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부모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부족한 교과목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등등.
학기 중에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을 어떻게 읽힐 것인지에 대한 걱정도 많을 것으로 안다.
여러 부모님들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에 대한 여러 이야기, 도서관에서 방학이면 운영하는 독서교실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가르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 10회에 걸쳐 쓸 예정이다.
오늘은 책 고르는 몇 가지 편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1년 넘게 어린이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우리 아이가 0 학년인데 어떤 책이 좋은가요?"이다.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아이마다 성격과 자라온 환경이 다 다르고 또 독서력에도 차이가 있는 만큼 아이 개인의 특성에 맞는 책이 좋은 책이다. 책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나도 이렇게 질문하면 구체적인 정보를 주기가 어렵다.
둘째,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다 보면 정리대에 유난히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있다.
많이 빌려보는 책은 좋은 책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많이 빌려본다고 해서 그 책이 반드시 좋은 책이기는 어렵다.
아이들이 많이 빌려 보는 책으로는 <벽에서 나온 빨간 손>, <공포의 유령성> 등이 있는데 이런 책들은 삽화가 엉망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책들을 도서관 선생님들과 의논하여 하나 둘씩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셋째, 대부분 어머니와 같이 오는데 가끔은 아버지와 아이가 같이 오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와 같이 온 것을 보면 나의 관심은 그들에게로 간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넌 남자이고, 4학년쯤 되었으니까 이번 방학에 삼국지 읽어야지?"라고 하면서 몇 권을 집어들었을 때 잠시 그 부자의 얼굴을 번갈아 본 적이 있다.
부모의 경험을 기준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은 곤란하다. 4학년 아이가 무엇을 삼국지를 보고 무엇을 느끼겠는가.
삼국지에는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구를 배신하고, 사람을 죽이고 하는 것이 더 강하게 드러나 있다.
한참 우정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기에 오히려 인간관계를 맞는데 있어서 혼란스러움을 줄 뿐이다. 또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써 이 책은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역사라는 소리만 들어도 질려 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4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1년이라는 시간도 온전히 느끼고 있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년은 12달, 1달은 30일이라고 숫자상으로만 알 뿐이다.
이런 아이에게 무엇을 얻게 하려는 것인가. 그래도 이 책을 읽히고 싶다면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하는 중학교 때 읽어도 늦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삼국지 읽었어요."라는 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내 아이가 더 똑똑하다는 마음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넷째,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을 보면 여자아이들에게는 <심청전>, <빨간 머리 앤>,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과 같은 전래동화, 명작동화라고 쓰여진 것들을 많이 골라 준다.
남자아이들에게는 <파브르 곤충기>, <삼국유사>, <김구> 등과 같은 과학, 역사, 위인전 등을 골라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책 읽는 것에 여자 남자의 구분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아이들이 읽는 위인전이라 해도 <유관순>, <신사임당>, <퀴리부인> 정도이다. 여자 남자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려면 동화는 물론이고 과학, 기술, 역사, 위인전 등을 반드시 읽혀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책과 아이들에 관한 일이라 도서관에 갈 때마다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가지고 어떤 책을 골라 가는지, 아이들은 어떤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부모와 아이가 같이 온 경우에는 관심이 더 가는데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잘 들어보면 얼마 전 유행했던 사오정 시리즈 같다.
좋은 책이 어떤 것이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 전에 부모가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다양화, 전문화, 정보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부모의 학창시절의 경험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기 바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