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한재 미나리 먹는데 TV 뉴스에나 나올 차량이 덮쳤다.
緖
3.2. 청도 한재 미나리를 먹으러 가서 미나리를 먹다가 TV뉴스에나 나오는 날벼락을 당했다. 미나리를 먹고 있는데 꽝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먼지가 자욱한데 차량이 미나리 하우스로 들어와 있었다. 차량이 스포티즈인 것 같은데, 운전석에서는 운전자가 가만이 있었고 비닐 하우스 밖에 나가니 우리차가 날려 앞부분이 완전 부셔져 있었다.
우리차량은 주차된 곳에서 180°돌아 30m 미끄러져 차 정면이 완전 부서져 있고, 사람들이 119 불러라고 야단이기에 살펴보니 우리 차 앞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한재 미나리 야유회는 난장판이 되었다. 아무래도 차 사고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째서 이런 일이 터지는지.
本
3월2일 아침 9시경에 생질녀(조카) 전화가 왔는데 밭에 가서 냉이도 캐고 쑥도 뜯고 청도에 오려하는 것을 냉이(야시게이)는 다른 사람들이 다캐가고, 쑥은 아직 일러 10일정도 더 이상 되어야 한다고 하니까 맘 낸 김에 바람쐐로 청도에 온다나.
그러면 한재 미나리나 먹으러오지 하니까 미나리도 먹고자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12시 30분경에 미나리 하우스로 갔다.
본 하우스 문에 품절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상해서 문을 열어 보니 재수씨와 일꾼들이 미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재 청도 한재미나리는 품절상태라 한다. 이토록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본 미나리 집은 수년째 오는 단골집이고, 고종사촌 재수씨 집이다.
미나리를 먹으며 나와 마누라 생질녀 둘, 생질서, 생질녀 친구 두분, 총 7명이 미나리를 먹으며 45여 년 전에 고모집에 온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했다.
고모집은 식당에서 직선거리 100m 이내에 있고 고모가 시집올 당시 이야기, 내가 고모집에 평생 처음 온 이야기 등등.
고모집에 처음 왔을 때 아버님의 유언이었는 이바구, 실재 나는 고모집이 없는 줄 알았고 부산 고모집밖에 몰랐다. 그 당시 아버님께서 돌아가실 때 나에게 “너거 한재 고모집에 가봐라”하시어 그해 초겨울에 청도에서 오후6시쯤에 출발하여 고모집에 오니까. 당시 비포장길이였는데 밤이 점점 되어가니 강원도 첩첩 산중에 오는 줄 알았는 이바구.
이틑날 아침에 고모님께서 떡쌀을 이고 방았간으로 가서 시루떡을 해온 이바구.
“이너묵 손들아 이제 길이 터이더냐” 하신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다는 이바구.
이튿날 아침에 산에 올라 청도 우리집 쪽을 바라보니 온갖 생각이 다 생각나는 이바구.
그 중에서도 아버님께서 고모를 엎고 키운 이바구,
그중에서도 특히 주요시 한 말은 너거 외할아버지가 고모를 여기에 시집보내고 1년에 한 두번 얼굴 볼까 말까 했으니 여자는 출가외인이라는 것을 뼈 깊이 세기고,
생질녀 엄마 들째 누님은 초등학교 2학년만 보내고 학교에 보내지 아니한 일, 생질녀에게 제일 큰 이모 큰누님은 초등학교 6학년 통신표가 모두 수였는데도 너거 외할아버지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큰이모를 중학교에 보내지 아니한 이바구. 그래서 너거 큰 이모는 통신표를 들고 중학교 친척 선생님을 찾아가 부탁한 일 , 그러자 그 선생님은 십리나 되는 길을 걸어 집에와 학교에 보낼 것을 아무리 아버님을 설득해도 안 되었다는 이바구.
이런 모든 것은 고모님을 물 건너 산 넘어 지게 보짐지고 여기 한재까지 시집보내고. 집안 큰일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너무나 먼 길 산속에 시집보냈으니 너거 외할아버지가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하지 않겠나.
여기까지 말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더라. 관심도 없어 보이고.
듣거나 말거나 나 혼자 독백한다. 마누라까지도 귀담아 듣지 않으니 말빨이 안 서더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지만, 생각나는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했다.
꿈에 너거 큰 이모가 나타났는데 산위 여러채 집이 있었고 불빛이 찬란했는데 나는 좋은 꿈이였다고 생각했다. 우째보마 희한한 꿈이였는데, 수년 전에는 우리밭 가는 길에 하이얀 눈이 왔는데 길에 흰 소복을 입고 서 있었는 이바구를 하는 도중에 쿵하는 소리가 들였다.
뒤를 돌아보니 온통 먼지투성이인 속에 차 한대가 실내에 쑥 들어와 있더라. 차 안에는 운전사가 가만이 있었는데 우째된 건가 밖에 나가보니 우리 승용차는 튕겨 구석에 쳐박혀고 있고 누군가 옆으로 고개 숙여 있으니 누군지도 모르겠더라.
