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찾은 백양사,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를 신록이 무성한 봄에 찾았다. 멀리 보이는 백학봉에 행여라도 흰 양이 있을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 흰 양, 징검다리를 지나 백양사에 들어섰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여환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정토사라고, 불렸던 이 절은 조선 선조때 백양사라고 개칭되었다. 그것은 환양선사가 천일굴에서 법화경을 독경하고 있는데, 백학봉에서 흰양 한 마리가 그 선사의 독송을 듣고 간 뒤로 양의 무리가 자주 왕래했다는 전설에 의해서 백암산 백암사를 백양산 백양사로 고쳤다고 한다.
그 이유로 백양사의 역대 조사를 조사라고 부르지 않고 환양이라고 한다. 그 만큼 백양사의 품격이 다른 절에 비해 높은 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절 쌍계루에는 고려말의 학자 포은 정몽주의 8행시가 걸려 있었는데, 불에 타버려 흔적이 없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설선당이 있고 그 앞으로 보선각과 원당이 있으며 그 원당의 좌우로 선선당, 조사전, 명부전, 정운당, 극락전, 우화루, 향적전, 엄종각 등이 있다. 이 백양사에는망암스님의 사리탑이 있고 또한 조선 선조 때 기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진묵대사가 주석했었다고 사지는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전에 진묵대사는 이 절 운문암에서 차를 끓이는 소임을 맡은 이름 없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 진묵스님을 누가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었을 것인가. 어느 날이었다. 백양사에 있는 모든 스님에 현몽이 있었다. 운문암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스님을 백양사의 조사로 모시라는 현몽이 있었다. 백양사 스님들이 운문암으로 올라서 그 말씀을 전하자 진묵대사는 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에 도금을 하지 마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말이 있은 후 지금까지도 운문암 불상은 도금을 하지 않은 채, 검게 남아 있으며 진묵대사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선 선조 이후로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 갔어도 끊임없이 가서는 돌아 오지 않는 진묵대사를 기다리는 것이 이 나라의 불교이며, 그것은 종교의 힘으로써 만이 가능한 것이리라.
이 절 운문암에는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서옹 조실 스님이 계시며 선풍을 일으켰고 그 뒤에는 80년대 민주화투쟁의 일선에 서 있었던 지선 스님이 백양사 주지로 계셨는데, 지금은 어느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시는지 알길이 없는 백양사에 초파일을 앞둔 연등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연등을 흔드는 것인지, 연등이 바람을 만드는지 알 길이 없는 봄날의 한때였다.
2023년 5월 10일,
봄날에 찾은 백양사,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를 신록이 무성한 봄에 찾았다. 멀리 보이는 백학봉에 행여라도 흰 양이 있을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 흰 양, 징검다리를 지나 백양사에 들어섰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여환선사가 창건한 절이다. 정토사라고, 불렸던 이 절은 조선 선조때 백양사라고 개칭되었다. 그것은 환양선사가 천일굴에서 법화경을 독경하고 있는데, 백학봉에서 흰양 한 마리가 그 선사의 독송을 듣고 간 뒤로 양의 무리가 자주 왕래했다는 전설에 의해서 백암산 백암사를 백양산 백양사로 고쳤다고 한다.
그 이유로 백양사의 역대 조사를 조사라고 부르지 않고 환양이라고 한다. 그 만큼 백양사의 품격이 다른 절에 비해 높은 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절 쌍계루에는 고려말의 학자 포은 정몽주의 8행시가 걸려 있었는데, 불에 타버려 흔적이 없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설선당이 있고 그 앞으로 보선각과 원당이 있으며 그 원당의 좌우로 선선당, 조사전, 명부전, 정운당, 극락전, 우화루, 향적전, 엄종각 등이 있다. 이 백양사에는망암스님의 사리탑이 있고 또한 조선 선조 때 기행으로 이름이 높았던 진묵대사가 주석했었다고 사지는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전에 진묵대사는 이 절 운문암에서 차를 끓이는 소임을 맡은 이름 없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 진묵스님을 누가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었을 것인가. 어느 날이었다. 백양사에 있는 모든 스님에 현몽이 있었다. 운문암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스님을 백양사의 조사로 모시라는 현몽이 있었다. 백양사 스님들이 운문암으로 올라서 그 말씀을 전하자 진묵대사는 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올 때까지는 이 불상에 도금을 하지 마라.”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말이 있은 후 지금까지도 운문암 불상은 도금을 하지 않은 채, 검게 남아 있으며 진묵대사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선 선조 이후로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 갔어도 끊임없이 가서는 돌아 오지 않는 진묵대사를 기다리는 것이 이 나라의 불교이며, 그것은 종교의 힘으로써 만이 가능한 것이리라.
이 절 운문암에는 조계종 종정을 지냈던 서옹 조실 스님이 계시며 선풍을 일으켰고 그 뒤에는 80년대 민주화투쟁의 일선에 서 있었던 지선 스님이 백양사 주지로 계셨는데, 지금은 어느 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시는지 알길이 없는 백양사에 초파일을 앞둔 연등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연등을 흔드는 것인지, 연등이 바람을 만드는지 알 길이 없는 봄날의 한때였다.
2023년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