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하지 말고 이봉주처럼---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애 늙은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도 별로 들지 않았으면서 점잖은 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애 늙은이들은 너무나 많다. 그들을 가리켜 젊은 노인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로 늙은 행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젊은이답지 않게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힘차게 나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일뿐이다.
요즘 ‘이태백’들은 힘을 쓰고 싶어도 쓸 곳이 없어 저절로 점잔을 빼며 살아간다. 그 동안 배운 것도 써먹어야 하고 갈고 닦은 솜씨도 있는데 멍석을 깔아줘야 춤을 출 게 아닌가. 그들은 본의 아니게 실업자 또는 무직자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백수임을 자탄하며 한숨만 쉬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정부와 사회의 잘못에 기인한다.
정부는 청년실업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여 일자리 창출의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는 이들이 일할 의욕이 생기고 한 단계 낮은 일자리라도 기꺼이 찾아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한다. 그런데 정부와 사회는 새로운 기업육성과 고용증대에 대해서는 립 서비스에 그치고 코드인사와 투기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주저앉을 수밖에 더 있겠는가. 청년실업자를 한 명이라도 더 줄여야 한다는 기본적인 정책전환과 과감한 투자가 선행되어야만 애 늙은이 이태백도 힘차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칭 ‘젊은 오빠’들도 흔하다. 나이깨나 훔쳤으면서도 아무데서나 큰 소리치고 힘이 넘치는 것처럼 행세하는 늙은이들이다. 평균수명이 대폭 올라가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어야 늙은이 축에라도 낄 수 있는지 구분하기도 힘들어졌지만 국가에서 인정하는 ‘경노’에 들어가려면 만 65세는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갑잔치를 치르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이 무색하게 칠순잔치조차 대개 효도여행으로 끝낸다.
팔순잔치쯤 되어야 그래도 노인네 장수 잔치로 쳐준다. 이런 젊은 오빠들 덕분에 정부는 고령화에 대비한 장기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의료체계의 전면적인 개편도 이뤄지고 있다. 젊은 오빠들의 특징은 과잉의욕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별 힘도 없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단매에 때려눕힐 것처럼 일갈을 하기도 하고 술자리에서는 소주 몇 병 게눈 감치듯 한다.
친구끼리 등산이라도 할라치면 젊은이들도 조심해야 하는 릿지 등산은 금기사항임에도 굳이 바위에만 매달리는 과잉집념도 이들의 마지막 입새라고나 할까. 봄이 되면서 전국 각지의 높은 산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데 나이 먹은 축들이 고혈압이나 심장병에 불고하고 무리한 등산을 하다가 빚어내는 일이 자주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나이 먹었다고 “한 물 갔다”는 말을 듣던 마라토너 이봉주는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열어줬다. 이봉주의 금년 나이는 서른여덟이다. 우리 나이로 그렇다. 불혹을 앞둔 나이에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더구나 마라톤 왕국 케냐의 선수들이 열여섯 명이나 에워싼 인해전술 속에서 마지막 2km를 앞두고 선두 다툼에서 장쾌한 승리를 일궈내는 장면은 아무리 불러도 목이 메지 않는 ‘이봉주’만이 해낼 수 있었던 쾌거였다.
중계방송을 하는 해설자와 아나운서도 그가 2시간10분 이내에 2위만 해도 대단한 성공이라고 두 시간 내내 말하고 있었다. 마라톤 전문가조차 오직 이봉주의 나이 탓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봉주는 나이라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했다. 그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키루이는 기세 좋게 선두를 치고 나갔다. 그의 역대기록은 이봉주보다 2분 빨랐지만 선두를 제치는 이봉주를 멀건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이미 체력이 완전 소진되어 따라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눈빛이 역력했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몇 안 되는 한국 마라톤의 중심인물인 이봉주가 흔히 말하는 나이 탓을 훌훌 던져버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우리의 희망이 되어준 것은 어느 누구도 하기 어려운 극기의 정신력 때문이었다. 인간의 체력은 나이가 들면 쇠퇴하기 시작한다. 근육이 이완되고, 피부탄력이 없어지며, 심폐기능도 줄어든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지지만 운동을 계속하면 상당기간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가면 나이는 저절로 따라오는데 스스로 주눅 들어 이겨내겠다는 의지마저 세우지 못하면 폭삭 주저앉는다. 강인한 의지로 자기의 체력을 책임져야만 이봉주 같은 철인이 된다. 그가 인터뷰를 통하여 “아직도 지구력만은 자신 있다”고 말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체력이 곧 국력이기에 21세기의 한국은 진정으로 젊어진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번 마라톤 우승을 계기로 세계육상대회를 유치하려는 대구의 희망이 한결 밝아진 것도 망외의 기쁨이다.
|
첫댓글 저도 이젠 나이가 40이 넘으니까 30대만 다시 돼도 좋겠다란 생각을 하는데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나는군요7233님의 헌신적인 열성과 활동에 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