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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緣연分분이며 하 모 일이런가. 나 나 졈어 잇고 님 나 날 괴시니, 이 이 랑 견졸 노여 업다. 平평生애 願원요 녜쟈 얏더니, 늙거야 므 일로 외오 두고 글이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 엇디야 下하界계예 려오니, 올 저긔 비슨 머리 헛틀언 디 三삼年년일쇠. 臙연脂지 粉분 잇마 눌 위야 고이 고. 음의 친 실음 疊텹疊텹이 혀 이셔, 짓니 한숨이오 디니 눈물이라. 人인生은 有유限 시도 그지업다. 無무心심 歲셰月월은 믈 흐 고야. 炎염涼냥이 아라 가 고텨 오니, 듯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東동風풍이 건듯 부러 積젹雪셜을 헤텨 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득 冷淡담 暗암香향은 므 일고. 黃황昏혼의 이 조차 벼마 빗최니, 늣기 반기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花화 것거 내여 님 겨신 보내오져. 님이 너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디고 새 닙 나니 綠녹陰음이 렷, 羅나幃위 寂젹寞막고 繡슈幕막이 뷔여 잇다. 芙부蓉용을 거더 노코 孔공雀쟉을 둘러 두니, 득 시 한 날은 엇디 기돗던고. 鴛원鴦앙錦금 버혀 노코 五오色線션 플텨 내여, 금자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 내니, 手슈品품은 니와 制졔度도도 시고. 珊산瑚호樹슈 지게 우 白玉옥函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 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쳔里리 萬만里리 길 뉘라셔 자 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녈 제, 危위樓루에 혼자 올나 水슈晶정簾념을 거든마리, 東동山산의 이 나고 北븍極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淸쳥光광을 픠워 내여 鳳봉凰황樓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 거러 두고 八팔荒황의 다 비최여, 深심山산 窮궁谷곡 졈낫티 그쇼셔.
乾건坤곤이 閉폐塞야 白雪셜이 비친 제, 사은니와 새도 긋처 잇다. 瀟쇼湘상 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옥樓누 高고處쳐야 더옥 닐너 므리. 陽양春츈을 부처 내여 님 겨신 쏘이고져. 茅모簷쳠 비쵠 玉옥樓누의 올리고져. 紅홍裳샹을 니믜고 翠취袖슈 반만 거더 日일暮모脩슈竹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댜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쳥燈등 거론 겻 鈿뎐箜공篌후 노하 두고, 의나 님을 보려 밧고 비겨시니, 鴦앙衾금도 도 샤 이 밤은 언제 샐고.
도 열두 , 도 셜흔 날, 져근덧 각 마라 이 시 닛쟈 니, 의 쳐이셔 骨골髓슈의 텨시니, 扁편鵲쟉이 열히 오다 이병을 엇디리.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애로 님의 오 올므리라. 님이야 날인 줄 모셔도 내 님 조려 노라.
<송강가사(松江歌辭) 이선본(李選本)>
▶ 핵심 정리
지은이 : 정철(鄭澈 1536-1593)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시인. 호는 송강(松江). 서인의 영수로서 당쟁에 깊이 관여함.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고전시가 문학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작품에는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가사와 사설시조인 ‘장진주사(將進酒辭)’, ‘훈민가(訓民歌)’를 비롯한 시조 79수가 있음. 저서에는 <송강가사>와 문집인 <송강집>이 있다.
