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백 사이

프로는 사진을 잘 찍고, 아마추어는 프로만큼 사진을 잘 못 찍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한 마디로 틀린 생각이다. 실제로는 프로보다 사진을 잘 찍는 아마추어가 상상 외로 많다. 물론 프로라면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으니 어느 정도는 클라이언트의 욕구를 만족 시킬만한 테크닉과 사진 철학은 있어야 프로 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프로에게도 급수가 있다. 왜 바둑에서 프로라도 1단이 있으면 9단이 있지 않은가. 프로라고 다 프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돈을 잘 버는 프로가 있으면 밥을 굶는 프로도 얼마든지 있다. 돈을 잘 번다고 훌륭한 프로이고 잘 벌지 못한다고 사진 철학이 없거나 테크닉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프로는 이런 것 외에 자신을 파는 기술도 상당히 필요하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은 기본. 자기 PR 시대인 만큼 얼마나 자신을 잘 팔아내느냐에 따라 수입도 상당히 달라진다. 대개 자신을 팔기에만 여념이 없다가 결국 기술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자기 성찰을 가지지 못해 도태되는 프로도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에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프로 사진가 J씨가 TV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시쳇말로 아주 잘 나가는 프로 사진가다. 그 프로그램 마지막에 기자가 마지막으로 J씨에게 에게 물었다. “이렇게 잘 나가시는데, 혹시 하고 싶은 사진 없으세요?” 기자의 질문에 J씨는 답했다. “다큐멘터리를 언젠가는 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 때 내심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타큐멘터리는 안돼.”라며. “잘 나가는 쭉쭉빵빵 연예인들의 젖가슴이나 찍어 올리며, 히히낙낙, 하루 하루 밥벌이에 연연하는 그 배짱으로, 삶의 진실을 캐기 위해 배를 곪으며 카메라 한 대로 지구촌을 돌아다닐 수 있겠어?”라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마디로 그는 이미 글렀다. 지금처럼 죽을 때까지 쭉빵 촬영이나 하면서 나이 먹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게 뭐가 나쁘냐고? 쭉쭉빵빵 촬영하면서 잘 먹고 잘 쓰는 게 뭐가 나쁘냐고? 난 그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하는 말에 기분이 상한 것뿐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은 행동하는 철학이다. 철학하는 행동이고. 이미 독자나 관객의 입맛을 의식해서 사진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고 거기에 젖은 사람은 자신의 굴레를 벗어 진정한 삶의 질문을 던지는 게 쉽지 않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대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수긍할 것이다.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사진가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장르에 따라 레코드 쟈켓이나 연예인만을 찍어 밥 벌어 먹고 산 사진가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사진사에 이름을 남긴 사진가의 이름을 한 번 대어 보라. 대개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 정도에서 이름을 더 대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의 이름을 댄다고 하더라도 그의 사진은 이미 광고나 쭉빵의 사진을 넘어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해대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의 사진은 광고라고 하더라도 이미 다큐멘터리나 저널의 경계를 넘다들고 있는 것이다.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담은 사진을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살아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덧 붙여 한 마디만 더하자. 실로 그 옛날의 레코드 쟈켓을 찍고 연예인을 찍었던 사진가들의 이름이 오늘까지 남아 있는가? 만약 남아 있다면 그 사진가 때문인가? 아니면 불멸의 그 연예인 때문인가? 오늘 이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닌 데 옆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아마추어가 프로보다 좋은 사진을 찍어 낼 수 있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찍어도 좋고 못 찍어도 좋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니 꼭 발표를 해서 깨질 염려도 없다. 그리고 부탁한 클라이언트도 없으니 그 사진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마음의 부담도 없다. 실험 정신과 모험 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사진이라는 것이 이제껏 보지 못한 신선한 시각이라든지 주제를 다르게 해석해 내는 힘이라고 한다면 아마추어는 이런 것을 하기에 시간과 열정이 철철 넘쳐 나는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에 비해 프로는 매일 같이 사진을 찍어 그 대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 사진 찍는 일이 끝나면 내일은 또 다른 촬영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 그 때의 상황을 잘 풀어 나가기 위한 정도의 새로운 지식만 채우면 먹고 사는데 별로 이상이 없다. 그러니 모험 정신이니 실험 정신이니 하는 것은 그에게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완벽하게 촬영해 주기만 하면 된다. 그의 창작 행위든지 촬영행위는 클라이언트가 “좋아요, 좋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그러면 내일은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쁘니 사진 공부할 시간도 없다. 사실 10년 20년 하던 프로 사진가들이 도태되는 이유는 다 여기 있는 것이다. 사진으로 먹고 살기는 하지만 실제로 새로운 시각이나 새로운 생각을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내 선배 중에 화장품 광고 사진을 한국에서 최고로 많이 찍는 사람이 있다. 그의 나이도 어느새 40대 중반이 되었다. 언젠가 만나 그가 하는 하소연을 들었다. “요새 디자이너들은 대개 20대야. 그리고 그 팀장이라고 해도 30대 초반이거든. 그 친구들이 아버지 같거나 큰 형 같은 나랑 일하는 것이 버거운 가봐. 자꾸 일이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 그리고 요즘 젊은 친구들의 감각을 따라 갈 수도 없고. 광고라는 게 감각과 감성으로 승부하는 사진이잖아. 투자한 스튜디오를 문 닫을 수도 없고. 새롭게 공부하자니 먹고 살기 바빠 시간도 없어. 그게 문제야, 문제.” 프로와 아마추어는 딱 하나가 차이난다. 프로는 돈을 위해 사진을 찍고 아마추어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 프로는 돈이 되지 않으면 밥을 굶어야 하지만 프로보다 훨씬 좋은 장비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는 다른 직업이 있다. 그리고 그 비싼 카메라를 주렁주렁 메고 다니려고 하면 자신의 직업에서 꽤 많은 돈을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아마추어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한 테마를 완벽하게 섭렵하기에 유리하다. 아마추어로 즐기는 편이 훨씬 행복하다. 죽어라 찍어도 돈이 되지 않는 프로의 생활을 한 10년 해 보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삶에 찌들려 사진에 끌려가는 프로도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약 당신이 프로라면 아마추어처럼 사진을 즐겨라.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아마추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프로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연구하고 시간을 할애하라. 그럼 반드시 걸작을 찍게 될 것이다.” :: 출처 : http://www.kimhonghee.com