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의 목요일 어느날 다른 일로 제주도에 갔다.
한국에서는 가장 요가아사나를 잘 한다는 한주훈선생을
제주도에 들른 김에 이번에는 만나고 겠다는 생각을 하고 2박 3일의 일정을 잡았다.
새벽 수업에 참여하러 했으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
금요일 정오가 다 되어 한주훈선생의 요가원을 찾기 위해 나섰다.
렌트카를 타고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난생 처음 가보는 사라봉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주훈선생은 10년째 요가원을 하고 있으나 간판도 전화도 없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비교적 자세히 가는 길을 물었으나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한주훈선생과 오래전부터 알았던 전주에 사는 선생의 얘기만을 듣고
사라봉에 도착하여 그 선생의 조언대로 사라봉에 있는 모텔에 들러 물었다.
여기서 오래전부터 요가원하는 분을 묻자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시 사라봉 사거리 아래로 내려와 광주에 사는 맹부님께 전화를 했다.
그는 비교적 쉽게 요가원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고
나는 요가원 근처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여상 맞은편 정재학원 건물 2층에 요가원은 간판없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혹시 다음에 이 요가원을 찾을 나의 다음 사람을 위해
이곳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몇장의 사진을 남긴다.
그 시간의 기록을 꼭 1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남기게 된다.^^
당신도 당신이 가야할 길을 몰라 누구에겐가 물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미 가봤던 길도 어떤 이는 다른 이가 찾을 수 없게 어렵게 가르쳐 준다.
마치 내가 제주도에서 간판없는 요가원을 찾을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지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가 헤매이는 곳은 우리가 찾는 목적지 근처일 때가 많다.
두려움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사고를 경직시키기 때문에 목적지에 다 와놓고도
우리는 중요한 이정표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
특히 보이지 않는 수행의 길에 감과 포기할줄 모르는 노력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닌가 싶다.
알고 싶은 것은 자신이 무르익어갈때 먼저 간 이가 자연히 다가와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매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느 순간 어느 누가 당신의 스승이 될지 알겠는가?
이 가게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주훈요가원이 있다.
정재학원 건물을 찾아 들어가자 어제 사무실에서 만났던 한 아주머니가 내게 인사를 한다.
제주도에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반갑기도 하고 세상이 좁음에 놀랍기도 하다.
우리가 다섯사람만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사실을 종종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매순간 바르게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였다.
요가원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 보다가
들은 대로 오후 4시쯤 요가원 앞에 갔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정확하지 않는 정보는 우리에게 많은 시간을 헤매이게 한다.
하지만 난 이미 여기서 꼭 수업을 듣고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끝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고, 딱히 갈곳도 없었으므로...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서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주인 아주머니가 홀로 있었다.
내 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들어와서 차한잔 하고 가라고 하는
아주머니와 한시간 넘게 얘기를 했다.
대구에서 제주도로 시집 온 아주머니와 나는 오랜 시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그녀의 가족 얘기와 제주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아주머니가 말한 수업시간이 가까워진것 같아 2층의 요가원 계단으로 내려오니
이상한 모녀가 요가원 문앞에 주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은 약간 정신지체장애가 있었고,
엄마는 심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였다.
내가 곁에 있어도 엄마는 딸에게 계속 욕을 하며 딸의 실수를 질책했다.
약간 지체장애인 딸이 학교에서 머리를 감고 샴푸를 제대로 헹구지 않은 모양이다.
엄마는 딸에게 이제 머리털이 다빠져 대머리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일주일간은 절대 머리를 감지 말라며 딸에게 공포심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너땜에 내가 힘들다며 나가서 죽으라며 딸을 쥐어박고 있었다.
그순간 나는 한주훈선생에게 많은 실망을 했다.
인도의 아이엥가와 같은 수준의 요가아사나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수련을 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요가원에 다니는 이 모녀의 부자연스런 관계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슬펐다.
이 모녀를 지켜보며 겁에 질린 딸에게 위로의 말밖에 할수 없었던 나는
나로 인해 엄마에게 더 학대받을까봐 그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한시간 후에야 긴머리를 한 서구적인 얼굴의
나이 든 나보다도 작은 남자가 요가원 문을 열어줬다.
신비스러움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인지 요가원 안에서 수업시작 전에
문을 여는 그가 한주훈선생이란 것을 알수 있었기에
서울에서 왔음을 밝히고 수업을 들어도 될지 물었다.
한국요가협회에 대해 아는체를 하며 수업시작까지 한라산쪽을 보며 명상하라고 했다.
수업시간동안 잠깐씩 딸을 때린 엄마를 관찰했다.
열심히 수업을 따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들은대로 요가원의 아사나수업은 고난위도로 진행되어
일반인이 따라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친밀한 분위기나 교감의 느낌은 전해지지 않았다.