갈래 : 서정 가사
연대 : 선조18년-22년(1585-1589)
율격 : 3(4).4조의 4음보
문체 : 운문체. 가사체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 본사는 춘원(春怨) 하원(夏怨) 추원(秋怨) 동원(冬怨)으로 구성
성격 : 연군지사(戀君之詞)
주제 : 연군지정(戀君之情)
의의 : ‘속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극치를 이룬 작품. 고려속요 ‘정과정’의 맥을 잇는 연군지사임
‘사미인곡’의 문학적 우수성 : 이 작품은 임금인 선조를 사모하는 연군의 정을, 한 여인이 남편을 잃고 연모하는 마음에 비겨서 노래하였다. 다양한 기법과 절묘한 언어가 구사되어, 가사 작품 중에서도 그 문학성이 두드러진다. 표현상의 기법으로는 비유법, 변화법을 비롯하여 연정을 심화시키는 점층적 표현이 쓰였다. 시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고 있으며,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정서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 시어 풀이
삼기실 : 생겨날
님 : 임. 여기서는 ‘선조’를 가리킴
조차 : 따라. 좇아
: 한평생. 일생
졈어 : 젊어
괴시시 : 사랑하시니
랑 : 사랑. 본래는 ‘생각(思)’이었으나 17세기부터 ‘사랑(愛)’의 뜻으로 바뀜
노여 : 전혀. 다시
녜자 : 가자. 살아가자고. 살아가려고
외오 : 외로이. 따로이
글이고 : 그리워하는고. 사모하는고
광한뎐(廣寒殿) : 달나라에 있다는 궁전. 여기서는 대궐을 가리킴
그 뎌 : 그 동안에. 그 사이에
하계(下界) : 인간 세계. 속세. 여기서는 전라도 창평(昌平)
헛틀언 디 : 헝클어진 지. ‘얼킈연 디’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음
연지(臙脂) : 잇꽃의 꽃잎에서 뽑아 낸 붉은 빛의 안료. 여자의 얼굴 화장에 쓰였음
염냥(炎凉) : 더위와 추위. 곧 계절의 바뀜
늣길 : 감탄할
하도 할샤 : 많기도 많구나
동풍(東風) : 봄바람
건듯 : 문득. 잠깐. 갑자기
헤텨 내니 : 헤쳐 내니
득 : 가뜩이나. 그렇지 않아도
담(冷淡) : ①무슨 일에 무관심함. ②동정심이 없고 쌀쌀함. 여기서는 ①의 뜻
암향(暗香) : 그윽한 향기. 매화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임금에 대한 충정을 뜻함
므 : 무슨
이 조차 : 달이 따라와
벼마 : 베개 머리맡에. 베갯머리에
늣기 : 흐느끼는 듯. 감탄하는 듯
디고 : 떨어지고
나위(羅幃) : 엷은 비단으로 만든 휘장
슈막(繡幕) : 수놓은 장막
부용(芙蓉) : 연꽃을 수놓은 비단 휘장. 부용장
공작(孔雀) : 공작새. 여기서는 공작을 수놓은 병풍
기돗던고 : 길던고
원앙금(鴛鴦錦) : 원앙새를 수놓은 비단
버혀 : 베어. 여기서는 ‘재단하여’의 뜻
오션(五色線) : 다섯 가지 빛깔의 실. 오색은 靑 黃 白 黑 紅
금자 : 금으로 만든 자에
견화이셔 : 겨누어서. 재어서. 재어 가지고
슈품(手品)은 니와 : 솜씨는 물론이거니와.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졔도(制度) : 규격과 모양
시고 : 갖추었구나
산호슈(珊瑚樹) : 나뭇가지 모양의 산호
머흐도 머흘시고 : 험하기도 험하구나
뉘라셔 : 누구가
니거든 : 이르거든. 가거든. 도착하거든
밤 : 하룻밤
서리김의 : 서리 기운에. 서리 내릴 무렵에
우러녈 제 : 울며 (날아)갈 때에
위루(危樓) : 높다란 누각
슈정념(水晶簾) : 수정알로 꿰어 만든 발. ‘발’의 미화
거든마리 : 걷으니. 걷었으니
븍극(北極) : 북쪽 하늘 끝. 여기서는 임금을 상징
쳥광(淸光) : 맑은 빛. 여기서는 달빛
봉황누(鳳凰樓) : 임금이 계신 곳
븟티고져 : 보내고 싶구나
팔황(八荒) : 온 세상. 팔방(八方)
심산 궁곡(深山窮谷) : 깊은 산의 궁벽한 골짜기. 여기서는 온 나라. 방방곡곡의 뜻
졈낫티 : 한낮같이. 대낮같이
건곤(乾坤) : 하늘과 땅
폐(閉塞) : 닫히고 막히어. 천지가 얼어붙어 생기가 막혀
비친 제 : 한 가지 빛인 때. 즉 흰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을 때
사은니와 :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람은 물론이지마는
새 : 날짐승. 나는 새
긋쳐 잇다 : 그쳐 있다. 끊어져 있다
쇼상 남반(瀟湘南畔)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소수와 상강의 남쪽 기슭을 말하는데 따뜻하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함. 여기서는 작자가 머물고 있는 곳
옥누 고쳐(玉樓高處) : 옥으로 된 누각과 높은 곳. 여기서는 임금이 계시는 곳
양츈(陽春) : 따뜻한 봄볕. 따뜻한 봄기운
부쳐 내여 : 부채로 부치듯이 따뜻한 봄기운을 일으켜 내어
모쳠(茅簷) : 초가집 처마
니믜고 : 여미어 차고
슈(翠袖) : 푸른 소매
일모 슈듁(日暮脩竹) : 해가 저물 무렵 긴 대나무에 의지함.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가인(佳人)’이란 시의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혬가림 : 요량하고 분별하는 일
댜 : 짧은 해
고초 : 꼿꼿이
쳥등(靑燈) : 청사초롱
뎐공후(鈿公侯) : 자개로 장식을 한 공후
