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 게임
강혜성
그가 술을 마신다 그의 입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입술은 수십만 개의 수정알을 품은 단단한 알집이다
벌레3은 수십 개의 발을 가졌는데 발톱마다 예리한 칼날을 장착했다 그것들의 군무는 칼춤이다 영락없이 상대방은 피투성이다
벌레9는 발이 없지만 힘이 세다 발이 없는 것들은 꾸불텅거리며 온몸으로 기어오는데 속도가 아주 빠르다 지나온 자리는 물기가 축축하고 지린 술 냄새가 풀풀 풍긴다 벌레는 기어와 입에서 갑자기 뾰족한 송곳 이빨을 꺼내 찔러대며 피를 낸다 벌레11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독성을 지녔다 무지갯빛 날개로 현란하게 날다 아이들 눈을 빨아 먹으면 그만 눈이 멀고 만다
벌레3의 발은 숫자가 많아 누적될수록 상처가 크다 얼굴에 공격을 당하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진다
벌레9는 신선한 피를 좋아해서 일명 심장벌레다 부드럽게 가슴으로 기어 올라와 심장에 송곳을 박고 제 몸을 수혈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찌르듯이 아프다는 게 실감이 난다 벌레11은 나비처럼 아이의 눈에서 수분을 섭취한다 기다란 대롱으로 자신의 액체를 주입해 눈을 마비시키고 뇌의 정수를 빨아먹는다 이것은 일종의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다 실전이므로 방어할 무기가 필요하다 어둠을 좋아하는 입속의 벌레들은 빛에 취약하다 나는 빛 반사 거울로 벌레들을 해치운다 벌레들은 빛 한줄기에 순간적으로 타들어 간다 모두 해치울 때쯤 그는 잠이 들어 있다 벌레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것은 일종의 스타크래프다
—월간 《현대시》 2023년 6월호 ------------------- 강혜성 / 대전 출생, 부산 거주. 2018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 『애초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