119신고하라는 말이 나와 119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하니 사람이 얼마나 다쳤느냐고 묻는데 다친 사람이 2사람인데 한사람은 넘어져 있다 하니, 숨은 쉬는가라고 묻는데 모르겠다고 하니, 손을 코에 대어 보라 한다. 그러자 고개를 약간 돌린다.
아이고, 넘어진 사람이 우리 팀 생질서다(요사이 공통으로 하는 말로 조카사위다).
이게 우째 되어서, 같이 미나리 비빔밥을 먹고 있었는데 언제 밖으로 나갔는지, 감이 안 잡힌다. 나중에 들으니 밥은 다 먹었고 전화 받으로 밖에 나가 변을 당했는 것이다. 조그만 더 꿈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변을 면했을 것인데. 생질서가 밖에 나가자 마자 변을 당한 것이다.
119가 와 빨리 와주지 않는지,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움직이지 못하니 얼마나 다친 것인지, 다친 자는 전혀 의식이 없고 숨만 쉬고 있다. 정신없이 있으니 생질녀와 생질녀 친구 둘은 울고 불고 난리다.
한참 있으니 119도 오고 경찰차도 왔다.
많이 다쳐 의식이 없는 생질서가 문제인데, 일단 가까운 병원으로가 응급처치를 하고 큰병원으로 가려 했다. 필자는 청도 대남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동 중에 경북대병원으로 가기로 했는 모양이다.
다친 사람은 생질서와 미나리 식당 따님과 운전자인데 운전자는 경산 모 병원으로 입원했고, 미나리 식당 따님은 연탄불에 물을 얻어 놓고 일을 하는데 뜨거운 물에 팔과 다리가 화상을 입었다.
환자들은 이송되고 KB레커차가 왔는데 필자가 우리가 거래하는 정비공장이 대성 정비공장인데 그리로 보내 달라 했는데 레커차 기사가 말이 많았다. 이유 불문하고 대성정비공장으로 이송하라고 강력하게 말하니 그리 하겠다 했다. 당시 경찰 지구대 지구대장님도 옆에 있었다.
다음날 대성정비공장에 우리 차를 말을 하니 차가 없다는 것이다. 차가 행방불명이되었다. 레커차기사에 우리차가 어디 있는지 물으니 엉뚱한 말만 한다. “우리 차를 어디에 갔다 놓았느냐”고 다그쳐도 말을 하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 사람 명함에 KB라는 명함에 지역번호가 있길래 전화를 하니 동서 카센터에 와 있다는 것이다. 전화 받는 사람이 카센터 사장인 것 같더라. 그래서 카센터 사장에게 항의를 했다. 렉카차 기사가 동서카센터에 보냈다 하면 될 것을 그토록 숨기고, 우린 동서카센터가 필요 없고 대성정비 공장인데 왜 그토록 대성 대성이라고 주장한데 그 기사는 엉뚱한 곳이 차를 갖다 놓고 아무리 차의 위치를 물어도 말하지 않는가. 하도 답답해서 경찰에 신고하려 한다고 했다.
경북대 병원으로 간 생질서는 어떻게 되었나.
사고 현장에서는 머리에 피가 흐르고 의식이 없었으니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날 밤까지 의식이 없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의식이 없으니 뇌출혈은 아닌지 이게 가장 궁금한데 경대병원 측에서는 액스레이만 찍고 씨티나 MRI은 찌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불안한 거다.
이튿날 부산 서면 어느 병원으로 이송이 되어 입원한 상태다. 오늘 환자 상태를 물어보니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나. 그래도 조금 났다나. 환자는 발 복숭아 뼈와 허벅지 뼈가 뿌써지고 머리가 다친 것이다 한다. 현재 부산 서면 새흥병원 측 말로는 머리뼈는 괜찮다 하는데, 아직 의식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다.
結
외가집에 와서 그것도 외고모 할매집에 아지메 식당에서 TV속에나 나오는 날벼락을 만났으니 우째된 기고.
밭에 가서 냉이도 뜯고 쑥도 캐고 오려하는 것을 냉이는 다른 사람들이 다캐가고 없고, 쑥을 아직 일러 다음에 오라 했다, 그러니 바람도 쏘일 겸 오겠다기에 그러면 한재 미나리나 먹으로 오라 했는데 이게 화(禍)이다.
부산 팀들은 삽겹살, 밥, 된장, 음료수, 김치 등 모든 것을 갖추어 왔고 ,우린 미나리 전도 부쳐 먹고, 비빔밥도 해 먹었는데, 비빔밥 다 먹자마자 꽝하며 사고가 났다.
다친 생질서를 생각하니 처외삼촌이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을 조그만 더 귀담아 들었다면 화(禍)를 면했을 거란 생각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1분만 더, 아니 20초만 더 들었더라도 화는 면했을 거다.
생질이나 생질녀나 집안 조카들은 나를 고풍이 푹푹 나는 고리탑탑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조카들에게 지나간 애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만 들리지만 내게는 현실이다. 그러니 듣거나 말거나 과거사를 설파하고 나니 지난날 사실들을 전달했다는 것에 취한다.
생질서의 빠른 쾌유를 바라면서 마친다.
2023. 3. 5.
청도 kimsunbee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