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이종호
수년 전 오지랖 넓은 어느 대학교수가 적확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유독 우리 사회에는 '침묵의 카르텔'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이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비리'라고 할지라도 외부로부터의 고발이 있기 전에는 여간해서는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직 내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문제 삼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자신에게 괜한 불이익이 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대충 눈치껏 중간만 가면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처세의 '경험칙'이 반영된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두루 통용되는 변명 중의 한 가지인 '관행'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굳어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요동치게 한 '급식 비리'도, 교사들의 '체벌 문제'도 이러한 분위기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관행을 깨는 것은 기존의 일하는 방식, 나아가 인식하는 틀 자체를 수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꿈적이지 않는 철옹성입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로서 '체벌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체벌의 유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참고 삭히며 살아갑니다. 아이들을 향해 매를 든 손을 부르르 떨면서도, (교육동지로서 아내가 가르쳐 준) 체벌 욕구를 순간 가라앉히는 '아이 앞에서 구구단 외기'는 이제 학교에서의 흔한 일상이 될 정도입니다.
비교육적인 체벌이 학교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 교육 전체를 폄훼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우리 교육의 수준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 될 수는 있습니다.
비교육적 체벌, 그 '효험'의 유혹에서 못 빠져나오는 까닭
체벌의 비교육적 측면을 누구나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 '효험'의 유혹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에 있어서 모두가 수긍하는 공공의 적인 '입시'에 우선 탓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명문고, 명문대 진입이라는, 결과만 좋다면 웬만한 과정쯤은 눈감아 주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너그러움(?) 때문입니다. 이는 조금도 기다릴 줄 모르는 우리 교육의 천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사들끼리는 서로 조심(?)하려는, 곧 '터치'하지 않으려는 뿌리 깊은 관행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본의 아니게) 존속시켜온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지 싶습니다.
교사마다 자신만의 '교육 철학'이 있으며, 그에 따라 행해지는 '교육 스타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방식이 더 교육적인지, 거칠게 말하자면 더 효과(?)적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그럴 듯한 이유로 서로에게 무관심하리만큼 입을 닫습니다.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식의 '묵인'입니다.
더구나 체벌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교사가 극히 드문 현실에서 교사 중 누군가 다른 교사들의 교육 방식이 '지나치다'거나,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은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을 되돌려 듣기 십상이라 선뜻 나서기도 저어한 게 사실입니다. 나아가 개인적인 '낙인'은 기꺼워하더라도, 그런 지적을 하는 것은 조직 내의 분란을 일으키는 엄청난 모험 행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듣자니까 초등학교 교사들의 경우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심하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특정 교육대학 출신이 절대 다수일 수밖에 없는 현 초등학교 교사 임용제도 특성상 초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는 교사들은 중·고등학교와는 사뭇 다르게 직급이 아닌 '대학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선배는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지 않습니까.
누구나 서로에게 간섭받기 싫어하지만, 그 간섭이 없으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행동입니다. 하물며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교육 행위에 대한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첫 번째 자극은 바로 곁에 앉아있는 동료 교사에 의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계 '내부의 갈등'이 필요하다
명약관화한 일이지만, 교사끼리의 교육 행위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깨지는 순간 조직 내부의 갈등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충고나 조언이 아닌, 참견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정작 중요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는 그 어떤 노력도 없이, 서로에게 나쁜 건 두루뭉수리 덮으려 하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여겨지면 허풍스럽게 과장하는 모습을 지금껏 보아왔기에 그렇습니다.
갈등이 조금이라도 길어질 양이면, 늘 그렇듯 공식처럼 '통합'과 '인화단결'이 필요하다면서 한 목소리 낼 것을 누군가 소리 높여 주문합니다. 그것이 또 그렇게 먹혀들면서 대충 넘어갈 것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사하고 또 언제 터질지 모른 채 수면 아래에서 곪아 썩도록 방치하는 것입니다.
교사들끼리, 또 교육청과 교육부 관계자들끼리 '가재는 게 편'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부의 갈등'은 필요해 보입니다.
통합과 인화단결을 부르짖는 '한 목소리'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아냥거림만큼은 정말이지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동네북'이 돼버린 학교이지만, 그래도 변화를 향한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으리라는 믿음마저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부원(ernesto)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