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처럼
추프랑카
열고 닫을 것, 쇼의 기본개념이다
쇼윈도의 유리는 뛰지 못해서 뚫어진다 열리고는 닫히지 않는 우리에 대한 종렬
벽이 우리를 잠시
돌아가거나 기댈 수 있게 하지 못할 때
유리벽 안에서 마네킹이 옷을 갈아입는다
맨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
저 눈은 절대 깜박거리면 안 돼, 그렇게 뻔한 말을 복창하기도 했다
한 번도 서로의 눈을 엉덩이보다 깊숙이 들여다본 적 없던 우리가
밤과 밤을 오른쪽으로
낮과 낮을 왼쪽으로 저으면
눈꺼풀을 떼 낸 밤과 낮은, 스푼이 붙잡고 있던 동그라미보다 더 어지럽다 쇼의 장식적 개념이다
무정無情이 되면 쇼는 어디에도 방점을 찍을 곳 없고, 쇼윈도 모서리에 발가벗고 돌아서 있는 둥근 엉덩이보다 슬픈 것은, 볼펜지우개이거나 마네킹을 쳐다보는 무정일 거야 후회도 모르는, 벗었는지 입었는지도 까마득한
천장이 유리벽 안에서 천장인 채로 뚜껑을 굳게 닫고 버티는 것
마네킹이 밤을 갈아입고
유리벽 앞으로 다시 뒤돌아서는 것, 개념의 부스러기다
너와
나 사이를 잴 눈이 떨어진다
풍선처럼
—웹진 《님Nim》 202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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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프랑카 / 경북 달성 출생.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