몇은 요가선생으로 보였으며 매우 난이도 높은 아사나를 수련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명상이 아닌 아사나의 완성을 요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시키는 대로 그의 수업을 듣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항상 자신의 몸을 최대한의 한계치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를 본 순간
내가 배웠던 것은 쉼없는 정진이 몸으로 표현되는 아사나의 아름다움이다.
노력없이 아름다움은 꽃필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에게서나 배울 것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긍정적이느냐 아니냐는 가르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그가 지향하는 것에 근접해 있느냐에 따라 순전히 상대가 느끼는 몫이다.
오래전 내가 처음 요가수업을 하며 먼길을 마다 않고
전국의 실력있는 선생들을 찾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것은 나는 오래 지나지않아 떠도는 일을 그만두었다.
우리나라 요가 1세대라고 할수 있는 한 사람의 수업을 들으러 지방에 갔을 때였다.
초보요가선생인 내가 보기에 그의 수업은 재미있고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그의 수업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수업을 진행하는 그의 태도에서 그의 인생을 느끼고 말았다.
요가선생이 한시간 동안 진행하는 수업은 그가 살아온 평생의 결과를
최대로 압축하여 전달하는 순간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그순간 깨달았다.
그날 그의 수업에서 나는 적잖은 실망을 느꼈고,
그후로 그는 요가계에서 그날 수업에서 받았던 느낌대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너무 희극적으로 전락된 요가가 슬펐고,
40년 그의 요가수련이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나는 서글펐다.
요가의 지속적 수련이 내면을 바꾸지 못한다면 요가가 잘못된 수련체계는 아닌지
나는 한동안 매우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내가 운이 없었던지 아니면 보는 눈이 없어서인지 내가 만난 인도 요기들이나
한국의 요가선배들에게서 진정한 요가의 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그후로 나는 요가나 인도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어린시절부터
간절히 열망했던 인도로 향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더 이상 내가 가야할 길을 묻기 위해 누군가를 찾지 않았다.
자신에게 가는 길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이란 사실을 절감하였고,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요가의 완성도
누군가를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으로 그날의 수업은 충분했다.
화려하게 자신을 포장해도 언젠가는 내면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몸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대가 아무리 지적인 언어로 자신을 치장하여 포장한다고 해서
모두를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후로 나는 홀로 가는 길에 있어 늘 나를 놓치 않으려 매순간 깨어있으려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감행한 연고없는 양평행을 통해 나는 내가 보는 모든 것에서
요가의 향기를 느끼며 수련을 지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 늘 배우고 있다.
모든 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자신과 하나된 영혼은 결코 자연과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 그대는 남이 쓴 글들과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하는가?
우리는 자신만의 세상을 자신이 되었을때 볼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인생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의 전부일 뿐이다.
자신으로 행복한 존재가 되어 보라.
이렇게 큰 불상과 탑을 보는 부처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 해탈하는 그 한가지 아닐까?
그러나 부처가 원하지도 않는 일들로 세상을 오염시키며
부처님의 자비를 말하는 오늘의 불교는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서글프다.
종교없는 나에게 안도한 순간이다.
나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보며 사진에 남겼다.
제주도의 나무는 다 저러한가 라며 혼자 잠시 갸우뚱하게 했던 나무이다.
1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나무가 바람가는 길을 따라 함께 휘어졌다는 것을 안다.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사는 것은 생명을 가진 것들의 운명이다.
인간의 몸도 균형감각을 잃은 순간 저 나무처럼 편향된 방향으로 휘어간다.
그리고 그 후엔 통증이란 고통과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요가를 통해 매순간 바라보는 것은 자신이 어느 것에 치우쳐 있는지이다.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통은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관문이다.
그대의 몸를 더 넓게 세상을 향해 펼쳐라.
그순간 그대의 마음이 몸과 하나가 되어 세상을 향해 열리게 하라.
요가의 환희가 육체를 통해 실재함을 느끼게 될것이다.
단순히 몸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올때까지
매순간 깨어있음으로 세상을 살라.
그리고 그다음엔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게 자신의 몸을 늘 소중히 여겨라.
자신으로 존재하는 순간 무한한 자유가 찾아 온다.
몸과 영혼의 아름다운 조율,
이것이 요가수련이 가져다 주는 최선의 아름다움이며 최고의 기쁨이다.
내가 느끼는 요가는 아직 여기까지이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
그속에서 나는 하늘과 땅의 조화를 본다.
내가 가장 인간적일때 내안에서 하늘과 땅도 조화롭다.
그리고 건강함으로 빛나는 강건한 육체와 흔들림 속에서도 균형을 찾는 강인한 정신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궁극의 길로 안전하게 이끌어 줄 것이다.
최선의 삶 = 최선의 죽음으로
나는 이번의 삶을 요가의 길로 아름답게 마치고 싶다.
첫댓글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