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질 은 불 치 병 이 아 니 다
김문수
(농업, 경남 양산군 웅상읍 평산리 602)
지금 내 나이 40세로 간질을 앓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다.
처음 간질 증세를 보인 것은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그 당시 간질은 난치병 중에서도 난치병이었고 천질이라 하여 매우 쉬쉬하던 병이었다.
고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나는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병이 악화되어 중퇴하고 말았다.
부모님은 나를 위하여 온갖 약을 다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번은 경북 안강까지 나가셔서 약을 지어오셨다.
그러나 역시 아무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약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부모님은 나를 서울의 유명한 신경외과에 데리고 가셨다.
병원에 가서 뇌파검사를 받았다.
뇌파검사 결과 일반인은 검사지에 줄이 고르게
그어지는데 나는 매우 불규칙하게 줄이 그어져 나왔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수술로 고치려 하지 말고 서서히 약으로 치료해보자."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뒤, 다시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이웃 어른의 소개로 부산 모 의원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또 뇌파검사를 받았고 약을 받아다가 먹었다.
일단 그 약을 먹으면 아픈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 나는 열심히 약을 먹었다.
그러나 약을 깜박 잊고 먹지 않거나 과식을 하면 간질 증세가 나타났다.
게다가 나는 위가 매우 약해 육식을 하거나 과식을 하면
다음날 소화가 안되고 속이 쓰려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태가 되면 부산진 역 옆에 있는 체증 내리는 곳을 찾아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병원과 약국을 전전하면서 위장병 치료를 겸해도 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거기에 독한 간질약을 먹으니 위장병은 더욱 심해졌다.
고통 속에서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약으로도 안되고, 병원을 가도 소용이 없자 부모님은 혹시
공기 좋은 곳에서 살면 나을까 하여 도시를 떠나기로 하셨다.
우리는 시골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맑은 공기 속에서 논일, 밭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세월을 보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몸도 많이 나아졌다.
간질 증세가 보일 때에는 인근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고 버티었다.
나는 그 사이 결혼을 했지만 간질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내 나이 28세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 들러 건강에 관한 책을 보다가
장두석 선생의 《사람을 살리는 단식》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복용하던 약을 끊은 채 집에서 3일 정도 혼자 단식을 했다.
몸이 좋아지는 것이 곧 느껴졌다.
나는 장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1994년 2월 18일부터
2월 28일까지 열린 제24기 민족생활학교 교육을 받았다.
민족생활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다시 맞은 내 안사람도 자궁 종양이 있었지만 민족생활학교에서 함께 교육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여러 환우들의 치료 체험을 듣고 나도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함께 참가한 교육생들도 대부분 간경화, 위암, 췌장암 등 중증 환자들이었으나
그들 역시 신념을 갖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각종 요법을 따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엔 고통스러웠으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풍욕을 하고 냉온욕을 하는 것도 차츰 익숙해져 갔다.
나를 촉수한 후 장 선생님은 "간질은 피가 부족한 데서 오는 병이므로
철저한 생식을 하면 낫는다."라고 하시며 특히 모관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또 나같이 간질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3일 이상의 단식은 뇌에 손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으므로 3일 이상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굶는 것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단식을 통해 몸 안에 정체되어 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가 상쾌한 상태가 되었다.
단식중 기운이 없을 때에는 물과 죽염, 조청, 감잎차 등을 마시며 버티었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6개월간 생식을 하였다.
오곡가루를 내어 물에 타먹고 채소를 많이 먹었다.
그러자 많은 양의 변을 보게 되었다. 아마 숙변이 제거된 모양이다.
숙변이 제거된 후로는 약을 먹지 않아도 간질 증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집사람도 자궁 종양에서 벗어나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건강에 대한 걱정 없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무척 두렵지만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위해 이 글을 쓰게 됐다.
혹시 누군가 간질을 앓고 있다면 나는 이야기해주고 싶다.
간질은 절대로 난치병이 아니며 천질이 아니라고.
지금부터라도 장 선생님을 뵙고 지도를 받으면 반드시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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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소견
김문수 씨는 간질 증세가 매우 심했다. 약을 먹어도 쓰러질 정도였다.
게다가 빈혈이 심하고 맥박이 빨라 걱정스러웠다.
그로 인해 첫 부인과 이별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사실 간질 환자의 경우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간질 환우들의 경우 쓰러져 떨 힘이 있다면 일단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김문수 씨의 경우 농촌에서 생활해 온 덕분에 어떤
건강한 힘이 있으리라 확신하여 본인에게 희망을 주었다.
김문수 씨 부부는 건강법을 열심히 실천하여 지금은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간질을 이겨낸 신념을 가지고 다른 간질 환우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이 대단하다.
《민족생활의학》 정신세계사 pp.3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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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은 피가 부족한 데서 오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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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생식을 하면 낫는다
간질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 , ,
3일 이상의 단식은 뇌에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