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마침내 1년 넘게 이어져 왔던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의 챔피언이 가려지는 날. 윤기현 단장은 4국에서의 불공정 계시를 강력히 항의하여 일본인 이토 씨를 추천했고 주최측은 어쩔 수 없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숙적들이 이윽고 마주앉았다. 오래 전 LA에서의 친선대국까지 포함해 종합전적 3:3으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라이벌.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무공과 기량에 치를 떨고 있었으리라.
입회인이 개시를 선언하자 녜 웨이핑이 한웅큼 돌을 쥐었다. 조훈현이 홀짝을 맞추지 못하자 녜 웨이핑은 노타임으로‘백’을 불렀다. 앞서 벌어졌던 네 판의 순번을 무효로 하고 새롭게 돌을 가린 결과, 또 조훈현이 흑을 잡게 된 것이다.
검토실의 윤 단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젓자 일본인 관전필자 후지이(藤井正義)씨가 윤기현 단장의 어깨를 치며 위로했다. “오늘 조훈현이 이깁니다. 두고 보세요. 어젯밤 꿈을 꾸었는데 산신령이 홀연히 등장해 흑을 쥔 조훈현이 승리한다고 예언했거든요.” 후지이의 꿈이 사실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를 비롯한 일본팀은 알게 모르게 중립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조훈현을 응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오전 10시- 조훈현은 또 2,4국과 동일한 포진을 시도했다. 녜 웨이핑은 눈썹을 한 번 꿈틀하더니 양화점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아마도 조훈현의 도발적인 기세에 질린 것이었으리라. 그러자 조훈현은 4국 때와 정반대로 철저하게 귀를 파기 시작했다. 넓은 곳이 많아도 그는 상대의 집이 커질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 즉각 특공대를 투입해 두 집 내고 사는 타개작전으로 일관했다.
녜 웨이핑은 묵묵히 중앙에 성을 쌓으며 조훈현의 발 빠른 행보를 뒤쫒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민첩한 상대라도 언젠가는 허점을 노출하겠지. 그는 처절하게 인내하면서 두텁게 두텁게 따라왔다. 점심 작전까지 조훈현의 시간소모량은 90분, 그에 비해 녜 웨이핑은 고작 30분만 쓰고 있었다. 꾹꾹 참다가 자신이 장기로 하는 종반에 에너지를 터뜨리겠다는 심산 같았다.
점심 메뉴는 장어덮밥. 그런데 조훈현은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으로 밥알을 헤아리고 있었다. 윤 단장이 말을 걸었다. “왜 아직도 편찮은가?” “......” 그는 대답대신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말라있는 입술, 그는 큰 시합의 중압감과 감기 기운으로 만신창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냥 편안하게 두시게. 평소 자네 실력대로만 둔다면 이길 수 있을 걸세.” 조훈현은 선배의 충고에 또 미소만 지어보였다. 힘겨운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내내 허공의 한 점만을 응시했다. 윤 단장은 그런 그를 내버려 두어야만 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오전 봉수한 바둑판이 홀로그램으로 펼쳐져 있을 것이고 그 바둑의 전단(戰端)을 찾기 위해 골몰해있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니나다를까 오후에 바둑이 속개되자마자 조훈현은 승부수를 띄웠다. 백의 세력권에 잽을 던진 다음 아예 깊숙이 헤집고 들어간 것이다. 응수가 곤란해진 녜 웨이핑의 행보가 둔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껑충껑충 중앙으로 탈출한 흑은 한숨을 돌려 우변의 약한 돌 한 점을 꾹 이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지킬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때부터 녜 웨이핑이 맹렬한 반격을 시도해왔다. 시간을 아껴온 그는 상대의 대마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공격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초읽기에 몰린 조훈현을 궁지로 몰기 위해 그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한 난해한 초식으로 태클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으로 승부하려는 그의 작전은 오산이었다. 조훈현은 당대 최고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천재.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카운터블로를 날린 끝에 마침내 백의 공격에서 벗어나 거꾸로 대마를 잡아버린 것이었다. 그 수순은 거의 유일한 생명선이었는데 일분 초읽기 속에서 조훈현은 완벽하게 외길을 밟아나갔고 녜 웨이핑은 자폭을 택하고 말았다.
조훈현이 145수를 힘차게 두자 녜 웨이핑은 무겁게 고개를 떨구며 돌을 던졌다. 그 순간 검토실에서 함성이 터졌다. 5국이 진행되는 동안 바둑평론가 박치문 씨를 비롯해 동남아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던 각 언론사 특파원들이 대거 싱가포르로 몰려와 우리측 응원단도 적지 않았던 터.
4국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측 쿵 샹밍 8단이 오열을 터뜨려 주위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 만큼 그들의 기대가 컸었고 어이없는 좌절에 체면 따위를 갖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대국실에서 녜 웨이핑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조훈현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듯 기쁨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곧이어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그동안 한국 측을 은근히 애먹였던 잉 창치 씨도 환한 웃음을 비치며 승자 조훈현을 축하해주었다. 1미터도 넘는 트로피와 40만 달러짜리 수표를 받은 조훈현이 그제서야 머쓱하게 미소를 지었다. 점심 때 지었던 희미한 미소가 시상식에서 꽃으로 활짝 피어났다.
같은 시각, 9월 5일 오후 4시의 한국기원은 빅뱅이 일어났다. 생중계로 해설을 하던 김수영 6단이 조훈현의 우승 소식을 전 국민에게 전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쉰 목소리로 하루 종일 열변을 토하던 그는 목이 메어 이 대목에서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2백 명의 청중들도 따라서 울었다. 한국기원 사무국에서 캔맥주를 대량으로 주문해 청중들에게 서비스하며 즉석맥주 파티를 벌였다. 브라보! 싱가포르에 기자를 파견하지 못한 언론사들이 한국기원으로 카메라를 보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한국바둑이 세계정상에 우뚝 오른 감격의 순간이었다.
챔피언 조훈현은 싱가포르 교민들을 비롯한 응원단과 승전 축하파티를 늦게까지 즐기고 호텔방에 들어왔다. 긴장이 풀려 목욕할 기운도 없었다. 아아! 그는 침대에 풀썩 쓰러져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의 환영들이 파노라마처럼 회오리쳤다. 목포의 애잔한 풍경, 보문동 달동네의 계단, 세고에 스승집의 다다미 방, 공군복무 시절의 애환과 폭격시대의 영광, 그리고 파란만장했던 응씨배 토너먼트의 기억들….
이제 내 몫은 한 것이겠지. 주마등같은 필름 끝자락에 비로소 안도감이 묻어났다. 몸을 뒤채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며칠동안 답답했던 비강(鼻腔)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대승리의 엔돌핀이 지독한 감기 바이러스를 몰아낸 모양이었다. 참으로 상쾌한 피로감을 만끽하며 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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