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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안영희 시집 『목숨 건 사랑이 불시착했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1. 기억과 사랑의 힘으로 발견해가는 삶의 아름다움
안영희 시인은 남다른 자기 확인 과정을 곡진하게 담으면서도 사물과 타자를 향한 애잔한 기억들을 다양하게 표상함으로써 서정시의 개성과 보편성을 함유하는 결실들을 내보인다.
최근 우리 시에서 종종 발견되는시인과 사물사이의 균열 같은 것들은 그의 시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이처럼 사물과 사물 사이를 묶어주는 통합적 결속의 힘을 스스로의 기억에 할당하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노래해 간다.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의 가능성에서 발견해간다. 그를 시인이게끔 만들어주는 근원적 힘으로서의 이러한 기억과 사랑의 깊이는 이번 시집에서도 한결같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나아가 시인은 사물에대한 오랜 기억과 새로운 발견을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그것을 다시 스스로의 삶으로 비유해가는 과정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호명법이 말하자면 안영희 서정시의 근본원리인 셈이다.
원래 모든 기억이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사실적 재현에 바탕을 두기는 하지만 , 시인 자신의 현재형에 의해 선택되고 수렴되고 구성되어가는 일관성을 견지하게 마련이다. 그 점에 있어서 안영희 시인이 취해가는 기억의 원리는 지난날들을 온축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개진해가려는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할 것이다. 그의 시세계는 이러한 기억의 낱낱 풍경을 통해 세상이 살 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아름다운 필치로 환하게 보여준다. 시간의 둔중한 무게를 견디면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기억을 선명하게 부조하게끔 해준다. 마치 베르그송(H.Bergson)이 언급한 "지속의 내면적 느낌"처럼.
안영희의 시는 시간의 흐름과 그것을 담아내는 지속적 기억의 힘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사유 속에서 자신만의 시를 써가는 안영희 시의 세계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도록 하자.
2, 근원을 향해 역류해가는 상상의 지도
다시 강조하지만, 서정시느니 시인 스스로의 존재론 적 기원(origin)에 대한 기억의 과정을 중심적인 창작 동기로 다룬다. 그리고 그 과정은 궁극적 자기발견을 시도하는 모험으로 이어져 간다. 따라서 그 바탕에는 시인이 지나온 절실한 시간의 층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안영희 시는 이러한 원리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오랫동안 시인의 경험 속에 축적되어온 생의 연륜과 사유를 불러 모아놓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이 살아온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런거리고 있으며, 시인은 그 안에 머물러 있던 순간들, 사람들, 사물들을 새롭게 인화해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여러 세목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기억들은 그리움에 감싸여 있으면서도 가장 절실한 삶의 동반자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만큼 시인의 시선은 언제나 시간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수반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랄 세계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투시하려는 시인의 시선과 궁극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 이때 시간은 등질적이고 객관적인 속성을 반납하고 , 개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인지되는 주관적 형식을 띠게 된다. 안영희 시인은 이러한 독자적 시간원리를 통해 자신의 지향을 온전하게 갈무리 해가는 것이다. 먼저 다음 시편을 읽어보자.
대형마다트 문구코너에서
전혀 작정한 적 없는 공책 한 권을 사담은 건
또 누구의 짓이었담?」
고딕식 교회와 적포도주빛 지붕들의 표지
표백 안한 호밀빵 빛깔의 속지들...,켜켜한 시간의 질감
숙직실 무쇠솥에 죽처럼 끓인 구호품 우유,
본량국민학교 6학년 아이는 전교생 앞에 불려나가
상을 받았네
난생 처음 맡아본 황홀한 이국의 향내!
눈 시린 담홍색 필통에 든 연필에서도 지우개에서도
두꺼운 두 권의 공책 표지에는
보기만 해도 눈물 고이게 행복해 뵈는,
색종이빛 지붕의 집들
겹겹 에워싼 애들이 그랬네 야야 그게 다 미제야!미제!
전쟁이 찢어 패대기 친 어린 가지 툰드라에
홀연 켜진 요술램프!
