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시대별 황하의 흐름과 더불어 발해만을 포함한 중국 동해 해안선의 변천을 표시한
지도들(예를 들자면 http://www.pluskorea.net/imgdata/pluskorea_net/200806/200806024138396.gif,
http://www.colorado.edu/geography/class_homepages/geog_3822_f09/images/huanghe_courses.jpg)의 본래 출처가
어디일까 하고 궁굼해하던 중 이번에 확실하게 찾은것 같아, 내용상 별로 새로운 것은 없지만 이카페에서 주장하는 설의
핵심적인 자료이니 만큼 출처를 확실히 해 두는것도 의미있다고 생각되어 본글로 올려 봅니다.
자료 1: Caroline Blunden and Mark Elvin, "Cultural Atlas of China", Checkmark Books, 1998, p.16.
저자들이 옥스포드 대학교 동양학 연구소의 연구원들이었다고 하는데, 영어권 나라들에서 중국지리학 관련 대학 교재로 널리
쓰이는 듯 합니다. 일본어로 번역도 된것 같네요.


The changing courses of the Yellow River
황하 흐름의 변천
The upper course of the Yellow River has followed slightly different lines in different eras, particularly where it breaks
into multiple channels near present-day Ningxia and at the northwestern corner of its hairpin bend, but has remained
essentially stable. The lower course, east of Mount Hua and the Sanmen (or "Three Gate") Gorges, has varied
dramatically in historical times.
황하 상류의 흐름은 시대에 따라 약간 다른 길을 따랐다, 특히 여러 경로로 갈라지는 지금의 녕하(寧夏)와 북서쪽 모퉁이의
U자 모양으로 굽은 곳이 그랬다, 하지만 흐름은 기본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화산 이동과 삼문(또는 세개의 문)협의 하류는
역사적 시점에 따라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During the second millennium BC the lower course ran almost northwards just below the mountains of present-day
Shanxi province. In the next two millennia it swung around little by little like the hand of a clock until, from 1289 to 1324,
it was flowing in a southeasterly direction into the middle reaches of the Huai River, which in turn emptied into the
lower Yangzi. Since 1324 it has moved back and forth in an irregular fashion, and at present again debouches north of
the Shandong peninsula.
기원전 2,000년대에는 하류의 흐름이 지금의 산서성의 산맥 바로 아래에서 거의 정북방향으로 이어졌었다. 그후 1289년
까지의 2,000년간 마치 시계바늘과 같이 조금씩 방향을 바꾸었다. 1289년 부터 1324년 까지는 동남쪽으로 흘러, 양자강
하류에 물을 쏟던 회하의 중류에 이어졌다. 1324년 이래로는 불규칙한 형태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 지금은 다시 산동반도
이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The primary cause of these rapid shifts of course has been the uniquely heavy load of silt carried by the Yellow River.
As the current slackens near the sea, much of this is redeposited, building up the riverbed and sooner or later forcing
the water to run elsewhere. The present multi-exit system seeks to avoid this by the regular dredging of channels
temporarily taken out of use.
이러한 흐름의 급속한 변화의 주요한 원인은 황하에 실려 운반되는 특이하게 과중한 양의 흙모래에 있었다. 하구에 이르러
유속이 느릿해지면서 흙모래의 대부분이 재퇴적되어 강둑이 만들어지고 조만간 물은 다른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의 다(多)출구 장치는 일시적으로 막히는 통로의 정기적인 준설을 통하여 이러한 어려움의 예방을 추구한다.
자료 2: 内務省土木局 内務技師 富永正義, 黄河の治水及利水, 5. 河道の変遷, 昭和13年(1938年)9月
http://dl.ndl.go.jp/info:ndljp/pid/1906137/1?
일본 내무성 토목국 내무기사, 토미나가 마사요시씨가 작성한 "황하의 치수 및 이수" 라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의
일부분(하도의 변천)입니다. 황하의 흐름에 관한한 이자료가 원조일듯 합니다.

北支の大平野は有史以前に遡て見れば、一面の海にして、現在の山東省は黄海の一端に浮かんで居った一つの島であり、
山西省東部の山脚が当時の海岸線であったであろう。
북지나(北支那)의 대평야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온통 바다였는데 현재의 산동성은 황해의 한쪽 끝에 떠있던
하나의 섬이었으며 산서성 동부의 산기슭이 당시의 해안선에 접해 있었다.
