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에 가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청국장 잘하는 집 ‘별궁’이 있다. 좁은 골목길을 헤치고 들어가 현대식 한옥집의 따듯한 온돌방에 앉아 청국장 한 그릇을 먹는 일은, 메뉴가 비록 청국장이기는 해도 왠지 운치가 있다. 주인 부부가 20년 동안 살던 집을 3년 전부터 식당으로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별궁의 청국장은 우선 콩 맛이 살아 있다. 바글바글 끓여 나오는 청국장 속에는 콩 알갱이가 하나하나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콩을 찧어 양념을 해서 찌개를 끓이면 국물이 텁텁하고 씹는 맛이 없어서 주인 아주머니가 친정어머니 스타일대로 끓인 것이라고. 꼬릿한 냄새도 없고 국물 맛은 슴슴하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콩이 부드럽게 씹히는 구수한 이 청국장은 맛이 편안하다. 청국장은 전북 무주구천동에서 가져오는 콩을 옛날 방식 그대로 온돌방에서 띄운다고. 반찬으로는 무채, 시래기나물, 상추겉절이, 무장아찌, 김치, 고등어조림 등이 나오기 때문에 아예 대접을 달라고 해서 밥과 반찬, 청국장을 떠 넣어 비벼 먹어도 그만이다. 사람들이 별궁 하면 떠올리는 또 하나는 ‘맨김’이다. 다들 이 맨김에 밥을 싸서 양념장 찍어 먹느라고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청국장 한 그릇에 5천원. 간재미회, 파전, 도토리묵 등도 있다.
문의 02-736-2176 |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30분, 일요일 휴무
삼각지는 사무실 밀집 지역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골목골목에 백반집이 꽤 여러 곳 있다. 얼마 전 삼각지에 대구탕을 취재하러 오며 가며 알게 된 ‘골목식당’은 삼각지에서 제일 잘나가는 백반집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곳의 메뉴는 딱 한 가지, 백반뿐이다. 따듯한 숭늉으로 허기를 달래는 동안 밥과 찌개, 김치, 나물, 젓갈, 달걀말이, 생선조림, 멸치볶음이 기본으로 나온다. 그리고 뒤이어 메인 반찬이 나오는데 이것은 매일 바뀐다. 월-제육쌈밥, 화-갈치조림, 수-닭도리탕(또는 잡채), 목-오징어볶음, 금-황태구이, 토-갈치조림과 전 부침으로, 단골 손님들은 아예 요일별 메뉴를 외워서 다닌다고. 이 중에서도 제일 히트 메뉴는 고추장 양념에 재워서 굽는 황태구이. 포실포실한 황태 살에 배어든 짭조름한 양념이 입맛을 당긴다. 찌개는 청국장·순두부·김치찌개·된장찌개 중에서 선택이 가능한데, 순두부와 청국장이 제일 인기가 많다. 전라도식으로 잘 담가 톡 쏘는 맛이 살아 있는 갓김치,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 등 김치 맛도 좋다. 찌개에 맛깔스런 반찬으로 잘 차린 한 상이 나오는 데도 값은 4천원이다. 보통 점심 장사만 하고 문을 닫으며 예약 손님이 있을 때는 저녁에도 문을 연다. 참, 1년에 딱 한 번 특별 메뉴를 하는데 초복날 삼계탕을 5천5백원에 판다고 하니 기억해두자.
문의 02-795-7019 |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2시 30분, 일요일 휴무
서울 시내에서 쟁쟁한 맛집이 몰려 있는 곳을 꼽으라면 광화문도 필히 들어가야 한다. 직장인들이 많은 곳은 맛집이 발달하게 마련. 그래서 빌딩 지하라든가 골목들에 맛있는 집들이 많이 숨어 있는 동네가 바로 광화문이다. 그중에서도 허름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피맛골이 그렇다. 좁고 낡은 피맛골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불고기와 오징어의 만남’이라는 큰 간판을 세워둔 청진식당이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까지 손에 약도를 들고 물어물어 찾아오는 집이다. 청진식당에 들르는 열에 아홉은 간장 양념한 쇠고기 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을 먹으러 온다. 그리고 꼭 두 가지 메뉴를 함께 시키는데 나름의 먹는 순서가 있다. 우선 양념한 불고기를 철판에 얹어 익히고 그 사이에 익혀서 나온 칼칼한 오징어볶음 맛을 본다. 고기와 오징어를 각각 맛보다가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면 오징어볶음을 철판에 얹어 두 가지를 섞어서 먹는다. 따로 먹어도 맛있는 이 두 가지는 섞이는 순간 독특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 백반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시키면 밥과 국, 김치와 밑반찬, 상추 등이 나온다. 밥은 아껴두었다가 식사가 끝날 무렵 볶아 먹는 게 마지막 순서다. 불고기와 오징어볶음 각각 4천5백원이다.
