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오대산 상원사 서쪽 염불암 근처에 자리한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다.
당시 벼슬아치들은 우통수에서 제를 올리고 이 샘을 관리해 왔다.
<동국여지승람><택리지>등에도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봐라! 내일 아침 주상 전하께 탕제를 달여 드려야 하니, 새벽에 우통수를 가져오너라!”
“예, 알겠습니다.”
궁궐의 관리 여러 명이 새벽안개를 헤치고 한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가에는 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통수를 가지러 왔네.”
“어서 배에 오르십시오. 새벽 우통수가 가장 깨끗하고 몸에 좋습니다.”
작은 배는 새벽 강 안개를 헤치며 한강 중앙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여기가 좋겠네!”
이윽고 관리들은 궁궐에서 쓰는 두레박을 물에 풍덩 집어넣었다 끌어 올렸다.
그런 다음 항아리에 물을 정성스레 담았다.
이 일에 처음 따라온 젊은 관리는 이해되지 않은 듯 연신 고개를 기웃거렸다.
우통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줄로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주상께 올린 탕제에 쓸 물인데, 궁궐 안의 좋은 샘물을 두고 하필이면 한수(한강)를 떠 가나요?”
“한남동 앞을 흐르는 한강물이 탕제에 가장 좋기 때문일세.”
정말로 한강 물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솟는 약수보다 더 좋을까?
옛 문헌에 오대산 우통수 물은 맛있고 무거워서 차와 탕제를 달이는 데 탁월하다고 전해 오고 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우통수는 오대산에서 발원해 보통 물보다 무거워 다른 물과 섞이지 않고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 서울 남산 기슭(한남동) 앞에 이르도록 맛과 맑음을 그대로 간직한다고
했다. 그래서 궁중에서 탕약의 약수나 차 달이는 물은, 한남동에서 배를 타고 한강 가운데로 나가
두레박으로 물 속 깊이 흐르는 강심수(우통수)를 길어다가 사용하였다고 ‘한경지략’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대산 우통수는 이처럼 신비한 샘물로 1500여 년 동안 사랑을 받았다.
한강 지천의 하나인 오대천을 따라 올라가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이 나온다.
이 오대산 남쪽 계곡의 물이 모아져 남으로 흐르고, 정선을 거쳐 마침내 한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통수는 현재 오대산국립공원 상원사 서쪽 암자 입구에 있는 샘이다.
신라 정신왕의 태자 보질도는 아우 효명 태자와 함께 이 계곡에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이들은 매일 우통수를 떠다가 차를 끓여 문수보살에게 올렸다고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현재 우통수는 반듯한 사각 돌로 테두리를 만들었고 깊이가 60 cm 정도 된다.
이름도 많이 바뀌어, 우동수에서 우중수로 또 우통수로 불려지고 있다.
지금은 많이 오염돼 있지만, 한강은 본래 우통수와 같은 약수가 흐르는 강이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도 오대산의 우통수를 한강 발원지로 소개하고 있다.
그 부문만을 추려서 옮긴다.
“명산(名山)은 오대(五臺)이다. 부(府) 서쪽에 있다. 봉우리 5가 고리처럼 벌려 섰다.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산이라 한다.
서대(西臺) 아래 수정암(水精庵) 옆에서 우리샘(檻泉)이 솟아난다.
물의 빛과 맛이 여느 물과 다르고, 그 무게도 또한 그러하므로 우통수(于筒水)라고 한다.
곧 금강연(金剛淵)은 한강물(漢水)의 근원이 된다.
봄·가을에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지내게 한다.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해서
중국의 양자강(揚子江)과 같으므로 한(漢)이란 이름이 이로 인하여 되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 어귀에 이르기 8리, 남쪽으로 삼척에 이르기 70리,
서쪽으로 횡성(橫城)에 이르기 1백 55리, 북쪽으로 양양(襄陽)에 이르기 46리이다.“
한강의 물은 예로부터 대단히 좋은 물 약수로 알려졌다.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보면 좋은 물 약수의 이야기가 나온다.
고려 말에 차를 좋아하는 기우자(騎牛子) 이행(李行)이 전국의 좋은 물에 대한 품평을 한 기록이 그것이다.
'첫째는 충주의 달천수(達川水)요 두 번째는 한강의 우중수(牛重水), 세 번째가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이다.'
이행은 자신의 호를 '소를 탄 도인'이라는 뜻의 '기우자'라고 지은 것을 보면 도가적 취향을 가졌던 인물 같다.
도가에서는 도통한 도인을 소(牛)를 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며
이름 끝에다가 존칭의 의미로 '자(子)'를 붙이는 관습이 있다.
어느 날 기우자는 친구 집에 차를 마시러 갔다. 부엌에서 찻물이 끓어 넘치자 친구가 물을 더 부어 넣었다.
나중에 가지고 온 이 물맛을 본 기우자는 '2가지 물을 더 집어넣었다'고 족집게처럼 감별해 내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오직 혀만 가지고도 물맛에 대한 아주 세밀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감별력을 가지려면 평소에 단전호흡 수련을 해서 몸의 경락이 어느 정도 열려 있어야만 가능하다.
기우자가 말한 두 번째 물, 한강의 '우중수'는 어떤 물인가?
예로부터 한강 한복판에 흐르는 물은 아주 좋은 물로 여겼다.
강심수(江心水), 또는 한중수(漢中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에 한강의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하였던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
이 양대 빙고에 들어갔던 얼음들도 한강의 복판에서 채취한 얼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깨끗하고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얼음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좋은 물을 감별할 때 맛도 맛이지만,
저울로 물을 달아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을 좋은 물로 여겼다.
우중수의 우중(牛重)은 '소처럼 무겁다'는 뜻이다. '무거운 물'은 다른 물과 잘 섞이지 않는다.
기우자는 이 우중수가 '금강산에서 내려온 물'(自金剛山出來) 이라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