現在黄河が流送する泥砂量は一年數[数]億立方米[メートル]と推定せられるが、此偉大なる自然營力は幾千年以来休止す
ることなく、水源より河口に至る數千粁[キロメートル]の間の幹支川より持ち来つた黄土を河口に堆積し、海岸線を前進
せしめたのである。
현재 황하가 흐르며 옮기는 진흙과 모래의 양은 연간 수억 입방미터 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이 위대한 자연의 영력(營力)은
몇천년간 멈추지 않고 수원(水源)에서 하구에 이르는 수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동안 지천(支川)들이 가져온 황토를 하구에
퇴적하며 해안선을 전진케 하였던 것이다.
京漢鐡橋印の中原は黄土の堆積量實[実]に七千立方粁に達するが、現在と同一の輸砂量であったと仮定すれば、其沖積に
七千数百年を要したことになる。
경한철교(京漢鐡橋) 이동의 중원은 황토 퇴적량이 7,000 입방킬로미터에 이르지만 현재와 동일한 수사(輸砂)량이라
가정하면, 그렇게 쌓이는데 칠천 수백년이 걸렸을 것이다.
史跡に徴するに帝堯八十載以来清の文宗の咸豊五年に至る迄四千百三十三年間に於ける河系の大移徒六回に及び、
河道の小なる移動に至りては實に測り知ることが出来ない。
사적(史跡)에 자취를 남긴 요(堯)임금이 80년간 세상을 다스린 이후 청나라 문종의 함풍 5년까지의 4133년동안
강줄기들이 여섯번의 큰 변화를 격고, 물길이 약해지며 이동함에 따라 바르게 측정할 수는 없다.
従って河北、山東、河南、江蘇の平野一帯には嘗て黄河の河道たらざりし所は殆どない状態である。
次に黄河河道の六遷に就きて略述する。
따라서 하북, 산동, 하남, 강소 평야 일대에 한때 황하의 물길이 지나가지 않았던 곳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아래에 황하 물길의 여섯 차례 변천에 대해서 간단히 말한다.
(一)禹貢に「黄河は積石より竜門に至り、南流して華陰に及び、東流して底柱に至る、再び東に向つて孟津に至り、
更に東流して洛を過ぎ大邳に至る。 北行して洚水を注ぎ、大陸に至り、北行して九河に及ぶ」とあり。
之によりて見るに禹の時代には九河に分かれて居り、其區域は天津付近から今の黄河の間であると考えられる。
(1) 우공에「황하는 적석에서 용문에 이르며, 남으로 화산 북녘에 이르며, 동으로 저주에 이르며, 또 동으로 맹진에
이르며, 동으로 낙양을 지나 대비에 이른다. 북으로 강수를 지나 대륙에 이르며, 또 북으로 아홉 강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를 헤아려 보면 우 시대에 아홉 강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그 지역은 천진 부근에서 지금의 황하 사이인
것으로 생각된다.
又禹、釃の二渠は黎陽、宿胥口にて河水を引き、一つは北流して大河となり、一つは東流して漯川となる。
其流路は禹貢導河圖によりて見るに、大邳より南に向ひ、東して河北南部を横断し山東省の朝城、高唐、高苑等を経て
渤海に注ぐ、惟ふに禹の治水は西暦紀元前二千二百七十八年に完成し、其後凡そ千六百七十七年は河道の変遷がなかっ
た。
또 우(禹), 釃의 두 도랑은 려양, 숙서구 에서 물을 끌어들여, 하나는 북으로 흘러 대하가 되고 다른 하나는 동으로 흘러
탑천이 된다. 그 물길은 우공 도하도로 보면 대비보다 남쪽으로 향했다 하나, 동쪽으로 하북 남부를 횡단하고 산동성의
조성, 고당, 고원 등을 거쳐서 발해에 흘러들어가는데, 생각하니 우의 치수는 서력 기원전 2278년에 완공하고, 그 후
무려 1677년동안 물길의 변천이 없었다.
(二)黄河第一遷、周の宗王五年(西紀前六百二年)黄河は黎陽(現在の濬縣)に於いて決[決壊]し、宿胥口を経て
東行漯川に入り、長壽津に至る。始めは漯川と別れて大名に至り、衞河と平行して居つたが、滄縣に至りて漳河を合し、
天津に於て渤海に注いだ。
(2) 황하의 첫번째 변천, 주의 종왕 5년(서기전 602년) 황하는 려양(현재의 준현)에서 트여져, 숙서구를 거쳐서 동으로
탑천에 흘러들어 장수진에 이른다. 처음엔 탑천에서 갈라지고 대명에 이르며 위하과 평행하고 있었는데 창현에 이르며,
장하를 합치고 천진에서 발해에 물을 부었다.