열세 살의 소공녀 걸어 나와, 또 다시
오늘 또다시 공책을 사 담았네
_「공책을 추억함」 전문
시인은 대형마트 문구코너에서 느닷없이 "전혀 작정한 적 없는 공책 한 권"을 사 담았다."누구 짓이냐고 물어보지만 , 그 해답은 이미 시의 제목에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추억'의 힘 때문이었다. "고딕식 교회와 적포도주빛 지붕들의 표지/표백 안한 호밀빵 빛깔의 속지들"을 갖춘 공책은 시인으로 하여금 켜켜한 시간의 질감을 감동적으로 재현하게끔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오래전 "본량국민학교 6학년 아이"의 것이 오랜 시간을 격하가ㅕ 다시 나타난 감동이었다.전교생 앞에 불려나가받았던 상들 속에 공책이 들어있었던 것이다.물론 구호품 우유도 기억에 생생하게 "난생 처음 맡아본 황홀한 이국의 향내!"로 남아 있지만, 훗날 시를 쓰게 될 그 아이의 눈에는 담홍색 필통에 든 연필이나 지우개 그리고" 두꺼운 두 권의 공책 표지"가 가장 눈물 어린 행복 속으로 들어왔던 것이다."보기만 해도 눈물 고이게 행복해"보이던 "색종이빛 지붕의 집들"을 표지로 한 미제 공책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추억을 질긴 힘으로 남아 시인으로 하여금 "열세 살의 소공녀"가 되어 다시 공책을 사 담ㄱ금 한 것이다. 그렇게 홀연히 켜진 시간의 요술램플야말로 안영희 시인이 써가는'시'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공책을 추억하는 순은 "보드랍게 연 속살 안에 씨앗을 품고 설레며 잠 못 이룬"(「나도 봄밤의 임부였다-금간 항아리」)시간을 새롭게 가져다 준 셈이다. 아름답고 융융하기 그지없는 기억들이다. 다음은 어떠한가.
홍천 가는 국도 아래 남실남실
물이 찬 논배미들과
이내 모내기로 실려나갈 못자리들이
눈에 묻어올 듯 초록이네
모내기 날 고모집의 툇마루
다져올린 고봉밥과 간 고등어 한 토막씩이 올라앉은
감자졸임이 밥상이 ,
걷어붙인 일꾼들의 종아리와
갓 터진 햇목화빛 햇빛이 보이네
...지금은 폐가가 된 집,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들의
충만한 생의 풍경들이 부시게 깃을 쳐대고 있네
저녁이 오면
저 물찬 논배미마다 개구리들이 영원처럼,
영원처럼 울겠지
뭐하자고 찾아왔는지 저어만큼서 바라만 보다가 가던
소년들이 있었던 열일곱, 그 저녁들처럼
소만,
믿을 수 없이 차오른 이 물의 절기는
얼마나 많이 죽은 자리들을 다시 채우려나
-갑시다, 거기!
수화기 저쪽으로부터 헛되이 녹슨 빗장 젖히는 소리
약속 방기한 동안 그 가슴자리
되돌릴 수 없는
천수답이 되어있는 줄도 모르고
_ 「소만」 전문
이번에도 시인의 섬세한 내면적 기억이 시편의 서사를 이끌어가고 있다.소만이라는 절기는 자연사물이 자라 점차 가득찬다는 뜻을 품고 있다. 이때부터 여름 기운이 힘차게 돌아 모내기를 시작하게 되며 농사일이 대체로 분주해진다. 시인은 홍천 가는 국도에서 남실남실 물이 찬 논과 못자리들을 바라본다. 초록의 장관이었을 그 풍경은어느새 그 옛적 모내기 날 고모네 툇마루를 기억 속으로 끌어온다. 고봉밥과 간고등어를 올려놓은 아담한 밥상도 이어서 들어온다. "걷어붙인 일꾼들의 종아리와/갓 터진 햇목화빛 햇빛"이야말로 모내기 날 노동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핵심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억 속의 선명함도 지금은 "폐가가 된 집"과 "죽고 없는 /사람들의 / 충만한 생의 풍경들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저녁이 오면 논배미마다 개구리들이 영원처럼 울겠지만, 그 열일곱 때 저녁들과는 달리 시인에게 '소만'은 기억의 충일과 대상의 부재가 결합된 형상으로 다가가오는 것이다. 물론 "믿을 수 없이 차오른"물의 절기인 '소만'이 죽은 자리들을 새롭게 체워가겠지만, 그때 그곳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사물들의 부재를 통해 항구적 기억의 가능성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렇게 "물살물살 남실대며 지나가는-소만小滿 무렵의 /무논들"(「부산 가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가장 아름답고도 충일했던 생의 한순간을 소환하고 그것의 부재를 기억의 형식으로 아름답게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안영희의 시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남다른 기억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양식에 최대한 근접하면서,삶의 근원에 대한 상상적 경험을 첨예하게 치러간다.그 점에서 안영희 시 편들은 남다른 기억을 주조主潮로 하는 언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가장 근원적 삶의 이치를 밀도 있게 경험케 하는 미학적 실재로 다가온다. 우리는 근원을 향해 역류해가는 상상의 지도를 차분하게 따라가면서, 때로 서정성 짙은 기억의 양상을 만나보고 때로 근원을 향한 강렬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영희 시의 정수를 한껏 느끼면서, 동시에 그가 일일이 회상과 애착으로 호명하는 근원지햐의 심미적 의지를 온전하게 만나보게 되는 것이다.
