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두는 맛이 없는 말이고
간단한 한 마디에 지내지 못하지만 이 화두를 거각을
해서 잘 해감으로서 순일무잡해가지고 타성일편이
됨으로 해서 의단을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는 것이므로,
이 한 화두는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중대한 열쇠요
자물쇠통입니다.
이것은 섣불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교리, 철학, 그런걸 가지고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공부가 아닙니다.
해갈수락 알 수 없, 알 수가 없고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허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참구하되 활구참선이 있고 사구참선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말길이 있고 뜻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는 그런 식으로 화두를 참구해나가면 그것을 ‘사구참선’이라 그래. 해, 해가면 조끔 재미 붙일 곳이 있고 뭣이 알아지는 것이 있고 보이는 것이 있고 얻을 것이 있어.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는 것이지, 그럴싸헌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음이 아닙니다.
참선을 허는 것은 뭘 알랴고 하는 것이 아니여.
해갈수록 알 수가 없어서 말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지고 더듬아 들어갈 곳도 없어.
다못 알 수 없는 의단만 독로해야 그것이 공부를 옳게 해나가는 것이다.
천칠백공안 가운데에 가장 최초에 화두요
가장 구경에 화두가무엇이냐하면은 「시삼마화두여.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 무엇고?’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모든 육체적인 동작
모든 정신적인 작용허는 가운데 이 한 물견이 있는데
그 한 물견이 경전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그 이름을 붙여놨는데, ‘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성품’이라 하기도 하고
진여라 하기도 하고
불성’이라 하기도 허고
법계’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그것은 편의상 붙여놓은 이름이지 그 자체는 본래 이름도 없고 모냥도 없는 거여.
그래서 「한 물견이라 이렇게 고인은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부르면 이름도 없고 모냥도 없는 것인데
그 작용에 있어서는 부르면 대답할 줄도 알고,
욕하면 썽 낼 줄도 알고,
아프면 괴로와 할 줄도 알고,
착하게 쓰며는 천사와 같기도 하고,
한 생각 잘못 쓰며는 악마와 같은 행위도 거기서 나올 수가 있어.
그놈을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범부로써 영원토록 생사윤회를
헐 수밖에 없는데 대관절 그게 무엇이냐 이거거든.
그래서 그것을 참구하는 거여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전후가 끊어져.
다맛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 뭣고?’
앉아서도 ‘이 뭣고?’요, 서서도 ‘이 뭣고?’요, 걸어가면서도 ‘이 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 뭣고?’, 화장실에 가서도 ‘
이 뭣고?’, 누가 억울한 소리를 해서 부화를 질러도
처음에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확! 속에서 골이 나지만,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뭣고?’ 이렇게 해들어 가야 돼.
그래서 선방에서 입선을,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해서
이렇게 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자세여.
기본자세는 대단히 중요헌 것이어서 철저허게 해나가야 허지만,
밤낮 기본자세만 가지고 허는 게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에 살아있는 공부를 해야 해.
살아있는 공부라 한 것은 일정한 외형에 국집한 것이
아니여. 기본자세는 철저하게 허되 방선을 하고
걸어가면서도 알 수 없는 의심 ‘이 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 뭣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걸림이 없이 의단이 독로허도록,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순일무잡해서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타성일편이 되도록 그렇게 우리는 잡두리를 해나가야
진정한 수행인이여.
죽비치고 앉으면 ‘이 뭣고?’가 좀 되고, 방선허면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화두는 어디로 달아나버리고,
화두를 들 때는 의심이 있는 것 같다가 금방 일초도 못 되아서 딴 생각이 나고 허면,
초학자일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겠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해가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의단이 터억 독로해서
나중에는 그렇게 되아야 하는 것이고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형식적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모냥을 취하는 것이
아니고, 기본자세는 철저하게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허고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뒤로 너무 자지바지 하지 않도록, 더군다나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머리는 단정허되 어깨에 힘, 목에 힘은 다 빼.
눈은 평상으로 뜨되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눈을
감을랴 하지 말고 평상으로 뜨되 앉은 자리에서
약 이매타 정도가 보이도록.
의식적으로 어느 점을 응시허거나 앞에다 콩이나
무슨 물견을 놓고 그걸 딜이다 보고 그런 것이 아니고
보면 이매타 지점이 방, 방에서 헐 때 보이되 본 바가
없어야 혀.
처음에는 자꾸 방바닥에 무슨 무, 무늬 그림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고, 또 벽을 향해서 앉을 때는 벽에 무엇이
사람같이 생긴 것이 보이기도 하고 짐승 같은 것이
보이기도 허지만 그것은 그런 디에 오래 빠지지 말고
아무것도 본 바가 없이 화두에 대한 의단만 자꾸
단두릴 허되,
처음에는 그 의심을 헐 중을 잘 몰라가지고
‘이 뭣고?’ ‘
이 뭣고?’ 허되 그것 뿐이지 의심이 무엇인줄을 몰라요
처음에는.
‘이 뭣고?’ 알 수 없는 의심. 자주자주 ‘이 뭣고’ ‘이 뭣고’ ‘이 뭣고’ 그렇게 허는 게 아니고, ‘이 뭣고-?’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 뭣고-?」
나중에는 「이 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하고, 나중에는 「이 뭣고?」 헐 때, 「‘이’ 헐 때 ‘이’ 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도 다구쳐 해나가는데,
문제는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허도록 허는 것이지
이 뭣고’헌 글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거든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_()_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