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
" 응, 그래 잘 다녀와라."
누가 들었으면 아마도 자식이 잠시 며칠 여행 다녀오나부다 하고 생각할 정도의 그냥 무덤
덤한 어머니와 아들간의 인사다. 우리 어머니의 그 여유 있고 평안하신 마음가짐은 여전히
따라가지 못한다.
' 뭐 믿는 구석이 계신 분임이 확실하지. '
하여간 그렇게 무덤덤하게 며칠 여행을 떠나듯이 친구들과 가족과 인사를 하고 비행기를
타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오랜 기간 어머니를 떠나있을 자식이라는 작
자도 그냥 덤덤하게 비행기에 앉아있다. 잠시 창밖을 보며 멍하니 공상에 빠져있을 뿐 새로
운 세상에 대한 동경도, 두려움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렇게 마치 옆동네로 마실 가듯
이 나의 연수는 시작되었다.
하늘 꼭대기에서 맛없는 밥 한번 먹어주고, 잠 한번 자주니 뱅쿠버란다. 그리고 다시
갈아타서 좀 있자니 캘거리에 도착했으니 내리란다. 물론 영어로 말해서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내리려고 준비하니까 나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내린 거지.. 짐을 찾
고 날 데리러 나온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운이 좋게 한국인 연수생 두 명을
만났다. 녀석들 둘 다 재미있는 인상이다. 하나는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 눈을 똥
그랗게 뜨고 생각에 잠겨있고, 인사도 하는 듯 마는 듯.
(꾸벅)<<--- 말도 안하고 그냥 인사만 이렇게 하고 만다. 참나 ...
그리고 또 한사람 하하. 눈은 어디서 반달을 구해다 꽂아놓았는지 항상 방실방실 웃는 인상
이다. 아마도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왔으리라. 우리 집 막내동생이 생각나는 인상이다. 한마
디로 좀 조심해야할 인상이지.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지요. "
하하 처음부터 장난쳤군. 쩝... 할수없지뭐. 워낙 버릇이 되어놔서.... 다행 이도 그 반달은
그냥 방긋 웃고 만다. 모두들 묵직한 여행가방을 두 개씩 힘겹게 지니고 있다. 얼굴엔 '피곤
'이라고 선명하게 쓰여있다. 둘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 장갑까지 추위에 대한 대비가 아주
단단히 되어있다. 에구에구, 난 좀 추위하고 놀아주어야 할거 같다. 그래도 지금은 별로 춥
지는 않은 것 같다. 오는 길에 가이드 아저씨 왈
" 저게 캘거리 타워입니다. 항상 여러분 보라고 깜빡깜빡 거리지요"
이 사람 외국인이다. 그래서 내가 영어를 알아들은 거구. 하하. 나두 한국에서 공부좀 했거
든. 근데 여전히 말은 않나온다. 그래도 옆에 앉은 반달은 여전히 뭐가 그렇게 신기하고 궁
금한지 열심히 보고, 열심히 말해볼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앞에않은 똥그란 눈은 그냥 앞
만 보고 있다.
'아 여기가 캘거리구나.!'
'이제 내 연수 생활이 시작되겠구나.'
기거할 집에 들어가서 잘 되지 않는 인사하고, 맛도 모르는 이상한 거 먹고, 안돼는 영어
열심히 만들어서 아저씨한테 칫솔 안 가져왔다고 칫솔 사오고, 그리고 이제 방이다.
"휴~~~~~"
그럭저럭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그 동안 학교 등록도 하고, 내가 살아야할 동네 지리
도 알아보고 (말이 동네지 이건 울 집이나, 옆집이나, 그리고 근처의 집들이 다 그게 그거
다. 무슨 붕어빵 찍듯이 집을 지어놓았나... 썩을 앞으로 집 잘 찾으려면 고생좀 해야할 판국
이다. ), 그리고 여전히 맛없는 밥 먹느라고 고생 무지하게 하고 있다. 여기서 토마토도 끓
여먹을 수 있다 는걸 처음 알았다. 어떤 용감한 사람이 시도를 해봤는지 참 대단한 발상이
다. 하여간 그나마 토마토스프가 그래도 제일 먹을 만 한거같다.
학교생활은 참 재미있다. 등치는 산만하지만 재미있는 토니도 있고, 말썽꾸러기 토드,
그리고 좀 무섭게 보이지만 착한 큰윤정이도 있고, 중국 애들도 있다. 다들 처음이라 그런지
멀뚱멀뚱 하지만 그래도 나뿐 사람들은 없는 모양이다. 참 학교에 윤정이가 둘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구분을 해야할것 같은데, 난 이름으로 사람 구별하는 거 참 못하는 사람이라서 그
냥 이렇게 부를 작정이다. 우리 반에 키가 크고 나이한살 더많은 윤정 이는 큰 윤정이, 처음
부터 샘나게시리 advance 반에 들어간 작은 윤정이, 참 그리고 나랑 같이온 그 걱정 많은
눈 큰애 이름은 미현이란다. 머리가 나빠서 성은 그냥 생략하기로 하자. 안 그러면 힘들어진
다. 처음부터 사람을 참 많이도 사귀었다. 내가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라서 친구를 쉽게 사
귀는 편은 아닌데, 여기선 별로 그런거 안 따진다. 그냥 혼자 있으면 외롭고 힘들어서라도
친구를 만드는 편이 좋은거 같아서 내가 더 적극적이 되어버렸다. 참 신기한 일이다.
으이구,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동내 날씨 영 엉망이다. 이동내는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
한 대여섯명 있나보다. 지들끼리 맨날 투닥거리다가 이기는 놈 맘대로 오늘 날씨를 결정하
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날씨가 변덕이다. 추웠다가 더웠다가, 심심하면
좀전에 맑았었는데 어느새 눈온다. 아침에 잘 챙겨서 좀 따뜻하게 입고 오면 오후엔 더워서
다 벗고 다니고, 약올리는것두 아니고 날씨마저 힘든 연수생활에 더 고생이 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