3, 지속되어야 할 사랑의 마음
다음으로 우리는 안영희 시편에 절묘하고도 적정하게 들어서 있는 사랑의 테마를 만나게 된다.그의 시편에서 사랑의 대상들은 무심하고 수동적인 사물이 아니라 시인과 동일한 자의식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들로 나타난다. 따라서 안영희의 시에 들어서 있는 사랑이란 자기애 같은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한없는 애너지로 가득 번져온다. 대체로 서정시에서 사랑이 외로운 목소리들로 나타나는 것이 상례이고 또한 그 목소리들이 사랑의 결여 형식이라는 비극적 조건 안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때, 안영희의 사랑 사랑 시편은 그 권역을 넘어 따뜻하고 깊은 인생론적 긍정의 속성을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랜 기억 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속성들은 타자들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 어떤 추상적인 가치보다도 삶의 속성을 더 잘 알게 해주는 근원적 형상으로 돌올하게 다가 온다. 안영희 시인은 자신이 만나온 타자들의 형상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들여다보고, 마침내는 차자 긍정을 통한 사랑의 마음을 또렷한 미학으로 보여준다.
어쩌자고
목숨 건 사랑이 불시착했느냐?
신홀대기하고 있는 동부고속화도로
진입로 가에
진홍진홍 지인홍...꽃구름 레이스
줄 놓치면 죽을까봐
고개 한 번 돌려보지 못하고
줄줄줄 따라가는 꼭두각시들의 시대를,
열정 제거당한 허허한 저녁나절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느냐
무엇으로 뭉클뭉클 그리 치명매혹으로 터져 나와서는
삶은 때로 혼절할 듯한 전율이다! 고
오래 커큰 내린 내 마음 잿빛 유리창
차앙! 팔매를 치고 있느냐
절정의 덩굴장미, 장미 안나카레니나여
_「안나 카레니나」 전문
이 작품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쓴 고전적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을 표제로 삼았다. 안나의 "목숨 건 사랑"이 불시착해버리는 소설의 서사적 종결을 떠올리면서 시인은 신호대기하는 도로에 피어난 "진홍진홍 지인홍...불타는 굴름레이스를 바라본다. 그네들은 줄을 놓칠까봐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따라가는 꼭두각시들의 시대를 한껏 암시해준다. 시인은 그 풍경 속에서 열정을 제거당한 허허한 저녁나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안나가 살았고 사랑했고 기울어간 시대를 떠올리면서"뭉클뭉클 그리 치명매혹으로 터져나와서"결국에는 "삶은 때로 혼절할 듯한 전율"임을알려준 그녀의 삶과 죽음은"오래 커튼 내린 내마음 잿빛 유리창"에 순간적으로 팔매를 치고 있다. 그러한 "절정의 덩굴장미"를 바라보면서 그 등가물로써 안나 카레니나를 치명적 매혹으로 불러낸 '시인 안영희'의 내면적 열정이 뜨겁게 전해지는 명편名篇이다. 그만큼 안영희 시인의 내면에는"더없이 순하고 보드랍던 것은, 기다림과 신뢰의/ 유효 기간"(버려진 것들은 나무가 된다)이라는 믿음과 함께"가고, 가고' 다시 가는 사람의 연緣"(무정물에게 포게다」)에 대한 흡인력 있는 갈망이 동시에 농울치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슬픔이 아닐 수도 있겠다
