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결혼 40주년
석야 신웅순
30대에 삶에 대한 화두 하나가 있었다. 60살까지만이라도 살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사실 공황장애가 그 때는 무엇인지도 몰랐다.
처가에서는 결혼 전에 무슨 병이 있었냐며 의심까지 했다. 결혼 직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호흡곤란으로 매번 죽다 살아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는 중학교 선생을 그만 두었다.
초등학교 선생 때의 사표는 부모 형제가 마음에 걸렸고, 중학교 선생 때는 처자식이 마음에 걸렸다. 꿈을 위해 두 번씩이나 사표를 냈으니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보따리 장사, 고액 과외, 동화 쓰기 등으로 겨우 남편,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다.
철딱서니 남편을 조용히 지켜봐준 한 사람이 있었다. 아내였다. 내 생애에 제일 고맙고 소중한, 내게는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 십년을 나 없이 지냈다. 공황장애는 공부하면서 치유되었다. 죽지 않고 살았으니 기적이요, 70줄에 들어섰으니 행운이었다. 인생 최초의 선물이요 최후의 선물이었다. 이는 순전 아내의 덕이었다.
올해가 결혼 40주년이다.
집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명품쯤은 해주고 싶었으나 내겐 그런 여유는 없었다. 금일봉을 선물했다. 무슨 긴말이 필요하랴. 봉투엔 “감사하오. 사랑하오” 두 문장만 썼다. 봉투를 받는 순간 집 사람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며, 시나 편지 같은 것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내 주머니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 사람은 문인화 화가이다. 직장 다니느라 아이들 건사하느라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퇴임하고 나서야 제대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집사람은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그동안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모처럼의 외출이었다. 화가라면 좋은 소재를 찾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시원한 옥계폭포로 마음을 씻고 달이 머물다간다는 월류봉을 찾았다. 정자가 있고, 산봉우리가 있고, 물이 있고, 하늘이 있는 별유천지비인간이었다.
요새는 집사람이 더 사진을 잘 찍는다. 구도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리된 것 같다. 좋은 그림 감을 얻었나 보다. 젊어보인다.
그렇게 부딪히고도 소리하나 남지 않고
그렇게 부서지고도 적막하나 남지 않고
소리도 적막도 없는 그리운 그대 생각
- 신웅순의 「내 사랑은 21」
내 젊었을 적에 썼던 시 한 구절이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시 제목을 「내 사랑은」대신 「내 인생」으로 바꾸어야 어울릴 것 같다. 젊어선 사랑이요 늘그막에선 인생이다. 결국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냐.
아내에게 이 시를 바친다.
“감사하오. 사랑하오.”
첫댓글 축하합니다. 결혼 40주년.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 밖에 또 무슨 표현이 필요하겠습니까?
보탤 수 있다면 겸연쩍고 어색할지 몰라도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으면....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
삶의 이정표!
산다는것은 오랜후에 뒤돌아 봤을때의 길이 어떤모양을 가지고 있느냐가 평가기 되겠죠
기차를 타고 가노라면 앞에서는 빤뜻이 가는데 뒤돌아서 보면 꾸불텅 꾸불텅 합니다
평탄이란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꾸불텅 꾸불텅 그게 삶의 극치라고 한다면 인정이 될가요
우여곡절 성공하셨슴니다 축하드립니다 -석봉(춘암)
그런가 봅니다.지난 길을 바라보면 삐뚤 빼뚤 그도 먼길.감사합니다.어느새 예까지 왔습니다.이젠 평탄 길 걷고 싶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