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이영선 신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무슨 얘기를 하나…” 하며 난감해하면서도 광주까지 오지 말고, 서울에 올라가는 날 만나자며 배려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담당 사제이기도 한 그는 정의평화위원장, 노안성당 주임, 광주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장까지 맡고 있다. 너무 바쁜 것 아니냐고 걱정했더니, “틀림없이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일 걱정을 한다. 대전, 대구, 서울, 수원교구 등에서 정평위 중심의 활동이 늘어가고 있는데 비해, 광주대교구 정평위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영선 신부는 “활동이 저조했던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광주인권평화재단을 통해 해외 인권 위한 활동에 나서 “광주 정평위는 지난 3년간 해외로도 눈을 돌렸습니다. 정평위 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죠. 그 이유는 광주 정평위 활동이 5.18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두드러졌는데, 당시 주변 국가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18 희생자와 부상자들이 기금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아시아 인권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게 된 것이죠” 광주인권평화재단은 201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설립됐고, 스리랑카, 버마, 태국 등의 이주 난민들을 다양하게 지원해왔다. 이와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제대로 연구하고 알리는 학술활동, 지역 활동가 양성, 사회교리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교육 등 활동을 벌였다. 이영선 신부는 광주인권평화재단의 사업이 나름대로 이뤄지지만, 그와 별개로 정평위의 일을 고민해야 했다면서 “각 교구 정평위는 해당 지역의 인권문제, 평화의 걸림돌들을 어떻게 치워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교회의 정의, 평화를 위한 활동, 각 교구 정평위 사업을 지켜봐 온 이영선 신부는 각 지역에서의 정평위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사회교리 교육, 평화를 추구하는 삶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와 이미 평화를 거슬러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임무를 언급하면서, 이영선 신부는 기존 정평위 활동이 마치 ‘군대의 5분 대기조’와 같다고 비유했다. 정평위는 많은 분쟁 현장에서 억압받는 약자들을 위한 중재, 수습 요청을 받게 되는데, 사건이 일어날 때만 집회에 나서고 피켓을 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물론 현실적 요청에 마땅히 응답해야 하지만, 일상적으로 꾸준히 우리 삶의 현장을 살피지 못한다는 반성과 고민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신부는 정평위가 세밀하게,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평위는 해당 지역의 문제, 우리는 광주 · 전남 지역에서 아파 울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우선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 수도권 중심으로 모든 행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지역 소외 문제도 심각합니다. 지역 의료, 교육, 농업 등 공공성 확보의 문제죠.” 즉, 교구 정평위는 그 지역민과 함께 숨쉬며 지역 의제를 만들고,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각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영선 신부는 지역 문제 파악, 대안 연구, 때로는 정책과 입법 제안 등이 정평위의 몫이라고 강조하며, “또한 그것을 신앙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바로 각 지역을 위한 신학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평위 각 분과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현재 이영선 신부의 가장 급한 과제다.
불의에 침묵하는 것,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 이영선 신부는 신앙인이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를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 즉 모르는 사이 짓는 죄를 경계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침묵’은 곧 동조이며, 알아내지 못한 죄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먹는 음식에 온갖 농약과 방부제를 치는 것이 옳은가? 명백하게 아니죠. 그런데 내가 그것을 계속 먹는다면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먹지 않으면 그 만큼이라도 수요를 줄일 수 있고, 거절의 의사를 가장 강력하게 말하는 것은 소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의 행위에 대해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죠. 보통 알면서도 침묵과 참여로 악행에 동조하기도 하고, 몰라서 그렇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는데 결과적으로 악을 행하고 자신의 생명도 해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모든 일을 민감하고 예민하게 살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모르는 척, 죄를 짓고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 안 되죠.” 그러면서 ‘정의’란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라는 쉽고도 명료한 것이라고 했다. 이영선 신부는 “정의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의를 어렵게 말한다면 그것은 정의롭고 싶지 않다는 것, 정의라는 개념을 숨기고 싶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며, 모두가 정의에 대해 갖는 공통적인 느낌, 그것 외에는 모두 사족이라고 말했다. 공권력의 사유화로 인한 ‘대리전’의 비극 “지인의 동생이 얼마 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광주가 고향이었는데, 5.18 때 공수부대원으로 광주에 파견됐죠. 제대 후 한 번도 고향에 오지 못하고 결국 타지에서 홀로 죽어갔어요. 5.18 때 공수부대원들이 광주에서 무엇을, 왜 했는지 모두가 아는데, 그 일이 ‘국가기밀’이라고 끝까지 믿었답니다. 그 사람도 알았겠죠.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러니 고향에도 올 수 없었던 것이고요. 그 말을 듣고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안타까웠습니다.” (5월 2일, 한국가톨릭농민회 본부 축복식 강론 중) 이영선 신부 자신도 대학생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당시 경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꽤 오랫동안 그 일을 생각하면 힘들었다니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강론에서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서는 묻고 싶었다. 우리는 5.18에 대해 피해자들과 신군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그곳에 파견돼 직접 그 끔찍한 일을 자행했던 이들의 상처나 삶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26년>에는 차라리 ‘가해자가 옳았다’고 믿어버린 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끝내 그렇게 합리화하지도 못하고 평생을 홀로 숨어 살았던 한 사람에게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건져낼 수 있을까. 이영선 신부는 그것을 ‘대리전의 비극’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3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불의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지금도 강정, 쌍용차, 용산 등 모든 분쟁의 현장에서 당사자는 시민과 경찰이 됩니다. 경찰이 왜 당사자 노릇을 합니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경찰 근무를 하는 청년들에게 왜 사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합니까? 이것은 공권력의 사유화죠. 지금이 군벌시대이고 그들이 사병입니까? 자본가가 국가입니까? 노동자가 국가를 위해하는 세력입니까? 경찰도 시민이고 노동자가 될 것인데, 가해자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그들이 겪어야 할 분열을 과연 누가 책임질까요?”
인간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알려준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너무 뭉뚱그려지고, 지식인들은 해외의 민주화 사례만 입에 올릴 뿐, 5.18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5.18을 겪었고, 정평위를 통해 5.18 정신 계승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려는 이영선 신부에게 “광주는 어떤 기억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 신부는 “5.18을 바라보는 자세는 훨씬 섬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살았던 이들,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선 신부는 “5.18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인간이 이토록 잔혹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정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5.18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에요. 당시 광주 사람들은 비상사태에 사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곳간을 허물었고, 헌혈로 피가 남아 돌았습니다. 비참함 속에서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대단한 경험을 한 겁니다. 비록 한 쪽에서는 지옥을 체험했지만, 또 한 쪽에서는 천국을 경험한 거예요.” 광주대교구는 정평위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을 중심으로 5.18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3년 동안 5.18을 세 가지 주제로 돌아보는 학술대회와 순례, 기념 미사 등이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다. 이영선 신부는 5.18 당시 광주 사람들이 한 일을 꼼꼼히 다시 보고, 인간학적 · 신학적 · 교회론적 의미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섬세하고 다각적으로 들여다볼 때, 5.18의 영성과 신학이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일 역시 앞으로 정평위가 해야 할 과제로 두고 있다. 이영선 신부는 내년까지 주제별 학술대회가 끝나면, 이후에도 흐름을 이어 다양한 주제 속에서 5.18을 다루고, 그 축적된 결과를 통해 역사 안의 하느님을 고백하도록 할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