기립박수의 절정 시월의 천지간이
바꿔입을 것 없는 인생의 남루가
부석사 언저리에서라면
산짐승 날짐승 들짐승
중생들 관觀하시느라 새벽녘에도 초췌한
늙은 무량수전
아미타불 무릎 아래 백 리까지
가쁜 호흡으로
산이 산을 업고 근경 중경 원경,
오체투지, 저리 지순하가ㅔ 절 바치고 있나니
실금투성이 어금니 깨물며 온 중고품 생도
가슴팍에 어깨에 비바람 맞아온 저 모퉁이
신라 천 년의 3층 석탑마냥
무심의 꽃 피울 수도 있겠다
다투어 경내에 들지 않아도
영주군 부석면 쇄락의 들녘에서 다홍다홍 진다홍…
지금 전유로 익어가는
저 사과알일 수도 있게다
아, 때론 놓아 보낼 수도 있겠다
의상 저어간 만萬만萬장저 노을바다에
배흘림 아름찬 기둥에 등 기대노라면
_「흘림에 기대면」 전문
이 아름다운 작품은, 슬픔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인상적인 구절로 시작된다. 가령 그것은 부석사 언저리에서 느낀 전율이 시월 천지간에 놓인 "인생의 남루"조차 슬픔이 아니게끔 하는 사랑의 마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 "늙은 무량수전" 새벽녘에는 아미타불 무릎 아래 가쁜 호흡으로 오체투지하면서 절을 바치는 지극정성의 형상들이 있다. 시인은 그 지순함에 동참하면서"실금투성이 어금니 깨물며 온 중고품 생"마저 온갖 비바람 맞아온 천 년 석탑처럼"무심의 꽃" 피울 수도 있겠다고 느낀다.그렇게 경내에 들지 않아도 만나게 되는"다홍다홍 진다홍의 사과알처럼, 시인도"의상 저어간 萬萬장 " 노을바다에 얹혀 배흘림 기둥에 등을 기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시인의 삶을 채우고 있는 것도 '슬픔'이 아니었지 않겠는가. 그렇게 ' 시인 안영희 마음 속에는 "마당에 만조滿潮로 든 순은청렬의 겨울햇살과 아침나절의 새떼들"(「겨울 집」)같은 충일한 활력과 함께 "꽃이 아니어도 꽃피지 않아도 서럽지 않은 /무등無等"(「백 년 만에 도착하다」)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새삼 시인의 사랑이 견고하고 넓고 심원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이처럼 안영희의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의 존재론 덕 기원과 삶의 깊이 그리고 지속되어여 할 사랑의 마음에 대해 아름답게 노 래한다. 그것은 안나 카레니나의 치명매혹의 사랑일 수도 있겠고, 부석사 무량수전의 전율어린 무등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그 사랑의 마음은 이번 시집으로 하여금 아프게 통과해온 지난 시간들에 대한 치유와 각성의 기록이자 지상의 존재자들을 향한 지극한 언어적 집성集成으로 등극하게끔 해준다. 한 걸음 더 진척하여 시인 자신의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토로하고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실존적 의지를 담은 고백록으로 나아가게끔 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안영희 시인은 자신의 기원과 사랑의 탐색을 통해 아름다운 실존적 의지에 가닿음으로써,이번 시집으로 하여금 그 스스로에게는 중요한 성찰의 계기가 되게 하면서우리에게는 진정성 있는 주체가 들려주는 자기탐색의 목소리를 듣게끔 하고 있다. 다양한 발화 양식과 주제를 통해 기원을 상상하고 사랑을 탐색하는 시적 진정성을 보여주는 세계로서 말이다.