밧고 : 턱을 받치고
비겨시니 : 기대어 있으니
앙금(鴦衾) :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
져근덧 : 잠깐 동안
텨시니 : 사무쳐 있으니
편작(扁鵲) : BC 6세기경 중국 춘추시대의 명의(名醫)
싀여디어 : 사라져서. 죽어 없어져서
범나븨 : 범나비. 호랑나비
죡죡 : 마다. 쪽쪽
조려 : 좇으려고. 따르려고
▶ 시구 연구
이 몸 - 삼기시니, : 나와 임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임과 운명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緣分(연분)이며 - 일이런가. :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또한 어찌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나 - 노여 업다. : 임과 이별하기 전의 행복했던 시절의 상황. 나=작자 자신, 님=임금
엇그제 - 三年(삼년)이라. : 궁궐에서 임을 모시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온 지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광한전은 임금이 계시는 궁궐, 하계는 작자가 은거하고 있는 전남 창평. 작자가 사간원과 사헌부의 논척(論斥)을 받고 창평에 퇴거(退去)한 때가 선조 18년(1585) 8월이므로, 이 작품의 창작 연대가 선조 21-22년(1588-1589)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내용이다.
無心(무심) - 고텨 오니, : 임금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데 세월만 덧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듯거니 - 하도 할샤. : (세월이 흘러가니 임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 가고) 듣고 보고 하는 가운데 느낄 일도 많기도 많구나. 다음에 이어질 본사의 내용을 암시, ‘본사’에서는 ‘느낄 일’을 서술.
득 - 벼마 빗최니, :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은근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가?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 비치니. ‘暗香(암향)’은 매화의 속성으로 작자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은 임금을 상징한다.
뎌 梅花(화) - 보내오져. : 임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직접 보여 드리고 싶은 작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형상화한 표현이다.
님이 너 - 너기실고. : ‘매화’와 같은 나의 충정을 알아 주실는지
羅幃(나위) 寂寞(젹막)고 - 둘러 두니 : 임과 이별한 여인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공작’을 바꾸어 두르는 것은 고독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山(산)인가 - 머흘시고. : 산인가 구름인가 험하기도 험하구나. 산과 구름은 자신과 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인식된다. 따라서 ‘산’과 ‘구름’은 간신 또는 정적(政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간신들이 임금님의 총명을 가리고 있어 조정이 어지럽다’는 뜻이다.
밤 서리김의 - 우러녈 제 : 기러기는 사랑에 있어서 믿음을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러기의 울음 소리를 통해 작자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이다.
深山(심산) 窮谷(궁곡) - 쇼셔. : 시끄러운 조정을 은근히 풍자하며 임금의 선정을 기대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또 자신이 은거하고 있는 이 곳까지도 임금의 은혜가 미치기를 바라고 있다.
사은니와 - 긋쳐 잇다. : 온 세상이 눈에 뒤덮여 움직이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구절은 중국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를 암인(暗引)한 것이다.
댜 - 언제 샐고. : 임과 이별한 후의 뼈에 사무치는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鴦衾(앙금)도 - 언제 샐고 :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다. 이 밤은 언제나 밝을 것인가. 임이 없는 외로운 밤이기에 원앙침도 차게 느껴지고 밤도 길게만 생각된다. 임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을 여성의 입장에서 밝히고 있다.
도 - 셜흔 날, :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열두 셜흔 날’ 등의 표현은 시름과 한의 양을 표현하기 위한 수법이다.
