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짜여진 서사적 틀 안에서 숨막힐듯한 미적 아름다움을 선사해주는 영화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우리의 가슴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착한 영화를 만나는 것도 영화보기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쁘띠 마르땅]은 병원을 소재로 한 환자들의 이야기, 거기에 어린 소년과 할아버지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이 결합된 작품이다.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여러가지 소재를 뒤섞어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가는듯 하지만, [쁘띠 마르땅]만의 독특함이 없는게 아니다.
지난해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와 퀘벡 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사실 미학적으로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조금 헐렁한듯한 짜임새, 그리고 암에 걸린 소년과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노인을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결코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인 매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삶의 극단적 상황에 놓여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비극적 전망, 그 순수한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쁘띠 마르땅]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촬영되었다. 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지난해 국내 개봉된 안젤리나 졸리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처음 만나는 자유]부터 잭 니콜슨 주연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그곳은 삶의 또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극단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전직 비밀 첩보요원인 앙뜨완(미셀 세로 분)은 알츠 하이머 병에 걸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자신을 돌봐주는 간호원과 대화를 할 수도 없다. 그의 기억은 자꾸만 희미해져 간다.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억을 되새김질 한다. 따라서 영화의 대부분은 앙뜨완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내면이 독백을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면서 현실적 상황과 엇갈리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앙뜨완을 찾아오는 유일한 사람은 소년시절부터 함께 자란 부인 수잔. 그러나 부인은 앙뜨완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른다. 앙뜨완의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뜨개질하다가 졸기 일쑤이다. 앙뜨완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은 우연히 이 병실에 들린 열살짜리 꼬마 환자 마르땅(조나단 드뮈르게 분)이다. 소아암에 걸려서 머리를 빡빡 밀었지만 마르땅의 모습에서는 항상 활기가 넘쳐 난다. 병원은 그의 또다른 놀이터이다. 병실과 복도를 내집처럼 휘젓고 다닌다.
마르땅은 처음에는 TV를 보기 위해 쌓아둔 동전을 털면서 앙뜨완의 병실을 기웃거렸지만 그 다음부터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자주 앙뜨완의 병실에 들리게 된다. 앙뜨완 옆에 있는 비어있는 침대에서 잠을 자는 날이 늘어나자 마르땅의 어머니는 아예 병실을 앙뜨완 옆 침대로 옮겨 달라고 의사들에게 간청해보지만 병원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거절당한다.
그러나 여전히 마르땅은 구애받지 않고 병동과 병동 사이를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휘젓고 다니며, 밤에는 앙뜨완의 옆 침대에서 잠을 잔다. 그는 서서히 아무런 말도 못하는 앙뜨완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앙뜨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눈을 껌벅거리는 것을 이용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기 시작한다. 이제 앙뜨완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마르땅 없이는 외로운 존재가 된다. 정밀진단을 받기 위해 며칠동안 마르땅이 사라지자 앙뜨완은 불안해진다. 더구나 유일한 가족이었던 부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앙뜨완은 더욱 외로워진다.
이런 앙뜨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마르땅, 드디어 병원 탈출을 감행한다. 휠체어 의자에 앙뜨완을 앉게 하고서 전직 비밀 첩보요원들이 모여 있는 바로 데리고 간다. 또 바다로 여행을 떠나 모래밭 위로 휠체어를 밀며 파도 가까이 앙뜨완을 데리고 간다. 두 사람 모두 이렇게 함께할 날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결코 삶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어린 소년과 늙은 노인. 노인의 주름진 얼굴,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응시만 하는 노인의 모습과, 자신의 삶 앞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의식하면서도 활기찬 모습을 읽지 않는 마르땅의 천진한 행동은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년과 노인 사이의 우정은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영사기사와 꼬마 토토 사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병원을 탈출한 두 남자가 마지막 순간 파도 앞에서 삶의 끝을 응시하는 모습은 독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쁘띠 마르땅]을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이 영화로 데뷔하는 드니 바르도 감독의 재능보다는 프랑스 최고의 배우로 칭송받고 있는 앙뜨완 역의 노장 미셀 세로와 마르땅 역의 꼬마 신인 조나단 드뮈르게의 연기이다.
미셀 세로는 국내에서는 마티유 카소비츠의 [암살자들]로 알려졌지만 [분노는 오렌지처럼 파랗다][이노센스][디아볼릭] 등 많은 영화를 통해 그동안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3번이나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또 조나단 드뮈르게는 300대 1의 오디션을 뚫고 발탁되었으며 영민한 작품분석과 상황에 대한 빠른 이해로 마르땅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쁘띠 마르땅]같은 영화들이 상업성과 오락성이 지배하는 국내 영화시장에서 자리를 붙일 공간은 별로 없어보인다. 하지만 거대한 블록버스터의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삶의 구석진 자리를 응시하고 내면의 진솔한 모습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영화가 존재함으로써, 더 이상 영화는 우리의 현실과 유리된 허구적 공간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현실이라는 것을, 그것을 통해 우리는 삶의 진실된 모습에 할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