4, 존재론적 비밀을 품은 시적 풍경들
흔히 우리 시대를 테크노 디지털 시대라고 명명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원초적 고독을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읽어온 안영희 시는우리 몸과 마음에 깊이 내면화된 사랑의 마음을 든든하고 은은하게 채워가는 역상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우리시대의 가치균열을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비전을 궁구해가고 있었던 셈이다. 두루 알다시피 원초적으로 서정시는 진솔한 자기고백을 일차적인 언어적 원리로 삼는 양식이다. 따라서 그것은 철저하게 시인 스스로의 성찰과 다짐을 매개로 하여 언표될 수 밖에 없다.그만큼 서정시의 기저에는 시인이 오랫동안 겪은 절실한 시간에서 회상回想과 예기豫期를 교차적으로 치러내는 무의식이 작동하게 된다. 안영희 의 시는 현실적 질서의 단호한 구축보다는상상적 질서를 회상과 예기로써 탈환해가는 과정을 선명하게 새겨간다. 따라서 그 안에 들어선 풍경들조차 사실 그대로의 반영이가기보다는 시인의 꿈과 의지를 착색한 상상적 산물일 때가 많다. 시인은 그렇게 숱하게 흔들리는 꿈의 속성에 더 친화하면서 그 꿈이 시인의 존재론적 비밀로 서서히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아도 아네
지금쯤 거리엔 땅거미가 내리리라는 것
등 뒤로 만두 속처럼 꽉꽉
사람들이 들어찼으리라는 것
제어장치 풀려가는 저 놓은 목소리들이
왜 소음이 아닌지
하루분의 노동을 마치고
저마다 다른 지붕 밑으로부터 굴러든거
ㄱ나사들 시끌버끌 몸 바꾸는,
뼈다귀들 성급하게 재 조립되고 있는
종로 빈대떡 집
굴전이나 빈대떡 안주 앞에 놓고
벌써 자리를 말고 있는 하루의 꽁다리에서나마
마구잡이로 터져나오는, 못 말리는
파장 터의 활기
산다는 일 애처러워 우릴 그만 방목한
늙은 어미, 취기여
_「파장罷場」 전문
이 오래된 풍경은 우리 삶의 존재론 적 비밀을 그윽하게 품고 있다. 파장의 풍경을 회상하면서 시인은 지금쯤 거리엔 땅거미가 내리리라는 것을 안다. 등뒤로 가득찬 사람들의 모습, 소음이 아닌 높은 목소리들, "하루분의 노동을 마치고 "다른 지붕 밑으로부터 굴러든 나사들이 몸을 바꾸는 순간, "빈대떡집/ 굴전이나 비대떡 안주 앞에 놓고"벌써부터 마구잡이로 터져나오는 "파장터의 활기"들이야말로 시인의 몸에서 떨어져나가지 않는 오랜 기억의 지배소일 것일다. 가끔씩 찾아오는 취기를 향해 "산다는 일 애처로워 우릴 그만 방목한 /늙은 어미'라고 명명하는 시인의 결기와 그리움이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그렇게 "자고 깨면 영원까지라도 휘감으며 뻗어올를 것 같던"(「검불다리」)시간들은 이제 늙은 자국들을 꾹꾹 눌러담으면서 새로운 삶을 햐한 충전의 예기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가까스로 서울행 기차에 올라
유리창 무심코 바라보다가
헉 소스러치네, 커다랗고 짓붉은 서녘 해에
종일토록 경작했던 하루가
저어만큼 흩어져가는 먼 수수밭이네
저문 江이 한사코 기차를 따라오지만
저 강물빛, 저 강의 얼굴이
이제는 슬프지 않네, 저 강물을 만나며 내가 울었던 건
...사 람 때문이었네
어둠 밀물쳐 든 유리창 밖 막막허공에
동, 동, 동, 동....