하리 싀어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 임을 가까이 할 수 없어 얻은 병이기에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서 영혼으로나마 임을 만나겠다는 강렬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님이야 날인 줄 - 노라. : 비록 임이 호랑나비가 나인 줄 모를지라도, 나는 오직 임만을 좇겠다는 일편단심을 표현한 구절이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영혼으로 승화시켜 전 편의 절정을 이룬 부분이다. 이 구절은 서사의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와 호응 관계를 이루면서 임을 따르려는 사랑의 일념이 숙명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 전문 풀이
(서사 - 임과의 인연과 이별 후의 그리움)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임과의 인연)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 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이별 후의 그리움)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세월의 무상함)
(본사 - 임을 그리는 마음)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춘원春怨 - 매화를 꺾어 임에게 보내 드리고 싶음)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결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 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하원夏怨 - 임에 대한 알뜰한 정성)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추원秋怨 - 선정을 갈망함)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샐꼬?(동원冬怨 - 임에 대한 염려)
(결사 - 변함없는 충성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맡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임에 대한 충성심)
▶ 작품 해설
이 노래는 송강이 50세 되던 해에 조정에서 물러난 4년간 전라도 창평(昌平)으로 내려가 우거(寓居)하며 불우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작품으로, 뛰어난 우리말 구사와 세련된 표현으로 속편인 ‘속미인곡’과 함께 가사 문학의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임금을 연모하는 내용의 이 노래는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를 여성으로 택하여 더욱 절실한 마음을 수놓고 있다. 임금을 임으로 설정하고 있는 ‘사미인곡’은 멀리 고려 속요인 ‘정과정’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우리 시가의 전통인 부재(不在)하는 임에 대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가시리’와 ‘동동’ 등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사모하는 신하의 정성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체의 내용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적 변화에 따라 사무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작품의 서두와 결말을 두고 있어서, 모두 다섯 단락으로 구분된다. 외로운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경은 계절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결같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문으로 쓰여진 문학 작품을 경시하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동별곡’, ‘속미인곡’과 더불어 역대 사대부들에게 큰 감명을 준 작품으로서 홍만종과 김만중 등 여러 사람에게서 극찬을 받았다.
제목인 ‘사미인(思美人)’은 중국 초나라 굴원(屈原)의 ‘이소(離騷)’ 제 9장의 ‘사미인’과 같다. 그래서 임금께 제 뜻을 얻지 못하더라도 충성심만은 변함이 없어 죽어서도 스스로를 지킨다는 이소의 충군적(忠君的) 내용에다, 송강 자신의 처지를 맞추어 노래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 문학에서 연원을 찾는다면 고려 때의 ‘정과정’과 조선 성종 때의 조위(曺偉)의 유배가사 ‘만분가(萬憤歌)’ 등을 들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의 아작(亞作)이 아니라 송강(松江)다운 문학적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뛰어난 작품이다.
▶ 심화 학습 자료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은 두 작품의 화자가 모두 천상(天上)의 백옥경(白玉京)에서 하계(下界)에 내려온 여성이라는 점과, ‘임’을 간절하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죽어서도 다른 자연물이 되어 임을 따르겠다는 심정을 표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차이점은 ‘사미인곡’은 화자의 독백체로, ‘속미인곡’은 보조적 인물과의 대화체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고, ‘사미인곡’에서는 네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는데, ‘속미인곡’에서는 임의 일상 생활을 염려하는 말 속에 네 계절이 잠깐 언급만 되고 지나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사미인곡’에서는 죽어서 ‘범나븨’가 되어 임이 자신을 몰라도 임을 따르겠다는 소극적이 태도가 드러나고, ‘속미인곡’에서는 ‘낙월․구 비’가 되어 임에게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겠다는 다소 적극적인 태도가 드러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송강(松江) 시가에 대한 평가
(1) 송강의 ‘관동별곡’와 ‘전후 미인곡’은 우리 나라의 ‘이소(離騷)’이다. … 옛날부터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뿐인데, 다시 이 세 편에 대하여 논할 것 같으면, 그 중에서 ‘속미인곡’이 더욱 뛰어났다.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은 오히려 한자음을 빌려서 그 가사 내용을 꾸민 데 지나지 않는다. - 김만중의 <서포만필>
(2) ‘사미인곡’도 역시 송강이 지은 것이다. 이것은 시경(詩經)에 있는 미인이라는 두 글자를 따가지고 세상을 걱정하고 임금을 사모하는 뜻을 붙였으나, 이것은 옛날 초나라에 있었던 ‘백설곡’만이나 하다고 할 것이다. - 홍만종의 <순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