之を黄河の第一遷と稱し爾来六百十三年間は此河道が保たれて居つた。
이것을 황하의 첫째 변천이라 일컬으며 그 후 613년동안은 이 물길이 유지되고 있었다.


첫댓글 일본이 1938년도에 벌써 황하의 물길 변천을 알고 저런 지도를 작성했다니 놀랍네요. 그나저나 지구인님은 어떻게 저런 자료들을 찾아서 번역까지 하시는지 대단합니다.
저도 1938년 자료를 우연찮게 찿고 좀 놀랬는데요, 한국 사학계가 아직도 식민사관에 갇혀 헤매고있는 이유 중에 일본의 이런 치밀함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작질은 했지만 워낙에 꼼꼼하고 빈틈이 없었죠.
지구인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여러가지로 활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나라 고대사의 진실'을 알아내는데 소용이 잇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님께서도 잘 아시겟지만, '대청광여도[향고도지도집 참조]'를 보시면, '산동성북부=하북성남부'에 점선으로 그려져있는 '黃河古道(황하고도)'는 위 연구에서 어느 시기에 해당되는 흔적인지? 혹시 감이 잡히시면 설명 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청광여도: http://blog.daum.net/_blog/photoImage.do?blogid=0BVH1&imgurl=http://cfs9.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EJWSDFAZnM5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NTIuanBn&filename=52.jpg
@카오스 발해만 쪽으로 이어진 점선의 경로에 濬(縣), 大名府, 滄州(滄縣의 중심지)의 지명들이 보이고, 大名府에서 점선이 衞河와 평행으로 달리는 점 등이 위 본글의 "황하의 첫번째 변천"의 내용과 일치하는군요. 따라서 대청광여도에 표시된 황하고도는 황하의 첫번째 변천 이후, 즉 기원전 602년 부터 기원후 11년까지의 황하의 물길을 표시한 것인 듯 합니다. 다만 천진 일대가 당시에 바다였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물길이 천진에 이르기 전에 바다로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구인 예, 감사합니다.
일단, '하남성开封市북부黃河(황하)에서 출발해서 ->封丘縣(봉구현)->內黃縣(내황현)->廣平縣(광평현)->威縣(위현)->棗強縣(조강현)->阜城縣(부성현)->滄州市(창주시)->天津灣(천진만)으로 흘러가는 경로로 보이네요...
@카오스 대청광여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기원전 602년 기존 황하의 제방이 터졌다는 려양(黎陽=黎阳)도 작은 글씨로 보이네요 (38번 지도 大伾山 左). 宿胥口와 長壽津도, 대청광여도에는 안보이지만 "在河南滑縣西南"과 "在河南滑縣東北"로 각각 위치가 검색됩니다. 역시 대청광여도와 일치합니다.
@지구인 그렇군요....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청광여도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즉, 이 지도의 작성과 관련한 주체(who),시기(when+where),목적(what+why),방법(how) 등에 대한 '검증(소위,사료비판?)여부'와 '역사학적평가'가 어떤지 모르겠네요. 혹시 아시는 부분까지만이라도 (무엇이든지=틀려도 무방함) 알려주시면 고맙겟습니다. 특히 지도안에 표시된 지명 내지 기사들이 여러시대를 한 장소로 뭉쳐놓은(혹은, 중첩시켜놓는) 듯한 것 같아서...이 지도를 사료로 참고하기 위해서는 '이 지도의 작성경위'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보입니다...지구인님께선, 어떻게 보시나요?...
@카오스 한참전부터 대청광여도를 들여다보기는 했느데, 작성경위 까지는 모르겠네요. http://dl.ndl.go.jp/info:ndljp/pid/2543120 사이트의 정보에 따르면 나가쿠보 겐지유(長久保玄珠)란 일본인 유학자가 청나라 사람 (채구하)蔡九霞가 지은 광여기(廣輿記)의 그림들(또는 大清一統志의 그림 12장)을 한장의 지도로 볼 수 있도록 확대 편집해 놓은 것이라네요. 참고로 이 사이트 대청광여도의 해상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예,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대청광여도의 작자는 일본인이지만, 청나라사람이 만든 여러 자료들을 지도 한장으로 편집한 것이군요. 따라서 일단, 대청광여도의 기본콘셉은 중국사료들이 되겠군요. 물론 그 중국사료들이 모두 정확한 실사를 바탕으로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국사료들을 '상식적인(통설적인) 시각에서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우리가 중국사서들을 '상식적인(통설적인) 시각에서 해석'할 때는 (물론 대부분이 왜곡된 내용들이겟지만,) 일단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아도 되겠네요. 다만, '잘 취사선택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는 것만은 간과해서는 않될 것으로 봅니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