 아니고, 5.18 유공자도 아닌, 더더구나 죽는 날까지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자술서‘를 썼기 때문에 말도 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숨죽이고 살았다.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민주화 유공자들과 달리 발설하기조차 무섭고 어정쩡한 간첩단 사건주모자로 끌려가 만신창이가 되도록 당했던 악랄한 고문. 그 뒤. 나는 수없이 그곳으로 끌려가는 꿈을 꾸었는데. 다시 그 꿈을 불러낸 것은 어제 낮, 일요일 낯에 내 책을 읽은 <유신청산민주연대>의 회원인 이대수선생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아주 독특한 케이스의 고문 피해자”라고 “간첩 사건으로 고문을 받은 사람이 쓴 책은 선생님이 최초”라고
그 말이 맞긴 맞다.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상은커녕 원인 규명조차 어려운 피해자,
6월 13일 국회에서 모임을 갖는다는데 나는 그때 몽블랑에 가 있는 때라서 그 또한 어렵다.
꿈에서 깨고 난 뒤 행여 다시 그 악몽을 꿀 것 같아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