이숭인 듯 저승인 듯 따라오는
한사코 따라오는 둥근 저 등燈불은
다정하지 못한 운명, 축복의 등 비출 일 없는
남은 내 길을 위로하고 싶은
그 사람인가
부고도 없이 죽은 그 사람인가
_「저녁기차」 전문
이번에는'저녁기차'라는 풍경이다. 저녁 서울행 기차에 어울리게 붉은 노을이나" 종일토록 경작했던 하루"가기울어가는수수밭 풍경이 신비롭고 선명하게 다가온다.기차를 따라오는 저문 江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그 강의 얼굴이 이제는 슬프지 않도록 시인은 열정과 정성을 다해 삶이라는 난경을 기차처럼 거쳐간다. 사람들 때문에 숱하게 울었던 기억을 뒤로 하고, 이제 저녁의 어둠이 밀물처럼 들어온 유리창 밖 허공에서 시인은 "이승인 듯 저승인 듯 따라오는 /한사코 따라오는 둥근 저 등불"을 "남은 내 길ㅇㄹ 위로하고 싶은 " 순간처럼 기억한다.비록 다정하지 못한 운명이었지만, 축복의 등 비출 일 없는 생애였지만,"부고도 없이 죽은 그 사람을 환기해주는 그 등불의 잔잔하고 신비로운 조도에 시인은 자신의 생을 비추어 갈 오랜 예기를 다시 한 번 의탁하게 된다.
우리는 원초적 통일성을 가진 존재가 몸을 숨겨버린, 침묵과 폐허와 결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실대에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서정시를 우리가 쓰고 읽은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서정시가 우리가 상실한 어떤 근원적 감각을 회복해주고 궁극에는 원초적 통일성 탈환하게 해주는 유력한 언어 형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서정시가 근원적 감각과 원초적 통일성을 회복한다는 것은, 주체와 세계가 분리되어 있는 경험으로부터 그것의 통합을 추구하려는 성격이 서정시에 본질적으로 들어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러한 서정시의 속성을 오래도록 확장해오면서,안영희 시인은 그 안에 사랑과 노동과 아름다움을 깊이 내장해왔다. 이러한 근원적 속성이 아마도 최근 우리 시가 가장 빈곤하게 가지고 있는 보석같은 내질內質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 적 비밀을 발견하고 노래해가는 시인의 품과 격은 앞으로도 일관되게 심미성을 더하면서 지속되어갈 것일다.그 미학적 확산과정에 우리도 친숙한 동행이 되어 따랄가 볼 것이다.
5, 긍정과 공감의 미학적 파문
말할 것도 없이, 서정시는 언어 예술이자 시간예술이다. 우리의 감각과 세계를 이어주는 것이 언어이고, 그 언어가 다루는 사물이나 현상들이 하나같이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것이니만큼, 우리가 언어와 시간을 서정시의 핵심요소로 규정하는 것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서정시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시간과 친화력을 가지고, 언어를 통한 각별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하게 된다. 물론 이는 시간이라는 실재에 대해 서정시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서정시가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존재자들과 그에 대한 시인의 반응을 표상한다는 것을 함축하기도 한다. 서정시의 이러한 속성은 안영희 시편에서 사물에 대한 섬세하고도 스케일 큰 경혐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안영희의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 스스로 겪어온 경험들에 대한 고백과 함께, 시인이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삶아라는 화두에 최대한 근접해보려는 가치발견의 감각을 만나보게 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시인의 사유와 감각을 통해 그가 더욱 근원적인 가치를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영희의 시를 읽고 느끼는 것이이야말로, 풍요로운 감각과 정서에 다다르는 긍정과 공감의 미학적 파문에 대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깊은 성찰과 긍정의 힘으로 구성된 안영희의 이번 시집은 내면의 파동으로 번져가는 심미적 서정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삶의 궁극적 가치인 사랑의 시학을 경험하게끔 하고, 나아가 기억 속에 있는 존재론적 그리움을 한껏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시적 감동의 다른 이름일 것일다.그리고 서정시의 존재이유가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발견이라는 점에서,안영희의 시는 이러한 삶의 어려움과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들을 선사해갈 것이다.근원을 향해 역류해가는 상상의 지도, 지속되어야 할 사랑의 마음, 존재론적비밀을 품은 시적 풍경들을 담아 기억과 사랑의 힘으로 발견해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이번 시집 발간을 거듭 축하드리면서, 이러한 성찰고 긍정의 힘이 이끌어가는 내면의 파동이 우리 시단에 천천히 스며들어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되기를, 마음 깊이 희원해 마지 않는다.
_ (202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