문의 02-732-8038 | 영업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일요일 휴무
청진식당과 마주하고 있는 남도식당은 피맛골 내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열차집’과 그 순서를 앞다투는 집이다. 지금 주인은 세 번째 주인인데 남도식당이라는 상호와 음식 스타일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단골 손님들 역시 그대로다. 30년이 넘었으니 낡을 대로 낡은 이 집에 식사 시간이면 손님이 넘치는 이유는 4천5백원짜리 한정식 때문이다. 시원한 물김치에 무나물, 배추나물, 콩나물무침, 무생채, 생선조림, 매운 게장, ‘스뎅’에 찐 달걀찜, 김, 김치, 뚝배기 불고기까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을 한 가지 골라야 한다. 365일 선짓국은 기본이고 북엇국, 미역국, 된장국, 감자국 등이 매일 바뀌는데, 남도식당의 선짓국이 피맛골 근처 유명한 해장국집 선짓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선짓국을 끓여 선지가 부드럽고 신선하기 때문. 현미정식은 밥만 현미밥으로 바꾼 것으로 5백원이 더 비싼데 꼭꼭 씹어 먹으면 밥맛이 달다. 남도식당에 내려오는 또 하나의 전통 메뉴는 연탄불에 지글지글 구운 불고기다. 불고기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둘 다 있다. 반찬 가짓수가 워낙 많아 남는 음식이 생기므로 안 먹는 반찬은 미리 물리는 게 좋다. 백반은 4천5백~5천원, 돼지불고기는 7천원, 쇠고기불고기는 1만1천원이다.
문의 02-734-0719 | 영업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10시 30분
남대문 시장의 갈치조림은 온통 뻘건 양념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장 안에는 갈치조림을 하는 골목이 세 군데나 있는데 숭례문 수입상가 근처에 있는 두 개의 골목이 오래된 곳이다. 집집마다 맛이 비슷비슷하다고들 하지만 원조로 꼽히는 ‘희락’이 손님이 가장 많다. 희락은 새벽 3시부터 문을 열고 새벽 시장 상인들을 맞는다. 갈치조림을 시키면 갈치가 담긴 손잡이도 없는 낡은 양은 냄비와 ‘스뎅’ 대접에 담긴 밥 한 그릇, 김, 반찬 몇 가지가 나온다. 시장 사람들이 단골이다 보니 빨리 먹고 갈 수 있도록 밥을 대접에 내기 시작했다는데, 고봉으로 쌓은 밥은 갈치조림 하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이다. 칼칼한 양념이 잘 배어든 갈치 살 발라 먹으랴, 푹 무른 무 집어 먹으랴 밥이 남을 수가 없다. 혹시 싱싱한 생물 갈치의 맛을 기대하고 있다면 비싼 갈치조림이 1인분에 5천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둘이 오면 보통 갈치조림 2인분에 달걀찜을 시키는데, 뜨거운 뚝배기째 나와서 호호 불어가며 퍼 먹는 재미가 있다. 한창 바쁜 점심 시간에는 1인분씩은 팔지 않기 때문에 혼자라면 한가한 시간에 들르는 게 좋다. 갈치조림은 1인분에 5천원, 달걀찜은 4천원이다. 카드로 계산할 수 없는 것도 남대문 시장답다. 시장 내에는 배달도 된다.
문의 02-755-3449, 02-755-8393 | 영업 시간 오전 3시~오후 9시, 일요일 휴무
‘맛이 없으면 반성문 100장을 쓰겠습니다.’ 최고의 밥상에는 이렇게 양심 선언문이 적혀 있다. 맛이 없으면 돈을 안 받겠다는 곳은 봤어도 반성문을 쓰겠다는 곳은 처음이다. 최고의 밥상은 30대 중반의 젊은 부부가 하는 곳인데, 장사가 잘되면서 ‘창업 성공기’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영광굴비·꽁치구이·고등어구이 정식 등 생선구이 백반 메뉴 세 가지와 숯불에 구운 매운 삼겹살, 시골 신김치찌개가 메뉴의 전부다. 크기가 작긴 해도 살이 달고 간간한 영광 굴비는 완전 밥도둑! 굴비만 추가해서 먹기도 한다. 고등어는 길게 가른 반 토막을 구워주는데 생선이 싱싱해 육즙이 자르르 흐르고 살은 부드럽다. 정식에는 달걀찜, 장조림, 젓갈, 게장 등 아홉 가지 반찬과 국이 나오는데, 맛배기로 나오는 시골 신김치찌개가 특히 맛있다. 강원도에 있는 시댁에 전라도식으로 담가달라고 부탁해서 얻어오는 김치라고. 줄기째 길게 끓이기 때문에 손으로 쭉쭉 찢어 먹고 싶은 그런 김치찌개다. 수요일에는 매운 낙지·오징어볶음, 금요일에는 자장·카레, 토요일에는 매운 삼겹살 숯불구이가 반찬에 추가된다. 석촌역 사거리에도 분점이 있다. 생선구이 정식과 시골 신김치찌개는 각각 5천원씩, 매운 삼겹살 숯불구이 정식은 6천원이다.
문의 02-501-5007(삼성점), 02-422-2950(송파점) 영업 시간 오전 7시~오후 10시
남부순환로를 끼고 예술의전당과 마주보고 있는 백년옥은 예술의전당을 다녀가는 관람객들과 예술인들에게 소박한 맛집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전통 순두부로 유명한 설악산 학사평 순두부촌의 김영애 할머니에게 기술을 전수 받아 문을 열었는데 오랜 동안 제대로 된 손두부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연식 순두부, 시래기 돼비지, 콩비지, 야채 두부비빔밥’ 등이 식사 메뉴. 이곳 순두부는 미끈미끈한 보통의 순두부와 달리 입자가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고소하다. 2층에 있는 두부 공장에서 강원도 간수로 매일 매일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손두부 맛이 투박하면서도 생생하다. 자연식 순두부는 이 집 두부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양념장에 살살 비벼먹는 맛이 그만이다. 시래기 돼비지는 콩비지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배추 우거지 넣고 끓인 것으로 요즘 밖에서 흔히 맛볼 수 없는 담백한 맛이다. 백년옥은 바로 옆에 있는 ‘앵콜칼국수’ 집도 같이 하는데, 어느 집에 있든 양쪽 메뉴를 모두 주문할 수 있다. 앵콜칼국수는 매생이 칼국수, 팥칼국수, 녹두칼국수 등 흔치 않은 칼국수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자연식 순두부, 콩비지, 뚝배기 순두부, 시래기 돼비지는 각 6천원씩이다. 최근 분당 서현동에 분점을 냈다.
문의 02-523-2860(양재점), 031-708-1501(분당점) | 영업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갤러리아 백화점과 로데오 거리 일대는 확실히 밥값이 비싸다. 그래서 가볍게 밥 한 그릇 먹고 싶어도 마땅한 곳이 없어 한참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숨어 있는 맛집을 찾은 끝에 발견한 곳은 맥도날드 옆 작은 골목에 있는 ‘파란 하늘’. 이 일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겐 꽤 알려진 곳이란다. 파란 하늘의 메뉴는 백반과 해장국, 딱 두 가지다. 밥과 국(또는 찌개), 넓적한 달걀말이, 시원하게 익은 김치가 기본이고 여기에 매일 반찬이 네 가지씩 추가되는데 아주머니 손맛이 맛깔스럽다. 이 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백반의 기본 중에 기본인 ‘밥’이다. 가스불에 불 조절해가며 지은 흑미밥이 전기밥솥으로 한 것보다 열 배는 맛있다. 밥 대신 누룽지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10월 말부터 3월까지는 하루 종일 숭늉을 끓여 오는 사람들마다 대접한다. 공간이 좁아서 주문 배달이 훨씬 많은데 도산 공원 정도까지는 배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주문 제작한 3층짜리 스테인리스 찬합에 밥과 반찬을 깔끔하게 담고, 국그릇에 국을 담는다. 두세 명분을 주문하면 푸짐히 싼 다음에 편하게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주걱과 국자까지 세심하게 챙겨준다.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데, 아침에는 해장국(선짓국)만 가능하다. 백반과 해장국 각 5천원씩.
문의 02-544-87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